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나 불로비치(세르비아어: Весна Вуловић / Vesna Vulović, 1950년 1월 3일 ~ 2016년 12월 23일)는 세르비아의 전직 항공 승무원이다. 낙하산 없이 가장 높은 고도(10,160m)에서 자유 낙하하여 기네스 북에 오른 사람이기도 하다.
1972년 1월 26일 JAT 367편의 승무원으로 탑승했다가 화물칸에서 발생한 폭발로 체코슬로바키아 스르프스카카메니체 마을에 추락하였으며, 기내 탑승객 중 유일한 생존자다.
사고의 원인은 서류가방에 담긴 폭탄 장치로 추정됐으며, 당시 유고슬라비아 당국은 사건의 배후에 크로아티아 민족주의 세력이 있다고 의심하였으나 체포된 용의자는 없었다.
한때는 이 많은 나라들이 유고연방이라는 하나의 나라였다.
베스나가 대학교 1학년일 때, 비틀즈를 좋아했고 영어도 배우고 싶어서 영국 런던에 여행 가게 됐다. 그리고 런던에서 스웨덴 스톡홀름에 여행하러 갔다.
그런데 스톡홀름 가자마자 집에 전화하니까 부모님이 뭐? 스웨덴? 거기있다간 마약과 섹스에 물들 수 있으니 당장 집에 돌아오라고 호통을 쳤다.
어쩔수 없이 베스나는 바로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여행 못한 아쉬움에 불타는 베스나 앞에서 친구가 항공사에 승무원으로 합격했다고 앞으로 승무원이 되어서 여행다닐거라면서 유니폼을 보여주며 자랑했다.
유고의 국영항공사인 JATA(JAT) 유니폼
승무원이 되면 세계여행을 다닐 수 있다는 걸 알고 충격받은 베스나는 여행이 너무 가고싶어서 바로 승무원에 도전했다.
결국 합격했는데 계약서를 안썼다는 것을 보면 정규직은 아니었던 듯 하지만 아무튼 유고 국영 항공사인 JAT에 입사했다.
채용과정에서의 에피소드가 베스나는 저혈압이 심해서 건강검진을 통과 못할거 같았다. 그래서 베스나는 커피를 많이 먹고 건강검진을 했으며 결과는 합격.
8개월간 일하다가 항공사가 근무를 잘못 배치하게 되는 일이 발생했다.
베스나와 성이 같은 승무원이 있는데, 원래 그 승무원이 덴마크 노선에 배정됐는데 항공사가 실수로 베스나를 배치한 것이다.
베스나는 착오를 알게 되었지만, 덴마크를 여행할 기회로 여겼다.
그런데 승무원들이 베스나에게 쇼핑을 제안했고 그러도보니 목적이었던 여행은 할 수 없었다.
승무원들은 가족에게 줄 선물을 사는데 집착했고 기장은 호텔방에 24시간 틀어박혀있고 마지막까지 나오고 싶지 않아했다.
부기장은 자기자식 자랑을 하는데 마치 다른 사람들은 자식이 없는 마냥 자랑했는데 베스나는 훗날 승무원과 조종사들이 다들 자기가 죽을 걸 알고 있는 사람처럼 행동했다고 회상했다.
비행당일 베스나는 굳어있는 표정의 수상한남자가 짐만 부치고 사라진 걸 보게 됐다.
그리고 1972년 1월 26일 JAT 367 코펜하겐에서 베오그라드로 가는 비행기편에서 비행기 앞쪽의 화물칸에서 서류가방에 담긴 폭탄이 폭발했다.
비행기는 바로 두동강이 났고 승객과 승무원들은 기압차때문에 허공으로 튕겨나갔다.
당시 베스나는 음식 나르는 카트에 끼여 있어서 혼자 비행기에 갇혀 있었다.
33000피트에서 추락하기 시작한 비행기는 그나마 운 좋게도 빽빽한 숲과 눈도 충격을 완화해준 덕에 산비탈에 미끄러지듯 착륙했다.
베스나의 저혈압이 충돌 때 심장파열을 막아줬다고 의사들은 추정했다.
그리해서 28명의 탑승자 중 베스나는 유일한 생존자가 됐고 운이 좋게도 부르노 헨케라는 마을 주민이 숲에서 나무를 자르고 있다가 폭발음을 듣고 사람들이 허공에 튕겨져 나가는 걸 목격하게 됐다.
부르노는 비행기 잔해로 달려가서 베스나를 발견했고 세계 2차대전 위생병 출신이었던 그는 적절한 응급조치를 했다.
부르노는 나중에 당시 임신한 딸이 아이를 낳자 기념으로 베스나의 이름을 지어줬다.
병원으로 이송되는 베스나
베스나는 두개골이 골절, 뇌내출혈, 골반뼈 골절, 갈비뼈 여러대가 부러지는 등 몸상태가 심각했다. 의사들은 그녀가 살지 못할 거라 예상했지만 살아남았고 10개월 뒤엔 하반신 마비를 이겨내고 걷게 됐다. 영구적인 신체손상이 다수 있었지만 여러차례의 수술이 있었고 부모님은 차 두대를 팔아서 수술비를 마련했다.
베스나는 나중에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 것이 이 사고 때문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베스나는 유고의 국민영웅이 되었고 계속 승무원을 하고 싶어 했지만 항공사는 베스나가 너무 유명해져서 소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이유로 베스나를 지상직으로 배정했다.
그래서 베스나는 계속 항공사 사무직으로 일하면서 또한 개인적으로 세계여행을 다녔다.
베스나는 기억상실증에 걸려서 충돌 당시를 기억하지 못했고 그래다보니 PTSD가 나타니지 않아 비행기 타는 데 아무런 거리낌도 없었다. 항공사고를 다룬 영화도 잘봤다고 한다.
사고 기록은 기네스북에도 등재됐다.
그녀가 좋아했던 폴메카트니가 기네스메달을 수여해주는 장면
결혼도 했지만 이혼하고 노년은 혼자 보냈다. 의사들은 사고는 임신과 상관없다고 했지만 자궁외임신과 유산을 반복하다 아이는 포기했다.
유고연방은 내전을 여러차례 겪은 후에 여러 단위로 분산 독립했다.
그 사고도 크로아티아 분리독립단체가 한 걸로 추정한다.
베스나는 세르비아계였고 베오그라드에서 살았으니 자동으로 세르비아인이 됐고 세르비아엔 밀로셰비치라는 독재자가 대통령이 됐다.
베스나는 밀로셰비치를 반대했다가 직장에서 해고됐다.
그리고 10년 동안 민주화시위를 했고 불도저혁명이 일어나서 밀로셰비치가 실각했다.
베르나는 66세의 나이로 혼자 아파트에서 사망했다.
사인은 알 수 없지만 평소 앓던 심장질환으로 인한 사망으로 추정됐다. 노년엔 혼자 살아남은 거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자유롭고 강인하고 정의로운 여성 Весна Вулови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