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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만원 현상 공모>
2025년 제10회 신인문학상
제10회 신인문학상 심사과정
•원고마감 : 2025년 3월 31일
•응모편수
- 시부문 : 212명 응모(작품 편수 1,105편)
- 에세이부문 : 81명 응모(작품 편수 240편)
- 평론부문 : 2명 응모(작품 편수 2편)
•예심일자 : 2025년 4월 21 (월) PM 1시 30분
•예심 심사위원
- 시부문 : 이혜미, 김명아, 이은숙
- 에세이부문 : 이현호, 이은숙
- 평론부문 : 황정산, 이현호
〈예심 통과작〉
- 시부문 : 유재준, 「빌라에서, 시간의 바람 속에」 외 19명
- 에세이부문 : 김현근, 「흉터가 가르쳐 준 것들」 외 17명
- 평론부문 : 예심통과작 없음.
•본심일자 : 2025년 4월 28일 (월) AM 11시
•본심 심사위원
- 시부문 : 이문재, 유성호
- 에세이부문 : 황정산, 장병환
〈본심결과 수상자〉
- 시부문
대 상(1명)_ 김호애, 「영태와 먹태」 외 2편
우수작(2명)_ 최정윤, 「죽이는 생각」 외 1편
김경숙, 「페트리코」 외 1편
- 에세이부문
대 상(1명)_ 김윤미, 「명희의 닭」
우수작(2명)_ 박지영, 「껍데기를 먹는 가재처럼」
이현희, 「배웅」
<시부문 예심평>
가능성의 문을 여는 손길, 그 불완전함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올해 시와산문 신인문학상은 더욱 많은 응모작과 높은 수준, 응모자들의 다양한 나이대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도 풍성한 작품들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다채로운 음색과 문장의 결을 지닌 원고들이 도착했고, 그 안에서 시의 미래를 가늠해 볼 단서를 찾고자 하는 긴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1,100편이 넘는 응모작을 하나하나 읽어내는 일은 놀랍고, 고단하고, 때로는 깊은 감동을 주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누군가는 익숙한 시의 리듬을 조심스럽게 따라가려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파격과 실험의 모서리에서 문장의 균형을 재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눈에 띈 점은 많은 응모자가 ‘나’를 벗어나기보다는 ‘나’를 파고들어 가는 방식으로 시를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내면의 흔들림을 언어로 정직하게 드러내려는 시도는 시의 출발점으로서 분명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 고백의 테두리 안에만 머문다면, 시는 결국 고립된 언어로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심사위원들은 두 가지 기준을 중심으로 수상작을 선별하고자 했습니다. 첫째는 언어 감각의 신선함, 둘째는 이미지의 힘과 그 이미지가 시적 구조 안에서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가의 문제였습니다. 물론 완성도 면에서 아쉬움을 남긴 작품도 있었고, 지나치게 난해하거나 모호한 표현으로 인해 시적 긴장감이 흐려진 경우도 더러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응모작들은 각기 다른 개성으로 시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었으며, 그 안에서 몇몇 작품은 분명 한 걸음 앞서 나가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시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더 많은 경로를 통해 시를 접할 수 있는 요즘, 자신만의 말하기 방식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는 모든 응모자 분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응모작들을 읽었습니다.
강혜원 님의 「윤십일월에, 작약」 외 4편은 아름다운 문체와 서정성이 담보되는 깊숙한 사유를 보여주는 수일한 시편들이었습니다. “사랑이 자취 없는 둘레를 짓는 일이라면”이라는 시의 시작은 보기 드문 첫 구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와플 기계를 통해 ‘이를 악물어야/뜨거워지는’ 마음의 방식을 짚어내신 것도 놀라웠습니다. 낡은 표현을 걷어내고 신선한 이미지 운용에 집중하신다면 더욱 잊기 어려운 시를 보여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지은 님의 「찻잎들의 왈츠」 외 4편은 언어의 운용과 문장력이 높은 수준에 이르러 있었고, 특히 비현실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미감을 시에서 구현하신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찻잎들이 왈츠를 춘다는 상상에서 시작된 시의 세계관이 후반부에 이르러 적절히 마무리되는 전개가 능숙하였지만, 그 능숙함이 오히려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문장의 흐름을 믿으시고 조금 더 용기 있는 모험을 해 보신다면 지은 님의 시를 읽는 독자들을 더 즐거운 놀라움으로 이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윤신 님의 「분신 사바」 외 7편은 다양한 모티프와 거침없는 표현들로 지루할 틈 없이 읽혔습니다. 응모된 편수가 많았음에도 전반적인 수준이 고른 편이었고, 자신의 방법론을 지나치게 반복하지 않고 다양한 방식을 시도하신다는 점에서 더 큰 신뢰가 생겼습니다. 표제작으로 보내주신 「분신 사바」는 미신이 가진 위태로움과 불균형함을 문장의 운용으로써 나타내셨다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O와 X를 오가며/나 여기 있어”와 같은 극적 구성은 시 속에서 어떻게 영화적 순간을 만들어 낼지에 대한 고심으로 읽혔습니다. 오래 쓰실 것을 믿고, 더욱 좋은 작품으로 다시 마주치게 될 것을 예감합니다.
그 외에도 김현지, 김성준, 금동현, 송유성, 백종현, 우금지, 김호애, 이효은, 박혜정, 손예니, 최정윤, 김경숙, 김영준, 이정수, 김수빈, 유재준, 김미연 님의 작품이 좋은 평가를 얻으며 본심에 올랐습니다. 신인상은 하나의 도착점이 아니라 출발점입니다. 수상자에게는 당선의 기쁨보다 이후에 마주하게 될 무수한 글쓰기가 오히려 더 큰 과제로 남을 것입니다. 언어는 언제나 불완전하고, 시는 그 불완전함을 껴안는 예술이기 때문입니다. 독자의 입장에서, 앞으로 응모자분들이 시라는 숲에서 어떤 방식으로 길을 낼지 조심스럽게 기대하게 됩니다.
