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
2002년 <공공의 적>
1998년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
1996년 <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7가지 이유>- 제7화
1996년 <투캅스2>
1994년 <마누라 죽이기>
1993년 <투캅스>
1992년 <미스터 맘마>
1991년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
1991년 <스무살까지만 살고 싶어요>
1991년 <열아홉 절망끝에 부르는 하나의 사랑노래>
1990년 <나는 날마다 일어선다>
1989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1988년 <달콤한 신부들>
제작·투자·배급
2001년 <킬러들의 수다>
2001년 <봄날은 간다>
2001년 <세이 예스>
2001년 <엽기적인 그녀>
2001년 <신라의 달밤>
2001년 <썸머타임>
2001년 <선물>
2001년 <하루>
2001년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2000년 <불후의 명작>
2000년 <순애보>
2000년 <시월애>
2000년 <해변으로 가다>
2000년 <비천무>
2000년 <비밀>
2000년 <인터뷰>
2000년 <플란다스의 개>
1999년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1999년 <텔미썸딩>
1999년 <주유소 습격사건>
1999년 <자귀모>
1999년 <인정사정 볼 것 없다>
1999년 <이재수의 난>
1999년 <간첩 리철진>
1999년 <주노명 베이커리>
1999년 <연풍연가>
1999년 <마요네즈>
1998년 <미술관 옆 동물원>
1998년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
1998년 <여고괴담>
1998년 <투캅스3>
1997년 <올가미>
1997년 <넘버.3>
1997년 <홀리데이 인 서울>
1997년 <초록물고기>
1996년 <투캅스2>
1996년 <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7가지 이유>
1995년 <엄마에게 애인이 생겼어요>
1994년 <마누라 죽이기>
1993년 <투캅스>
제작투자
싸이더스 우노필름/ <정글쥬스> <로드무비> <결혼은 미친 짓이다> <발해> <살인의 추억>
씨네2000/ <서프라이즈>
태흥영화사/ <취화선> <38광땡>
씨앤필름/ <테슬라>, 윤종찬 프로젝트
감독의 집/ <광복절 특사>
좋은영화/ <피도 눈물도 없이> <재밌는 영화>
에이스타스/ <라이터를 켜라>
태원엔터테인먼트/ 장현수, 김영준 프로젝트
극장
부산 대영극장(35%)
광주 제일극장(35%)
경주 아카데미, 대왕, 경주, 신라 등 4개관(100%)
전주 2002년 6개관 오픈 예정(50%)
▶ 강우석 감독 개인 사업내역
극장
씨어터뱅크 지분투자(씨어터뱅크 내 강 감독의 지분은 20%)
부평 키넥스(100%)
수원 영통키넥스(100%)
평촌 킴스(50%)
부천 씨네씨마(50%)
서울 유토아(50%)
스튜디오 투자 아트서비스(자본금 30억원, 강 감독 지분 60%)
강 감독의 주식
로커스홀딩스(8%)
시네마서비스(30%)
▶ `과욕의 승부사` 영화로 돌아오다
▶ 강우석 감독 l 연표 l
▶ `감독` 강우석의 새 영화 <공공의 적>
▶ 인터뷰1 I “조폭코미디의 색깔없는 웃음, 엎어주고 싶었다”
▶ 인터뷰2 I “돈부터 지르면 망한다는 걸 알았다”
▶ 인터뷰3 I “어머니한테 야단 맞고 다시 메가폰 잡았다”
인터뷰1 I “조폭코미디의 색깔없는 웃음, 엎어주고 싶었다”
감독 강우석에게 묻는다
유통기한 지난 채 수북이 쌓여 있는 연하장. 전화기 근처 덕지덕지 붙어 있는 노란 포스트잇. 대니얼 디포의 문고판 <로빈슨 크루소>. 10여년간 제작·감독했던 영화의 포스터 패널들이 사방으로 에워싼 채 촬영현장으로 그의 등을 떠밀었음이 분명한 사무실. “아이고, 이렇게 긴 인터뷰는 처음이네, 목이 다 쉬겠다.” 자고 나니 몇십억 벌었더라는 소문이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나오는 회사의 회장 사무실치고는 검소한 공간에서 커다란 생수통 하나를 앞에 두고, 시네마서비스 회장이자 <공공의 적>으로 감독이란 칭호를 다시 찾은 강우석 감독과 나눈 인터뷰는 210분간의 긴 마라톤이었다. 경제지가 아니라 오랜만에 영화지와의 만남이라는 즐거운 비명을 신호탄으로 시작해 신작 <공공의 적>에 대한 이야기와 충무로 부동의 파워1위를 고수하기 위한 비하인드 스토리로 반환점을 돌아, 항간에 떠돌았던 소문과 진실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르락내리락, 그렇게 결승점에 도달하고 보니 어느덧 창문 밖은 깜깜하게 어두워져 있었다.
<공공의 적> 시사회 끝나고 나서 비판도 있지만 <투캅스> 이후 강 감독의 최고작이라는 평가가 많다.
글쎄, 그렇게 말한다면 고마운 일이다. 사실 강원도에서 크랭크인하던 날, 기자들과 술 한잔 마시면서 이런 이야길 했다. 정말 두 마리 토끼가 있다면 이번엔 한 마리만 쫓겠다, 완성도로 가보겠다, 원래 시나리오가 누아르적이라 유머는 있었지만 웃음이 없었다, 그렇다면 내가 여기에다 웃음을 실어보겠다, 완성도와 결부되어 평가받는다면 그만한 거 없고, 흥행은 나중에 쫓게 되면 쫓는 거라고. 사실 흥행을 다시 해보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면, 막말로 <신라의 달밤>을 내가 찍었지. 결국 완성도로 가보겠다는 거였는데 찍으면서 <투캅스> 1편의 유머에 눌려 진짜 애를 먹었다. 만약 <공공의 적>의 웃음의 코드가 <투캅스>보다 못하다면, 의미가 없다면, 사람들이 극장에서 실컷 웃고 나와서, 내가 왜 웃었지, 비아냥거린다면, 이건 정말 죽는 거라고 생각했다.
