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멀리 가운데는 보섭봉(?), 그 왼쪽은 남병산, 그 앞 왼쪽은 하일산
在在秋山展錦屛 곳곳의 가을산은 비단 병풍을 펼쳐
遊人如入畫中行 유람하는 사람이 그림 속을 다니는 것 같네
不將靑角鳴前道 길 앞에서 청각을 울리지 않음은
郤怕松梢睡鶴驚 소나무 끝에 잠든 학이 놀랄까 해서네
ⓒ 한국국학진흥원 | 김상환 (역) | 2014
―― 금계 황준량(錦溪 黃俊良, 1517~1563), 「영악산 가는 길에(影岳山路中)」
▶ 산행일시 : 2021년 10월 23일(토), 맑음
▶ 산행시간 : 8시간 30분
▶ 산행인원 : 4명(자연, 하운, 메아리, 악수)
▶ 산행거리 : 도상 12.9km
▶ 갈 때 : 청량리역에서 KTX 열차 타고 평창으로 감
▶ 올 때 : 청심대에서 택시 불러 타고 진부에 와서, 저녁 먹고 KTX 열차 타고 상봉역에 옴
▶ 구간별 시간
06 : 22 - 청량리역, 평창 가는 KTX 열차 출발
07 : 38 ~ 08 : 05 - 평창역, 산행준비, 산행시작
10 : 27 - 괴밭산 서릉 1,077m봉
10 : 49 - 괴밭산(1,103.4m)
11 : 08 - ╋자 갈림길 안부, 괴밭재(괴톨재)
12 : 03 ~ 12 : 45 - 1,034.0m봉, 점심
13 : 10 - 1,099.6m봉, ┫자 갈림길, 백적산 정상 0.4km, 골안이 2.0km
13 : 22 ~ 13 : 50 - 백적산(白積山, △1,142.5m), 휴식
14 : 25 - 송전탑
14 : 30 - ┫자 능선 분기, 왼쪽이 문필봉으로 가는 능선
15 : 25 - 임도, 안부
15 : 50 - 동박재
16 : 05 - 문필봉(文筆峰, 737.0m)
16 : 35 - 청심대(淸心臺), 산행종료
17 : 00 - 진부, 저녁
20 : 00 - 진부역, 상봉역 가는 KTX 열차 탐
21 : 18 - 상봉역, 해산
2-1. 산행지도(괴밭산,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봉평, 1/25,000)
2-2. 산행지도(백적산,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봉평, 1/25,000)
2-3. 산행지도(동박재,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도암, 1/25,000)
2-4. 산행지도(문필봉,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도암, 1/25,000)
▶ 괴밭산(1,103.4m)
단풍시즌이라 열차표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2주전에 백적산을 가려고 했으나 평창 가는 열차표를 구하지 못해
무산되었던 터라 이번에는 1주전에 예매하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두 좌석을 한 사람이 차지하였는데 이제는
만석이다. 나는 파노라마의 경치를 감상하기 위해 창쪽 좌석을 택했다. 내 옆에 앉은 젊은이는 휴대폰 게임의
고스톱을 치다가 잔다. 똥 먹으라고 훈수하려다 참았다. 터널을 지날 때마다 경치가 달라진다. 운해의 심연을
지나기도 한다.
평창역. 역사를 빠져나오자 대기가 차디차다. 된서리가 하얗게 내렸다. 낙목한천(落木寒天)을 마다하지 않고 오
상고절(傲霜孤節)을 자랑하는 국화도 그 기개가 꺾였다. 역사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산이 괴밭산이다. 그냥 지나
칠 때는 동네 뒷산 정도로 여겼는데 막상 우리가 오르려니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준봉으로 보인다. 그 가운데 능
선을 겨냥하고 간다. 한때 캐이 님의 지정식당이기도 했던 대로변의 편의점이 한산하다.
