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 주택가에서 주부와 어린이 넷이 참혹하게 살해됐다. 범인은 시신을 훼손했고 피를 마신 흔적을 남겼다. FBI 프로파일러(profiler·범죄심리분석관) 로버트 레슬러는 5000㎞ 떨어진 버지니아주 사무실에 앉아 범인을 분석했다. "25~27세, 정신병력에 마약을 하는 백인 남자, 무직, 타고 간 피해자 차가 발견된 곳에서 1㎞ 안에 혼자 거주, 지저분한 집안에 범행 증거가 있을 것…."
▶이를 바탕으로 경찰이 수사 지역과 대상을 좁혀 범인을 잡고 보니 레슬러의 추정과 놀랍게 들어맞았다. 프로파일링은 범죄현장을 분석해 범인의 프로파일(profile), 즉 특성과 성격·행동유형·직업·연령 등을 추론해내는 범죄심리학적 수사기법이다. 정신분석학자 제임스 브러셀이 1950년대 뉴욕 연쇄폭발사건 범인을 "아버지를 증오하는 이민 2세, 뚱뚱한 중년 독신남"으로 맞혀낸 것이 출발점이라고 한다.
▶FBI는 브러셀 박사에게서 배운 수사요원을 주축으로 1972년 행동과학부를 신설했다. 갖가지 범행과 범인 유형에 관한 자료를 축적 분석하는 프로파일링 전담부서다. 1983년엔 국립흉악범죄분석센터(NCAVC)가 설립돼 FBI를 비롯한 전국 경찰로부터 범죄자료를 받아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해왔다. 수사관들은 흉악범죄가 터지면 189개 항목에 이르는 보고서를 작성해 NCAVC에 프로파일링을 의뢰한다.
▶요즘 우리 역시 피해자와 이해관계도 없고 동기도 확실치 않은 '묻지마 범죄'가 많아 실마리를 찾기 힘들다. 이럴 때 유용한 것이 프로파일링이다. 2000년 서울경찰청에 생긴 프로파일링팀은 지방경찰청에도 확대돼 41명이 활동하고 있다. 대개 특채된 심리·사회학 전공자들이다. 재작년 서울 상계동 주점 여주인 살해사건만 해도 미궁에 빠질 뻔했다가 서울경찰청 요원들이 비슷한 강력사건을 250건이나 검토한 끝에 범인을 잡아냈다.
▶군포 연쇄살인사건에서도 프로파일러들의 활약이 빛났다. 강호순과 밀고 당기는 심리전 끝에 경기 서남부 부녀자 연쇄살해사건도 저질렀다는 자백을 받아낸 것이 프로파일러였다고 한다. 경기경찰청 요원들은 이미 2년 전 실종사건이 잇따랐을 때 범인을 '호감 가는 인상의 30대 남자, 경기 서남부 지역에 살며 차량을 소유한 인물'로 분석해냈다. 강호순과 정확히 일치한다. 프로파일링은 점(占)이 아니라 과학이다. 상식을 초월한 흉악범들이 날뛸수록 정보의 퍼즐을 세심하게 짜맞춰 나가는 프로파일러의 역할이 긴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