또 하나, 지금 같이 일하는 감독들이 날 짓누르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상상도 못할 스트레스였다. 장윤현, 장진, 김상진, 한지승, 지금 다 나름대로 잘 나가는 감독들인데 자기들 편집할 때 이거 붙여라, 저거 보충하자, 간섭하고 설득했던 놈이 정작 자기 영화는 개판으로 만들면, ‘어나더(another) 생과부(<생과부위자료 청구소송>)’만들면, 누가 믿고 따르겠냐 이 말이야. 그러다보니 반쯤 찍으면서, 나 이거 왜 시작했지, 하는 생각이 한두번 든 게 아니었다. 그래도 옛날에는 잘 나갔던 감독이었는데, 그냥 그거 가지고 울어먹고 살지…. 안 그랬겠냐 말이야. 하루는 녹음실에 임권택 감독이 오셔서, 그분이 워낙 유머가 좋으신 분이니까, “강 감독, 이번 영화엔 옛날에 빤짝빤짝하는 거 하나도 없지?” 하시더라고. 이거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거야. 야 죽었다, 큰일났다 그랬지. 김상진은 노골적으로 “감독님 <공공의 적> 제가 20분만 잘라드리겠습니다”라고, 장진은 <킬러들의 수다> 편집 끝내는 날 “편집 걱정마십시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이러는데 오죽했겠나. 감독들끼리 모여서 어떻게 만드는지 한번 보자, 그랬다고 하더라. 그렇게 계속해서 <투캅스> 1편에 대한 강박, 코미디를 넣되 웃음이 허하면 안 된다, 머리 나빠 보이면 안 된다는 강박을 안고 찍어나갔다. 솔직히 지금은 마음이 편하다. 시사 끝나고 김미희, 김상진, 장진 같은 친구들이 “흥행에 상관없이 작품이 잘 나와서 정말 기분좋습니다’면서 좋아하더라. 결국 최소한 얘들한테는 욕 안 먹겠다는 안도가 들고나니 그날부터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지금 가장 큰 즐거움은 <공공의 적>이 강우석 대표작이다, 이게 <투캅스>보다 낫다, 그런 게 아니라 적어도 내가 그 영화의 웃음에 짓눌리지 않았다는 확신이다.
<투캅스>도 그렇고 형사액션코미디 장르에서 강 감독 특유의 유머와 에너지가 발휘된다. <공공의 적>을 보면 강 감독이 물 만난 고기처럼 판을 장악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강 감독이 잘 아는 세계이기 때문일까.
그건 아니고, <공공의 적>을 만들기까지 3년반 동안 40여편의 한국영화를 제작했다. 그 영화들을 일일이 편집실 찾아가고, 시사하고, 개봉 붙여봤던 과정이 직접 영화를 한두편 만들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공부였다. 뭐, 감독들이야 편집실에서 나한테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하지만, 사실 난 걔들에게 배운 게 너무 많았다. 그 사람들의 시행착오를, 아! 저거 시행착오야, 라고 판단하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공부였다. <킬러…> 편집하면서 야, 여기서 왜 호흡을 길게 가냐, 며 간섭했던 게 내 영화에서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었던 이유였고, 김상진의 닭살 코미디보면서 저러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코미디를 만들 수 있었다. 마치 동계훈련 열심히 한 야구선수 기분으로 타석에 섰던 거다. 다들 <공공의 적> 시나리오를 어둡게 봤지만 난 달랐다. 작가들이 <공공의 적>의 시나리오를 아무리 누아르 느낌으로 끈끈하게 써와도 나는 그 안에 있는 유머가 보였다. 일부러 억지 코미디를 넣은 게 아니라는 거다. 내 나름대로 편집실에서 남의 작품가지고 열변토하고 흥망을 같이 겪으면서 했던 공부가 정말 값지다는 걸 알았다.
강 감독의 영화에는 사회풍자가 좀처럼 빠지지 않는다. 영화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사명감이나 강박관념 같은 게 있나.
솔직히 과거의 내 영화에서의 사회풍자는 웃음을 경박하게 가지 않겠다는 강박으로 끌어들인 게 사실이다. 하지만 <공공의 적>은 사회에 대한 나의 시각이 달라진 거다. 그 사이 비즈니스를 하면서 변한 게 많았다. 어쩌면 나도 영화쪽에서 보면 지탄의 대상이 되는 사람인데, 왜냐. 너무 설쳐대니까 당연하지, 주변에 돈 때문에 일어나는 많은 일들, 돈이 충무로에 들어와서 어떻게 사람을 망가뜨려가는지를 봤다. 나라도 확실하게 어떤 게 나쁜 거고 어떤 게 덜 나쁜 건지 그려야겠다. 나 역시 내 영화를 통해서 나빠지지 않겠다는 의지랄까. 그게 만약 보수라면, 난 앞으로 보수다. 이런 시각의 변화가 생겼을 때 <공공의 적> 같은 시나리오를 만났으니 바로 이 영화 찍겠다고 생각한 거다. 그동안 돈 속에 들어가서 영화를 제작하고 배급해왔다. 그러다보니 얼마나 사회가 돈에 병들어 있는지 알겠더라. 돈 가지고 사람을 해코지 할 수 있고, 돈 때문에 어떤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 등을. 돈 때문에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이게 선이고 이게 악이야 하는 것을 <공공의 적>을 통해 쉽게 뱉어버릴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강 감독은 무엇보다 코미디에 강한 감독이다. 그러나 2001년 한국영화에서 상당수의 조폭 소재 코미디가 보여준 웃음에 대해선 비판적이었는데.