신인상에 응모해 주신 모든 분께 진심 어린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시를 쓴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더듬는 동시에 타인의 내면을 상상하는 일일 것입니다. 그 작업에 기꺼이 시간을 내어 언어를 밀어붙이며, 한 편의 시를 탄생시키기 위해 고투한 모든 응모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수상과 비수상의 경계는 때로는 아주 우연한 균열 하나로 결정되기도 합니다. 수상자에게 한없는 축하를 보내며, 아쉽게도 다음 기회를 기약하시게 된 응모자분들과 더 새롭고 단단한 언어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심 심사위원: 이혜미 김명아 이은숙
<에세이 부문 예심평>
삶을 통과하는 글을 위하여
에세이는 특히 삶을 사유하는 글이다. 자기 경험을 곱씹어 생각하고, 이를 우리 삶의 이야기로 확장하면서 감동과 성찰을 끌어낸다. 이때 좋은 에세이는 과잉된 감정이나 특별한 사건에 기대지 않는다. 일상의 한순간, 그냥 지나치기 쉬운 장면에서도 깊이 있는 사유를 이룬다. 섬세한 시선으로 사소한 경험에서도 삶의 보편성을 감각하며, 그것을 자기만의 언어로 풀어낸다. 무엇보다 내가 살아낸 세계를 용기 있게 드러낸다. 진정성을 바탕으로 끝내 삶을 껴안으려는 태도를 잊지 않는다.
이번 예심에는 여든한 분의 작품이 응모되었다. 다양한 세대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나는 일은 언제나 뜻깊다. 다만 다양한 세대가 곧 다양한 주제와 목소리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대다수가 자기 삶을 직시하기보다는 익숙한 감상과 관습적인 구성을 좇았다. 과감한 질문을 던지거나 치열하게 삶을 탐색하는 작품은 드물었다. 그중에는 어머니나 아버지를 호출하는 가족 이야기가 많았는데, 으레 우리가 부모님에게 품기 마련인 감정을 토로하는 데 그쳤다. 일부는 특이한 소재와 문제의식을 다루었으나, 체화하지 못한 내용에 스스로 함몰하는 느낌이었다.
에세이는 단순히 사건을 진술하는 글이 아니다. 속생각과 감정을 되는대로 고백하는 글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통과’다. 자기 연민에 머물지 않고, 그 너머를 말하려는 몸부림이다. 그래서 에세이를 쓰는 일은 괴롭다. 한 번 살아낸 시간을 언어로 다시 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미 지나간 가시밭길을 제 발로 또다시 걷는 일과 같다. 나아가 그 과정에서 타인에게도 새로운 삶의 풍경을 열어주어야 한다. 그런데 응모작 상당수는 경험을 곧이곧대로 풀어내거나, 설득력이 부족한 문장으로 자기 감상을 피력하는 데 머물렀다. 기교가 미숙해서라기보다는 에세이라는 장르가 요구하는 근본적인 긴장감을 아직 체득하지 못한 결과였다. 우리가 찾은 것은 자기 삶의 한 장면을 진솔하게 드러내며, 질문하고, 생각하고, 거칠고 서툴더라도 이를 ‘자기만의 언어’로 소화하려는 작품이었다.
본심에 진출한 열여덟 분의 작품은 이러한 점에서 몇 가지 중요한 미덕과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우선 자기 삶을 관습적인 틀에 가두지 않고, 저마다의 언어로 저마다의 세계를 말하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흔한 풍경에도 고유한 빛을 비추려는 시선과 끝까지 자기 의심을 놓지 않는 사유의 힘이 느껴졌다. 완성도가 다소 미흡하더라도, 끝까지 자기 목소리를 밀어붙이는 태도는 깊은 여운을 남겼다. 에세이는 결국 자기 삶을 어떻게 다시 발화하는가의 문제다. 본심 진출작에서는 내 삶의 한 장면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 관해 묻고, 그것을 다시 숙고하려는 태도가 엿보였다. 이는 앞으로 더욱 단단한 글을 쓰는데 밑거름이 될 것이다.
끝으로, 모든 응모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글을 쓰는 일은 언제나 고독하다.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 손을 뻗어야 하니까. 속을 헤집는 고통이 뒤따르는 것도 당연하다. 그 순간을 견뎌낸 모든 분께 진심으로 응원과 격려를 보낸다. 어떤 흔적은 금세 사라지지만, 어떤 흔적은 오래 남는다. 그리고 스스로 정직한 글은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 응모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손길이 만들고 또 만들어 갈 그 흔적에서 끝내 무엇인가 열리고 피어날 것으로 믿는다. 앞으로도 글쓰기와 삶을 끈질기게 사랑하며, 멈추지 말고 써 나가기를 바란다.
예심 심사위원: 이현호 이은숙
<시부문 본심평>
개성적 필치와 언어적 구체성의 미학
이번 『시와 산문』 신인상 공모 시 부문에는 참으로 여러분들의 응모작들이 들어왔다. 세대와 지역을 넘어 많은 분이 보여준 이러한 크나큰 관심은, 이미 역량 있는 신인들을 배출해 온 『시와 산문』의 매체적 위상을 다시 한번 알려주는 유의미한 지표라고 생각된다. 투고해 주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응모작을 읽으면서 심사위원들은 주제 의식과 형상화 방법에서 남다른 성취를 보인 분들에게 주목하였고, 그 가운데 완결성과 참신성을 보이는 작품을 골라 수상작으로 결정하였다. 대상으로는 김호애 씨의 「영태와 먹태」 외, 우수상으로는 김경숙 씨의 「페트리코」 외, 최정윤 씨의 「죽이는 생각」 외를 선정하였다.
