1996년 혜성처럼 나타나 가요계를 뒤흔들었던 아이돌그룹이 있었다. 바로
영턱스클럽.
'
서태지와 아이들'의 전 멤버
이주노가 키웠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주목 받았던 이들은 1집 타이틀곡 '정'으로 청소년들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고,
H.O.T 등과 함께 1990년대를 대표하는 아이돌로 자리매김했다.
그 후 11년이라는 시간을 훌쩍 넘긴 영턱스클럽이 새로워진 모습으로 다시 팬들 앞에 선다.
지난 1일 압구정의 한 스튜디오에서 영턱스클럽의 멤버 지준구를 만나 해체한 줄로만 알았던 팀의 풀스토리와 컴백하게 된 이유를 들어봤다.
못난이 그룹 "서로 못 생겼다고 했어요"
영턱스클럽의 콘셉트는 '못난이 아이돌그룹'이었다. 게다가 혼성그룹. 꽃미남 아이돌그룹들이 속속 등장하던 당시 그들이 스타가 될 거라고 예상했던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영턱스클럽은 이른바 '떴다'. 그리고 하루에 20개가 넘는 스케줄을 소화할 정도로 정신 없이 바쁘게 지냈다.
"그때는 2~3시간 밖에 못 자고 정신 없이 다녔어요. 데뷔하고 2개월이 지날 때까지 우리가 사랑 받고 있다는 사실도 몰랐으니까요. 나중에 이주노 사장님이 '얘들은 자기네가 얼마나 떴는지 몰라'라고 할 정도였죠. 정말 한참 지난 다음에 그 사실을 알았어요."
이날 만난 지준구는 당시의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다. 11년이 지나고 나니 추억이 된 기억들. 그의 말처럼 영턱스클럽의 '정'은 최고의 인기를 누렸고, 어딜가나 노래가 흘러나왔다. 방송마다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원래 영턱스클럽 1집 데뷔곡은 '훔쳐보기'라는 힙합풍의 노래였어요. 그 노래로 보름 정도 활동을 했는데 반응이 영 시원찮은 거예요. 사무실에서 활동을 전면 중단하고 한 곡을 재빨리 받아서 녹음했죠. 그게 '정'이었어요(웃음). 그동안 연습량이 많아서 안무나 노래는 따로 맞출 필요가 없었지만 속성으로 완성된 곡이었는데 그렇게 뜰 줄은 아무도 몰랐어요."
'정'으로 탄력 받은 영턱스클럽의 인기는 3집까지 쭉 이어졌다. 주변에서 이들을 방해하는 요소도 많았지만 그런 걸 생각할 여유조차 없을 정도로 바빴다. 인기 있는 이유도 모른 채 '못 생겼는데 어떻게 성공했을까' 서로 놀리며 그렇게 지내왔단다. 물론 자신들의 단점을 커버하기 위해 12시간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는 노력을 뺴놓지 않았다.
"많은 인기를 얻고, 인기가 시들어져서 힘들고 그러진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저를 비롯해 멤버들 모두 긍정적이었어요. 힘들었던 건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주위에 의해서 좌지우지 될 때였죠. 우리는 아무 문제 없는데 이렇게 저렇게 이용하고 사기도 당하고 그런 것들을 견뎌야했어요."
음악이 좋아 돌아온 영턱스클럽
그래도 영턱스클럽은 헤체설이 난무하고 있는 시대에서도 헤어지지 않았다. 무려 11년이다. 강산이 변하고도 남았을 시간, 그동안 영턱스클럽은 계속 되고 있었다.
불과 2년 전에 7집을 발매하며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기도 했다. 이렇게 오랜 시간 하나의 팀으로 살아남은 건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서태지와 아이들이나 H.O.T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멤버들과는 한 9년을 매일 봤으니까요. (9년이요?) 예. 2년 전부터 따로 생활했어요.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밖에 못 만나요."
가장 궁금했던 멤버들 근황을 묻자 지준구가 아쉬운 듯 한마디를 건넨다. 매일 얼굴을 보다보니 이제는 일주일에 한 번 보는 것도 허전하다고. 물론 지준구는 그동안 멤버들 간에 불화 한 번 없었다는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각기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여서 시끄러운 소음도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한 배를 탄 친구이자 가족으로서 서로를 이해하고, 오해를 지혜롭게 풀어가려고 노력했던 게 해체하지 않을 수 있었던 비법이란다.