<주유소…> 때나 <신라…> 때 김상진 감독한테 내가 이랬다고. 극장 들어가서 보니까 네 영화보고 관객이 많이 웃더라, 그런데 관객에게 진짜 재미있어서, 진짜 통쾌해서 웃는 건지 한번 물어봐라. 정말 그렇다면 네가 생명력이 있는 거고, 아니라면 그 다음에 너 어떻게 웃길래? 내가 과거에 웃음에 강박을 가졌던 것과 똑같은 스트레스를 너도 갖게 될 거다. 너도 길지 않겠지만 관객도 금방 싫증을 낼 거다, 그런 말을 했다고. 지난해, 일련의 영화들을 보면서 정말 짜증나고 화가 났다. 영화가 <개그콘서트>보다 훨씬 낮은 수준으로, 머리 비게 간단 말야. 소재는 신선하고 좋은데, 아, 여자 조폭, 소재는 얼마나 좋냔 말이야. 다 좋은데 꼭 영화를 그렇게 끌고 가야 하는 건지, 적어도 웃음을 주는 순간만이라도 웃음에 대한 색깔을 가져야 하지 않느냐는 거지. <…JSA>에서 <친구>까지 잘 만든 영화들이 넘어오면서 이제 한국영화 볼 만하다 했는데 연말쯤 되니 주변의 일반인들까지 이렇게 가도 되는 거야, 물어보더라고. 물론 나는 거품론에 한번도 동조한 적 없지만 이렇게 가다간 큰일나겠다 싶더라고. 심지어 우리와 일하는 영화사들도 이상한 영화하겠다고 들고 들어오는데…. 물론 오는 족족 내가 다 엎어줬지. 퀼리티 없는 영화들 만드는 쪽하곤 일 안 해, 그랬다고. 내가 결론을 내린 게 이래. 이상한 가수가 이상한 노래불러도 100만장 팔리는 경우는 어느 시대나 있는 거니까 무시하자. 우리라도 헷갈리지 말자. 엄한 게 된다고 그것만 만들지 말자. 내 스스로 그렇게 다짐하고 그러고 있는 거야.
<공공의 적>의 웃음은 지나친 과장을 배제하고 있다. ‘내가 진짜 영화적 웃음이 뭔지 보여주지’ 하는 마음으로 만들었다는 느낌도 든다. 그런 건가.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그런 마음이 가장 큰 부담이 었다. 장윤현이 나한테 침뱉는 날, 장진이 돌아서는 날, 야, 너 앞으로 내 영화 간섭하지 마! 자기 영화는 개판으로 만들어놓고 어딜 끼어들어, 그럴 수 있잖아. 그러면 내가 그걸 어떻게 견디냐고. 내가 김상진보다 코미디를 잘 만들 텐데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지만 그게 안 되면 어쩌냐고. 그렇다고, 아이 상진아, 나 바빴던 거 네가 알잖아, 관객에게 영화 중간에 “죄송합니다, 제가 좀 바빴거든요” 하고 자막을 넣을 수도 없는 일 아닌가. 그게 제일 무서웠다고 정말.
지금부터 5년 전의 인터뷰를 찾아보면 강 감독은 “무조건 재미있는 영화가 최고”라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최근엔 부쩍 작품성, 완성도를 강조하고 있다. 두 입장의 차이가 강 감독 내적의 어떤 변화를 의미하는지 환경의 변화 때문인지 궁금하다.
그때 재미있는 영화라고 말했던 건 다른 영화들이 재미를 무시하고 너무 작품성만 추구하니까 한 말이고. 그때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는 건 재미는 완성도가 있다는 전제하에 있다는 거다. 무조건 재미만 있어라 하는 건 아니라는 거지. 그러니까 <미스터 맘마> 같은 영화에 대해서는 나, 입도 뻥끗 안 하잖아. 물론 흥행요소가 충분했던 영화였지만 그 영화 완성도로는 내가 말도 못한다.
<투캅스>는 98년까지 <서편제>에 이어 역대 흥행 2위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역대 흥행 10위 밖으로 밀려났다. 빨리 연출을 다시 해야겠다고 생각한 데는 흥행 랭킹에 다시 들어가야 한다는 부담도 작용했던 것 아닌가.
그건 없었다. 진짜 없었다. 그 시절하고 지금하고 잣대가 다른데 그걸 지금 와서 어떻게 비교를 하나. 내가 죽은 다음에서 누가 내 기록 깼다고 하면 관 속에서 벌떡 일어나서 다시 영화찍게?
그렇다면 거꾸로 스필버그 이야기를 해보자. 스필버그는 오랫동안 아카데미를 받고 싶어했고 작가로 평가받고 싶어했다. 당신도 작가로 평가받고 싶은 것인가.
