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위의 꿈 - 박제영
1997년 김동률이 작곡하고 이적이 작사하여 그 둘이 발표한 노래를 2007년 인순이가 리메이크하였는데 크게 유행했겠다 이에 박제영이 판소리 사설조로 개사하여 안산의 소리꾼 정유숙 선생에게 소리를 부탁하였으니,
여보게들! 내 이바구 한 번 들어보소 인순이가 요즘 노래를 부르는데, 그 노래 좋다고 찡하다고 장안에 지금 난리가 났는데, 뭔고 하니 꿈이 있다고, 벽을 넘고 하늘을 날아오르는 거시기 뭐냐 거위의 꿈이 있다고 (얼쑤!) 헛된 꿈은 독이야! 정해진 운명은 돌이킬 수 없는 겨! 온 세상이 비웃어도 마침내 운명의 벽을 넘을 거라고! 하늘로 날아오를 거라고! 혼혈 가수 인순이가 무대 위에서 온몸으로 온몸으로 노래하는데 (잘한다!) 무대 아래 김씨 이씨 박씨 최씨 할 것 없이 남자 여자 젊은이 늙은이 할 것 없이 죄다 눈물 콧물 흘리는 것인데 (얼씨구! 조오타!) 아뿔싸, 김동률도 모르고 이적도 모르고 인순이도 물론 모르는 게 있었으니 지금부터 잘 들으소, 그 거위가 말이여 지 놈 혼자만 벽을 넘은 거라 새가 빠지게 고생한 것 모르는 거 아니고, 죽는 한이 있어도 넘겠다는 불굴의 의지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지 혼자 벽을 넘고 하늘로 날아 간 거라 (얼씨구!) 보라 말이여, 혼자서는 도저히 벽을 넘지 못하는 거위새끼들이, 달구새끼들이, 오리새끼들이 꿔억궈억 삐약삐약 꽥괙 벽에 대고 울음을 토해내고 있는 것이여 (얼쑤!) 그러니까 여보게들! 어찌 해야겠나? 지 혼자서 벽을 넘을 것이 아니라 이놈저놈 다 뭉쳐서 이놈저놈 다 어깨동무해서 저 벽이란 벽 모두 부숴야지! 아무렴 부숴버려야지! (잘한다!) 지금부터 벽을 늘어놓을테니 다 같이 부숴보세, 한 번 가난은 영원한 가난이니 가난벽, 대학 안 나오면 사람도 못 되니 학력벽,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편갈라 싸움질이니 출신벽, 여성이라 안돼 장애인이라 안돼 혼혈인이라 안돼 늙어서 안돼 어려서 안돼 그 놈의 편견벽, 차별벽, 중이랑 목사랑 싸워대는 종교벽, 뭐니뭐니 해도 여의도에서 욕질 주먹질 뒤로 호박씨 까면서 툭하면 국민타령 해대는 저 국회의원들 정치벽, 비정규직 대량해고 정경유착 지 배만 불리는 재벌벽 (얼씨구! 조오타!) 에고 숨차네 여보게들! 오늘은 여기까지 끝내고 남은 벽들은 다음에 또 부수세 꿔억궈억 삐약삐약 꽥괙
시집『뜻밖에』(애지,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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