궁항동 마을 고샅길을 지나 농로를 한참 간다. 주변은 추수를 끝낸 빈 밭이다. 괴밭산을 안내하는 이정표나 산
행표지기 한 장 없는 순전히 우리의 길이다. 전나무 숲속을 가는 임도 갈림길이 나오고 여기까지 오는 도중 충
분히 예열하였다. 겉옷 벗고 임도로 든다. 첫 번째 산모롱이에서 미끄러운 너덜 계곡을 올라 엷은 능선을 잡으
려한다. 잡목과 덩굴 숲이 예사롭지 않다. 팔꿈치가 까이도록 낮은 포복하여 뚫는다.
넓게 자리 잡은 무덤이 고맙다. 잠깐 하늘이 트인다. 무덤 위로 잡목 숲속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진다. 더구나 푹
신한 부엽토라 열심히 발을 놀리지만 제자리걸음하기 일쑤다. 여러 번 걸음질하여 겨우 한 걸음을 오르곤 한다.
바윗길이 나온다. 슬랩을 지나 암벽과 만나서는 손맛만 다시고 사면을 돌아 오른다. 그래도 암벽 볼더링을 흉내
하여 오른다. 작년 겨울에 재산재 쪽에서 올랐던 괴밭산 남릉은 부드러웠는데 여기는 여간 사납지 않다.
산죽과 미역줄나무덩굴 숲이 번갈아 나온다. 산죽을 단단히 부여잡고 오르고 미역줄나무덩굴 숲은 온몸으로
뚫는다. 더러 튕겨져 나오기도 한다. 오뉴월 땀 뺀다. 1,077m봉. 괴밭산 서릉에 올라선다. 펑퍼짐한 능선이다.
흐릿한 인적이 앞서간다. 하늘까지 가린 수렴 사이로 언뜻 진부 쪽의 사남산을 두른 운해가 보였으나 어차피
조망 가린 괴밭산이나 아마 오후쯤일 백적산에서는 사라져 못 볼 것이라 조급해 하지 않는다.
산죽 숲을 벗어나면 풀숲 사면 누비며 오른다. 괴밭산 남릉의 사면에서와는 다른 괜한 걸음이다. 괴밭산. 정점
의 물푸레나무에 대구 김문암의 정상 표지판이 걸려 있다. 괴밭산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무엇일까? 괴밭이 무슨
뜻일까? 궁금했다. 평창군에 물어보아도 그런 산이 어디 있느냐고 오히려 반문한다. 물론 국토지리정보원의 지
형도에는 노브랜드인 산이다. 여러 사람의 산행기를 살폈다. “괴밭산은 고비나물이 밭을 이루듯이 많이 자생하
고 있다고 하여 괴밭산, 괴박산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럴듯하다.
3. 괴밭산, 안개가 약간 모여 있는 능선으로 올랐다
4. 풀숲에 내린 서리
5. 단풍
6. 진부 쪽 산골짜기는 안개가 끼었다
7. 괴밭산
8. 나뭇가지 사이 흐릿한 능선은 잠두산 연릉
9. 단풍
▶ 백적산(白積山, △1,142.5m)
잠시 숨 돌리고 백적산을 향한다. 당분간 울창한 산죽 숲을 간다. 가을을 찾아 나선 걸음인데 가을은 보이지 않
는다. 금년은 유난히 무더운 여름이 오래 지속되다가 가을을 건너뛰다시피 하고 갑자기 추위가 닥치는 바람이
나무들이 단풍으로 단장할 틈이 없었다고 한다. 설악산에서도 단풍 소식이 보잘 것 없는 요즘이다. 서예가 백암
맹복재(白巖 孟馥在)의 시구가 이 풍경 그대로다.