아예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사실 채플린처럼 돼보고 싶다. 그게 아니라면 이타미 주조만큼은 되고 싶다. <마루사의 여인>을 보고는 약이 올랐어. 한국의 작가들은 뭐하느라 저런 아이디어 하나 안주나, 그랬다고. 사실 나는 <피아노> 같은 영화 보고 감동이 없다. 하지만 <마루사의 여인>이나 <시티 라이트> 같은 영화를 보면 좌절하거든. 그렇지만 작가주의에 대한 욕심이나 스필버그가 <쉰들러 리스트> 찍으면서 가졌던 욕망 같은 건 50살 이전까진 안 가지게 될 것 같다. 시네마서비스가 돈이 너무 많아가지고 한 2년 기획하고 2년 찍으라면 모를까. 하지만 작가가 되고 싶어 영화에 다른 장치한다든지 테크닉을 부리는 건 못한다. 안 한다. <봄날은 간다>나 <미술관 옆 동물원> 같은 영화는 내가 못 찍는 영화다. <접속>도 마찬가지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영화를 계속 찍어나갈 거다.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강 감독은 승부욕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공공의 적>을 연출한 계기도 그런 승부욕의 산물이 아닐까 싶다.
아이, 아니라니까. 나는 앞으로도 젊은 감독들하고 작품을 찍어야 한다. 그래서 지금 20대 후반의 젊은 감독을 찾고 있다. 내가 가장 빛나던 시절이 바로 20대 후반에서 서른한두살까지였다. 몸도 가장 튼튼했고 5박6일 밤새도 두렵지 않은 때도 그때였다. 지금 스물두세살짜리 놈을 찾아서 ‘한국의 천재감독’ 만들어내는 게 솔직히 내 꿈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그 아이들을 설득하는 데 내 영화가 무리가 없어야 한다는 거다. 물론 감독으로 잊혀져간다는 것에 대해 쫓기는 느낌도 있었겠지만, 그 아이들과 또다시 몇년을 살아남으려면 계속 찍어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였다.
인터뷰2 I “돈부터 지르면 망한다는 걸 알았다”
비즈니스맨 강우석에게 묻는다
한국영화계에서 최고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걸 실감할 때는 어떤 순간인가.
캐스팅할 때와 이 영화 해보자 했을 때 주변에서 오는 자신감. 아, 그리고 돈을 집행하는 속도다. 내가 의사결정 전권을 가지고 있으니까 한번 결정하면 논스톱이다.
그렇다면 ‘파워1위’라는 위치가 부담스러울 때는 언제인가.
내가 워낙 지르고 시작하는 놈이니까, 어? 내가 왜 질렀지, 할 때다. 지금이야 돈 집행을 내가 안 하지만 옛날에는 사람욕심이 많아서 돈 날린 게 수십억 된다. 누가 와서 생활비 떨어졌다, 돈 필요하다고 하면 왜 나만 돈버나, 에이 같이 먹고 살자, 했던 적이 많았다. 결국 그것이 워버그핀커스 들어오기 전까지 회사에 돈이 없었던 이유이기도 했고.
집행사항 중 제일 후회되고 마음에 짐으로 남았던 결정은 뭔가.
후회라고 한다면, 편하게 할 수도 있는 일을 대기업 하고는 절대 손 안 잡는다는 고집 때문에 삥 돌아서 간 거다. 삼성이나 대우랑 했으면 편하게 했을 텐데 너네들 꺾는다는 마음이 있었다. 실제로 어떤 놈이 돈만 가지고 영화판 들어와서 파워1위 한다면 나는 영화인 안 할 거다, 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하고 다녔으니까. 사실 그때 조금만 양보했으면 돈 많이 벌었을 텐데 하는 거지. 그리고 다른 하나는 사람은 돈으로 안 된다는 거다. 사람은 애정과 함께 가야 되더라. 한때는 파워게임 때문에 감독 9명을 감독료 먼저 주고 묶어두려고 했다. 남들이 먼저 데려갈까봐 못하게 돈부터 지른 거지. 그런데 결국엔 다 다른 데서 일하더라고. 그렇게 얻은 교훈은 돈만 가지고 뭔가를 도모하지 말자는 거다.
초대 1위를 굉장히 오래 고수하고 있는데….
그래서 내가 건강이 얼마나 나빠졌는데, 그거 유지하느라고. (웃음)
항상 1위한텐 적이 많고, 나쁜 소리도 많이 나오게 마련이다.
대부분 적이지. 대부분.
그동안 들었던 비난 중에 정말 부당한 것과 정말 뜨끔한 건 뭔가.
뜨끔한 걸 먼저 얘기하자면, 강우석이한테는 웬만하면 좋게 가라, 안 좋아도 당신 좋아합니다, 하는 척해라, 그 사람이 도와주는 건 잘 못하는데 해코지는 전문이다, 이런 거지. 어떤 사람이 이유도 모르게 망가지고 있어. 이건 분명 강우석이가 한 짓인데 전혀 티도 안 나고 이런 거 있지 않나. 내가 정정당당하게 일하자고 했는데 뒤에서 뒤통수친 놈치고 그냥 넘어간 놈이 한놈도 없다. 물론 킬러고용하고 그런건 아니지만. (웃음) 이런 경우엔 그놈 영화가 나오면 같은 날 흥행될 영화 앞뒤로 붙여서 아예 죽여버렸다. 몇년 전에 정말 있었다. 그런 일과 관련된 이야기 들으면 뜨끔하지. 하지만 요 근래는 없었고. 지금은 많이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부당하다고 한다면, 1위라고 해서 그런지 인신공격이 너무 심해. 결국 어느 순간 내가 귀를 딱 막아버렸다. 가장 심하게 매도한다고 생각한 거는 돈에 대한 헛소문날 때 진짜 섭섭하더라. 무슨 영화에서 강우석이가 30억, 50억원 벌었다더라 하면, 정말 같이 일해 보지 않으면 내가 그 돈을 다 사유재산화한 줄 안다. 하지만 김미희, 김상진이나 장윤현이나 다 안다. 내가 돈에 대해 얼마만큼 나약한 놈이고 얼마만큼 마음을 비웠는지. 시네마서비스는 연간 ‘똔똔’만 해라, 남는 돈 가지고 내 밑에서 망하든 벌든 끊임없이 영화찍어라, 그 대신 너네 중에 부자가 나와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이다. 아니, 자기 새끼도 못 먹이는 오야붕이 무슨 오야붕이냐고. 나는 편당 얼마 챙긴다거나 이런 건 생각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10억원을 막으려면 100억원짜릴 저지르는 스타일이다고 하던데, 공격적 경영 스타일은 선천적인 것인가.
