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3월 23일(을유) 맑음 |
좌목 | |
○ 무과 급제자 홍시중(洪時中)이 상소하기를, “삼가 아룁니다. 신이 용맹하기만 한 일개 무부로서 어찌 감히 국가의 대계를 논하겠습니까마는 지금 삼천리 강토가 남의 땅이 되었고 오백 년 종묘 사직이 안심할 곳이 없으니 이는 참으로 충신, 의사가 자신을 돌보지 않고 나라를 위해 죽을 때입니다. 오랑캐가 되어 구차히 붙어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분수에 넘는 말을 함부로 하다가 벌을 받고 죽어서 패망을 보지 않고 죽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아, 왜놈들이 우리 동토(東土)의 걱정거리가 된 것은 그 유래가 오래되었으니 임진년의 왜변은 차마 입에 올릴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선왕의 능이 파헤쳐진 참혹한 화를 당하였으니 저들은 의리로 볼 때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이며, 의주로 몽진(蒙塵)한 치욕은 하루도 마음에 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 명 나라가 다시 일으켜 준 은혜는 갚을 길 없고, 우리 군신 백세의 사무친 원수는 멸망하지 않았으니 이것이 식자들이 병통으로 여기는 것이고 영웅들이 분통해하는 것입니다. 그 와중에도 춘추 대의(春秋大義)가 항상 보존되어 분명한 의리가 무상한 시운에도 아울러 없어지지 않은 것은 실로 우리 열성조들께서 서로 이어 정도를 숭상하고 이단을 물리쳐서 정치와 교화를 융성하게 하여 우리 후손이 억만년토록 무궁한 복록을 누릴 수 있는 터전을 다졌기 때문입니다. 안에는 주공(周公)과 소공(召公) 같은 보필이 있어 세도(世道)를 부식(扶植)하고, 밖으로는 염파(廉頗)나 이목(李牧) 같은 인재가 있어 간흉을 엄하게 근절하고 있으니, 태평성대를 누릴 수 있고 덕화가 이루어지는 것을 기대할 수 있는데, 무슨 까닭으로 근래에 들어 아름답던 풍속이 점점 투박해지고 좋은 법에 폐단이 생겨 문관은 안일에 빠지고 무관은 향락에 빠져 점점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간 것입니까. 사태가 이렇게 되니 임금의 총애나 탐하고 녹봉이나 노리는 사람들은 지금 시대가 그런 것이라고 하여 수수방관만 하고, 괴벽한 짓이나 하고 요행이나 바라는 무리들은 틈타기 좋은 시기라고 하여 연달아 일어났습니다. 그리하여 이미 드러난 적의 형세를 끌어당겨 우리 군부(君父)를 협박하고, 아직 드러나지 않은 적의 흉봉(凶鋒)을 과장해서 우리 군부를 두렵게 하였습니다. 사악한 말과 부정한 주장이 군부의 뜻을 바꾸게 하고, 몰래 준 뇌물과 기이한 재물이 또 군부의 욕심을 부추겨 관사를 쓸고 후하게 대우하고 먹여 큰 손님인 양 공경히 대하고, 의전을 갖추어 서신을 받음으로써 전례를 만드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강토를 떼어 내어 개항하면서도 다반사인 양 무심히 보고 인류가 금수의 지경에 빠지는데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행실이 개나 양이 되는데도 변할 줄 몰라 강상(綱常)을 팽개치고 염치를 무디게 하여 사람이 더 이상 사람이 아니고 나라가 더 이상 나라가 아닌 지경에 이르렀으니, 이 자들의 죄를 이루 다 말할 수 있겠으며 이루 다 주벌할 수 있겠습니까. 이 자들이 저 왜놈들에게 속아서 전하를 속였고, 전하가 이 자들에게 속았기 때문에 저 왜놈들에게 속임을 당한 것입니다. 신이 전하께서 속으신 것을 하나하나 분명히 변별해 보이겠습니다. 이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왜와 화친한 것은 예로부터 있었던 제도이지 오늘날 처음 행한 것이 아니다.’고 하는데, 이는 심히 그렇지 않습니다. 지난날 왜와 화친한 것은 대란을 이제 막 겪고 나서 특별히 저들을 회유할 계책을 남겨 두었던 것이고, 동래(東萊) 한 귀퉁이에 왜관(倭館)과 저자를 설치하기는 했지만 규칙이 정연하고 방비가 엄숙하여 철옹성이나 쇠자물통처럼 하여 저들이 감히 한 발짝도 멋대로 넘지 못하게 하였으니, 이것은 왜가 우리의 제재를 받은 것입니다. 