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 법문
간화선은 화두를 택해서 그 화두를 일심 으로 관해서 견처(見處)를 보는 것입니다.
이 간화선을 하는 데 있어서 수좌의 두 가지 병폐가 있습니다.
하나는 도거(掉擧), 하나는 혼침(昏沈)입니다. 화두만 또렷하게 생각하는 것을 도거라고 합니다.
생각하다가 잠이 와서 혼침에 빠집니다. 양단의 병폐에 빠지기 쉽습니다.
수좌들은 관심 두고 주의해야 합니다. 그 늪에 빠지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가 본질을, 본래면목을 찾는 방법을 역대 부처님들과 역대 조사님들의 말씀으로 다 내놨습니다.
세수하다 코 만지는 것보다 쉽다고 합니다. 우리는 몰라서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 제일 쉬운 게 간화선입니다. 이 세상에 제일 어려운 게 뭔가요?
모르면 제일 어렵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것도 알고 보면 쉽습니다.
이 간화선으로 견성성불이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알고 보면 쉽습니다.
오늘 전국에서 많이 분이 오셨습니다.
희양산 세계 명상마을에 와서 무슨 소득이 있었습니까?
소득이 있나 없나 말씀해 보세요. 소득이 없습니까?
사람 몸 받아서 도를 닦지 아니하면,
보배산 들어가서 빈손으로 나온 것과 같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보배산에 왔는데 뭘 가지고 갈 겁니까?
제일 어려운 거 버리고 제일 쉬운 거 가져가면 됩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할 말은 끝났습니다. 더 쉬운 거 가져가면 됐지 더 가져갈 게 있습니까?
하지만 너무 빨리 끝내면 ‘저래가 무슨 법문이냐.’라고 할 테니 몇 마디 더 하겠습니다.
하나의 재주나 기술이라도 많은 세월이 경과(經過)해야 숙련됩니다.
어려운 일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의 도(道)는 한 마디에 깨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한마디에 깨칩니까? 못 깨칩니까?
아까 말씀드렸는데, 못 깨쳤다고 하네요. 알고 보면 제일 쉬운 겁니다.
그렇게 해도 못 알아들으시니.
곤하게 깊이 잠이 들어서 누군가를 만나 여러 일을 겪습니다.
그런데 옆에서 툭 치면서 ‘이 사람아 뭐하노! 고만 자라’라고 하면 금방 깹니다.
깨고 나니 꿈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얼마나 쉽습니까?
꿈에서 어려운 일 많이 겪다가도 딱 옆에서 한마디 하니까 깼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쉽습니까?
여러분들은 지금 꿈꾸고 있습니까? 깨어 있습니까?
이 세상 사람들은 어려운 일은 기를 쓰고 하려고 하고, 쉬운 것은 죽어도 안 하려고 합니다.
역대 조사 스님들이 얼마나 갑갑하겠습니까.
가장 어려운 것을 알고 보면 가장 쉬우니까 자다가 꿈 깨듯이 알아차리시길 바랍니다.
그래도 잘 모를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다 꿈 깼습니까? 다 알았습니까?
너무 빨리 끝나도 밥값이 안 되니 한마디 더 하겠습니다.
산짐승들이 밭의 작물에 피해를 주니 허수아비를 세워 둡니다.
마른 풀과 떨어진 옷으로 사람과 똑같이 만들어 놨습니다.
들새와 산짐승들이 참말인 줄 압니다
허수아비는 흉년이 들어도 근심 없는 백성입니다. 허수아비가 무슨 근심이 있습니까?
나라에 전쟁이 나도 징병 되지 않는 호적에 빠진 백성입니다. 중요한 부분입니다.
우리 집에 키우는 소 한 마리가 있는데 힘도 좋고 눈도 밝습니다.
바로 밭에 들어가서 풀로 만든 허수아비를 다 뜯어 먹어버립니다.
(책상을 내려치면서) 탁! 이것이 바로 깨닫는 소식입니다.
진(眞)인지 가(假)인지, 허수아비인지 진짜 사람인지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다 아시겠지요? 모르는 사람 있는 것 같습니다. 진불(眞佛)인지 아닌지 아시겠습니까.
어느 게 부처고 범부(凡夫)인지 아시겠습니까?
아무리 아름답게 생화인 줄도 모르게 만든 조화는 사람도 잘 알아보기 힘듭니다.
그러나 벌과 나비는 단번에 알아챕니다.
중국에 아주 영리한 개가 있었습니다.
그 개는 흙덩이를 뭉쳐서 던지면 물려고 따라갔습니다.
그러나 사자는 흙덩이를 던지는 사람을 뭅니다.
흙덩이를 따라가는 일은 헛일입니다. 그러나 많은 이가 흙덩이를 따라갑니다.
누가 이랬다고 하면 그런 것 같다, 저렇다고 하면 그런 것 같다.라고 합니다.
개 한 마리가 달 보고 짖으면 온 동네 개가 따라 짖습니다.
우리도 달 보고 짖는 개를 따라 짖으면 개입니다. 여러분들은 개가 아닙니다.
오늘 법문 듣는 사람이 멍청하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제일 쉬운 것도 몰라서 어렵다고 하지 마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이 허수아비 법문은 성파 스님의 18번입니다.
다른 곳에서도 써먹었습니다. 너무 좋아서 닳지도 않습니다.
허수아비를 진(眞)인지 가(假)인지 알 수 있어야 달 보고 짖는 개처럼 따라 짖지 않습니다.
이 법문 가지고 단단히 생각하시면, 다음부터 법문 들으러 오지 않아도 될 겁니다.
한 말씀 더 드리자면, 도가 뭐냐 이렇게 묻는다면! (한 손을 높이 치켜들며) 어-억!!
- 성파 스님 -
성파 스님은
조계종 제15대 종정, 영축총림 통도사 방장.
1975년 봉암사 태고 선원에서 첫 안거에 든 이래 26안거를 성만 했다.
2018년부터 영축총림 큰 어른인 방장으로서 총림을 화합으로 이끌고 있다.
선의 심오함을 드러내는 그림과 글씨, 도예 등 불교 전통 선문화를 알리는 데 애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