김호애 씨의 작품은 응모작 전체가 균질적인 격과 품을 갖추고 있었다. 수상작 「영태와 먹태」는 경험적 선명성을 가진 시편으로써, 감각의 구체와 진정성 있는 자기 개진의 열도를 드러내 보여준 명편이었다. 시인은 대상이 남긴 잔상殘像을 상상하면서 그것을 비교적 긴 호흡 속에 구성하는 만만찮은 비유적 능력을 보여주었다. 이 시편은 먹태를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시는 두 사람 사이에서, 기다려도 오지 않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향하고 있다. 그때 활자로 블록을 쌓고 납작한 단어로 자맥질하는 화자 자신의 정서적 순간을 실감 나게 잡아냈다. 다른 작품들도 누구와도 닮지 않은 개성을 견지하고 있었다. 앞으로 훨씬 더 좋은 작품을 써갈 것이라고 예감해 본다.
김경숙 씨의 작품은 잔잔하고 따뜻한 서정이 보배롭기만 하다. 실험성의 과잉이 난무하는 시단 현실로 보면 오히려 신선한 서정의 원류를 새삼 만나보는 듯하다. 수상작 「페트리코」는 비가 내리기 시작할 때 마른 흙이 젖으면서 퍼져가는 냄새를 소재 삼아 아버지와 사물의 내면, 그리고 몸속에서 살아나는 감각을 선명하게 구축해 놓은 가편이었다. 앞으로 우리 시의 저류底流에 흐르는 긍정의 온기를 우리 시단에 전해주리라 믿는다. 극적 상상력의 생기 있는 출렁임을 보여준 작품이 많았음을 덧붙여 적는다.
최정윤 시의 작품은 신인다운 패기가 가득한 점진적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작품마다 평면성보다는 입체적인 개성적 호흡이 느껴졌다. 수상작 「죽이는 생각」은 삶과 죽음, 시와 사람, 아름다움과 상처를 통해 시적 사유에 대하여 치열하게 궁구한 결실이다. 그 점에서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화소話素를 가진 풍부한 언어를 낱낱 작품으로 선명하게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민활한 언어 감각이 큰 주목을 받았다는 점을 새삼 강조하고자 한다.
세 분 모두 지나온 시간의 진정성을 보여준 사례라 생각되지만, 시를 써가는 기율과 방법에서 어쩌면 다른 지점에 서 있는 경우라고 말해도 될 듯하다. 모처럼 『시와산문』이 택한 이러한 선택이 우리 시단의 폭을 넓히는데 크게 기여하기를 바란다. 어쨌든 세 분은 저마다 고유한 필력을 자산으로 삼으면서 오랜 습작 시간을 깊이 품고 있다는 사실을 선명하게 보여주었고, 스스로의 경험적 구체성에 정성을 들인 점도 긍정적으로 다가왔다. 수상의 기쁨을 함께하지 못한 응모자 여러분의 정진을 기원하면서, 수상자들이 개성적 필치와 언어적 구체성의 미학을 바탕으로 하여 신인다운 개성과 지속 가능성을 한 차원 높이 구현해 가기를 마음 깊이 기대해 마지않는다.
본심 심사위원 / 이문재(시인, 전 경희대학교 교수)
유성호(문학평론가, 한양대학교 교수)
<신인문학상 에세이부문 본심평>
사유의 깊이, 특별한 경험, 개성적 문체까지
어우러진 문장의 향연
수필은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문학 장르이다. 특별한 훈련을 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생각과 주변의 일들을 자유롭고 진솔하게 쓰면 되는 그런 글쓰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필은 좋은 수필을 쓰기는 어렵다. 글로 담아야 할 주제에 있어서나 글의 형식에 있어서나 특별히 정해진 것이 없기에, 이 내용이나 표현 모든 부분에서 자신의 개성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디선가 읽은 것과 같은 상투적인 글이 되어 버린다.
좋은 수필의 조건은 다음 세 가지이다. 첫째는 사유의 깊이다. 글쓴이의 깊고 참신한 생각이 읽는 사람들의 인식을 새롭게 깨우칠 때 그 수필은 좋은 수필이라 할 수 있다. 수필의 원래 용어인 에세이essay는 실험적인 새로운 생각의 글쓰기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둘째는 특별한 경험의 밀도 있는 서술이다. 글쓴이만이 겪을 수 있는 의미 있는 경험을 잘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독자들의 흥미를 끌고 독자들에게 간접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셋째는 개성적인 문체이다. 새로운 언어 표현과 흥미 있는 구성 방식 등 작가 나름의 개성적 문체를 획득할 때 수필의 예술적 완성도는 더욱 올라간다. 이들 중 한 가지 이상을 가져야 감상적인 신변잡기류의 상투적인 글쓰기에서 벗어나 좋은 수필이 된다.
이번 본심 심사에도 위의 기준을 그대로 적용했다. 본심에 올라온 18편의 작품은 적어도 위의 기준들 중 한 가지 이상을 가진 작품들이어서 당선작을 정하기 쉽지 않았다. 그중 박지영 「껍데기를 먹는 가재처럼」, 이현희 「배웅」, 김윤미 「명희와 닭」이 심사위원들의 관심을 끌었다. 모두 다 당선작으로 선정해도 무리가 없는 훌륭한 작품이었다.
박지영의 작품은 풍부한 묘사력과 탄탄한 글쓰기 실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너무 서두에서 빨리 주제가 드러나 읽는 묘미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점에서 대상이 되기에는 다소 미흡하다고 생각해 이 작품을 우수작으로 선정했다. 이현희의 작품은 인생을 보는 넉넉한 안목과 따뜻한 시선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주제가 다소 평이해서 대상으로 선정되지 못하고 우수작에 머물렀다.
