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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무기자 스크랩 광복 70주년 서울도서관 전시 - 깃발, 들다
호박조우옥 추천 0 조회 80 15.09.02 10:3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오늘 갈 곳은 서울광장 앞에 자리한 서울도서관!


광복 70주년을 맞이해 서울도서관이 새로이 단장한 모습을 보여주었답니다.

태극기로 단장한 서울도서관에서는!

 


이렇게 광복 70주년
을 맞이해 태극기 사진 특별전을 열었습니다.

광복 70주년인 만큼, 서울도서관 1층부터 4층까지 모든 공간을 활용한 큰 전시였어요!


여기서 잠깐!

서울도서관이 어떤 장소인지 알고 넘어갈까용?

 

지금의 서울도서관인 서울시 옛 청사는 일제 강점기인 1926년 경성부 청사로 건축되어 사용되다가 광복 후 서울특별시 청사로 사용되었습니다. 이후 인구의 증가와 시정의 확대로 수차례의 증축과 개수, 보수 작업이 이루어졌어요. 현재, 21세기 행정 수요의 변화에 대응하고 세계 도시로서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뒤편에 새로운 청사를 지어 지금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그럼, 이제 서울도서관에 들어가 볼까요?

 


서울도서관에 들어가서 바로 보이는 입구입니다. ‘깃발, 들다.’ 전시가 진행 중임을 보여주고 있어요.

서울특별시 주최, 광복 70주년 서울시 기념사업추친단 주관으로 이루어진 이 전시는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독립기념관, 국회 헌정 기념단, 하남 역사박물관, 학교법인 동덕여대 박물관, 진관사, 숙명여자 고등학교, 동아일보 신문 박물관, 선교장, 한국독립동지회, 그리고 관련 자료 소지자(개인)에게서 자료를 제공받았답니다.

 

이 전시는 옛 근대 기록 사진들 속의 역사적인 태극기들을 살펴보며, 70년 전 광복의 의미를 다시 새겨보고자 열린 사진 전시입니다. 전시는 대략 1945년 광복을 중심으로 그 앞뒤 시간대에 있던 태극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물론 이곳에는 실물 태극기가 전시된 것이 아니라 전무 사진으로서 전시되어있지만,
사진으로도 과거의 태극기 변천사를 보면서 광복을 기릴 수 있었습니다.


 


조선의 국기는 1882년 미국 해군성 항해국이 발간한 '해상국가들의 깃발'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당시 태극기의 제작자로는 박영효와 이응준이 많이 거론되곤 하죠.

이 태극기는 일명 ‘데니 태극기’로, 고종의 외교 고문을 지낸 미국인 오언 N. 데니가 1890년 미국으로 돌아갈 때 가져갔던 태극기입니다. 당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글을 쓰던 습관에 따라 국기를 매달았던 끈도 오른쪽에 부착되어 있습니다.


 



독립신문은 발간 때마다 태극기를 새겨 넣었는데요, 그 태극기 모양이 매번 달랐다고 해요.

태극 모양은 그대로지만, 4괘의 모양이 조금 다릅니다. 좌측과 우측 태극기의 차이가 보이시나용?

1890년대 후반에 있던 태극기를 ‘조선기’라고 했습니다.

고종은 조선기를 널리 알리기 위해 행차 때마다 태극기를 대동했고, 외국 공사들에게도 태극기를 보냈습니다.


 


위층으로 올라가 봅시당!


1907년 8월에 순종이 황제로 즉위하자, 일본 왕실은 요시히토 황태자를 파견하였습니다. 요시히토 황태자가 제물포항으로 입국하여 남대문 역에 도착했을 때, 역에 태극기와 일장기가 게양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다 아는, 잊을 수 없는 1919년 3월의 태극기입니다.

1919년 2월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태극기를 조선국기, 고려국기, 태극국기 등의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민족대표 33인이 3월 1일 정오에 맞춰 서울 탑골공원에서 독립 선언문을 낭독하고 전국적으로 ‘대한 독립 만세 운동’을 펼치기로 했을 때, 사람들은 일본인들이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해 조선기를 ‘태국기’로 부르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태국기’는 국기를 살리기 위한 국민들의 기지에서 작명된 것입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42년 태극기의 제작규정에 표본을 제시하기도 하였습니다.


1945년 임시정부 요인들이 귀국 직전 상해에서 촬영한 위 사진을 보면
모두들 손에 태극기를 하나씩 들고 있는 것이 보일 겁니다.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제정한 태극기는 현재 태극기와 비교했을 때 작도법은 거의 같으나 음양 양의와 4괘의 위치가 다르고, 감, 리의 두 괘가 바뀌어 있습니다.

1945년 8월 15일에 일제에 의한 식민 통치가 막을 내렸습니다.

미군이 지켜보는 가운데 일장기가 조선총독부의 청사 게양대에서 내려왔지만, 태극기는 게양대에 오를 수 없었습니다. 태극기의 자리를 성조기가 차치하고 그로부터 약 한 달 후, 태극기를 게양할 수 있었습니다.



이외에도 누가 제작한 지 모르는 태극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를 전시에서는 ‘무명(無明)씨의 태극기’라는 타이틀을 달아주었습니다. 우리의 태극기의 권위와 가치는 유명한 인물들뿐만 아니라, 전혀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인물들 또한 주체가 되어 세운 소중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광복 70주년 제작 동영상을 보면서, 글을 마치겠습니다.

모두에게 이 전시가 광복절의 의미를 마음속에 새길 수 있는 시간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 취재 : 청춘예찬 곰신기자 이지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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