욕심이 많아서 그렇다. 내 경영의 가장 큰 장점은 망할 거에 대해선 미리 포기하고, 망한 거에 대해선 후회 안 한다는 거다. 공격적인 경영은 지르는 게 빠르다는 것일 거고 다른 의미는 뒤를 절대로 안 돌아본다는 거다. 회사 망해도 나는 언제나 맨몸으로 돌아갈 자신이 있단 말이다. 감독으로 돌아갈 거라는 거. 또 하나 오버하자면 떠벌려놓고 내가 그걸 지키려고 노력하는 거, 그게 내 가장 큰 장점이다. 예를들어 어떤 기사를 통해 올해 나 영화 15편 만든다 말해놨으면, 야, 너 기사봤지? 2편만 찍어주라, 식으로 안 되더라도 맞추려고 노력하는 거지. 그런 스타일이 아마 공격적으로 보인 이유일 거다.
강 감독이 본격적으로 영화비즈니스맨이 된 계기가 서울극장 곽정환 회장의 권유라고 하던데.
그건 절대 아니고 과정으로 선택했던 것뿐이다. <마누라 죽이기>를 끝내고 나니 내 앞에 제법 큰돈이 있더라고. 물론 내가 돈에 대한 한이 있었던 놈은 아니지만 돈 때문에 불편한 적은 많았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이 돈을 가지고 어떻게 할 것인가. 자, 내가 지금 이걸 먹고 말 것인가, 아니다, 내가 이 돈을 종잣돈으로 해서 간다, 극장 배급과 편수 늘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네마서비스를 만들었고 극장 체인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서울극장은 내 발로 찾아들어간 거다.
서울극장과 무관한 회사가 된 계기는 외자유치라고 보면 되나.
밀월관계 유지하는 게 과거엔 나하고 곽 회장이었는데 이제 김정상 사장과 곽회장으로 바뀐 거지. 서로 무시못할 관계니까. 우린 영화편수가 너무 많고 우리 입장에선 서울극장이 꼭 필요한 거니까. 나하고 곽 회장은 일을 떠나서 선배고 동료고 곽 회장은 나에게 아버지 같은 분이다. 이건 끝까지 가는 거다. 다만 곽 회장은 늘, 우석아 너무 멀리 가지 마라, 너무 크게 벌리지 마라, 영화는 언제나 망할 수 있는 사업이다, 걱정한 거고 나는 한번 해볼게요 했던 거다. 이제 곽 회장은, 야! 넌 이미 너무 크게 벌려서 강 건너 간 놈이니까 네 길로 가, 그런다. 분배 이런 거랑은 아무 상관없다.
회사를 운영하면서 어려웠던 순간들이 많이 있었을 것이다. 돌이켜 볼때 정말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 어떻게 그런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나.
97년은 그래도 <투캅스2>가 워낙 돈을 많이 벌어놔서 괜찮았지만 98년, 99년은 정말 어려웠다. 아, 진짜 어려웠다. 시네마서비스 만든 이후 부도날 위기를 3번 겪었는데 중소기업 사장들이 왜 자살하는지 이해가 되더라. 12시까지 술이 떡이 되게 먹고 들어와도 새벽 1시에 거실에 앉아서 아침 7시까지 담배피우고 있는 거야. 입이 다 헐게 담배 한갑 다 피우고 앉아 있으면서 이건 감독만 하라는 뜻인가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참 다행히도 그때마다 살아남을 만큼의 영화가 뒤에서 받쳐줬다. <투캅스> 만들고 교만에 넘쳐 만든 영화들은 다 깨졌다. 18억원 부채 안고 <투캅스2> 찍고 살아났지. 그 이후 또 까분다고 이것저것 찍다보니 또 부도가 닥쳐. 그때 <편지> <여고괴담>이 살려. 마지막 어려움이 닥친 게 99년이었는데 이번엔 <인정사정…>이 살렸다. 이게 망했으면 <텔미썸딩> <주유소…> 개봉도 못했을 거다. 해마다 2달 웃고 10달을 울었다.
처음 그렸던 시네마서비스의 청사진에 얼마나 가까워졌나.
70% 정도? 지금 같은 모습은 배급을 모르던 시절부터 그려왔던 거다. 스튜디오 만드는 것도 즉흥적인 게 아니다. 돈이 들어온다면 편집실, 녹음실까지 들여오고 싶다. 마지막 목표는 감독들이 시나리오만 들고 들어와도 캐스팅부터 유통까지 끝내는 시스템이다.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고 하지만 투자·배급할 영화를 결정하는 건 여전히 강 감독의 몫이다. 그런 면에선 여전히 경영의 제일선에 있는 것 아닌가.
돈에 대한 투자 외에, 즉 작품선택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한다면 아직 그렇다.