오늘날의 화친은 이와 반대여서 저들 마음대로 유리한 지역을 선택하고 요충지를 차지하여 바로 경기 연안에 정박해도 해상의 금령은 해이하고, 성문을 난입하여도 관문의 기찰은 시행하지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저들의 뜻을 들어주지 않으면 버럭 고함을 지르고, 한 번이라도 저들의 청을 허락하지 않으면 바로 위협을 가하여 마치 사나운 종이 주인을 멸시하는 것과 같으니, 이는 우리가 왜에게 제재를 받는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심각하게 살피소서. 이들이 또 말하기를, ‘우리가 화친하는 대상은 왜이지 양이(洋夷)가 아니니 걱정할 것 없다.’고 하는데, 이 역시 심히 그렇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옛날의 왜는 83개 섬이 거품처럼 들쭉날쭉하고 뱀굴 같은 곳에 틀고 살아 습속이 완악하고 그 안에서만 꿈틀거리며 밖을 동경하거나 변화할 겨를이 없었는데, 지금의 왜는 이와 반대로 양이의 의복을 입고, 양이의 기계를 사용하고, 양이의 배를 타고, 양이의 물건을 수송하여 그들과 통상하는 나라 14개국이 대양 서쪽에 있는 것들입니다. 그들은 전선(電線)과 화륜선(火輪船)으로 아침에 출발해서 저녁에 도착합니다. 어떤 때는 저들이 와서 산업물을 신호현(神戶縣) 등지에 설치하기도 하고, 일본이 법국(法國)이나 미국 등 여러 나라들과 함께 다니면서 깊숙이 서로 교류하여 한통속이 되었으니, 왜가 바로 양이이고 양이가 바로 왜라는 것은 지혜로운 자를 기다릴 필요 없이 구분할 수 있으니, 전하께서는 심각하게 살피소서. 이들이 또 말하기를, ‘개항하여 시장을 설치하고서 세금 받는 규정을 정해 놓고, 아편이나 사학서(邪學書)는 서로서로 기찰하고 체포하여 똑같은 법률을 적용한다면 우리에게는 걱정이 없다.’고 하는데, 이것도 심히 그렇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교묘한 술수로 백성의 입을 유혹하기를 꿀맛처럼 달게 하고, 사악한 말로 백성들의 마음이 기울게 하기를 물이 젖어들 듯하면 우매한 자들은 그 맛만 보고도 기뻐하고 준걸스런 자들도 우선은 그 책을 조심하지만, 결국은 현혹되어 말류의 폐단에 이르러서는 사람마다 아편을 복용하고 모두들 사학에 물들 것입니다. 이미 복용한 자에게 복용하려는 자를 감시하게 하면 이것은 오랑캐에게 오랑캐를 공격하라고 하는 격이 될 것이고, 이미 배운 자에게 배우려는 자를 감시하게 하면 이것은 연(燕) 나라에게 연 나라를 치라고 하는 격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저들이 말하는 기찰하고 체포하며 법률을 적용한다는 것도 빈말에 지나지 않을 뿐이니 전하께서는 심각하게 살피소서. 이들이 또 말하기를, ‘왜 등 여러 나라와 화친하는 것은 바로 아라사(俄羅斯)를 막는 급선무이고 왜가 우리와 화친하려는 것도 아라사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고 하는데, 이것도 심히 그렇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현재 왜는 이미 양이와 화친하여 그들의 풍속을 크게 바꾸어 점차 양이의 교(敎)에 복종하여 그들의 앞잡이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는 자기들도 사학(邪學)을 엄금하고 있다고 하는 것은 우리나라가 평소에 예의에 익숙한 나라이기 때문에 그들이 사학을 한다는 말을 들으면 화친이 성사되지 않을까 염려하여 꺼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왜와 화친하는 날이 바로 사학을 하는 날이 될 것입니다. 저들이 말하기를, ‘사학을 하면 나라가 망하지 않고 사학을 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사학을 하고도 나라가 망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또, 아라사는 양이 중에서 큰 나라입니다. 지금 양이의 교를 배우는 것은 바로 아라사의 교를 배우는 것입니다. 