영예의 대상작으로 김윤미 「명희와 닭」을 뽑기로 합의했다. 김윤미의 작품은 사물을 보는 섬세한 시각과 위트가 큰 장점이다. 작가는 자신만의 경쾌한 문체로 세상의 이면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의미 있는 삶의 지혜로 승화시키고 있다. 그런 점에서 훌륭한 수필의 전범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대상으로 선정된 김윤미 그리고 우수상으로 선정된 박지영, 이현희 세 분의 수상을 축하드린다. 앞으로 훌륭한 수필가로서 활발한 활동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본심 심사위원 / 황정산(시인, 문학평론가)
장병환(시인, 본지 발행인)
영태와 먹태
김호애
영태가 그랬다
좋아하는 건 집에서 하고
밖에선 잘하는 걸 하라고
이모 여기 진로 한 병이요
제로 슈거로 주세요
그래서 영태는 회사에 다니고 나는
반숙 후라이 노른자를 가른다
더딘 속도로 흐르는
반쯤 익은 시간
나는 집에서도 밖에서도
활자로 블록을 쌓고
물수제비도 뜨고 통 튀어 오르는
납작한 단어를 따라 자맥질했는데
발치에서 맴도는 나비 뒤를
무턱대고 쫓다가 절벽 아래로
떨어질 뻔한 적도 있었는데
이거 고추장 아니고 맛다시네
쇠젓가락 끝을 빨면서 영태는 내게
맛다시 알아? 모르지?
군대도 안 갔으니 쯧, 하고
히죽 웃는 혓바닥이 빨개
영태의 새빨간 미래가 보이는
갈가리 찢어진 먹태 앞에서
우리 짠 하자, 짠
투명한 진로를 삼키고 나서야
고백할 수 있게 된다
영태야 나는
좋아하는 일도 잘하는 일도
없어 실은 좋아하는 일도 잘하는 일도
누워있는 것뿐 바다가 있는 쪽을 향해
그뿐
잔 두 개 부딪힐 때마다 맑은소리
병이 비었는데 오지 않는 이모
영태는 먹태였다가
불러도 기다려도 오지 않는
영태는 노가리였다가
설탕을 뺐다는데 여전히 달기만 한
투명해도 너무 투명해
보이지 않는 진로를 기다리면서
입맛 다시는
영태야
영태야
멀리건
캐디를 따라간 곳에서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아버지는 푸른 그린 등에 이고 남이 흘리고 간 골프공을 줍고 있었습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불룩한 주머니는 왈그락달그락 아래로 처지고 있었지요 궁금했습니다 아버지는 죽었는데 여기엔 어떻게……
생각했을 뿐인데 대답하는 아버지
볼, 볼을 보러 왔지. 그린, 그린을 보러 왔지. 드넓은 잔디 위를 가로질러 사라지는 흰 공 하나 보고 있자면 나도 마치 공이 된 기분이었거든. 포물선 그리며 날아가다 이윽고 들어갈 수 있을 줄 알았거든, 홀로.
하지만 아버지는 이미 오래전에……
내 입술 위에 곧게 편 검지 살포시 올리는 아버지
쉿, 내 말 아직 안 끝났다. 너만 알고 있어라. 너도 내가 죽은 줄 알았지? 그렇지? 그런데 아니더라, 라운드는 끝나지 않았고 난 여전히 날아가는 중이더라. 운이 나빠 해저드에 빠졌을 뿐.
그래서 말인데…… 나를 꺼내 주지 않을래? 내가 네게 했듯 나를 벗어나게 해다오.
이곳에서 게임이 끝나도록
멀리멀리 날려다오.
가만히 몸을 낮추는 아버지
후방에 마크하고 등에 번지는 그림자 위로
그립 가볍게 쥐어 휘두르면
피니시
저 멀리 점이 되는 아버지와
나이스 샷입니다, 입만 남아 웃는 캐디
꿈속에선 어떠한 것도 따라가면 안 된다는데
아버지 뒤를 따르는
내가 있는 그린
햄스터가 햄스터를
햄스터가 햄스터를 낳았다
암컷 햄스터 한 마리가
햄스터 여러 마리를
한꺼번에
태어난 햄스터 가족
햄스터 가족은 사이가
좋고
햄스터 가족은 씨앗을
나눠 먹고
햄스터 가족은 하나의
쳇바퀴를 굴리다 서로의 등을 밟지
뒤엉켜 전해지는 심장박동
여러 톨의 비명은
볼주머니에 꼭꼭
숨겨 놓았다가
갉아 먹힌 밤 모두 꺼내 서로에게 달려들 때
햄스터가 햄스터를 입안으로
햄스터가 햄스터를 밀어 넣는다
햄스터가 햄스터를 그리고
투명한 집안을 들여다보고 앉아
줄었다가도 금세 늘어나는 머릿수를 세는 우리가 있고
톱밥 아래 숨은 일곱 번째 햄스터 사라지면
새로 태어나는 여덟 번째 햄스터
톱밥 헤집는 손을 깨무는 입
죽었나 살았나 부드러운 등을 눌러보는 일
우리를 따뜻하게 삼켜줄 어른은 언제 오실까?
궁금해하면서 온종일 앉아 있던 햄스터 남매
여러 빛깔의 위안
“제가 쓴 글과 그 글이 불러온 이 결과를 일단 한번 믿어보자고 다짐부터 했습니다. 섣불리 무언가를 다짐하는 건 위험할 수 있지만, 지금만큼은 섣부르더라도 나를 믿어봐야겠습니다.”라고 시작하는 수상소감을 남긴 적 있습니다.
수상소감은 최선을 다해서 짙어지겠다는 선언으로 끝맺고 있는데, 그 후로 저는 몇 해에 걸쳐 흐릿해져만 갔습니다. 소설을 쓰는 일보다 다른 일에 더 몰두했으면서, 글을 쓰지 못한다고 자책하던 날들. 자꾸 흐려지고 위축되던 날들.
긴 호흡의 글을 읽을 여유조차 없다는 핑계로, 짧은 글을 찾다가 다다른 곳이 ‘시’였다는 건 장난 같습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의문투성이 시집‘이라도’ 읽어야 안심되었다는 것도 어딘가 이상합니다.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합니다. 시는 제게 여러 빛깔의 위안이 되었습니다. 마음에 드는 시 한 편을 발견하면 하루가 즐거웠고, 이 즐거움은 시를 쓰는 즐거움으로 금세 자라났으니까요. 이 즐거움을 더 많은 이들이 알게 되면 좋겠습니다. 이 즐거움을 더 많은 이들이 알 수 있도록 정진하겠습니다.
