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든이 넘은 어머님은 본래 낙천적인 성품에 매사를 좋게만 보는 어른인지라 나같이 소심하고 걱정 많은 인간에게는 늘 삶의 귀감이시다. 한데 바로 그런 어머님으로부터 내 평생 가장 소중한 가르침을 받았으니 이 무슨 조화바람일까.
우리 집은 서울 봉천동 관악산 바로 밑이다. 문을 나서면 그대로 관악산인 곳이다. 당연히 이런 곳으로 처소를 삼은 것은 사시사철 산 풍경을 볼 수 있는 까닭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우리집 바로 앞에 7층짜리 아파트가 들어서게 된 것이다. 우리 부부는 울화가 치밀어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자식들도 마찬가지였다. 군에 간 아들 녀석은 휴가 나왔다가 그 꼴을 보고는 당장 달려가 일전불사할 태세이고 딸아이는 그런 일 하나 막지 못하는 아버지를 못 미더워하는 눈치였다.
이때 어머님이 출현하신 것이다.
"야, 그 참 잘 되었다. 너희 집은 서향 아니냐. 그래서 여름엔 더워도 문도 못 열고 커튼을 겹겹이 치고 살았는데 이제 그 걱정 덜게 되었으니 얼마나 좋으냐?"
처음 그 말씀을 듣고는 잠깐 동안이지만 망연자실했던 것이 사실이다. 어머님은 건강이 아주 좋으신 편인데 갑자기 노망이라도 드신 건가 하는 걱정이 뒤를 따랐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는 어머님의 그 말씀을 벼락 치는 소리로 곧 인식하게 되었으니까.
그게 얼마동안의 시간이 흐른 뒤인지는 모르겠다. 몇 분 후인지 아니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인지 가늠이 되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평생 풍수 공부를 해 오면서 처음으로 깨달음을 얻는 기분이었다.
"그렇구나. 조금전까지 이 집이 망할 집처럼 느껴졌는데 그 한 말씀으로 최고의 명당으로 바뀌게 되다니. 명당은 어느 산 깊은 곳에 꽁꽁 감춰져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마음속에 있었구나" 하는 깨달음 말이다.
그 후로 나는 명당관을 바꿔 버렸다. 제 마음에 맞지 않으면 이론상 최대의 명당이라도 지옥일 뿐이고 제 마음을 고쳐먹으면 어디라도 명당이 될 수 있다는 깨달음. 풍수의 풍자도 모르는 어머님으로부터 명색이 풍수전문가라는 사람이 최고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난 이제 풍수에서 떠날 때가 가까웠다는 것을 어렴풋히 느낀다. 풍수공부가 마음공부라면 풍수가 더 이상 내게 해 줄 것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해서 해 본 소리다. 물론 건방진 소리고 풍수공부는 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첫댓글 고운빛님! 반갑습니다. 좋은 글 소개 감사합니다. 언제 인도팀 한번 미팅이라도 해야 할 터인데요. 모두들 보고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