대체로 그들의 학문은 같지만 다른 점이 있고 다르지만 같은 점이 있는 것으로 대동소이하여 한두 번만 변화되면 귀결점이 같아지니 어디에 동일한 학을 하면서 다른 사람이 될 이치가 있겠습니까. 만약 왜가 참으로 아라사를 두려워하여 우리와 화친하려고 한다면 왜가 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약한 왜의 여력에 의지하여 아라사의 내침을 늦추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 ‘왜도 약하고 우리도 약하니 약한 두 나라가 힘을 합쳐 적을 막는다면 만에 하나 승산을 기대할 수 있지만 힘을 합치지 않는다면 적을 막기가 어려울 것이다.’고 하는데, 우리와 왜와의 거리는 수로로 수천 리이니, 우리에게 갑자기 급한 경우가 생기면 어느 겨를에 구원을 청할 것이며, 저들이 어느 겨를에 와서 구원해 주겠습니까. 또, ‘화륜선으로 바다를 달리면 평지를 달리는 것처럼 빨리 도착할 수 있다.’고 하지만 아라사도 왜처럼 화륜선을 사용하면 반드시 이 수로를 이용해 올 것이니, 왜가 어느 수로를 이용해서 빨리 오겠습니까. 전하께서는 심각하게 살피소서. 이들이 또 큰소리치기를, ‘현재 지구상에 가장 막강한 아라사군이 한 번 오면 속수무책이다.’고 하는데, 이것도 매우 그렇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소위 아라사는 바로 구라파(歐羅巴)로 일명 노서아(魯西亞)인데, 그 나라는 본래 태평양 밖에 있는 서이(西夷)의 일종입니다. 우리와는 수만 리 바다 너머에 있어서 전혀 무관한 지역입니다. 가령 아라사가 우리와 깊은 원한이 있더라도 멀고 험난한 바닷길을 넘어서 군대를 동원하여 침략을 자행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설사 여러 양이들의 달콤한 꾀임에 넘어가 명분도 없는 군대를 이끌고 수만 리 광랑을 무릅쓰고 함부로 와서 혹시라도 우리 연안에 정박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당당한 천승의 나라로서 충분한 휴식을 취한 상태에서 피로에 지친 저들을 대적하고, 주인으로서 객을 제압할 것이니 어찌 이기지 못할까 염려하겠습니까. 지난날 심도(沁都)의 사건과 패강(浿江)의 사로잡은 사건을 돌이켜보면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노서아가 현재 세력이 조금 강해지고 포학해서 여러 양이들이 두려워하고 꺼리기 때문에 저들이 항상 노서아라는 존재로 겁을 주어 맹약하는 하나의 큰 칼자루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니, 이것은 호노(胡奴)가 선우(單于)를 과장하는 것과 같은 격으로 위청(衛靑)이나 곽거병(霍去病) 등의 장수들이 들으면 한바탕 웃음거리도 못 될 것입니다. 신이 일찍이 북관(北關)에 갔다가 들었는데, 육진(六鎭)에서부터 100여 리 너머 요동과의 경계 끝 지점인 백두산의 북쪽 흑룡강 동쪽의 몽고 너머 땅 한쪽 바닷가가 태평양과 접하고 있고, 그 사이의 거리가 3, 4백 리쯤 되는데 바로 중원 동쪽 변방의 폐기한 곳이라고 합니다. 근고(近古) 이래로 중국에서 유배된 자들이 그곳에 안치되고, 망명한 자들이 그곳으로 갔으며, 흩어져 있던 도적 나부랭이들이 모여들어 점차 토착하면서 조금씩 마을을 이루었는데, 처음에는 세금을 거두는 번거로움이 없어서 사방의 학정에 시달린 자들이 또 앞을 다투어 모여들었고, 북진의 어리석은 백성들까지 국경을 넘어 잠입하여 오늘이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북백(北伯) 김유연(金有淵)이 연전에 안무하려고 했지만 불러 오지 못하였고, 청 나라 정치 또한 잘못되어 이 황야에 세력을 떨치지 못하게 되자 그 세력이 창대하여 중국과 맞먹을 정도가 되고, 우리나라 동쪽과 국경을 지어 스스로 하나의 판도를 이루었습니다. 불행히도 이 판도에 사학(邪學)의 괴수가 먼저 착수하여 각도(各都)에서 발호하였고, 우리나라에서도 법망을 빠져 나간 자들이 패거리를 이끌고 합류하여 거만스럽게도 추장이 되어 토착민들을 동원하여 멀리 저들이 평소에 좋아하던 노서아에 붙으니, 노서아가 그들에게 서비리아(西比利亞)라는 이름을 주고 노서아 동경(東京)이라는 칭호를 허락하였습니다. 