강 감독의 영화투자 스타일은 대기업이나 금융자본과 다르다. 어떤 때는 시나리오도 안 보고 투자한다. 어떤 생각으로 시나리오도 안 보고 투자하는 모험을 하는가.
시나리오 보고 앞뒤 다 잰 뒤에 영화하면 1년에 1, 2편밖에 못한다. 대신 가능성을 보는 거다. 박기형은 단편영화 하나 보고 <여고괴담> 감독시켰다. 절대 배신하지 않더라. 나도 그렇게 커왔는데 뭐. 누가 시나리오만 보고 흥행을 예상할 수 있나? 그런 사람 데려오면, 내가 연봉 10억 주겠다. 흥행에는 도사 없다는 거다. 그래서 안 되는 놈도 또 시켜보는 거고 되는 놈도 너 가라, 할 수 있는 거지.
강 감독은 영화인과 비영화인에 대한 구분이 확고하다. 대기업 자본, 금융자본 등 외부 투자자에 대해 자주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초록물고기>나 <이재수의 난>에 이어 이번에 <취화선>에 투자한 것을 보면 나는 그들과 다른 영화인이라는 자존심의 표현 같다.
지금의 내 논리는 그 차이보다는 이거다. 돈을 번다면 그 돈을 예술영화에 환원해야 된단 말이다. 상업영화가 안 되면 예술영화가 죽는다는 거지. 나 홍상수 감독 영화 별로 안 좋아해. 그래도 같이 일하고 싶어. 왜? 그 사람이 대외적으로 한국영화의 위상을 높이는 데 뭔가 할 것 같으니까. 그렇다면 일해야지. 만약에 올해 시네마서비스 라인업이 <취화선>이나 <생활의 발견>이 없다면 얼마나 답답하나. 구색맞추기가 아니라 영화를 여러 가지 형태로 만들고 싶은 거지. 까먹는 영화가 나온다면 의미있는 영화를 까먹어야지. 솔직히 <취화선>은 회사에 여유가 있으니까 들어갈 수 있었지만 이제보니 장사도 될 것 같다. 만약에 칸 가서 본상받으면 또 얼마나 좋은가. 물론 내가 붉은 계단은 못 밟겠지만 와, 저놈은 예술영화의 흥행도 알아본다, 신문에는, 강우석 타고난 흥행감각…, 뭐 이럴 거 아니겠나. 그러면 그 덕에 파워1위 더할 거 아닌가. (웃음)
29살에 데뷔했는데 그 당시 강 감독의 꿈과 지금 현실은 어떤 차이가 있나.
데뷔 때 꿈은 정말 재미있는 영화 한편 만들겠다는 거였다. 내가 감독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한 결정적인 계기는 <바람불어 좋은날>이었는데, 그거 보고 나니까 나도 살아남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더이상 학교 못 다니겠더라. 그만두고 충무로로 들어갔다. 그때는 참, 영화찍는 게 즐거웠다. 장가도 안 갔으니 생활을 책임져야 하는 것도 아니고 감독료 받은 돈으로 술먹고, 배만 안 고프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가 망하면서 내가 찍은 영화 때문에 영화사들이 힘들어져가는 거 보니까 어이구, 이거 남의 돈으로 영화 함부로 찍는 게 아니다 하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 선택이라고 생각했던 게 제작·감독을 겸해보자 하는 거였지. 그렇게 <미스터 맘마>로 스타트를 끊었던 거고. 본격적으로 지금 같은 배급의 꿈을 키운 거는 <투캅스2> 찍고 나서다.
인터뷰3 I “어머니한테 야단 맞고 다시 메가폰 잡았다”
인간 강우석에게 묻는다
강 감독 어머니가 너도 작품성 있는 영화 만들어야 되지 않겠냐고 해서 <공공의 적> 만들게 됐다는 소문이다.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표현은 아니었고 야 너 지금 뭐하냐 하는 말이었다. 우리 어머니도 날 오해한 거다. 너 돈이 그렇게 좋아? 돈 그만큼 벌었으면 됐지 뭘 더 벌려고 그러냐, 심지어, 너 그렇게 영화에 자신이 없냐, 그러면서 아주 모멸감을 주셨다. 나는 영화감독 아들이 좋은 거다, 다음 영화만들면 잘 만들어라, 작품성 있는 걸로. 그 말이 나에게는 쇼크였다. 내가 뭐 때문에 돈 때문에 머리 쥐어뜯고 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 그게 1년 반 전 이야긴데 김정상 사장을 영입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된 거다. 물론 내가 일희일비하진 않지만 당신 눈에는 보이는 거였다. 영화 망했을 때 내 표정, 잘됐을 때 내 표정. 명절 때도 그냥 감독이면 안 나가도 되는데 매번 집에 없는 거. 먹고살 만큼 벌면 됐지, 그러지 말라고 했다.
나도 NG 많이 내고 필름 10만자씩 쓰고 70회씩 찍으면 <박하사탕>만큼 작품성 있는 영화를 찍을 수 있다고 말했다는 소문이다.
그건 아닌데, 나는 <박하사탕> 같은 영화 못 찍는다. 나는 <박하사탕>을 비하하거나 안 좋은 데 끌어다 쓴 적 한번도 없다. 내가 그 영화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똑같은 제작비 주면 <다이하드> 내가 더 잘 찍을 수 있다는 말은 한 거 같다. 그 말은 요즘 감독들한테 쓸데없이 많이 찍지 말라고 야단치려고 한 소릴 거다. 나는 아직도 영화 한편찍으려고 100번 넘게 나가는 이유를 모르겠다.