落木寒天寂寞岑 나뭇잎 다 떨어지니 산봉우리까지 쓸쓸해지고
被風落葉代聲禽 바람에 날리는 낙엽이 새소리를 대신하네
1,090m봉 지나 오른쪽(남동쪽)으로 방향 틀어 0.2km를 느슨하게 내리다 왼쪽(동쪽)으로 방향 틀어 급박하게
내린다. 울창한 산죽 숲이다. 고도 150m를 제동할 새 없이 순식간에 떨어진다. 등로에 깔린 갈잎 햇낙엽이 미
끄럽기도 하다. 바닥 친 안부는 ╋자 갈림길인 괴밭재(괴톨재)다. 왼쪽이 괴밭산 주등로로 골안이(굴암사)를 오
가는 길이다. 자연 님이 무릎상태가 좋지 않아 여기서 탈출하려고 했으나 부디 힘내시라 응원하여 함께 간다.
괴밭재에서 930m봉을 얼른 넘고 약간 내렸다가 박차 오른다. 길고 가파른 오르막이다. 등로에서 오른쪽으로
0.28km 벗어난 1,057.2m봉은 들르지 않는다. 거기는 삼각점도 조망도 없다. 다른 때는 인적이 뚜렷하던 백적산
주등로가 햇낙엽으로 덮여 있어 길 없는 우리 길처럼 간다. 길일로(金一路) 시인이 『송산하(松山河)』에서 가을
을 읊은 그런 길이다.
못 잊어
찾는 이 길
하도 덧없어
허랑해
잊잔 길이
이리 삼삼해
1,034.0m봉. 공터에 자리 펴고 점심밥 먹는다. 걸을 때는 몰랐는데 실바람이 제법 차다. 자연 님이 가져온 곰탕
끓여 먹는다. 식후 커피는 마가목주 듬뿍 넣었다. 아이리쉬커피 훨씬 윗길이다. 등로는 완만한 너덜성 오르막이
다. 너덜이 낙엽에 묻혀 있어 허방을 디디기 십상이라 걸음걸음 더듬거려 간다. 1,099.6m봉은 ┫자 갈림길이 나
있다. 왼쪽은 골안이(굴암사) 2.0km, 직진은 백적산 정상 0.4km다. 돌길이다. 막판 스퍼트 낸다. 갈지자 연속해
서 그리며 오른다.
백적산. 무인산불감시시스템을 지나 정상 표지석과 삼각점이 있다. 봉평 22, 1989 복구. 사방 조망이 훤히 트인
다. 우리가 세상의 한가운데에 있다. 눈 들어 계방산, 보래봉, 태기산, 금당산, 거문산, 백덕산, 절구봉, 보섭봉,
남병산, 중왕산, 가리왕산, 박지산, 발왕산, 고루포기산, 능경봉, 황병산, 노인봉, 동대산, 호령봉을 둘러본다. 백
적산이란 산명의 유래는 북사면의 차곡차곡 쌓인 흰 너덜에서 비롯되지 않을까 한다.
10. 괴밭재 가는 산죽지대
11. 백적산에서 조망, 멀리 가운데는 황병산, 왼쪽은 노인봉
12. 멀리 가운데는 발왕산, 오른쪽은 박지산
13. 앞은 잠두산 동릉, 왼쪽 멀리는 옥녀봉(?)
14. 계방산
15. 백적산 정상에서
16. 가운데 맨 뒤는 백덕산, 그 앞은 거문산
17. 맨 오른쪽은 금당산
18. 멀리 오른쪽은 발왕산, 그 앞 왼쪽은 병두산
▶ 문필봉(文筆峰, 737.0m)
백적산 정상 너른 암반에 앉아 따스한 양광 담뿍 받으며 사방 경치를 눈이 시리도록 둘러보는 가을날의 정취는
각별하다. 아직 갈 길이 멀다. 문필봉이 남았다. 거기에서의 조망은 또 어떠할지 무척 궁금하다. 동진한다. 되게
가파른 내리막이다. 굵은 밧줄이 잇달아 달려 있다. 고도 150m를 손바닥이 화끈하게 밧줄 붙들고 쏟아진다. 얕
은 안부를 지나 1,040m봉 넘고 특고압 송전탑이 나온다. 여기도 한 경치 한다.
