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평론가 송종건 인터뷰>
무용평론가가 무용공연의 평을 써서 무용전문지에 실었는데, 그 공연평을 계기로 싸움이 벌어졌다. 평론가의 평이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무용안무가가 형사고발과 민사재판을 청구한 것이다. 이 싸움이 무용계의 일이기는 했지만 문화계 모두가 숨죽이는 관심을 갖고 지켜봤다.
알려지기로 “재판은 돈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돈 없는 사람이 진다”는 사회 통념이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 이번 사건 기간 동안 평론가 송씨는 돈 없이 재판을 감당하는 수고를 했다. 그리고 이 사건을 지켜보면서 “중간에 화해하고 소를 취하하지 않는다면 돈 없는 평론가가 지게 될 것”이라는 얘기들을 했다.
그런데 지난 3월 15일 이 재판에 대한 판결이 나왔다. 서울지법 형사 12단독 윤현주 판사는 “예술비평은 명예훼손이 아니다”며 “표현의 자유영역이므로 평론가에게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지난해 말 서울지법 민사합의 25부(안영률 부장판사)의 원고 패소판결에 이어진 것으로, 민·형사 모두를 통해 평론가들의 예술비평에 대한 행위가 연주자나 작곡가들의 그것이 예술행위이듯, 동격의 예술행위라는 사실로 확인을 받은 셈이다.
무용계에서 일어난 사건이지만 이 사건의 문제는 우리 음악계에서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사안이다. 이 사건의 전체를 살펴보면서 앞으로 우리의 생각과 예술행위가 어떻게 달라져야 하겠는지를 생각해 봤으면 하여 사건 당사자였던 송종건 무용평론가를 통해 사건의 전체를 읽어보려고 한다. <편집자 주>
▲ 우선 이번 사건의 개요를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 이번 사건은 김민희 씨가 1999년 11월에 공연한 <허행>이라는 작품을 바로 그 다음날 다른 행사에서 <점박이 눈>이라는 제목으로 공연하고, 또 다시 약 3개월 후인 2000년 3월에 국립극장에서 <비창>이라는 제목으로 공연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즉 동일한 작품을 약 3∼4개월 동안 제목만 바꾸어 공연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저는 “이는 작품 정체성 문제와 관객들의 혼란 등 정말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스스로 삼가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하는 평론을 쓴 것입니다.
▲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인 것 같은데, 왜 이런 식으로 문제를 만들었을까요.
- 저는 몰랐는데, 아마 학교에서 문제가 되어 이를 법적으로 해결해 보려는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 도저히 법의 판단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았는데 법적으로 나선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아마도 돈이나 인맥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법정에서는 예술을 잘 몰라서 혼돈시킬 수 있다는 착각을 한 것 같습니다.
▲ 제일 처음 걱정했던 것은 무엇입니까.
- 사실 제가 제일 처음 걱정했던 것은 무용이라는 공연예술의 소실성 때문에 김민희 씨가 작품상의 조그만 뉘앙스 차이를 내세우면서 이들 작품이 서로 같은 작품이 아니라고 우기고 나오는 경우였습니다. 실제로 법원에서도 제일 먼저 물어본 것이 동일한 작품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어이가 없게도 세 개 모두 같은 작품인데 의도적으로 제목을 바꾸었다고 하였습니다.
▲ 왜 그렇게 바꾸었다고 하던가요.
- 실험을 해 보고 어떤 이름이 제일 좋은지 찾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 여러 가지 정황이 불 보듯 선한데 약 2년 이상을 끄는 이번 사건에서 여러 가지 피해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 자세히 이야기하려면 너무 많은데 정신적, 물질적, 시간적 고통이 컸습니다. 특히 사건 초반에는 변호사 비용조차 마련하지 못해 약 1년 동안 혼자 법적으로 싸웠는데,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리고 가족과 주위분들의 걱정도 많았습니다. 또한 형사, 민사 모두를 걸어놓고 있었기 때문에 지난 약 2년 동안은 약 2∼3주에 한 번씩 검찰이나 재판정에 출두해야 했습니다.
▲ 엄청난 시간적, 정신적 고통이었겠지요. 법적으로 가장 힘든 때는 언제였습니까.
- 민사재판때 안영률 재판장이 외국의 경우 이런 상황이 있으면 어떻게 평론을 쓰는지 예를 들어 달라고 할 때였습니다. 그런데 앞이 깜깜해지던 것이 직감적으로 외국의 경우에는 이런 후진적인 경우가 아예 없을 것이라는 얘기였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거의 이틀 밤을 새우면서 제가 영국에서 가져온 외국 무용평론가의 평론집 7∼8권을 읽은 후 역의 경우를 제시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즉 외국의 경우에는 같은 작품은 끝까지 같은 제목으로 공연한다는 것이었습니다.
▲ 이번 사건에서 가장 어려웠을 때는 언제입니까.