저의 태평함을 묵묵히 지켜봐 주는 가족과 친구들, 시를 공부하며 만난 정보영과 그로 인해 늘어난 새로운 가족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제 편이 더욱 많아진 만큼 위축되지 않고 나아가겠습니다.
간절했던 제게 기회를 주신 『시와산문』 그리고 제 시를 눈여겨 봐주신 심사위원님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가 더 많은 것들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겁니다. 지켜봐 주세요.
제가 쓴 시와 이 시편들이 불러온 결과를 믿겠습니다. 이건 섣부른 믿음이 아닙니다. 다만, 계속 짙어지겠다는 과거의 다짐은 삼가겠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계속 짙어질 수 있겠습니까.
마음 놓고 일상을 열심히 살며, 최선을 다해 시를 (많이많이) 쓰겠습니다.
죽이는 생각
최정윤
사람들 머릿속에는 죽이는
생각뿐이다
애인을 죽이고 시간을
죽이고 기를 죽이고 숨을 죽이고
죽이고 죽이다가 언젠가 죽고 말,
사람인 나도 죽이는
생각 중이다
시가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시가 너무 아름다워서
사람이 다른 것도 아니고 사람이
죽을 수 있을까
그렇게 죽는다면
과로사보다는 우아하고 돌연사보다는
유쾌할는지
아름다운 언어로 인한 죽음,
이름하여 ‘미어사’가 호상 중의 호상이 되어
모두들 앞다투어 시인에게 달려갈지
아니 그 이전에
나를 얼마나 죽이고 죽여야
예뻐 죽을 만큼의 말이
튀어나올지
이러다 죽겠지
생각하면서
나는 무턱대고 아름다움의 급소를
겨누고 있다
내 손끝은 뾰족하지도 않은데
서울 귀신
귀신을 본 적 있나요?
버려진 폐가 오지마을 비밀스러운 사찰에서
지나가는 나그네 놀래키던 귀신은 다 옛이야기라네요
요즘 귀신이 가장 많은 장소는 서울
원룸 고시텔 번화가 뒷골목 아파트 공사판
천국행 티켓 잡으러 귀신들도 서울로 모였을까요
아무도 안 찾아오는 귀곡산장 헐값에라도 팔아치우고
불꽃놀이 팡팡 터질 때마다
열렸다 닫히는 천국의 문은 역시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거죠
쪼그려 앉아 혼자 밥 먹는 사람 몰래 겸상하며
만원 지하철 사람들 발에 돌처럼 채이며
서울이라는 연옥 중의 연옥을 떠돌고 있는 귀신들
아직 본 적 없어요
정말 그렇게 생겼을까요 영화에서처럼
귀까지 찢어진 입 사이로 줄줄 새는 피
구천같이 깊고 어두운 눈으로
비루한 생조차 탐하는
혹시 나와 닮은 눈이면 어떡하죠
억울해 죽겠으면서 누구도 해하지 못하는 순한 눈동자라면,
무서워 뒷걸음치지 말고
똑바로 눈동자 맞추고
대화를 시도하는 거예요
어차피 내 역할은 비극적인 결말이 점지된
공포영화의 무모한 주인공이니까
여보세요 서울 귀신님
그까짓 천국 같은 거
바라지 말고
봐요 내가 매일 손바닥 만다라에
한 획씩 그리는 우리의 극락을
절반도 안 왔는데
벌써 천국보다 예쁘잖아
모든 사람을 위한, 그러나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시
스물에서 스물하나로 넘어가는 겨울이었습니다. 치기와 열정 사이에 갇힌 젊음이 병이 되어 오한으로 번지던 그때, 저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있었습니다. 오 년이 흐른 지금 차라투스트라가 어떤 중대하고 멋들어진 말씀들을 했었는지는 정작 기억에서 사라지고 없지만, 그 책의 첫 장에 적힌 문장만큼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위한, 그러나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
꼭 그런 시를 쓸 수 있다면, 나아가 그런 삶을 살 수 있다면 제 존재에 남는 아쉬움이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스무 살 이후 줄곧 인터넷 공간에서 시인으로서 저를 대표하는 슬로건이 “poem for every nobody”였던 것은 간곡한 염원을 담은 일종의 주문이었던 셈입니다.
그렇게 저는 변호사도, 회계사도 아닌 시‘인’이 되었습니다. 이제부턴 사람이 되는 것이 저의 공식적인 업業입니다. 사람, 그중에서도 시를 쓰는 사람이라는 이 과분하고도 두려운 카르마 앞에 서서 최승자와 니체를 만났던 겨울을 다시 꺼내 보는 것은, 어떤 시인으로 살아보려 했는지 되새기기 위함입니다.
“에브리바디”와 ‘“노바디”의 역설적인 만남처럼 저는 솔직하지 못해 솔직하고, 자유롭지 못해 자유롭고 싶습니다. “아무의 제자도 아니며, 누구의 친구도 아닌” 사람을 자처한 어느 시인처럼 제 빈틈에 드나드는 바람이 풍경 소리 되어 세상을 메우기를 꿈꿉니다. 그리하여 이름 없는 존재들이 엄연한 몸을 얻어 한바탕 난장의 춤을 추기를, 감히 제 시가 그들의 집이 되어주기를 소망해 봅니다.
이제 스물다섯의 여름입니다. 젊음에선 완치되지 못해 여전히 한기에 떨면서도 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이런 제가 그럭저럭 세상에 붙어 살 수 있도록 보살펴주는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제 마음의 가장 따뜻한 부위를 건네고 싶습니다.