문필봉 가는 능선을 잡기가 쉽지 않다. 새판재 가기 전에 왼쪽(동쪽) 사면을 과감히 골로 가듯이 내려야 한다.
우리는 그런 사정을 알면서도 이 능선을 약간 지나쳤다가 뒤돌아 올라 발로 더듬어 사면을 뚫었다. 인적 드문
우리의 길이다. 한 차례 겁나게 떨어지고 나서 920m봉에서 주춤한다. 송전탑 살짝 비켜 휴식한다. 아마 잣나무
나 낙엽송의 그루터기다. 이끼 낀 그 위에 아담하게 자란 버섯을 표고버섯으로 알았다.
넷이서 공평하게 나누어 먹었다. 아린 맛이 난다. 이게 탈이었다. 이후의 경과를 미리 말하련다. 속이 조금 불편
하다고 느낀 것은 일행 넷의 공통이었다. 나는 얼마 안 가 화장실에 다녀오고, 하운 님은 진부에 당도해서는 약
국에 들러 소화제를 사 먹었으나 급기야 구토 증세를 느꼈다. 그에 전염이라도 된 것처럼 맛난 삼겹살에 더덕
주가 모두의 입에 도통 닿지 않았다. 된장찌개도 그대로 남겼다. 찬물만 들이켰다. 이튿날 그 버섯을 정체를 요
로에 수소문하여 알아보았다.
솔잣버섯이었다. 여름에서 초겨울까지 소나무 등 침엽수의 고목, 그루터기, 통나무, 나무토막 위에 1개씩 또는
여러 개가 뭉쳐서 올라오며 솔향이 나고 버섯대는 겉면이 갓과 같은 색이고 노란갈색 섬유비늘이 층층이 있으
며, 버섯 갓은 낮고 둥근 산 모양에서 점차 편평해지며 성긴 나이테모양의 노란갈색 섬유비늘이 있으며 갓살은
흰색으로 육질이 조금 두툼하고 단단하며 밑면은 주름살로 되어 있으며 ……. 식용버섯이지만 날로 먹을 경우
위장장애를 일으켜 복통과 구토를 하게 된다고 한다.
잡목 숲이 이어지고 메아리 님의 향도로 쭉쭉 내린다. 임도가 잠깐 들르는 안부다. 임도 따라간다. 임도로
750m봉을 돌아 넘은 안부에서 자연 님과 하운 님은 계속 임도를 쫓아 마을로 가고, 메아리 님과 나는 문필봉을
간다. 잡목 숲이 무성하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기우였다. 임도 수준으로 다듬은 길이다. △760.5m봉 송전탑 주
변의 풀숲은 예초까지 하였다. 줄달음한다. 동박재를 지나서도 잘난 길은 이어진다.
문필봉. 붓처럼 뾰쪽하지 않은 뭉툭한 봉우리다. 사방 나무숲이 울창하여 아무런 조망도 없다. 선답의 산꾼은
있었다. ‘맑음’과 ‘安平’이다. 그들의 표지기가 문필봉 정상임을 알려준다. 잠시 숨 돌리고 하산을 서두른다. 문필
봉 옆의 730m봉을 넘고 남동진하여 내린다. 길이 사납다. 팔심이 부치도록 잡목과 가시덤불 숲을 헤친다. 능선
이 맥을 놓을 때까지 따라간다. 산자락 감자밭 가로질러 오대천 앞 대로다.