노서아의 계책은 오는 자는 막지 않는다는 뜻이지만 대단한 심복으로는 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결코 비리(比利)를 위해 군대를 동원하여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우리나라에 원한을 맺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또 비리를 가지고 말한다면, 처음에는 그들의 학(學)이 같은 근원이라 하여 아라사의 부용국이 되었지만, 그들의 수족 노릇을 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결코 아라사를 위하여 군대를 동원해서 우리나라와 틈을 만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리라고 알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우리는 가깝고 노서아는 머니 가까운 곳에서 위급한 일이 생기면 먼 곳에 있는 군대를 오게 할 수 없기 때문이고, 노서아도 양이(洋夷)이고 비리도 양이이니, 대체로 양이의 계획은 전적으로 그들의 학을 천하에 널리 퍼뜨려서 그들의 도당을 먼 곳에까지 심는 데 있지만, 그 종지(宗旨)는 본래 실체가 없고 다만 밖으로 말류에만 치닫기 때문에 사람마다 그들의 교를 신봉하고 그 허위(虛位)를 경외하게 하려고 하여 심지어는 그 허황된 이름을 미루어 민주(民主)를 하는 나라까지 있는 데서 그들의 대체를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의 의도가 토지를 개척하고 인민을 얻으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므로, 노서아와 비리는 모두 군대를 동원하여 피를 흘려 가며 싸울 이치가 없으니, 전하께서는 염려하지 마소서. 이 무리들이 또 큰소리치기를, ‘노서아가 동쪽으로 화태주(樺泰洲)를 일본에서 취하고, 북쪽으로 흑룡강(黑龍江)의 경계를 청국(淸國)으로부터 개척하였으며, 게다가 상국(上國)마저 그들의 강포함을 두려워하여 은 200만이나 주고서 그들과 화친을 맺었으니, 아무도 그들의 예봉을 건드릴 수 없다.’고 하는데, 이것도 심히 그렇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일본이 양이와 화친하여 그들의 학을 실행한 것은 신이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화태주의 종족들이 양이의 교에 복종한 것이 더욱 빨랐기 때문에 비리가 아라사에게 붙은 것을 본떠서 비리에게 붙었고, 비리가 받아들인 것을 일본이 금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흑룡강의 종족들이 이단의 무리에게 두 번 변하여 비리에게 붙은 것도 비리가 처음 했던 것과 같으니, 이들은 야만인 중에서는 조금 나은 야만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개 그들의 학이 성취된 것은 한 꿰미에 꿰어서 온 것과 같습니다. 지금 우리가 크게 두려워해야 할 것은 비리가 겸병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도가 혹시라도 밝혀지지 않아서 사교가 혹시 그 틈을 타고 들어오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아, 중국에 인물이 없은 지 오래 되었고 사설(邪說)이 천하에 횡행한 것도 갑작스레 된 것이 아닙니다. 노서아가 근래에 이이(犂耳)의 일로 몰래 중국과 조약을 맺으니, 사학에 중독된 자들이 매우 두려워하여 가벼운 병기를 화륜선에 장착하고 와서 곧바로 위협하며 군대를 동원한 비용을 지불하라고 하면서 이이 땅을 쪼개어 줄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청국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은을 버릴지언정 땅을 떼어 주거나 백성을 버릴 의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양이가 처음 올 때는 전쟁을 하여 중원을 차지하려는 의도가 없었고, 청국이 화친할 때에는 상대의 강함을 두려워하여 자기의 약함을 보이려고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전하께서는 심각하게 살피소서. 