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로 새공원
Jurung Bird Park
강 문 석
새 공연장은 로마시대의 원형극장을 절반으로 잘라놓은 모양으로 규모가 상당했다. 현란한 원색의 두 마리 새가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것으로 공연은 시작되었다. 앞쪽에 딸린 바닥이 무대였고 반팔셔츠와 바지차림의 젊은 남녀 사육사들이 주도했다. 두 사람은 새들이 묘기를 성공적으로 펼칠 수 있도록 긴장하면서 정성을 쏟았다. 무대를 출발한 새들이 객석 공중을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돌아오는 쇼였다. 두 마리는 원을 그리며 날다가 객석 중앙 위치에서 서로 만나게 된다. 밋밋하게 그냥 날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이 팔로 받쳐 든 두 개의 링을 차례로 빠르게 통과하는 묘기를 선보인다.
묘기에 관객들은 우레 같은 박수를 보냈고 새들은 그런 반응에 더 신이 나는 듯했다. 새들이 나는 30여 초간은 와아 하는 환호성이 이어졌고 그 장면을 캠코더에 담고 싶었지만 순간에 끝나는 바람에 여의치 않았다. 무대엔 볏뿔닭과 무지갯빛 찌르레기 그리고 부채머리새와 같은 희귀조류도 순서대로 등장했다. 사육사들이 먹이로 새들을 유인해서 재주를 부리게 하겠지만 끝난 후에 별도로 먹이를 주는지 공연 중간에 먹이를 주는 장면은 보이지 않았다. 홍학과 앵무새가 재롱잔치를 벌이는 것도 무대에서 공연을 펼친 후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도록 만든 것도 모두 먹이가 있어서 가능했을 터인데도 그랬다.
남국의 신사로 통하는 펭귄가족의 사육장을 실내에다 만든 것은 싱가포르의 열대성 기후와 무관치 않았을 터이다. 평균기온이 섭씨 이삼십 도로 연중 무덥고 습도 또한 높기 때문에 펭귄은 특별히 실내에다 삶터를 마련해준 것이었다. 이처럼 남극을 재현한 무대에서 펼치는 펭귄 퍼레이드도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펭귄이 포유류가 아니고 바다새에 속한다는 사실도 140여 마리의 펭귄가족을 만나면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싱가포르에선 소나기의 일종인 스콜도 야생조류 삶의 터전인 열대림을 건강하게 만드는데 기여했을 것이다. 이곳 스콜은 한국의 여름과 겨울에 해당하는 시기에 갑자기 이삼십 분씩 세차게 내리는 소나기성 강우를 이른다.
조련사의 사육에 길들여진 새들이 펼치는 공연을 접하다보니 이러다가 어느 날 새들 스스로가 경기를 열겠다고 나서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었다. 비록 인간에 의해 시작했지만 그 기록을 갱신하는데 묘미를 느끼다보면 그들이 주체가 되어 대회를 개최하고 싶어질 것 같았다. 기러기나 청둥오리처럼 장거리에 능한 새들은 마라톤 종목을 고집할 것이고 독수리처럼 고공비행에다 스피드까지 겸한 새들이라면 장애물경기를 하자고 덤빌는지 모르겠다. 또한 타조처럼 다리가 긴 새들은 단거리경기에 열을 올릴 것 같고 펭귄처럼 바닷물에 익숙한 새들은 수영경기 종목을 고집할는지도 모르겠다.
주로 아프리카나 남미 열대우림과 호주 아웃백 등지에서 들여온 새들로 공원의 상당 부분은 상공이 열려 있는데도 새들이 머물고 있는 게 신통했다. 그 비결은 세심한 배려로 새들이 살던 지역과 동일한 환경을 만들어준 것이라고 했다. 8천여 마리 새들이 모여 사는 야생조류공원은 싱가포르 서부의 주룽언덕에 위치해 있었다. 이곳에 둥지를 6백여 종만도 6백여 종 새들. 현재 지구상에 서식하는 새는 9천 종이나 된다고 하지만 한곳에다 이처럼 많은 종을 사육하는 것은 아시아에서 싱가포르가 유일하다고 자랑한다. 그 비법으로 적도지방 새들에겐 매일 정오경에 인공 소나기를 내리도록 한다는 것.
