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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도 선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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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4월 13일 부산에 상륙한 왜군은 한양을 향하여 파죽지세로 진격하지만, 바다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옥포해전, 사천해전, 한산대첩, 당포해전 등지에서 연승하면서 제해권을 장악하여 남해안을 거쳐 전라도와 서해안으로의 진출이 막혔다.
1594년(선조 26) 3월 최초로 충청, 전라, 경상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이순신 장군은 초기에는 전라좌수영을 그대로 삼도수군통제사영으로 두었으나, 전투의 효율성을 위하여 통영 앞바다의 한산도로 옮겼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수군통제영은 육지인 통영으로 이전되어 갑오개혁으로 폐지될 때까지 290년간 유지되었는데, 통영(統營)이란 지명도 삼도수군통제영이 있던 곳이라는 의미이다.
1955년 10월에는 이순신 장군의 무훈인 충무시(忠武市)라고 했는데, 통영은 일찍부터 부산에서 전라도 여수까지 통하는 다도해 뱃길의 중심도시로 크게 성장하다가 1973년 부산~순천간 남해고속도로의 개통과 1990년대 초 마산~통영간 국도가 4차선으로 확장되며 점점 위축되었다.
1995년 1월 지방자치를 시행하면서 통영군과 충무시는 통영시로 통합되면서 수군통제영을 복원하고, 다도해의 섬들을 관광지로 개발하고 있는데, 통영 항에서 남쪽으로 약21.5km 떨어진 한려수도 해상국립공원에 있는 장사도(長蛇島)도 그중 하나이다. 장사도는 행정구역상 한산도에 속하는 통영시 한산면 매죽리 산4-1번지이지만, 거제도와는 불과 3㎞쯤 떨어져 있다. 또, 섬 모양이 누에처럼 길다고 잠사도(蠶沙島)라고 불렀으나, 일제강점기 때 섬을 지적공부에 올리던 공무원들이 누에고치 ‘(蠶)자’가 너무 어렵다며 ‘뱀처럼 길다’는 뜻의 장사도(長蛇島)로 바꾸었다고 한다.
사실 주민들은 아직도 장사도를 누에의 경상도사투리인 ‘늬비섬’이라고 부른다.
1900년대 초부터 어민들이 하나둘 들어와서 1980년대 말까지 13세대 83명이 살았던 장사도는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1972년 3월 죽도초등학교 장사분교에 부임한 31살의 청년교사 옥미조(玉米造) 씨가 고작 23명의 학생들과 함께 선착장을 만들고, 교회를 세우고, 농토를 개간하고 가축을 길러 소득을 향상시켰다. 그의 새마을운동 실천수기가 당선되어 옥미조 교사는 청백리상을 받고, 그의 활동은 ‘낙도의 메아리’라는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는데, 그는 교사를 정년퇴직하고 지금은 고향인 거제도에서 거제박물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야외공연장 청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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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0여 년 전 주민들이 모두 섬을 떠나고 무인도로 변하자 2011년 12월 한 투자가의 노력으로 ‘카멜리아(camellia) 문화해상공원’으로 개장했는데, 카멜리아란 동백(冬栢)의 영어단어이다.
섬에는 수만 그루의 동백을 비롯하여 후박나무, 구실잣밤나무, 풍란, 석란 등이 자생하고 있지만, 동백이 전체 수목의 80%나 되는 ‘동백섬’이다.
붉은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떨어지는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가 장사도의 절경이라고 하는데, 최근에는 모TV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관광객이 줄을 지어 찾아오는 관광지가 되었다.
장사도는 통영은 물론 거제도에서도 갈 수 있지만, 두 곳 모두 여객선 선착장이 아닌 유람선 선착장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알지 못해서 혼란을 겪는 사람들도 많다.
통영에서는 미륵산 전망대로 올라가는 도남동 케이블카승강장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인 유람선 선착장에서 출발하는데, 약45분쯤 걸린다. 요금은 어른이 평일 2만 1000원, 주말과 공휴일에는 2만 2000원이며, 인터넷으로 구매하면 2000원씩 할인해준다. 한 달 전부터 예매가 가능하지만, 출항시간은 매달 달라서 미리 확인해야 한다.
한편, 거제도의 가배항, 저구항, 대포항에서는 약10~15분쯤 걸리는데, 어른은 평일 1만 5000원, 성수기 1만 6000원, 청소년은 평일 9000원, 성수기 1만 원씩이다.