이들이 또 말하기를, ‘요즈음의 병기는 날로 신기해지는데 저들은 가지고 있고 우리는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승부는 이미 결판난 것이니 불가불 각국에 가서 제조 기술을 배워 온 뒤라야 변고에 응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것도 심히 그렇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황제(黃帝) 헌원씨(軒轅氏)가 치우(蚩尤)와 싸운 이후로 병법을 논한 자들이 낱낱이 진술하여 이루 다 기록할 수 없을 지경입니다. 그러나 지극히 정밀하고 신묘불측한 관건은 임금의 마음 한 글자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임금이 이 한 마음으로 장수를 임명하고 장수가 이 한 마음으로 군대를 통솔하고 군졸들이 이 한 마음으로 윗사람의 명령을 따른다면 삼군(三軍)이 승리를 거두는 것은 병기를 맞부딪치기 전에 이미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혹시라도 임금의 마음이 이것과 반대가 되면 능력 있는 장수와 용맹한 사졸과 견고한 성곽과 예리한 병기가 모두 믿지 못할 것이 되고 맙니다. 병가에서 병기들을 정밀하고 예리하게 하려고 하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우리 임금의 마음이 정묘하고 확고한 것과는 하늘과 땅처럼 현격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흉노의 조사(鵰射)와 만추(蠻酋)의 등갑(籐甲)이 어찌 정밀하고 예리하지 않아서 모두 사로잡혔겠습니까. 지금 우리의 긴 창과 큰 칼과 강한 활과 쇠뇌는 적을 섬멸할 수 있고 대포와 소총은 적진을 깨뜨릴 수 있습니다. 다만 근심스러운 것은 적합한 인재를 얻지 못하여 그 병기를 수선하고 그 병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금 밖으로 적을 막으려고 하면서 적들이 보고 듣는 곳에서 병법을 배워 적을 이기려고 하니,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심각하게 살피소서. 아, 이들이 위와 같은 여러 조건을 가지고 하나의 설을 만들어서 성상의 귀를 막고 백성의 입을 틀어막아 암암리에 외부의 화를 끌어들이고 국권을 농락하여 점차 온 나라가 동요되게 하고 만민의 마음이 떠나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위로는 조정에 가득한 신하들에서부터 아래로는 하인배들과 들판의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누군들 전하께서 속임을 당해 위에서 고립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있겠습니까. 이러한 상황에서 만약 뜻하지 않은 화가 생기게 되면 급박함이 당장 발등에 떨어질 것이니, 이 때문에 근심하고 두려워하건만 우리 전하께서는 구중궁궐에 깊이 계시어 주야로 이 무리들에게 가리어 외부의 말을 들을 수 없기 때문에 지금의 시기를 무사한 시기라고 여기시어 전혀 깨닫지 못하고 계시니, 신은 심히 애통해하는 바입니다. 전(傳)에 이르기를, ‘7년 된 병에 3년 된 쑥을 구한다.’고 하였는데, 오늘날 국가 정세의 병은 안이 허한데도 보충할 수 없고 밖으로는 사교가 제멋대로 드나들며 식량은 이미 떨어졌고 원기는 크게 빠져 나간 데다 바로 설사해 버리는 특별한 증세까지 곁들여 있어 그 새어나가는 것을 막을 수 없고, 또 꽉 막히는 중증이 있어 약으로 내릴 수 없으니 편작(扁鵲)을 시켜 치료하더라도 손을 대서 구원하여 일으킬 수 없는 실정이니 어찌 심히 근심되지 않겠습니까. 그나마 다행히도 한 가닥 양맥(陽脈)이 떴다 가라앉았다 하며 미미하게 실처럼 끊기지 않아 시간을 연장하고 있으니, 7년이 오기 전에 3년 된 쑥으로 한번 좋은 약재인지 아닌지 시험해 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볼 때 3년 된 쑥을 구하여 축적하는 방법을 하루라도 늦추어서는 안 될 듯합니다. 