트램을 타고 돌면서 희귀종 새를 가까이에서 만날 수도 있었다. 그러고 새들에게 직접 모이주기를 체험하거나 새가 탄생하여 자라는 생명의 신비를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공원 측에서 꼭 둘러보길 권하는 코스로는 거대한 인공폭포가 있는 세계최대 규모의 새장이다. 하늘로 쭉쭉 뻗은 울창한 숲속의 새장에 폭포가 떨어지고 그 사이를 새들이 날아다니는데 너무 커서 새장으로 부르긴 좀 부자연스럽다. 공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은 단연 로리 로프트 Lory Loft로 15종이나 되는 앵무새에게 직접 먹이를 줄 수 있는 곳. 먹이를 탄 물 컵을 들고만 있으면 여기저기서 새들이 날아온다.
이른 아침이나 늦은 오후처럼 기온이 오르지 않은 시간대에 새들이 더 활발하게 움직인다고 했다. 야행성 조류가 살고 있는 곳은 월드 오브 다크니스World of Darkness로 이름 붙였다. 이곳 나무 위에 미동도 않고 인형처럼 앉아있는 올빼미와 눈과 부리를 제외하곤 온통 하얀색으로 된 흰부엉이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진객이었다. 공원은 우리 돈 1만5천 원이란 입장료를 받는데도 지구촌 곳곳에서 연간 백만 명이나 찾는 관광명소로 알려져 있단다. 그런데도 난 그 사실을 모른 체 싱가포를 찾았다. 45년 전 싱가포르 어느 장관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를 방문했다가 그곳에서 거대한 새장을 발견한 것이 주룽새공원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장관은 귀국하자마자 공업단지였던 이곳 주룽타운 20만 평방미터를 자연공간으로 변모시켰다. 새들의 병원과 조류연구보존센터도 운영하며 멸종위기에 처한 희귀조류를 보호하는 활동에도 앞장서고 있었다. 그런 정성 때문인지 이곳 새들은 원시림을 날아다니는 것처럼 활기 넘치는 날갯짓을 보여 준다. 앵무새 모이주기 등 새들과 직접 만나는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어서 여성들과 청소년 자녀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새들이 펼치는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1982년 시작된 '버드 앤 버디스 쇼'를 2006년 라스베이거스 쇼 전문가가 리메이크한 것. 조련된 새들과 함께 화려한 의상과 분장을 한 캐릭터들이 펼치는 쇼다.
농구공을 던지며 경기를 하는가하면 선물을 나눠주기도 하고 노래까지 부르는 재미에 관객들은 탄성과 폭소를 멈추질 못한다. 조련사와 함께 매와 독수리 같은 육식성 새들이 출연하는 '맹금류 쇼'도 스릴이 넘친다. 사육사들은 희망하는 관객들의 팔에다 직접 맹금류를 올려주기도 한다. 왕관처럼 머리에 깃을 세운 우관앵무새와 빨강 파랑 노랑 연두색으로 색채의 파노라마를 연출하는 잉꼬 그리고 포스터컬러를 쏟아 부은 듯 부리가 화려하게 채색된 큰부리새는 공원을 대표하는 인기스타들이다. ‘올스타 버드 쇼’에선 앵무새들이 자전거 경주와 노래 부르기도 선보였다.
동남아지역에 사는 매와 밤에만 활동하는 올빼미와 부엉이 같은 야행성 새들 그리고 화려한 군무를 보여주는 핑크빛 플라밍고들까지 공원은 열대우림의 축소판처럼 꾸며져 밀림 곳곳에 거대한 새둥지가 들어서 있다. 꽃과 새의 공통점은 인간에게 악한 마음을 가질 수 없게 만드는 것이라고 사람들은 곧잘 말한다. 하지만 나처럼 현직 때 새들이 전력선에 접촉하여 일으키는 사고로 골치를 앓은 사람에겐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말이 아닐 수 없다. 반백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잊히지 않는 것은 새들이 일으키는 조류사고에 전전긍긍하면서 그만큼 애를 태운 때문이었다.
첫댓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