페트리코*
김경숙
비가 오기 직전에는 개미가 보이고
개가 짖고 곤충들이 부산스럽다
아버지의 감각이 벌렁거린다
먼 곳은 한번, 가까운 곳은 여러 번 본다
잿빛과 물빛이 뒤엉켜
하늘이 거꾸로 뒤집어진다
논에서 김을 매던 아버지 발걸음이 빨라진다
직전의 직전
사물의 내면이 미세하게 진동한다
먼지는 흩어지며
한때 살았던 것들의 분말이 된다
마루에 누운 나는 기압보다 낮은 꿈을 꾼다
허공이 물 위에 떠 있는 듯
개 짖는 소리가 물속에서 울리는 종소리 같고
곤충들은 그 소리를 접고 귀가를 서두른다
마침내 하늘이 기울고
빗방울이 땅을 침식한다
묻혀 있던 이야기들도 풀려나 식물성이 되어 피어오를 것 같다
먼지투성이 땅이 숨을 쉬고 흙냄새와 뒤섞인다
개 짖는 소리가 커진다
흙냄새로 가득 찬
온갖 것들이 꿈틀거린다
몸속에도 살아있는 감각이 되살아난다
불린 쌀처럼 말랑한 기척들이 살 속에 퍼진다
재빨리 막걸리와 김치를 내온다
마루에 걸터앉은 아버지가 웃는다
*비가 오기 시작할 때 마른 흙이 젖으면서 공기 중에 퍼지는 냄새
선을 긋는 일
당신이 말했다, 선을 잘 그어야 한다고
선은 눈에 보이지 않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침묵과 말 사이, 숨결과 한숨 사이
그 금을 선이라 부를 수 있다면
선을 넘는 것은 언제나 늦은 통보였다
말이 되기 전
감정은 이미 경계를 침범한다
어제의 웃음이 오늘의 울타리가 되고
한순간의 언어가 한 생의 경계가 된다
선은 지문처럼 흔적 없이 반복된다
지하철 안, 밀착된 몸들 사이
눈을 감은 채 이따금 몸이 비명을 낸다
선을 따라 움직이는 우리는
선을 벗어나기 위해 선을 따른다
절취선은 단절을 연습하는 구조
하나는 둘로 찢어지고
서로를 향해 손을 뻗지만
찢김은 한 번의 행위가 아닌
오래 지속되는 내부의 진동이다
당신은 떠난 후 말했다
보이는 선은 견딜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선이 더 숨 막힌다고
선을 그은 건 나였을까
선이 나를 나눴던 걸까
절취선이 지나간 자리엔
늘 어떤 이름도 붙지 못한 감정이 남는다
오래 피기 위해, 흔들립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오래 피는 일이다.”
당선 소식을 받고 제일 먼저 펼쳐 든 문장입니다. 매해, 쓰기 노트를 바꿀 때마다 맨 앞장에 쓰는 제 시구입니다. 봄이 지날 때마다 늘 입안에 굴리며 녹여 먹은 구절입니다. 저만의 삶을 붙잡는 방식이자 앞으로 나아가는 걸음이기도 합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자꾸 흔들리고, 다시 중심을 잡는 일의 반복입니다.
꽃은 한순간 피어나는 듯 보이지만, 겨울의 응축과 기다림을 품고 있죠.
제게 시는 꿈이자 기다림의 언어였고, 기도이기도 했습니다.
어린 시절, 이해인 수녀의 시를 읽으면서 시인이 되겠다는 꿈을 꾸었습니다. 시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언어의 부드러운 결에 마음을 쓰다듬곤 했습니다. 시를 꾸는 꿈은 생활이 되었고, 가슴안의 불씨를 지피게 했습니다. 배우지 못한 시가 불안과 평안으로 저를 멈추지 않게 했습니다.
때로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건네져 창조의 씨앗이 자라기도 했고, 내면에서 맴돌던 감각이 시어와 문장으로 표현되기도 했습니다. 끝내 자신과 누군가의 가슴에 닿아서 발화하고, 쓰고자 하는 욕심을 만들어 냈습니다. 속에서 솟구쳐 흐르고 흘러 전해지고 알려지는… 시가 가진 신비입니다. 성경 속 다윗이 기도하듯 쓴 시편처럼, 시는 세상에 꺼내 보이는 저의 기도이기도 합니다.
살아있기에 오래 피고 싶었습니다.
살아있으므로 늘 흔들렸습니다.
오래 피기 위해 흔들려야 했고, 흔들려야 꽃다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람 없는 기다림이 없듯, 수많은 흔들림이 내면을 지나고 다녀갔습니다. 언젠가는 긴 호흡의 시로 피어날 것을 믿으며 붙들고 싶었지요.
퇴직 후의 기쁨이 된 이번 수상은 단순한 기쁨이나 영예로만 다가오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흔들릴 것이며, 더 오래 피어나겠다는 마음을 다집니다. 과거의 저는 오늘의 저를 밀어주었고, 오늘의 저는 내일의 저에게 다가갑니다. 그사이에 늘 시가 있습니다. 흔들림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기다림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래 피어있으므로 의미 있는 존재로 살아 있음을 증명하고 싶습니다.
끝까지 쓰고자 하는 용기를 주신
심사해 주신 이문재 시인님과 유성호 평론가님 외 3분의 시인님께도 감사 인사 올립니다. 있는 자리에서 말을 아끼며, 멈추지 않고 묵묵히 써내려 가겠습니다.
시를 다시 바라보게 해주신 하린 선생님과 마경덕 선생님, 배움의 연결다리가 되어주신 김양홍 변호사님과 문우들께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카카오 브런치 스토리의 지담 작가님(김주원교수님)과 새벽의 동반자들, <엄마의 유산 프로젝트>에 함께 해주시는 여러 작가님, 글벗이 되어주신 시인과 작가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멈추지 않고 쓰기’의
사랑하는 남편과 시어머님과 부모님, 가족과 친구들, 선후배와 제자들, 교회의 이웃들과 청춘과 문학에 고팠던 청년 때의 저 자신에게도 감사와 고마움을 전해드립니다.
이미 돌아가신 영월 댁 친할머니께 감사드립니다.
