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329) - 단란한 가족이 좋은 모임이다
어제(9월 23일)로 추분 지나고 가을비가 촉촉하게 내린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계절의 순환을 몸으로 느끼며 가을이 무르익는 날, 우리들의 삶도 풍성한 열매 맺는 일에 한걸음 다가섰으면 하는 바람이다.
주말과 주초를 고향과 서울 오가며 바쁘게 보냈다. 토요일은 가문의 대가족모임을 고향에서 가졌다. 해마다 이맘때면 숙모님의 기일에 즈음하여 가족들이 잔치하며 기쁘게 보내라는 유지 따라 할아버지의 후손(200명이 훌쩍 넘는다)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 서울에서 버스가 내려오고 경향각처에서 모여든 참석자는 도합 45명, 선영에서 추모행사를 갖고 맛집에서 점심을 든 후 인근에 있는 선운사와 미당문학관을 찾으며 정겨운 시간을 가졌다. 선운사 일원은 전국적으로 꽃무릇 군락지, 지난주에 절정을 이룬 꽃밭에는 주말을 맞아 수많은 인파가 구름처럼 몰려든다. 주변 풍광이 아름다운 대웅전 마당에서는 저녁에 열리는 산사음악회 준비에 바쁘고 사찰입구의 통로에서는 고찰의 창건자 검단선사를 기리는 풍악놀이로 흥을 돋운다.
일요일에는 한국체육진흥회와 중구청이 주관하는 국제걷기행사에 참여하여 남산과 청계천, 한강주변을 걷는 25km걷기를 동호인들과 함께하였다. 주말을 맞아 시청주변의 차 없는 거리에서 펼쳐지는 여러 가지 행사들도 눈길을 끌고. 걷기를 마친 후에 지난 4월에 함께 걸은 이들과 생맥주집에 들러 나눈 시원한 맥주 맛(내게는 한 잔으로 족하다)이 일품이다. 가게주인이 칵테일 솜씨를 뽐내는 것이 허풍 아닌 듯 맛이 깔끔하고 유명인사 한 그룹과 또 다른 일행 외에는 다른 손님이 없는 조용한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
주초에 찾은 곳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 있는 DDP 디자인 박물관, 이곳에서 특별전시하는 간송문화전을 둘러보며 문화로 나라를 지킨 선각자가 공들여 수집한 국보급 예술품들을 도슨트의 설명과 함께 찬찬히 살펴보았다. 전시작품 중에는 겸제 정선, 혜원 신윤복, 단원 김홍도의 그림과 국보로 지정된 이조백자와 고려청자, 유네스코문화재로 선정된 훈민정음해례본과 손꼽히는 명필인 추사 김정희, 한석봉의 서예도 들어 있다. 추사가 죽기 두달전인 71세에 과천에서 썼다는 글씨에는 이런 뜻이 담겨 있다. '대팽두부과강채(大烹豆腐瓜薑菜 ‘좋은 반찬은 두부와 오이 ,생강), 고회부처아녀손(高會夫妻兒女孫, 훌륭한 모임은 부부와 아들딸)' 돌고 돌아 가족과의 화목한 모임, 담백하고 깔끔한 음식, 화사하고 풍성한 정취를 맛본 가을정경이 아름답다. 이를 새기는 마음 담아 가족모임에서 전한 메시지를 덧붙인다.
현숙한 여인, 구원(久遠)의 어머니
- 최말순 숙모 10주기를 맞으며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덕행 있는 여자가 많으나 그대는 여러 여자보다 뛰어난다 하느니라'(잠언 31장 10 - 29절)
금년으로 숙모님께서 우리 곁을 떠나신지 10년이 된다. 숙모님은 떠나셨지만 고귀한 삶의 자취는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고 더욱 빛을 발하여 올해는 우리들에게 숙모님을 기리는 세 번째 가족문집을 만들도록 힘을 모아주셨다. 그러고 보니 이 무렵이 태풍 불고 비가 오는 때인데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후손들이 함께 모여 가문의 화목과 우애를 다지는 단란한 시간을 가지는 것도 숙모님의 가족과 집안을 위한 높은 사랑과 깊은 배려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생각된다.
