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부장과 영업사원의 싸움으로 파출소에 끌려가고 하였으나
결과적으로 회사에서 수습하였다.
새로운 제품과의 만남은 " 신선" 그 무엇이 있다.
새 회사에서 준 선불로 쌀 반 가마와 밀가루 한 포를 집에 들여놓은 후,
이제 우리식구가 3개월은 충분히 지낼 수 있다는 안도에 부자가 된 듯한 기쁨,
아- 행복해...
새로운 제품은 스텐 도시락(3인용) 가방으로 포장되어 어깨에 매거나
잡을 수 있도록 되어 있어 동대문이나 남대문, 평화시장 속을 한바뀌 돌다보면
한 두개 팔렸고 옆 가게에서 사면, 다음날 또 그 앞집에서 사고하여 책 세일과 같이
달동네를 힘들게 다니며 어린애를 울리고 부유한 집의 자녀와 비교하면서 가난한
젊은 엄마의 약점을 찔러 가슴 아프게 하지 않을 수 있어 좋았다.
이 제품을 판매하기 위한 세일은 그다지 어려움이 없었다.
스텐이 처음 선보이는 관계로 기존 알미늄으로 된 도시락과 비교하면
번쩍 번쩍 빛이 나고 아름다웠으며,
당시 생활이 어려워 음식점 문화가 발달되지 않은 상태에서
도시락을 싸다니는 장사꾼 아줌마들의 2~3인용으로 국물을 담을 수 있는
3층 스텐 도시락은 인기가 있었다.
그리고 스텐 27종으로 지남철이 붙지 않고 녹이 슬지 않는다고 자랑하며
3개월 월부(27000원)나 20일내 현찰(23000원)로 팔며 다녔다.
장사가 되는 시간은 오후 한가한 때에 장사가 잘되며 물건을 팔기 위해 흥정 중,
그들의 손님이 오면 내가 자리를 피하여 그들의 장사가 잘 되도록 하여야 했다.
이렇게 동대문, 남대문, 평화시장 속을 60여명의 영업사원들이 쑤시고 다니자
2개월이 지나 시장 속은 세 집 걸러 한집 꼴로 스텐 찬합을 팔다보니
영업 사원들끼리 경쟁이 붙어 회사 전표에는 규정대로 판매한 것으로 하였으나,
사실은 싸게 팔아 자기 돈으로 메워 놓고 월부나 현찰로 19000~20000원에 판매해
실질적으로 판매 이익이 5000원에서 1~2000원이 되는 장사가 되었다.
이 바람에 큰 시장을 뒤로하고 시내 변두리 작은 시장 속을 헤매며 판매해 보았지만
종업원이 없이 하는 시장 아줌마에게는 판매가 되지 않았기에 누군가 제안에
지방에서 뛰기로(장사) 하고 8명이 전주로 떠났다.
새로운 환경과 새 기분으로 새롭게 시작한 2주일간의 전주생활은
서울서만 자란 내게 서울을 떠났다는 홀 가분과 장사 중아는 사람의 접촉이
없을 것 이라는 생각에 열심히 장사를 하였으나
원정경비(숙식, 교통비)지출로 별 이득은 없지만 수학여행온 기분으로
저녁때면 동료(20~50대)들과 여인숙에서 서로의 어려운 심중을 얘기하면서
막걸리 좌담을 할 수 있어 좋았다.
한달 후 타 회사에서 이와 유사한 제품이 나와 15000원씩에 판매하는 바람에
더 이상 이(스텐찬합) 제품 판매가 어렵게 되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11월, 우리는 우루루 철새처럼 다른 제품을 찾아 회사를
떠나야 했으며 그곳에서 또 얼마나 장사가 될지 모르는 방황만 계속되었다.
겨울이 되어 전자 프라이팬을 팔았으나 장사가 되지 않았다.
일요일이나 비오는 날에는 4살 된 어린 여 조카와 그간 사놓은
밀가루로 수제비나 칼국수, 밀전병, 또는 내가 개발한 과자 (소금과 설탕으로 간하여
밀가루 반죽을 얇게 밀어 주전자 뚜껑으로 동그랗게 찍은 것을 프라이팬에 튀긴)를
만들며 여 조카에게 노래를 가르쳐 주었다.
&. ♪ 조개 껖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고
물가에 마주앉아 밤새 속삭이네, ♬
반찬은 한 두가지 집 생각나지마는
바다가 있고 그녀가 있는데 어쩔수가 없네,
라,~♭ 라 ~♩ 라 ~
언젠가 내게 올 사랑을 꿈꾸며 노래를 불렸다. (내 나이 21세)
그때는 지금의 슬픔이 아름다움으로 승화되겠지… ¤
또 장사가 하기 싫은 날은 회사에서 차비를 받아 물건은 보관소에 맡기고
친구(준은 초, 중, 동창이면서 행상도 같이하고 있는)와 라디오 방송 스튜디오에서
하루를 보내곤 했다.
이렇게 어린이용 그림책, 스텐 찬합, 전기 프라이팬, 지남철 글자판 등을
주택가를 돌며 장사해 보았지만 매일 타 가는 차비와 약간의 가불을 제외하면
판매 수당에서 타갈 것이 없는 실정이었다.
--담편에 --,
첫댓글 팽이님, 정말 사막에서도 살아남을 분 같네요. 인생의 시련을 초기에 겪으셨으니 사는 것에 자신이 생겼나요? 저는 안정된 직업도 있었지만 고생을 두려워하며 피하기만 하고 살았어요. 몸은 고단했는지 모르지만 마음은 고생하지 않고 살았지요.
아직은 고생이 아닌데, , ,
그시절에 고생 안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그런 저런 경험이 오늘날의 팽이님을 있게 한 밑바탕이 되었겠지요? ㅎㅎ
이제 젬있는 얘기를 해야 겠군요.
21한살 나이에 살기위해 무엇이든 한 용기가 가상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고생 많으셧슴니다....추엌속으로 깊이 빠져들고 있슴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