길이 되고 빛이 되어주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명희와 닭
김윤미
나의 엄마 명희는 그녀만의 독특한 닭 요리 비법을 갖고 있다. 다른 재료 없이 오로지 간장과 청주, 다시마로만 맛을 내는 이 닭 요리는 그녀가 결혼하면서 시댁으로부터 전수받은 요리다. 결혼하기 전에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딸들에게 가르쳤고, 그 딸들이 올케인 명희에게 가르쳤다. 평소 밥상에서 먹을 수 있는 요리는 아니었고, 일 년에 네댓 번 제삿날과 명절에만 상에 오르곤 했다. 명희의 남편 태수는 ‘우리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음식’이라고 말하길 좋아했지만, 사실 그것은 대대로 떠밀려온 노동 과제에 가까웠다. 재료는 단출하지만 한 시간 내내 부지런히 양념을 고루 끼얹어야 하는 노동집약형 요리였고, 그 노동은 언제나 제사의 주체가 되는 집안사람이 아닌 며느리의 몫이었으므로. 아마 그래서였을지도 모른다. 무슨 무슨 치킨이나 하다못해 ‘찜닭’ 같은 제대로 된 이름 하나 얻지 못하고 단지 ‘닭’으로만 불린 것은. 딸 여섯에 막내아들 하나인 집에서 그 유일한 아들 태수와 결혼한 명희가 떠안은 거대한 박복 꾸러미 안에 그 이름 없는 닭 레시피가 딸려 있었다. 그녀는 기제사 두 번에 명절 두 번, 일 년에 네 번씩 ‘닭 노동’을 충실히 수행해 냈다. 명희는 얼굴 한 번도 못 본 남의 집 어르신 영정 사진 앞에 간장 끼얹은 닭을 꼬박꼬박 올렸다. 속살까지 배어든 짭조름한 간장 맛과, 다시마와 청주가 빚어낸 깔끔한 감칠맛이 일품인 그 요리는 명희를 제외한 가족들 모두가 좋아했다. 그래서 명희는 가끔 제사가 아닐 때도 냄비 앞에서 숟가락을 들고 서 있어야 했다. 여섯 시누이 중 한 명에게서 “윤미엄마야, 내 너거 집닭 쪼매 해다 주면 안 되나.” 하는 전화가 걸려 올 때가 그랬다. 그들은 그 요리가 제법 고되다는 것을 잊었거나 잊은 척했다. 분명 자기 집안 제사 요리인데 입버릇처럼 ‘너거 집닭’이라고 말하는 데서 ‘우리 집안 제사는 유일한 아들과 결혼한 너의 몫이다’라는 사실이 명희에게 끊임없이 각인되었다.
나는 누구보다 그 닭 요리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그래서 명절과 제삿날은 나에게 다름 아닌 ’닭 먹는 날‘이었다. 태수는 제사상 앞에 서서 닭만 쳐다보고 있는 나에게 ‘네가 우리 집 아들 손주 역할을 해야 한다’라며 손에 잔을 들려주고 술을 따랐다. 그러면 나는 상 가운데 앞쪽에 피워진 향 주위로 잔을 세 번 돌린 후, 자못 근엄하고 진지한 손길로 상에 잔을 올렸다. 그리고 태수를 따라 꾸역꾸역 절을 했다. 하느님 부처님도 아닌 음식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는 그 몇 초 동안 빌게 되는 소원은 대체로 ‘엄마 아빠 안 싸우게 해주세요’ 에서 벗어나는 법이 없었다. 그러나 일 년에 몇 번 음식과 술을 먹으러 우리 집에 온다는 그 조상님들은 영 끗발이 없는지 음식을 푸지게 차려내도 소원은 좀처럼 이뤄지지 않았다.
제사를 마친 후 나와 여동생이 맨손으로 전이나 과일을 집어 먹는 동안, 명희가 비닐장갑을 양손에 끼고 닭과 다시마를 손으로 길게 찢었다. 나는 그 잘 찢긴 살들을 덥석 젓가락으로 집어 고슬고슬하게 지어진 쌀밥에 올려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고등학생 때부턴 퇴주잔에 담긴 청주를 태수와 명희가 안 보는 틈을 타 닭과 함께 곁들여 몇 모금 들이켰다. 그렇게 먹고 나면 낮잠이 솔솔 밀려와 배를 퉁퉁 두드리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닭 한 마리 정도는 네 가족이 앉은 자리에서 충분히 다 먹을 수 있는 양이었지만, 우리에게 허락되는 닭은 언제나 반 마리뿐이었다. 영희는 닭의 절반을 정확히 잘라 포일로 감싸두고 나머지 반만 가족에게 찢어줬다. 포일에 싸인 닭은 명희의 여섯 시누이 중 우리 집 근처에 사는 셋째 시누이에게 배달할 제사 음식 꾸러미 중 가장 중요한 구성품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나 먹을 것도 모자란데 왜 그걸 고모에게 갖다주냐며 언제나 투덜거렸다. 하지만 딸의 어떤 칭얼거림에도 명희는 그 반 마리를 내놓는 법이 없었다. 명희에게 그들의 존재는 시누이 여섯이 아니라 시어머니 여섯이나 다름없었기에. 태수가 술을 마시고 여섯 누나들 중 한 명에게 전화해 시비라도 걸면, 여섯 명이 차례로 명희에게 전화해 다그쳤다. 대체로 ‘술 좀 그만 마시게 해라’와 같은 이야기였다. 그리고 물론 그것은 명희가 가장 바라는 바이자 명희의 힘으론 좀처럼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다.