작년 6월, 아버지 30주기에 즈음하여 가족문집 '화목하고 우애하라'를 펴내면서 가까운 시일에 또 이런 문집을 만들 기회가 있기를 염원하였는데 마침 금년 이 최말순 숙모님 10주기가 되므로 이에 맞춰 문집을 만들기로 동생들과 의견을 모았다. 이 뜻을 가족들에게 알리며 숙모님을 기리는 글쓰기를 권유하였는데 본가는 물론 친정까지 한 마음으로 숙모님의 덕을 기리며 추모의 뜻을 함께 담을 수 있어서 은혜로웠다. 한0 동생은 어머니를 회상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장문의 일대기를 완성하였고 낙0 동생은 들어온 원고 한 줄 한 줄을 꼼꼼히 챙기며 문집의 손질에 정성을 기울였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처럼 숙모님이 가신 10년 세월에 우리 주변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2년 후에 둘째 숙모님, 5년 후에는 둘째 자형이 우리 곁을 떠나셨고 작년에는 첫째 자형과 큰형님이 돌아가시더니 지난달에는 신0길 매제가 1년여 투병 끝에 유명을 달리하였다. 그런가하면 집안의 어른이신 어머니가 백수를 눈앞에, 자녀와 조카들은 대부분 이순을 지나 고희에 이르고 손자세대들이 가정을 이루어 사회의 중견으로 성장한 가운데 증손 0혁은 어엿한 중학생이 되었고 명0, 명0, 0수 등이 태어나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2007년 5월, 우리는 북쪽에 있는 둘째형님 가족과 금강산에서 극적인 상봉을 하였고 2010년 4월에는 60년 전에 부모님이 우리들을 이끌고 힘들게 걸으셨던 서울-고창의 피란길을 걸었다. 부모님이 가신 고난의 길을 밟으며 이 땅에 통일과 번영이 깃들기를 염원하기도. 2년 전 성묘 행사 때 서울 - 부산 간 한일우정 걷기에 참여한 일본인들이 우리 가문의 행사에 참여하여 할아버지 묘소에 화환을 바치며 경의를 표하였다. 회상의 피란길 걷기행사내용도 알고 있는 그들은 묘소를 살피다가 6.25 당시 20대의 최말순 숙모가 두 어린아이를 안고 뱃속에 태아를 잉태한 체 걸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감동하였다.
2010년 회상의 피란길 문집에 이어 작년에 '화목하고 우애하라'는 두 번째 문집을 펴냈다. 이를 받아본 주변에서는 수백 명 가족이 화목한 가운데 훌륭한 문집을 낸 우리 가문을 칭송하고 부러워하였다. 금년 4월, 한일 우정걷기 때 가문의 여러분이 강원도까지 찾아와 일행들을 격려하였다. 이에 감격한 일본인들이 감사와 찬사의 글을 보내왔다.
한번 가는 것은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천명, 그러나 숙모님은 떠나신 후에도 향기로운 꽃으로 피어나 '현숙한 여인, 구원(久遠)의 어머니'로 우리 가슴에 살아계신다. 최말순 숙모님은 스물다섯의 젊은 나이에 겨레의 비극인 6.25 전쟁을 온몸으로 겪으시며 재철 숙부님과 기약 없이 작별한 후 끝내 다시 만나지 못한 체 어린 자녀들을 훌륭하게 양육하여 어엿한 동량으로 세우고 가족과 이웃에 넉넉함을 베푸셨다. 숙모님의 값진 삶은 '덕행 있는 여자가 많으나 그대는 여러 여자보다 뛰어나다'는 칭송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제목으로 삼은 현숙한 여인은 10년 전 장례예배 때, 구원(久遠)의 어머니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수도의 보우투레커 기념관 입구에 두 아이를 양 옆에 끼고 있는 어머니 조각상에 새겨진 글귀에서 따온 것이다. 한용, 명희, 낙진 동생이 그렇게 마음에 새기고 있음을 굳게 믿으며 숙모님의 10주기에 즈음하여 '현숙한 여인, 구원(久遠)의 어머니'라는 헌사를 가문의 이름으로 바친다.
사노라면 형통할 때도 있고 곤고할 때도 있기 마련, 그럴 때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전도서 7장 14절)는 교훈을 새기며 슬기롭게 대처하기를 다짐한다. 숙모님께서는 이에 적합한 교훈을 글로 써서 남기셨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이사야 41장 10절)
하나님이여,
최말순 권사를 현숙한 여인, 구원의 어머니로 상 주소서.
우리 가문으로 정직하고 공의롭게 하소서.
우리 모두로 형통할 때는 기뻐하고 곤고할 때는 생각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