강 감독이 자기 최면을 잘 건다는 소문이다. 개봉 전에 자신감이 없을 때 강 감독이 무조건 된다고 말하는 걸 보면 자기도 세뇌가 된다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최면을 거는 거다. 나중에 내가 욕을 먹더라도 최소한 초반스코어 만큼은 되게 한다, 보게 하겠다, 관심을 끌게 하겠다, 하는 일종의 내 마케팅이다. 그건 부모가 자식 대하는 거랑 같은 거다. 이거 된다. 최선을 다해라, 우리 아들 똑똑하다, 하는 게 부모가 다 바보라서 그런 게 아니란 말이다. 독려하는 거고 최고로 만들어내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인 거다. 이왕 한 거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 하는 거다. 하지만 그것도 적어도 건질 만한 뭔가는 있을 때나 하는 거지, 러시보고 포기할 거면 미리 포기한다. 그런 영화는 아예 편집실에도 안 가고 노코멘트다. 그러니까 내가 망한 영화는 소문이 별로 안 나고 지나가는 거다.
강 감독은 사람의 인상을 중시한다는 소문이다. 자신의 사업이 잘되는 이유도 내 인상이 좋잖아라고 말한다던데.
그럼. 내 일생을 통해서 인상좋은 사람들이 인상에 반하는 행동을 한 적이 한번도 없다고. 단순히 잘생기고 못생기고가 아니라 눈빛이 선하고 악해보이고 그 차이라고. 그리고 웃을 때 활짝 웃지 못하는 거. 사업할 때도 결정적이다. 감독으로서 제작자 결정할 때도 그랬고. 심지어 투자하겠다고 온 사람 중에 인상이 안 좋아서 돌려보낸 적도 있다.
영화사 봄에서 기획하던 <신라의 달밤>을 시네마서비스로 가져온 것이나 쿠앤필름에서 기획한 <공공의 적>을 연출한 것은 강감독이 억지로 뺏어왔다는 소문이다.
절대 그렇지 않다. 영화사 봄의 오정완이 처음 <신라의 달밤> 시나리오를 보여주는데 일본영화 같아, 참 깔끔하고 예쁜 시나리오더라고, 그래서 나랑하자, 해서 바로 캐스팅에 들어갔지. 박중훈, 이성재 캐스팅했는데 이게 시나리오 수정도 잘 안 되고 지지부진했다. 그러다보니 배우 둘 다 못하겠습니다 하더라고. 그러니까 오정완은 영화내용이 너무 심플해서 톱스타 안 나오면 영화 덮겠다는거야. 그래? 그렇다면 나 주라 그랬지. 그러니까 그러세요, 그 대신 강 감독님이 하셔야 합니다, 하더라. 그래서 박정우 작가 불러놓고 시나리오 수정작업에 들어갔는데 아무 생각이 안 나는 거라. 아이디어가 안 떠오른다는 말이 아니고, 내가 왜 이걸 하려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
돈 떨어져서 용돈 벌러나온 것도 아니고, 이 짓을 내가 왜 하고 있는 거야,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김상진을 불렀어. 상진이가 계속 이 시나리오 달라고 했었거든. 너 정말 하고 싶어? 하니까 그렇다는 거야. 그래서 오케이한 거고 오정완한테 이렇다고 하니, 그러면 원래 하기로 했던 감독을 데뷔시켜 달라고 해서 그 친구 지금 좋은영화에서 영화 준비하고 있다. 이거 실화 그대로다. 바깥에서는 뺏어갔다고 말할는지 모르지만 그런 거 절대 아니다. 뺏어서 상진이 주려고? 내가 그렇게 바보는 아니지. <공공의 적>도 쿠앤필름 구본한이 나에게 선물한 거다. 원안이 구본한에게서 나온 건데 쿠앤이 <하루> <순애보> 말아먹고 어려워지니까 대표가 시나리오 들고 팔러다니는 걸 내가 불러다가 야단을 쳤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바로 계약서 써주고 급한 거 막으라고 돈줬다.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그게 뺏는다고 뺏어지는가. 딴 제작자들은 바보인가.
강 감독이 이미 시네마서비스 지분을 다 팔았다는 소문이다.
이건 분명히 해야 한다. 한주라도 팔아서 내 통장에 넣었으면 로커스홀딩스 주식이 가만있겠나. 시네마서비스, 로커스홀딩스 계약 맺을 때부터 이미 못 팔게 해놓은 거다. 내가 그거 팔아서 사재를 축적했다는 건데 말이 안되는 얘기지. 시네마서비스건 로커스홀딩스건 한주라도 팔면 당장 주가가 춤을 출텐데 그게 가능하겠나. 하지만 앞으로 화나면 팔 거다(웃음). 로커스홀딩스가 내가 하는 사업에 협조 안 하면 팔 거다.
강 감독이 영화계에서 가장 부지런한 사람이라는 소문이다. 대체 하루 몇 시간이나 자는가.
잠은 푹 자는 편이다. 한 5시간 정도? 술자리는 이제 12시는 웬만해선 안 넘긴다. 일부러 약속을 아침일찍 잡는 편이다. 나는 오전에 비즈니스하는 게 좋다. 점심먹고 나른할 때 비즈니스 하고 싶겠나. 9시쯤이 제일 좋다. 남의 사무실 방문하는 경우는 그보다 일찍 가서 기다린다. 7시30분부터 가서 수위한테 문열어 달라고 한 적도 많다. 부지런하다기보다 성격이다. 오늘 할 거 내일 못 넘기고, 지금 해야 하는 건 죽어도 지금해야 한다. 성격이 급해서도 있지만 빨리 끝내고 차라리 놀자 하는 게 있다고. 일요일도 출근 안 한 날이 없다. 과거엔 그런 것이 살아남으려는 발버둥이었고 지금은 확실히 일중독이다.
