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통신 25> 명예 제주도민이 되어
명예 제주도민이 되었다. 어제 제주대학교 휴먼 르네상스 아카데미 9기 수료식과 10기 입학식 행사에서 원희룡 제주지사에게서 증서와 기념품을 받았다. 2016년 9월 25일자 증서에는 ‘평소 제주지역 발전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물심양면으로 적극 지원한’ 것이 공로라고 적혀 있다. 아마도 지난 10년 동안 제주대 학생들에게 고전읽기 프로그램을 맡아 지도해 온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나로서는 특별한 의식을 갖고 한 일이 아니다. 그저 학생들에게 고전을 읽히고, 토론을 통하여 더 잘 소화해 가도록 지도하며 오히려 내가 즐겼을 뿐이다. 수업을 마치고는 번번이 한라산을 오르는 재미를 덤으로 얻었다. 내가 고마워해야 할 일인데 영광스런 자격증을 받고 보니 쑥스럽기만 하다.
명예 자격증이란 자타가 인정할 자격과 공로가 있을 때 주어지는 것이리라. 명예 졸업장을 예로 들면, 졸업은 하지 않았지만 그 학교의 명예를 드높였거나 발전에 기여한 공로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일 것이다. 제주도를 위하여 그만한 일을 한 바 없는데 과분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 무수한 축하인사에 응답하기가 거북하였다. 많은 수상자들이 말하듯이, ‘제주도를 위하여 더 좋은 일을 해 달라는 주문’으로 받아들일 생각이다.
이로써 나는 한반도 각 지방과 연을 갖은 사람이 되었다. 선고께서 평안남도 출신이니 북한지방을 대표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군수물자 공급에 혈안이 된 일제의 산금령으로 금광 종사자였던 아버지가 태평양전쟁 말기 아연광산으로 일자리를 옮겨 일하던 충북 땅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경북 출신이고, 강원도에서 유·소년기를 보냈으며, 고등학교 이후 서울에 와서 55년 넘게 살았다. 아내는 호남 출신이다. 경기도 여러 신도시에 흩어져 사는 형제자매가 많고, 나도 그곳으로 옮겨갈 날이 멀지 않으니 연이 먼 땅은 아니다. 마지막 남은 제주도와 이번에 연을 맺게 되었으니, 이제 비로소 평균한국인, 대표성을 가진 한국인이 된 기분이다.
서울로 돌아오는 기내에서 손곱아보았더니 제주와 인연을 맺은 지 50년 넘는 세월이 흘렀다. 대학 1학년 겨울방학 때 목포에서 저녁에 떠나는 여객선을 타고 아침에 제주항에 도착하여 때 아닌 풍랑에 갇혀 고생한 기억이 생생하다. 전국일주를 목적으로 나선 길이었으니 제주도도 가보았다는 인증사진 몇 장 찍고 하룻밤 묵어 부산으로 건너갈 참이었다. 그런데 겨울 폭풍우가 일어 며칠을 발이 묶여 있었다. 가난한 대학생 주머니 사정이야 뻔하지 않은가.
지붕을 새끼줄로 단단히 동여맨 초가집들이 게딱지처럼 옹기종기 바닷가에 엎드려 있는 제주시의 모습은 다른 지방과 비교해 너무 초라해 보였다. 항구 쪽에서 쳐다보아 그랬는지, 초가집이 유난히 많아 보였다.
관덕정 큰 거리에도 그런 집들이 많았다. 지붕이 너무 낮아 드나들 때마다 고개를 숙여야 하였다. 멀지 않은 시골에 가려 하여도 몇 시간씩 기다려 버스를 탔는데, 중심가를 지나면 먼지가 풀풀 나고 덜커덩거리는 시골길이었다.
일구더기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1970년대에는 제주도 여행을 꿈도 꾸어보지 못 하였다. 여가문화의 여명이 밝아온 1980년대부터는 휴가를 제주도에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편집국 간부를 거쳐 논설위원이 된 90년대 이후에는 각종 세미나 연수회 같은 언론계 행사가 제주도에서 열린 덕분에 자주 찾게 되었다.
그 때마다 한라산 오르기에 맛을 붙여 이제는 한라산 없는 제주여행은 상상도 할 수 없게 되었다. 퇴직 후 제주대 아카데미와 연을 맺게 된 뒤로는 매달 한 번 꼴로 찾게 되어 제주도와 급속히 친밀해졌고, 그 덕분에 한리산 품에 안기기 120회를 돌파하게 되었다.
수료식 후 학생들과 함께 오른 한라산 북록의 오름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신제주 시가지는 서울 강남과 다를 바 없었다. 임립(林立)한 아파트 숲과 매연으로 인한 연무는 제주도 옛 모습과 너무 달랐다. 아파트 촌 너머에 있는 제주공항 상공에는 뜨고 내리는 비행기가 뜸할 새가 없었다.
대다수 지방 인구가 줄어드는데 추세인데 유일하게 인구가 느는 곳이 제주도다. 얼마 전 까지 통칭 50만으로 통하던 제주특별자치도 인구는 이달 들어 65만을 돌파했다. 관광객과 이주민 러시가 몰고 온부동산 광풍으로 제주도 인심과 정서가 거칠어진 것은 누구나 느끼게 되었다.
특히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내걸었던 무비자 입국 허용정책이 초래한 폐해는 임계점에 이르렀다. 주민들은 이제 외국인 범죄를 현실의 위협으로 느끼게 되었다. 아프리카와 중동지역 일부국가를 제외한 세계 대다수 국가에 무비자 입국을 허용한 뒤로 외국인 범죄가 가파르게 늘어난 탓이다.
2011년 120여건에 불과하던 외국인 범죄는 지난해 400건에 육박하였다. 그 가운데는 5건의 살인사건도 포함되었는데, 최근에는 성당살인사건까지 일어나 중국인 공포증까지 생겨났다. 지난 9월 신제주의 한 성당에서 홀로 기도를 하던 주민이 중국인 남성에게 피살당한 이 사건은 무비자입국 허용정책을 뒤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난개발로 인한 자연경관 파괴도 큰 사회문제가 되었다. 아름다운 한라산 능선과 해안선을 가로막는 대형 건축물 난립으로 제주시는 이제 대도시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 그로 인한 교통난은 불가피하게 차고지증명제를 불러왔고, 매연과 도심지 교통체증은 새로운 골치 거리가 되었다.
이제 제주도는 한 달에 한 번씩 와서 일하고 즐기고 가는 타관이 아니다. 이런 문제들이 나의 일로 다가와 나의 관심사가 되었다. 제주도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 자연유산을 셋이나 가진 보물섬이다. 그래서 이번 명예도민증을 인류 자연유산 보존과 개발의 조화에 일조하라는 임명장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 2016,9,26)

첫댓글 축카!!! 제주에 집 한 칸 마련하시앞.쉼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