그러나 통영과 거제도 어디에서 출발하건 장사도 입장료로 어른 8500원, 중고생이 7000원씩을 따로 내야 한다. 그런데도 섬에서의 체류시간은 딱 2시간으로 정해져 있고, 배의 도착지와 출항지가 다르고, 또 섬에 들어갈 때 탔던 배를 타고 나와야 한다는 불편 때문에 마음의 여유를 갖고 섬을 돌아보기는 그다지 쉽지 않다.
섬에 도착하면 동백을 상징하는 큼지막한 카멜리아 로고와 함께 이곳이 드라마 촬영지였음을 알리는 탤런트들의 얼굴을 새긴 플래카드가 관광객을 맞이하는데, 드라마에 출연한 탤런트들의 얼굴이 그려진 플래카드가 곳곳에 나붙어 있는 것이 조금은 속물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잘 다듬어진 돌계단은 섬을 오르거나 돌아다니는데 큰 불편이 없지만, 섬 안에는 크고 작은 길이 많이 있는데도 안내판을 따라서 관람하도록 한 조치가 조금은 통제받는다는 느낌이다.
한려해상 |
섬 관광은 중앙광장에서 폐교된 초등학교 장사분교를 거쳐 동백 터널 길, 승리전망대, 허브가든, 야외공연장, 야외갤러리, 교회 등을 둘러보는 코스인데, 장사분교를 지난 계곡 위에는 무지개다리라는 아치형 철제다리가 있다.
일반 가정집 규모보다 작은 장사분교 마당은 분재들로 가득 차 있고, 한 칸뿐인 교실에는 당시를 짐작하게 하는 책상과 칠판이 있지만, 초등학생들에게는 걸맞지 않은 큼지막한 걸상들이 조금은 무성의해 보인다. 또, 어울리지 않는 여러 모습의 해녀 상을 군데군데 만들어 둔 것도 조금은 거부반응이 생긴다.
바닷가 낮은 계곡에 지은 큼지막한 식물원의 선인장 등 열대식물들도 그다지 싱싱하지 않는 것은 관리자의 무성의로 보이고, 군데군데 전망대를 만들고 포토 존을 설치했지만, 그 섬이 그 섬 같아서 좀체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하우스 옥상에서 바라다보는 다도해의 너른 풍경이 마음을 툭 트이게 해준다.
무지개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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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도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식물원에서 야외공연장에 이르는 구간의 무성한 동백나무 숲인데, 동백이 작은 터널을 이루고 있다.
예부터 동백꽃은 다른 꽃처럼 한닢 두 닢 떨어지지 않고 꽃이 시들기 전에 송이채 뚝 떨어진다고 해서 여인의 절개와 지조를 상징하는데, 일본에서는 사무라이들을 단칼에 목을 잘라 죽이는 것을 동백꽃잎이 뚝 떨어지는 것에 빗대어 춘수락(椿首落)이라고도 말한다.
장사도의 동백은 오랫동안 주민들이 땔감으로 베어다 쓴 탓에 대부분 땅에서 낮게 넓게 퍼진 관목상태이다. 또, 벌과 나비가 없는 겨울에 피는 동백에 동박새가 암꽃과 수꽃을 오가며 수분정화를 하여 동백이 피는 계절이면 앙증맞은 동박새들을 실컷 구경할 수 있다.
마지막 코스는 가파른 경사지를 이용해서 1000석 규모라고 하는 야외공연장과 관람석 뒤편에 아치형으로 12개의 큼지막한 청동 얼굴 조각상들도 인상적인데, 얼굴상들을 각각 다른 모습으로 만든 작가의 재치가 돋보인다.
그리고 음료수와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는 카페는 이름도 누에의 경상도 사투리인 ‘늬비 하우스’이지만, 예정된 2시간의 출항시간에 쫓겨서 주변을 둘러볼 마음의 여유를 느낄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이것은 아마도 좁은 섬 안의 시설에 비하여 너무 많은 관람객들의 혼잡을 막기 위한 조치 같지만, 40분 이상 배를 타고 가서 비싼 입장료를 내고서도 쫓기듯이 되돌아 나와야 하는 현재의 관광 스케줄은 개선되어야 할 것 같다. 다만, 지금까지 인기 있던 외도와 비교할 때, 외도가 잘 가꾼 인공정원이라면 장사도는 인공이 가미되지 않은 자연정원 같다는 점, 그리고 육지에서 비교적 가까운 외도, 한산도 등지에서 저점 소매물도, 욕지도, 장사도 등으로 관광역역을 더 먼 바다로 넓혀가는 과정에서 장사도를 개발했다는 점은 해양관광의 다양성 측면에서는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