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희 저
출판사: 삶이 보이는 창/ 출간일:2007-04-30
나만 행복해서 미안해지게 하는,
아파서 우는 게 아닙니다
1년 동안 미국에 갔다가 지난주에 돌아온 친구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한껏 부러운 마음을 가졌다. 그곳에서 놀면서 영어를 배우고 또다시 돌아와서 여유 있게 검정고시를 준비하며 지내는 그 친구의 집은 분명히 부유했다. 원하는 게 있으면 뭐든 다 들어주실 만큼 돈이 많은 부모님이 정말 부러웠다. ‘내가 그 집에 태어났다면…?’하는 못된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그리고 지금 내가 얼마나 복에 겨운 사람인지를 이 책을 읽고 마음으로 가득히 느꼈다.
아궁이도 없어서 보온이 전혀 되지 않는 1평 남짓한 움막집에 사는 구룡마을 신계균 할머니. 나는 그 분과 비교하면 수도비, 난방비 걱정 없이 살고 있고, 그곳의 기숙사비도 부모님께서 다 내주신다.
내 한 달 용돈은 이십만 원이고 신계균 할머니의 한 달 생활비는 팔만 원이다. 늘어지게 자다가 겨우겨우 일어나 학교 가는 시간 일곱 시 사십분, 하지만 덤프트럭 기사인 조환해씨의 아침상을 차리려고 그의 아내가 눈을 뜨는 시간은 새벽 다섯 시. 내가 십팔만 원짜리 MP3를 귀에 꽂으며 하품하며 기숙사를 나서는 시간이면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벌써 한 리어카씩 고물을 채워 이삼천 원씩을 손에 쥐고 다시 빈 리어카를 채우러 거리에 나오는 시간이다. 몸무게가 많이 나올까 봐 밥을 남기는 나에 비해 장애 4급 다리를 가져 일을 할 수 없는 중계본동 맨 꼭대기 집 신재주씨는 열 달 넘게 밀린 방세 때문에 언제 쫓겨날지 몰라 두려워한다.
한 장 한 장 이 책을 읽으며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나는 가슴에 먹먹한 무언가를 참을 수 없었다. 그리고 하나 깨달은 것이 있다면 이 책 속의 삶의 모습은 결코 적은 수의 삶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냥 잠깐만 고개를 돌려보면 쉽게 만날 수 있는 우리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고물을 줍는 노인들을 만날 땐 재작년에 정년퇴임 하시고 지금은 차에 고물을 실어 내다 파시는 일을 하시는 미용실, 우리 부모님이 하시는 세탁소 옆집의 아저씨가 생각났고, 생명을 담보로 일하는 덤프트럭과 퀵서비스 기사님들의 이야기를 읽을 땐 이불공장을 하시다가 점점 일거리가 줄어 운전기사로 일하고 계신 작은할아버지가 생각났다.
작은할아버지께서는 비록 보수는 적지만 다리 뻗고 누워 잘 집이 있어 다행이고 아직 건강해서 다행이라고 하신다. 우리 할아버지에겐 아직 희망이 있지만 내가 책에서 만난 사람들은 희망조차 없어 보였다. 모두 저마다 힘든 직업을 가지고 살지만 그들에게만큼은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없다는 것, 그것이 이들이 소외된 삶을 사는 이유가 아닐까
‘세상 살기’는 세상사는 사람 모두에게 힘든 일이다. 다만, 드라마 속에 나오는 고래 등 같은 집에 회장님은 ‘어떻게 해야 더 잘 살까?’가 고민이고 여섯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열일곱에 집안의 가장이 되어버린 술드몽크는 ‘어떻게 해야 살 수 있을까?’가 고민이다.
도대체 누가 세상을 이렇게 만들어 놨을까. 인간의 기본권 중의 생존권이 이들에게도 주어지긴 하는 건지, 또 주어진다면 도대체 누가 그걸 뺏어가는 건지 알 수 없어 답답하다.
사회의 심각한 양극화 현상은 합법적인 21세기 신분제도 같은 것이다. 돈 있는 자가 양반이고 돈 없는 자는 천민이다. 세상이 그렇고 사람이 그렇다. 더군다나 신분상승은 꿈에도 꿀 수 없는 신분제도다. 그 옛날 조선시대에는 일만 열심히 하면 부를 축적하고 신분을 사는 외거노비도 존재했다는데, 현대판 천민들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당장 내일이 깜깜하고, 게다가 돈이 없어 가르치지 못한 아들 딸, 손녀 손자의 미래는 더 깜깜하다.