청심대가 바로 근처에 있다. 오대천에 맞닿은 암봉이다. 들른다. 청심대(淸心臺) 안내문이다. “이 청심대는 1418
년 조선 태종 때 강릉도호부사 양수(梁需)의 부실(副室) 청심(淸心)이 돌연 순절 산화한 것을 애석하게 여기고
청심의 정절을 기리고자 청심대라 명명되었으며 ……”
이 청심대는 그때부터 명소였다. 미수 허목(眉叟 許穆, 1595~1682)은 『기언(記言)』에 다음과 적고 있다. “대관
령(大關嶺)을 넘으면 횡계역(橫溪驛)인데 날씨가 매우 추워서 오곡은 자라지 못하고 메밀만 심을 수 있다. 횡계
역에서 30리를 내려가면 진부역(珍富驛)인데 그곳에서 월정(月井)까지 올라가면 15리이고, 그 아래는 청심대
(淸心臺)이니 또 15리이다. 청심대는 청계(淸溪) 암벽 위에 있다. 서쪽으로 30리를 가면 대화역(大和驛)이다.(逾
大關則橫溪驛。苦寒。五穀不生。其種蕎麥。下橫溪三十里珍富驛。上月井一十五里。其下淸心臺。又一十五
里。臺在淸溪巖壁上。西行三十里大和驛。)”
낙전당 신익성(樂全堂 申翊聖, 1588~1644)은 그의 「금강산 유람 소기(遊金剛小記)」에서 “막혀서 앞이 안 보이
는 대관령의 바위들을 지나 청심대(淸心臺)에 이르니 자못 높고 시원하였다. 누대 옆에 우물이 있는데, 여기 이
름도 우동(于同)이었다. 물맛이 아주 훌륭하여 오대산의 우동수와 다르지 않았다.(過嶺巖阻無開眼處。到淸心
臺。頗高爽。臺邊有井。亦名于同。味極佳。與五臺之水無別。)”라 하였고,
단원 김홍도(1745~1806)는 정조의 특명을 받아 영동과 금강산 일대를 두루 유람하고 그 산수를 진상하였는데,
그는 원주를 거쳐 금강산 가는 길목에 이곳 청심대를 지나가다 청심의 사연과 빼어난 절경에 매료되어 청심대
를 화폭에 담았다. 그의 금강산화첩의 첫 페이지의 그림이 이 청심대라고 한다.
진부 택시 부른다. 금방 오고 금방 진부다. 진부의 이름난 맛집을 찾아갔으나 생각과는 달리 앞서 얘기한 버섯
의 탈로 음식을 별로 먹지 못하고 거의 남겼다. 열차시간이 넉넉하여 진부역까지 걸어간다.
19. 과남풀
20. 멀리 가운데는 발왕산
21. 멀리 가운데는 발왕산, 그 왼쪽은 노인봉, 그 왼쪽은 동대산
22. 맨 오른쪽 뒤는 등용봉(절구봉) 연릉
23. 왼쪽 뒤는 하일산
24. 솔잣버섯, 식용버섯이다. 표고버섯으로 잘못 알았다
25. 문필봉 가는 길
26. 청심대
27. 단원 김홍도가 그린 청심대, 오대천 건너편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첫댓글 식용인데도....ㅠㅠ 아침에 똥묵으라카이 글쵸~ 똥피를 묵어야지 ㅎㅎ
아마 킬님도 예전에 버섯 잘못 묵고 혼났다는데 저거인거 같아요~
화경버섯이 아니기 다행이었습니다.^^
그러나 소득이 있었습니다. 날로 먹으면 안 된다는 버섯 하나를 더 알았습니다.
형님도 착각하시니 버섯은 정말 조심스럽네요. 백적산 정상 암반에서 햇볕 듬뿍받으며 나른하게 가을맛을 느끼는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푸근해집니다.
걷고 있어도 걷고 싶은 가을날의 산길이었습니다.^^
@악수 멋진 말씀입니다
그만하길 다행입니다...날것은 더욱 더 조심해야겠네요^^
초반에 그랬더라면 산행이 다칠 뻔했습니다.ㅎㅎ
ㅎㅎ 고생 하셨네요. 정말 버섯은 200% 확실해야 먹갰어요...제가 전에 문필봉 갔을 때는 리본 하나도 없었습니다.
문필봉을 기대했는데, 별로여서 실망했습니다.
중간에 형제봉과 사남산으로 방향을 틀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악수 예~ 그때는 석두산-사남산-형제봉-백적산-괴밭산으로 산행 했습니다. 산들은 작아도 조망이 아주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