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시학>, 2013년 가을호
【대표작】
책을 읽는다고 말하지 않겠다 외 9편
맹문재
책(冊)이란 한자를 찾다보니
부수로 경(冂)이 쓰이는 것을 알았다
옛날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가는 지역을 읍(邑)이라 했고
읍의 바깥 지역을 교(郊)라 했고
교의 바깥 지역을 야(野)라 했고
야의 바깥 지역을 림(林)이라 했고
림의 바깥 지역을 경(冂)이라 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책을 둘러싸고 있는 경계선은
내 시야가 닿기 어려운 거리이다
나는 책을 읽어서는 세상을 볼 수 없다고 믿어왔는데
책의 경계선 안에
산도 강도 들도 짐승도
사람도 시장도 지천인 것을 오늘에서야 알았다
칸트는 평생 동안 100리 밖을 나가지 않고
서재에서 보냈다고 한다
결혼도 하지 않고
시계와 같이 책을 읽었다는 것이다
벌써 100리 밖을 벗어났고
들쑥날쑥 살아가고 있으므로
나는 책을 읽었다고 말하면 안 되겠다
책을 읽는다고 말하지 않겠다
다만 책이 넓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보이는 데까지만 걸어가야겠다
하느님의 등을 떠밀다
열한 살 아이가 수술실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나는 아득한 길 위에 서 있었다
손사래에서 포옹까지
불안에서 왕성한 웃음까지
아랑곳없음에서 다행까지
나 혼자 걷기에는 너무 멀다고 느꼈다
한마디가 운명을 되돌릴 수 있고
한손이 운명을 붙잡을 수 있겠지만
질서가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그리하여 아이의 엄마가 수술실에 들어가는 것을
이모가 뒤따르는 것을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달려가는 것을
삼촌이 파고드는 것을
막지 않았다
오히려 나의 먼 길에 그림자가 되어달라고
실직자인 고모도
고모가 들고 다니던 도시락 가방도
가방에 붙은 가냘픈 벚꽃도
벚꽃 둘레에서 부산을 떨고 있는 벌들도
수술실에 밀어 넣었다
벌들을 품은 하늘도
하늘의 옷을 입고 있는 하느님도
돌다리 앞에서 등을 보이고 있는 부처님도 떠밀었다
시집
“증말 저런 데 살아봤으면 소원이 읎겠네. 나는 글쎄 지하에 산다구.”
출근 버스를 기다리며 서 있는 내게
머리카락을 연탄재같이 날리며 다가온 할머니
나는 얼굴을 쳐다볼 수가 없어
할머니가 가리키는 손짓을 따라 아파트들을 바라보다가
투르게네프의 「거지」를 중얼거렸다
“용서하시오, 형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구려.”
동냥을 청하는 거지에게 주려고
호주머니며 지갑을 뒤졌지만
손수건마저 없었을 때 느꼈던 투르게네프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용서하세요, 할머니. 가진 것이 없네요.”