- 어떤 유착관계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상대방측 증인이라는 사람들이 나와서 마음껏 허위증언을 할 때였습니다. 스스로 ‘원로’무용가라는 사람들도 있었고 학원을 운영한다는 사람도 있었으며 심지어는 무용평론가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여러 가지 허위 진술을 했지만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우리 나라 무용공연에서 작품 하나로 제목을 여러번 바꾸는 것은 대단히 정상적인 일인 것처럼 말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평자가 지난 약 4∼5년 동안 약 1천 5백여 개 이상의 작품을 봐 왔는데 같은 작품을 다른 제목으로 바꾸어 공연하는 것은 김민희 씨의 작품 말고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 법정에서 허위 증언을 하는 것은 큰 죄가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심지어 이들 중 몇 명은 자신들이 검찰에서 서면으로 진술해 놓은 것과 법정의 증언이 서로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 송 선생님은 증인을 세울 수가 없었습니까.
- 이들이 이번 사건을 무용가 대 평론가의 싸움으로 만들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어려웠습니다. 반면에 의식있는 무용가들이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이들은 “송 선생이 전혀 잘못한 것이 없으므로 만약에 꼭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우리 무용 발전을 위해 법정에서 증언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분들을 아껴야 한다는 뜻에서 외롭지만 ‘진실’ 하나로 견뎠으며 이를 법원에서 정확히 판단해 주었던 것입니다.
▲ 재판 과정 중 한국춤평론가회라는 곳에서 제명을 당하셨다고 하던데요.
- 제가 이 말이 안 되는 싸움을 하고 있는 동안 제명을 했다길래, 무슨 이유인가 물어보니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뭔가 이유를 대면 그 이유에 관한 자신들의 잘못이 훨씬 더 많이 나타날 것 같으니 이야기를 못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 중에는 이번 사건의 제목 3개를 달아준 평론가도 있습니다. 정말 한심스러운 사람들이 우리 무용문화 발전을 막고 마음껏 왜곡시켜 온 것입니다. 사실은 제가 그들을 제명시킨 것으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 이번 사건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 한 마디로 그 축재과정은 잘 모르지만 돈 있고 힘 있다는 소위 말하는 기득권 문화권력층이 진실된 글쓰기를 방해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지난 2년 동안 화도 너무 많이 나고 힘들었지만, 이 사건이 우리 문화와 무용 역사 발전을 위한 싸움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일부에서는 이번 사건이 잘못되면 우리 문화 발전의 역사가 30년은 후퇴한다는 우려를 하기도 했습니다.
▲ 민사재판과 형사재판 모두에서 이기셨는데 지금까지 고마웠던 분들이 많으셨겠지요.
- 우선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많은 성원을 보내주신 무용계의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 분들은 상대방측이 사건의 진실여부보다 무용가 대 평론가의 싸움으로 몰고가는데에 대해 대단히 냉정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분들이 바로 우리 무용의 건전한 발전을 이끌어 나가는 무용계의 소리 없는 다수들입니다. 특히 사건 초기에 동아일보 홍찬식 논설위원께서 횡설수설 난에 ‘혹평과 소송’이라는 제목으로 써주신 글이나 작년 10월 민사재판 원고 패소 이후 중앙일보 문화부 정재왈 기자가 쓴 글도 고맙기만 합니다. 그리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이건용 총장이 ‘비평가들이여 짖어라’라는 제목으로 쓴 글도 저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또 하나 여기서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한국음악평론가협회 김규현 회장과 회원 여러분들께서 계속해서 이 사건을 마치 자신들의 일처럼 주시하고 저를 지켜주셨습니다. 이 분들은 제가 이 재판의 도중에 한국춤평론가회라는 곳에서 제명당했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으며 특히 그 과정이나 이유가 무엇인지를 너무나도 정확히 알고 계셨습니다. 따라서 이 분들은 언제나 제 곁에 있어 주셨습니다. 세상에 동료 무용평론가가 말이 안 되는 법적인 억지를 당하고 있는데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있고, 타 예술장르 분들이 재판의 결과가 있을 때마다 환영 성명을 낸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가난한 평론가의 ‘표현의 자유’를 지켜주신,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 문화예술 비평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게 해 준 안영률, 윤현주 두 판사님의 현명한 판단도 우리 모두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 진실된 평론가의 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지식인들이 해야 될 일은 사회의 잘못된 사건이나 현상을 용기있게 비판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올바른 평론은 고도의 지적인 용기를 가지는 작업입니다. 따라서 저는 스스로 모자라는 것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끝까지 우리 문화를 지키는 문화파수꾼의 역할을 다할 것입니다. 또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명감을 가지는 평론가 양성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절감했습니다. 따라서 현재 제가 일요일마다 열고 있는 무용평론교실을 활성화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정통성 있는 전업평론가를 키워야 합니다. 그리고 전업평론가에 대한 국가지원의 필요성을 타 장르 예술평론가분들과 적극 협조하여 관철시키는 노력을 하겠습니다. 왜 한 해 수십억이나 되는 문예진흥기금이라는 것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문화예술을 지키는 진실된 평론가들에게는 단 돈 1원도 지원이 되지 않는 것입니까.
▲ 앞으로 계획은 무엇입니까.
-저는 언제나 문화권력이라는 면에서 힘이 없지만 묵묵히 자신의 예술을 추구해 나가는 예술가들의 편에 설 것입니다. 쓸데없는 인맥이나 형성하여 진실된 예술가들을 괴롭히고 무용 문화 발전을 막는 수구집단이나 문화세력이 있으면 언제라도 적극적인 비판의 글을 써서 사회에 알릴 것입니다. < 글 | 김민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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