"사람들이 TV에 안 나오면 해체한 줄 알더라고요. 비록 음반이 잘 되진 않았지만 2년 전에는 7집도 나왔었고요(웃음). 멤버들 모두 자아가 강해요. 그래서 그런지 해체설도 돌고 그랬는데 위기를 잘 극복한 것 같아요."
그도 그럴 것이 영턱스클럽은 절정의 순간에 멤버 교체라는 시련을 겪었다. 3집을 발매하고 '잘 나가던' 그 순간, 지준구와 최승민이 갑작스럽게 팀에서 빠지게 된 것이다. 그 후 새로운 멤버가 영입돼 영턱스클럽으로 다시 섰지만 인기는 거짓말처럼 뚝 떨어졌다.
결국 멤버들은 소속사에서 독립해 뭉칠 수밖에 없었다. 지준구는 "그때가 영턱스클럽의 가장 큰 시련이자 위기"라고 했다.
YTC, 영턱스클럽의 이니셜을 딴 팀명으로 활동을 재개한 이들은 물론 예전 같은 인기를 얻진 못 했다. 그래도 함께 위기를 겪었고 극복해낸 이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2007년에 팀명도 그대로, 멤버도 그대로 8집을 발매할 예정이다.
"처음에 음반 만들겠다고 했을 때 반대하는 멤버들은 없었어요. 좀 당연하게 진행됐다고 할까요? 다들 자기 위치에서 먹고 살 만큼 벌고 있어요. 현남이는 노래 레슨 선생으로, 승민이 형은 춤 레슨 선생으로, 성현이는 사업한다고 준비 중이고요. 저도 좋아하던 패션 사업을 하게 됐고. 그런데 저에게 있어서 패션이 '일'이라면 음악은 '인생'이에요. 음악하고 싶어서 앨범을 내는 거죠."
연예인 우을증 이해돼
영턱스클럽의 7집이 끝난 후 지준구는 패션사업을 시작했다. 갑자기 주어진 공백기에 당황하기보다는 평소 하고 싶었던 패션 관련 일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 것이다.
다행히 지준구의 인터넷쇼핑몰 블루밍키(www.bluemingky.co.kr)는 나날이 번창했고, 덕분에 그는 연예인 시절에는 경험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일을 겪었다.
"원단 보는 법부터 눈 동냥으로 하나하나 배워야했어요. 세금계산서도 몰랐으니까요. 연예인이라는게 어릴 때부터 데뷔해서 주위에서 대부분 챙겨주기 때문에 할 줄 아는 일이 사실 없어요. 무대 위에서 내려오면 경제적인 이유, 소속사와의 문제, 인기 등 알게 모르게 자존심 상하는 일들도 많지만 감추기 위해서 노력도 해야 하죠. 저도 그때는 대인기피증이 있었어요. 얼마 전에 연예인 우울증 얘기가 방송에 나오던데 100% 공감해요."
이 뿐만 아니다. 영턱스클럽이 전성기를 구가할 시절에 그에게도 주위의 유혹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또 노출되고 알려진 만큼 주변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손길이 잦았다.
"돈을 빌려달라고 해서 안 갚은 일은 비일비재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어떤 일을 해달라고 해서 해줬더니 그 다음에 연락이 안 된 경우도 많았고요. 그래서 전 도움을 줄 때는 빈 마음으로, 도움을 받을 때는 응당한 댓가를 지불해요. 그게 가장 좋더라고요."
그래도 지준구는 자신의 인생은 운이 좋다고 했다. 가요계가 최고로 주가를 올리고 있을 때 데뷔했고,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동안 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가요계 불황 속에서 데뷔하고 힘들어하는 후배 가수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요즘 나오는 신인 친구들이 안쓰러워요. 예전처럼 음반이 100만 장씩 나갈 때는 그만큼 대우도 받았거든요. 지금 이름은 알려져있지만 경제적으로 힘든 분들이 많을 거예요. 상위 1~2%를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이라고 봐요. 품위 유지비라고 하죠? 연예인은 포장돼있기 때문에 꾸미지 않을 순 없어요. 여러 모로 힘들죠. 저흰 정말 행운이었어요."
시대에 발맞춰 디지털싱글로 발매를 할까도 고민했다는 영턱스클럽. 그러나 지준구는 "촌스러워서 CD로 나와야 뿌듯하다"며 정규앨범으로 음반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춤을 추고 싶었고, 음악을 하고 싶었고, 패션을 하고 싶었어요. 전 해보고 싶었던 걸 다 해본 거죠. 그래도 음악이 제 인생이라는 걸 알았어요. 내년 초에 그런 영턱스클럽이 돌아옵니다. 원색은 아니지만 빈티지 느낌의 YTC를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