여기에서 오늘날 하루를 그냥 지나쳐 버리면 뒷날 효험을 볼 날이 그만큼 지연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요순 같은 성지(聖知)의 자품으로 먼저 정일(精一)의 심법을 세우시어 밖에서 유혹해 들어오는 사심을 제거하고, 내 안에 들어 있는 공변된 천리를 보존하시어 함양하고 성찰하는 일을 잠시도 간단(間斷)이 없게 하신다면 한밤중 잠들지 않았을 때와 이른 새벽 사물과 접하지 않았을 때 담연(澹然)하고 허명(虛明)한 기상을 자연히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뒤에 지난날 이미 행한 일 중에서 어느 것이 정(正)이 되고 어느 것이 사(邪)가 되는가를 스스로 자신의 마음 속에 돌이켜보고 자신의 몸에 반성해 보신다면 그 옳고 그르고, 잘 되고 못 된 것들이 이때에 훤히 드러날 것입니다. 전하의 마음이 한 번 열린 뒤에야 오늘날의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의 일에 대해 신이 병가의 설로 풀어 보겠습니다. 병법에, ‘싸움을 잘하는 자는 그 형세를 따라서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이끌어 간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불행히도 왜와 화친한 지가 5, 6년이나 지나서 수륙을 통해 사신들이 끊임없이 오가고, 저들의 이목에 우리의 허실이 이미 다 보였으니, 지금 만약 갑자기 단교를 한다면 이는 왜에게 꼬투리를 잡혀 그들의 군대를 오게 할 빌미를 제공하는 것이니, 이른바 ‘깎는 것이 도리어 화를 속히 불러들인다.’는 형세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으로서의 계책은 다음과 같이 하는 것이 제일입니다. 즉 별도로 규칙을 세워 10년에 한 번 신사(信使)를 왕래하여 우리가 간 이듬해에 그들의 사신이 오게 하고 그 중간에 9년 간의 크고 작은 일들은 동래 부사가 그때 그때 장계를 올려 처결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사신이 저들의 객관에 머무는 기간은 10일을 넘지 않게 하고, 객관을 벗어나 돌아다니지 못하게 하며, 저들의 사신이 왔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하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더라도 이해에 관계된 의논들은 10일 이내에 모두 처리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사행의 수행원 수는 10인을 기준으로 하고 저들도 그렇게 하도록 하며, 소위 국서(國書)는 저들의 주인이 새로 즉위한 경우가 아니면 보내지 못하게 하고, 사행에 따른 배의 장비들은 저들의 배가 기다리는 동안 항구를 빌려 쓴 값으로 대신 물도록 해야 합니다. 불행히도 세 항구에 대해 개항을 허락한 일은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도록 요구하여 폐쇄할 수는 없지만 그 중에 장차 설치하려고 하고 있는 항구 한 곳은 특히 우리의 인후(咽喉)로 적을 막는 문에 해당됩니다. 이 문이 열리고 나면 말단의 폐단으로 필시 적을 받아들이는 우환이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굳게 닫을 방법을 확실히 강구하지 않아서는 안 되니 그런 뒤에라야 뒷날의 우환이 없음을 보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경계선을 그어 목책(木柵)을 설치하고 넘지 못하도록 엄히 단속하여 반걸음이라도 목책을 넘는 자가 있으면 그 자리에서 처형해야 합니다. 그리고 인천을 수영(水營)으로 승격시키고 부평(富平)을 병영으로 만들어 중무장한 군사를 통솔하여 방어하게 해야 합니다. 또 목책 밖에 몇 개의 진을 설치하고 무략(武略)이 있는 인물을 엄선하여 맡게 하고, 봉화 하나를 특별히 항구에 설치하여 저들의 배가 와서 정박하는 것을 전담하는 봉화로 삼아야 합니다. 