나는 말하지 못했다
가방 속에 시집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사과를 내밀다
1
골목길을 돌아 나오는데
담장 가에 달려 있는 사과들이 불길처럼
나의 걸음을 붙잡았다
남의 물건에 손대는 행동이 나쁜 짓이라는 것을
가난하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지만
한번 어기고 싶었다
손닿을 수 있는 사과나무의 키며
담장 안의 앙증한 꽃들도 유혹했다
2
콧노래를 부르며 골목을 나오는데
주인집 방문이 열리지 않는가
나는 깜짝 놀라 사과를 허리 뒤로 감추었다
마루에 선 아가씨는 다 보았다는 듯
여유 있는 표정이었다
3
감았던 눈을 떴을 때, 다시 놀랐다
젖을 빠는 새끼를 내려다보는 어미 소 같은 눈길로
할머니는 사과를 깎고 있었다
나는 감추었던 사과를 내밀었다, 선물처럼
카키색에 대한 편견
백일장 심사에서 최종 두 편을 읽다가
나는 카키색 앞에서 멈추었다
한 편은 놀라운 표현력을 가지고 있었고
다른 한 편은 밀도가 좀 떨어졌지만
카키색 작업복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배가 들어올 때마다 짐 내리는 일을 차지하기 위해
개떼처럼 몰려드는 카키색 작업복들
카키색 바닷물이 일렁였고
카키색 오후가 흘렀고
카키색 담배연기가 흩어졌다
나에게 카키색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으로
순응이 아니라 체력으로
체면이 아니라 그을린 얼굴로 들어왔다
나는 카키색 잠바를 입기로 했다
갈림길을 지나가다
1
밥을 먹다가 놀라 눈을 감았다
숟가락에 나의 생일이 들어 있기도 했지만
그가 예고한 단식일이 천둥소리를 내며
내 손을 내리친 것이다
반찬거리로 먹던 정치인들도
대출 이자도 순간 뭉개졌다
죽음의 명분이 밥과 연결되고
희망 지수가 밥으로 올라간다는 사실이
숟가락 속에서 푯대처럼 흔들렸다
2
계승이란 사람에게 돌아가는 일이라고
그의 단식이 생각보다 힘이 셌다
이인삼각의 결단이
결코 권태의 산물이 될 수 없었다
나에게 필요한 창도 방패도 아니라고
당돌하게 착각했던 날들을
절벽 아래로 떨어뜨렸다
노조 가입 신청서를 처음 썼을 때처럼
갈림길을 지나가기로 했다
약속
― 단양 신라 적성비 앞에서
적성현 사람인 야이차의 전공(戰功)을 기리면서
충성하면 똑같이 대우하겠다고 고구려 사람들에게
진흥왕은 약속했다
자신의 약속이 진실한 것임을 보여주려고
말로 전하거나
종이에 쓰지 않고
돌에 새겼다
그 약속은 지켜졌을까?
약속은 절대적인 이데올로기이거나
개인적인 윤리가 아니기에
달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까지 약속을 어긴 상대방에게
순교하듯 등을 돌렸다
조건으로부터 고립되는 패착을 둔 것이다
배신이 목적이 아닌 한
약속으로부터 전향할 수 있음을
천 년이 지난 길 끝에서 깨닫는다
멕이는 전략
중학생인 딸만 보면 뭘 좀 멕이라고 아내에게 말한다
뭘 좀 멕여야 키가 크고 인물이 좋아지고 공부를 잘하고 성격이 밝아진다고 믿는다 아빠한테 인사할 줄 알고 이자로 꾸려가는 집안 생각할 줄 알고 맡은 일을 야무지게 할 것이라고 믿는다
아내나 딸은 나의 말을 들은 척도 안한다 고리타분하고 시대에 뒤떨어지는 잔소리라고 무시한다
뭘 좀 멕이라는 말은 내가 중학교 다닐 때 할머니께서 어머니에게 하신 말씀이다
어느덧 힘이 빠진 나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빌려 권위를 세워보려고 하는 것이다
김규동 시인
의지로 당나귀의 울음소리를 슬퍼했다
의지로 친구들과 해방가를 불렀다
의지로 하숙집 쌀밥 앞에서 울었다
의지로 함북 종성에서 서울 을지로까지 걸어왔다
의지로 개미장에서 일자리를 찾았다
의지로 하늘을 바라보며 동생의 이름을 속삭였다
의지로 조곤조곤한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었다
의지로 아버지의 마음을 나무에 새겼다
의지로 아내의 결혼반지를 시집에 끼웠다
의지로 느릅나무에 긴 편지를 썼다
의지로 아이들 편에 서서 데모를 했다
의지로 인연을 끌어안았다
의지로 이데올로기를 끌어안았다
의지로 운명을 끌어안았다
의지로 시인의 길을 걸어갔다
탱자나무
해일처럼 밤이 몰려와도 탱자나무는 어깨를 풀지 않는다
무서운 기색 없이 전선을 응시하고 풍자를 모르는 자세로 진지를 구축한다
황사도 태풍도 경적도 저 견고한 진지를 뚫지 못하리라
유언비어도 명령도 저 거대한 발밑에 깔리리라
탱자나무는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고 전진한다
불패의 칼도 뽑았다
퇴각하지 않겠다는 증표로 온몸을 가시로 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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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소감】
고산문학상을 받게 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나서 고산의 시들을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오우가’를 비롯한 「산중신곡」과 「어부사시사」를 읽고 이번에 발견한 점은 화자가 움직인다는 것이었습니다. 고산은 부단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 움직임이 이치에 벗어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벗어나지 않으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치를 지향하는 바가 분명했지만 조급함을 드러내지 않고 여유로움이 있었습니다. 감정에 의지하지 않고 품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담백한 시선이었지만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고산의 어조는 힘이 있었습니다.