마마보이라는 소문이다.
맞다. 나 마마보이다. 그래서 결혼도 늦게 했다. 엄마가 안 구해주고 반대해서 그런 거다. 이왕이면 효자라고 말하면 좋겠다. 누가 내가 영화 속에 여성혐오증이 있다고 여성을 비하하고…. 뭐 이런 소리 하는데 내가 세상에서 어머니를 제일 무서워하는데 어떻게 여자를 우습게 알겠나. 우리를 아주 자유롭게 키우셨고 논리적인 사람이라 나는 모친을 굉장히 좋아한다. 올해 일흔하나 잡수셨는데도 몰래 영화보고 와서 야, 그 영화 편집이 잘됐더라, 홍보가 그게 뭐냐, 흥행되겠더라, 이러신다고. 영화광이다. 집에 가보면 캐치원이나 OCN 틀어놓고 계신다.
잔정이 많고, 눈물도 많다는 소문이다.
남들 앞에 눈물 흘린 적은 거의 없고 가끔 너무 힘들어서 나도 모르게, 어 울고 있네, 이런 적은 있다. 잔정 많은 것은 가장 큰 약점이다. 특히 누가 돈가지고 고생하는 건 정말 그냥 못 넘어간다. 그렇게 돈 많이 날렸다. 그냥 준다고 생각하는 거지 받는다고 생각한 적 한번도 없다. 와이프가 점쟁이한테 사주를 보고 왔는데 돈은 엄청 버는데 남는 거 없으니까 지금 챙겨라 그랬다고 하더라.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다. 그건 그렇고 누가 그런 소리를 한 건가? 다들 날 엄청 강한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인터뷰 남동철 namdong@ hani.co.kr·인터뷰 정리 백은하 lucie@hani.co.kr
`감독` 강우석의 새 영화 <공공의 적>
유머와 해학, 녹슬지 않았다
90년대 한국영화가 관객을 되찾기 위해 택한 무기는 무엇보다 웃음이었다. 그 웃음의 대표선수가 강 감독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93년작 <투캅스>는 99년 <쉬리>와 <주유소 습격사건>이 나오기 전까지 <서편제>에 이어 한국영화 역대흥행 2위를 지켰다.
96년 <투캅스2>까지 절정의 코미디 감각을 보여줬던 그가 형사액션물의 구도를 가진 <공공의 적>에 불어넣은 생명력도 유머와 해학이다. 경찰서를 드나드는 볼썽사납고 험악한 사내들의 모습에서 강 감독은 웃지 않고 버틸 수 없는 아이러니한 순간을 포착한다. <미스터 맘마>나 <마누라 죽이기>에서 보여준 과장의 정도는 조금 심하다 싶지만 <공공의 적>에서 선보이는 코믹함은 품위를 잃지 않는다. 강 감독의 장기인 뛰어난 편집감각을 느낄 수 있는 코미디 장면이 적지 않다.
<공공의 적>의 주인공은 설경구가 연기하는 형사 강철중이다. 경찰의 사명감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대충대충 살아가는 무식하고 폭력적인 형사 철중은 동료 형사가 자살하는 바람에 내사를 받기도 한다. 사건은 잠복근무를 하던 중에 일어난다. 빗속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내가 자기 뺨에 칼자국을 남기고 사라지자 철중은 복수심에 불탄다. 철중은 그 사람이 자기 부모를 죽인 살인범이라는 것을 알게 되지만 증거는 없다. 부모를 죽인 살인범을 잡겠다는 철중의 의지는 처음엔 개인적 원한에 불과했지만 차츰 경찰로서의 사명감과 정의감으로 바뀌어간다.
이야기에서 드러나듯 철중의 캐릭터는 <투캅스>의 경찰들과 비슷한 맥락이다. 비리에 무감한 그들처럼 철중도 모범적인 형사는 아니다. 사건에 휘말려든 것도 임무수행과는 거리가 멀다. <투캅스>의 안성기, 박중훈처럼 그는 우연히 자기보다 훨씬 커다란 악을 만나 싸우면서 자기가 발디디고 있는 곳을 알게 된다. 살인범 대 경찰의 대립구도로 이뤄진 영화지만 유심히 보면 강 감독이 정작 관심을 두는 것은 다른 대립구도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하루가 멀다하고 잠복근무를 하며 현장을 지키는 형사들과 책상에 앉아 이래라저래라하는 인물들의 대립이 그것. <공공의 적>이 제공하는 통쾌감은 현장을 지키는 가난하고 못난 사람들이 깔끔하고 우아한 척하는 책상물림들을 물리치는 순간 절정에 이른다. 강 감독이 영화인 위에 군림하려드는 비영화인을 비판할 때 쓰는 독설이 떠오르는 대목이기도 하다.
<공공의 적>은 설경구의 연기를 보는 재미만으로도 시간가는 줄 모를 영화이다. 한시도 입에서 욕이 떨어지지 않는 인간이지만 설경구가 연기하는 철중은 시간이 지날수록 친근해진다. 살인범으로 등장하는 이성재는 <아메리칸 사이코>의 느낌이 너무 강한 게 흠이지만 마지막 대결까지 관객을 긴장시킨다. 강 감독은 조연 캐릭터를 잘 쓰는 스타일이다. <공공의 적>에 등장하는 형사들과 깡패들은 적재적소에서 웃음을 유발한다. 강 감독이 이 영화로 작가 대접을 받진 못하겠지만 그의 코미디 감각이 녹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기는 충분해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