저들의 오는 상선은 아무리 많아도 두세 척 이상을 대동하지 않게 하고, 시장을 여는 것은 해일(亥日)로 한정하여 한 달에 두 차례만 교역하고, 교역할 물건으로 양이의 손을 거친 것은 일체 금해야 합니다. 밀매하는 자는 적발하는 대로 사학률(邪學律)에 따라 즉시 효시(梟示)하여 경계시켜야 합니다. 일본에서 생산된 물건이 아니면 매매를 허락하지 말고, 매매하는 법은 공문서에 기록된 것이 아니면 일체 압수하고, 또 미곡이나 포목 등의 물건은 세 항구 모두 무역을 허락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무역 조건은 물물교환으로 하고 동화폐(銅貨幣)는 허락하지 않아야 합니다. 상인들에게 매기는 세금은 십분의 오로 규정을 정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이익이 적게 하여 자주 가 보지 않게 하고, 저 왜의 상인들은 잘 팔리지 않아서 자주 오지 않게 해야 합니다. 참으로 이와 같이 한다면 몇 년 되지 않아서 항시(港市)의 폐단이 거의 제거될 것입니다. 오늘날 소위 중서문견(中西聞見), 만국공법(萬國公法), 공사지구(公史地球), 영환신보(瀛環申報)와 아회잡사(亞會雜事), 시속금일(詩續今日) 등을 우리에게 보내 유혹하여 점차 사학에 들어가게 한 것은 일찍이 시험해 본 저들의 계책입니다. 청컨대, 하나하나 찾아 내어 모두 종루(鍾樓)의 길에 모아 놓고 불살라 버리고 시원스레 덕음(德音)을 발표하시어 기왕의 잘못을 깊이 진술하소서. 그리하여 척사(斥邪)의 의의를 펴서 만백성들이 분명히 듣고 공경하여 복종하면서 모두들 ‘전일하도다, 왕의 마음이여! 크도다, 왕의 말씀이여!’라고 탄복하게 하소서.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모두 가다듬고 진작하며 진심을 드러내고 덕을 닦아서 훌륭한 교시를 받들 것입니다. 대부(大夫)는 조정에 서서 충성을 다해 임금을 보좌하여 임금을 요순 같은 성군으로 만들 뜻을 가지고, 사(士)는 집에서 육례(六禮)의 글을 익히고 춘추 대통(春秋大統)의 의리를 강명하며, 소민(小民)들은 날마다 개과천선하여 인(仁)을 행하여 제 명대로 사는 경지에 들어서 삶을 편안히 여기고 제 생업을 즐거이 행하여 윗사람에게 친하고 어른을 위해 목숨을 바칠 마음을 가질 것입니다. 그리하여 상하가 서로 구원하여 주고 안팎이 모두 사심을 버리고 덕을 쌓으며 원근이 한 마음으로 돌아와 대중이 화합하여 한 덩어리가 될 것입니다. 대중의 마음이 성(城)처럼 견고해지면 몽둥이를 가지고도 예리한 병기를 들고 견고한 갑옷을 입은 적을 이길 수 있을 것이니, 무엇 때문에 왜를 두려워하며 양이를 두려워하며 아라사의 강함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사람이 천하다 하여 그 말까지 천하게 여기지 마시고, 그 말이 쓸 만하면 채택하시고 쓸 만하지 않다면 신의 거짓말한 죄를 다스리시어 나라 사람들에게 사죄하게 하소서.……” 하였다. |
|
첫댓글 글(원문)의 내용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조금 혼동스럽게 보이는 곳도 있네요. 상소문말입니다.
어찌보면 반도조선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구요. 어찌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요.
좋은 내용을 찾으시느라 고생많이 하셨습니다. 잘 보았습니다. 건강하세요. 무더운 날씨에.........!
어짜피 1881년이면 조선은 중원 북동쪽으로 줄어들었을 때입니다.
태평천국의 난으로 서남부에는 왕조가 있을수 없는 여건였져...이때 양이들과 왜노들이 청나라영토(만주=옛 몽골영토)와 대륙조선(청=청구조선=현중원)을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했다 보입니다.
조선사 연구는 생명사이고 생명서이며 계승 발전시켜서 자주 평화 그리고 우주번영의 기틀이 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궐한님의 연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과분하신 격려 감사합니다...신바예바님...ㅡ.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