저는 고산의 시들에서 움직임을 배웁니다. 이치를 고민하는 움직임, 새로운 이치를 지향하는 움직임, 물러서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는 움직임, 개인을 넘어서는 움직임, 시비를 가리는 데 타협하지 않는 움직임, 미약하지만 큰 움직임…….
신경림, 정희성 선생님께서 저에게 배움의 기회를 마련해주셨습니다. 최동호 선생님께서도 가르쳐주십니다. 큰 이치를 가르쳐주셨던 김남주 선생님, 김규동 선생님, 이소선 어머니, 이기형 선생님 등이 떠오릅니다. 저는 이렇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친구들이여.
“구룸 비치 조타 하나 검기를 자로 한다/바람소래 맑다 하나 그칠 적이 하노매라/조코도 그츨 뉘 업기는 믈뿐인가 하노라”(‘오우가’의 수(水)).
【사진 설명】
0) 맹문재
1) 어느 날 우리 가족. 이선영 시인, 은지, 지호.
2) 2001년 전국노동자문학회 기관지 『삶글』 편집회의를 마치고. 송경동, 김사이, 조혜영 시인. 홍명진 소설가.
3) 2005년 만해마을에서. 신달자, 정희성, 이가림, 이근배, 문정희, 신경림 선생님.
4) 2006년 노동문학 기행으로 사북에 갔다. 성희직, 박영희, 김길녀 시인. 민종덕, 황만호 전태일기념사업회 선배들이 보인다.
5) 2006년 김규동 선생님 댁에서.
6) 2008년 이소선 어머니 팔순 잔치에서. 장기표 선생님, 손세실리아 시인.
7) 2009년 용산참사 현장에서. 홍일선, 공광규 시인. 전홍표 선생님.
8) 2012년 김규동 선생님 타계 1주기 삼정문학관 행사. 강춘영 여사, 김현 아드님, 이기형 선생님, 정정례 문학관장. 박몽구, 이소리, 정동용, 박재웅, 박설희, 김영찬, 김영탁, 황은주, 최순섭 시인.
9) 2013년 동작문학반 춘천 야유회. 장승기, 장호찬, 이주희, 김월수, 박경남, 이여원 시인.
10) 2013년 최종천 시인 북 콘서트에서. 김응교, 이용임, 김은경, 조정, 김금희, 김두안, 문정영, 이상국, 정세훈, 박승민, 서수찬, 정숙자, 정채원, 문동만, 송기역, 유현아 시인. 이시백, 유시연 소설가, 한봉숙 푸른사상사 대표.
11) 2013년 박광숙 선생님 댁을 찾아서. 신승철, 정원도, 심창만, 박민규, 서안나, 최기순, 성향숙, 전영관, 배성희 시인.
12) 2013년 수원 시인학교를 마치고. 오세영, 이기철, 강은교, 최동호 선생님. 박영우, 김진돈, 장만호, 한영수, 김종훈, 권성훈, 전형철, 김승일, 신철규 시인. 김영범 평론가.
13) 2013년 『시와시』 신인상 심사. 이은봉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