이 책은 내게 내 삶이 행복한 삶임을 느끼게 해준 동시에 이런 엉망진창의 사회를 바꿀 수 있는 된 사람으로 자라라는 말을 건네 왔다.
고등학교 때 <나는 우는 것들을 사랑합니다.> 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이 책은 작가이자 선생님인 임길택의 교단 일기를 엮은 책이다. 교단일기 중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육체노동과 정신노동 중 어느 것을 택하겠느냐는 물음에 2명의 아이를 제외하고 모든 아이들이 정신노동을 하겠다고 대답했다. 육체노동을 하는 삶이 아니라 정신노동을 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는 그들. 그것이 밤 아홉 시 반까지 학교에 불이 켜져 있고 아이들이 학원까지 갔다가 새벽 1시가 되서야 귀가하는 이유다. 우리 사회에서 머리 쓰는 일자리들은 아주 사소한 것 하나라도 젊은이가 꿰차고 앉아있다.
들은 얘기인데 일본 같은 경우에는 고속도로 통행요금소나 문화재 관람 요금소에서 요금을 받는 사람이 모두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한다. 간단한 돈 계산 같은 것은 할머니, 할아버지도 할 수 있는 일이고 종일 자리에 앉아있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리어카 끌고 다니는 할머니 할아버지보다 훨씬 더 안전하고 건강에 무리 없는 일자리를 가진 것이다. 고물을 줍거나 농사를 짓는 힘든 일은 힘은 남아돌지만, 대기업 연봉만 바라느라 집에서 어쩔 수 없이 쉬는 젊은이들이 나서서 해야 할 일이다.
어른공경이 우리나라 전통사회의 덕목 중 하나이지만 사회 시스템 자체가 어른공경이 힘들게 만들어져 있다. 그래서 참 답답한 생각이 들고 비정규직에 대한 노동법도 개정이 시급하다고 본다.
부동산세와 골프장 세금을 감면해주는 양극화 시대의 어처구니없는 정책을 보고 있으면 정부에게는 아파서 우는 게 아니라 서러워서 우는 이들의 울음소리가, 또 살게 해달라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대로 가다가는 중산층이 사라지고 부유층과 빈민층만이 존재하는 세상이 될 텐데, 나는 그런 세상에 살고 싶지도 않고 내 아이들에게 죽어도 그런 세상에 태어나게 하고 싶지 않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에서 살게 하고 싶다.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그 무엇보다 우선으로 필요한 것은 분배다. 성장과 분배의 딜레마를 떠올리며 진정한 성장이 무엇인지를 고민해봤다. 국민이 원하는 건 전체의 성장이지 상위 2%만의 성장이 아니었다. 경제 성장은 천재 하나가 십만 명을 먹여 살려 잘사는 게 아니라 경제 주체 하나하나가 조금씩 올라가는 것이다. 그때야 비로소 진정으로 그 나라 경제가 사는 것이다.
나는 그런 사회를 원한다. 점점 키가 자라는 손녀가 두 다리 뻗고 잘 만큼 집이 넓지 않아서 손녀의 키가 자라는 것도 걱정인 할머니가 무럭무럭 자라는 손녀를 보고 걱정 없이 뿌듯해할 수 있고 또 그 손녀가 마음껏 먹고 마음껏 자랄 수 있는 사회를.
책을 읽으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서러움과 그들의 생존을 위한 하루하루를 정말 가깝게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물질에 대한 감사를 모르고 살아왔던 내가 부끄럽게 느껴졌고 그들에게 내가 그들에 비해 너무도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사실이 미안했다.
그리고 특히 책 속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정말 펑펑 울었는데 외롭게 늙어서 젊을 때보다 더 고생하며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현실에 화가 났다. 어떻게든 이 사회를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끈 솟는다.
다른 친구들도 이 책을 읽고 나서 나와 같은 마음이 여기저기서 불끈불끈 솟아났으면 좋겠다. 그래서 많은 친구와 함께 내가 살고 싶은, 내 아이에게 주고 싶은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어른이 되고 싶다.
첫댓글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이군요
긴글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수님이 어떤 생각을 하시게됬는지 궁금해요~~ㅎㅎ
와~ 선유야 정독하면서 읽었어. 단지 책소개하는글이 이렇게 감동적일수가~~ 각박해져가는 세상에 선유같은마음을
가진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다^^
감사해요 오빠^0^
선유! 글을 잘 쓰는구나. 단순히 책 스토리 전달에만 그치지 않고 젊은이로써, 또 사회 공동체 일원으로써 같이 공분하고 사회 부조리에 대한 의식의 싹이 푸르게 돋는 것을 보니 가슴 뿌듯하네. 그 싹 고이 키워 많은 사람들을 행복해서 울게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