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지난주 수요일에 갈 예정이었지만,
마치 장마비처럼 내리는 비 때문에 이번주 화요일로 미루었다가,
또 다시 전국적으로 내리는 비 때문에 이틀이나 지난
어제서야 무사히 소풍을 다녀 왔답니다.
여전히 아이들은 엄마가 싸 주는 김밥 도시락에,
좋아하는 간식을 챙겨 가지고 길을 나서는 소풍이 기다려지는지,
그 일정이 한번, 두번 미루어질 때마다
"에이~~"하면서 내내 속이 상해 하더니,
새로 산 모자를 쓰고 발걸음도 가볍게 소풍을 다녀 왔습니다.
-사실 요즘 아이들은 소풍이라는 단어보다 현장학습이라는 단어를 쓰지만,
전 그냥 소풍이라고 쓰고 싶습니다.
저 또한 우리 아이들처럼 봄 소풍, 가을 소풍을
손가락을 꼽아가며 기다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초등학생인데도 불구하고 왕복 700원의 교통비를 별도로 지참하고
시내버스를 타고 창원의 용지공원, 두대공원을 다녀 왔다고 하지만,
저의 국민학교 시절, 중학교시절, 고등학교 시절에도
교통편을 이용한 소풍은 아예 꿈도 꾸질 못했지요.
아무리 먼 길이래도,
너무 너무 멀어서 길을 가다가 그냥 주저 앉고 싶어도
친구들과 나란히 길게 두 줄을 지어서 끝도 없이 멀고 먼 길을 걸어야 했지만,
가방 속에 들어 있는
평소와 남다른 도시락 반찬과 찐계란 몇알, 톡 쏘는 칠성 사이다 한병,
그리고 몇 봉지의 과자를 먹을 욕심에 다리가 아픈 줄도 모르고
앞으로 앞으로 먼지 나는 신작로를 따라서 소풍을 갔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지금이야 거의가 김밥 아니면, 유부초밥을 도시락으로 지참을 하지만,
그 시절에는 김밥은 아주 귀한 도시락이었습니다.
사실 저 또한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단 한번도 김밥 도시락을 싸 보질 못했으니까요.
길게 냇가를 따라 끝없이 이어진 둑 위를 한참을 내려가다보면 마주치는
백사장이 넓게 펼쳐진 밤나무골이나,
해마다 여름이면 멀쩡한 젊은 청년들이 꼭 한명씩은 익사를 한다는 덤바위를 지나서
시냇물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고,
남쪽에서 북쪽으로 그 반대 방향으로 흐른다는 삼계석문의 넓다란 백사장,
4월이면 산 전체가 온통 벚꽃잔치를 펼치는 해월암을 지나 산 등선이의 평지,
그리고 예비군 훈련장으로 쓰이던 산 속의 어느 운동장.
남원으로 가는,
아마 오리정 근처라고 추정이 되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작은 방죽이 있는 소풍 장소는
온통 분홍빛 진달래로 산 전체가 꽃잔치를 벌였고,
새눈이 돋은 찔레꽃 덩쿨 사이에 둥지를 튼 꿩이 갑자기 많은 아이들의 등장으로
너무도 놀란 탓에 푸드덕 날아 올라서
애써 품고 있던 꿩 알을 한순간에 개구장이들 손에 넘겨 줘야 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리고 소풍이면 어김없이 빠지지 않는 보물찾기 행사도 있었지만,
제 기억 속에서는 단 한번도 보물찾기로 인해서 상품을 타 본 기억이 없습니다.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리던 점심시간이면
여기 저기 옹기 종기 모여 앉아서 모처럼 정성 들여 싸 주신 도시락을 펼쳐 놓고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웃음소리를 하늘 높이 날리면서 식사를 했습니다.
드디어 다가 온 장기자랑 시간이면,
차마 자진해서 많은 사람들 앞에 나가 노래를 부르진 못했지만,
가끔 친구들에게 등을 떠밀려 나가 못 이기는 척,
며칠동안 마음 속으로 준비해 온 노래를 부르기도 했지요.
꿩 알을 개구장이들 손에 빼앗겨 버린 설움을 토하는지
먼 산 머리에서는 "꺽.꺽..." 꿩소리가 들리기도 했고,
쑥국새가 "쑥국... 쑥국..." 울기도 하던 그 시절.
지금 생각해 보니 참으로 철없이 즐겁기만 했던
참 좋은 시절입니다.
어제, 새로 산 모자에 어린이용 썬 크림까지 얼굴에 바르고 간
울 승완이와 은빈이의 얼굴이 검게 그을릴 정도로
하루를 마음껏 만끽하고 돌아 온 우리 아이들의 현장학습은
과연 아이들에게 어떤 풍경이었고,
어떤 느낌의 추억으로 남게 될까요?
현장학습을 가서 용돈으로 샀다는 승완이의 500원 짜리 장난감 물총은
벌써 흥미를 잃은 듯 목욕탕의 세면대 위에 나뒹굴고 있는데,
그 장난감 물총의 존재처럼 아무렇게나 내던져지고, 쉽게 잊혀지지 않는
오래 오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즐겁고 행복한 기억 속의 현장학습,
아니 소중한 기억속의 소풍이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