딸은 많고 돈은 없는 집 귀한 막내아들로 태어났지만, 재산을 물려받는 대신 ‘Son of Kim’이라는 쓸모없는 명예만 가진 태수는, 하필 여섯 누나들이 죄다 잘 사는 남자들과 결혼해서 자신만 가난하다는 사실 때문에 자주 술을 마셨다. 그런 꼴을 보다 못한 누나들이 가끔 소액의 돈을 보내줘서 많은 급한 일들이 해결된다는 사실 때문에도 술을 마셨다. 그래서 자기 마누라인 명희가 누나들에게 더욱 기를 못 편다는 사실 때문에 또 술을 마셨다. 그건 명희와의 잦은 싸움으로 이어져 집안엔 욕과 고성이 자주 오갔고, 가끔은 물건들이 바닥에서 산산조각 났고, 어떤 때는 명희의 머리가 헝클어지고 몸에 생채기가 남았다. 명희는 딱 한 번 나와 여동생의 손을 양손에 하나씩 잡고 법원 앞까지 갔었는데, 이혼 서류 한 장을 가방에 챙겨갔지만 꺼내 보지도 못하고 그냥 되돌아왔다. 아마도 명희는 서류를 낸 이후의 삶에 자신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양손에 잡힌 아홉 살짜리 손 하나와 네 살짜리 손 하나가 그녀의 수많은 계획을 가로막았을 것이다.
그 이후 명희가 감히 이혼을 시도했었다는 소식이 여섯 시누이의 귀에 들어갔고, 그중 성격이 가장 불같은 막내 고모가 우리 집에 쳐들어왔다. 태수는 일터에 나가 없고 명희와 나와 동생만 있는 평일 오후, 경주에서 부산까지 한달음에 달려온 막내 고모는 우리 집 문을 열어젖히고 들어오자마자 욕을 내뱉었다. 그건 내가 태어나서 그때까지 들어본 적 없는 말이었다.
“보지에 가시나 밖에 안 들어서 딸만 줄줄 낳은 년이!”
아들 둘을 낳은 고모의 당당한 사자후가 명희와 나와 내 동생의 고막을 후려쳤다. 그 말을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모두 가시나였다.
내가 스물한 살이 되던 2003년 태수는 결국 술 때문에 채 오십도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황망하고도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죽은 사람은 없어져도 죽은 사람의 제사와 죽은 사람 집안의 제사는 없어지지 않았다. 제사를 주도하던 태수가 없어도 명희는 태수의 집안 제사를 여전히 챙겨야 했다. 여전히 불 앞에 서서 닭에 한 시간씩 간장을 끼얹어 가며. 제법 머리가 큰 내가 그 사실에 대해 그때 즈음부터 화를 내기 시작했다. 집안에 유일하게 제사 지내던 남자가 죽었으면 제사도 그만 지내야 하는 거 아니냐며, 왜 집안사람도 아닌 엄마가 제사를 계속 챙기냐며. 그러면 명희는 들을 사람이 나와 동생뿐인데도 누가 들을세라 내 입을 막곤 했다. 마치 큰일 날 소리를 들은 사람처럼. 아무리 뜯어말려도 제사는 이어졌고, 닭은 제사상에 꼬박꼬박 올라왔다. 나는 투덜대다가도 닭을 입에 넣고 나면 얼마간 잠잠해졌다. 제사가 싫은 것과 별개로 닭은 언제나 천연덕스럽게 맛있었으니까.
나의 독립과 결혼 이후, 우리 집 제사상에서 별안간 닭이 사라진 적이 있다. 아마 엄마도 이제 나이가 들어 손 많이 가는 음식은 줄이기로 했나 보다 싶은 내 짐작과는 달리, 명희의 입에선 전혀 뜻밖의 이유가 흘러나왔다. 그러니까, 보지 운운하던 그 막내 고모가 명희에게 전화를 걸어 더 이상 ‘우리 집안’ 제사에 닭을 올리지 말라고 주문했다는 것이다. 고모가 전했다던 그 구체적인 이유가 아주 신묘했다.
“윤미엄마야. 보살님이 그라는데, 우리 자매들끼리 자꾸 싸우는 게 제사상에 닭을 올리가 그렇다 카더라. 닭이 막 부리로 쪼는 동물 아이가. 그래서 자매들이 부리로 콕콕 쪼듯이 싸움이 난다는 기라.”
여섯 고모들은 자매 수가 많은 만큼 서로의 사이도 다사다난했다. 자식 자랑을 하다 싸우고, 돈을 빌려줬다가 갚네 마네 하며 싸웠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싸우고 나면 약속이나 한 듯 명희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했다. 둘째와 싸운 넷째 고모가 전화했고, 셋째와 싸운 막내 고모가 전화했다. 명희는 여섯 사람 간 복잡한 감정싸움의 화살표를 섬세하게 파악해야 했다. 어떤 시누이와 통화할 때 어떤 시누이 얘기를 꺼내면 안 되는지 기억하고, 그런 전화가 걸려 왔을 땐 함부로 한쪽 편을 들거나 비난에 동조하면 안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꼼꼼한 명희는 실수하는 법이 없어서 마치 유능한 콜센터 상담원 같았다. 그토록 각양각색으로 싸워대던 고모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는데, 바로 각자 주치의 수준으로 의지하는 점쟁이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여섯 명의 점쟁이들은 담당 고모들에 따라 호명되는 타이틀도 다양했다. 동자님, 도사님, 할매, 보살님 등등. 그중 막내 고모의 운명 주치의가 보살님이었고, 그 보살님이 제사에 닭을 올리지 않아야 자매간의 싸움이 멈춘다는 준엄한 처방을 내린 것이었다.
그러나 닭이 먹고 싶다는 다른 고모들의 성화 때문에, 그리고 제사에 닭을 못 올리게 막았던 막내 고모가 2년 후 세상을 떠나면서 닭은 다시 부활했다. 나는 명희에게 닭 안 먹어도 되니 이제 제사를 그만 지내든 하다못해 간소화라도 좀 하자고 줄기차게 간청했지만 큰 변화를 이끌어 낼 순 없었다. 두 번이었던 기제사를 한 번으로 줄인 게 명희에겐 할 수 있는 타협의 마지노선이었다. 그마저도 이래도 되나 싶은 듯 불안해하는 명희와 통화하던 어떤 날, 나는 이렇게 물었다.
“제사도 그나마 조상 덕 보려고 지내는 건데. 엄마 그렇게 열심히 제사 지내서, 살면서 조상 덕 좀 봤어?”
덕 봤다고 말할 수 없는 삶이라는 건 그녀도 나도 모를 수 없다. 조금 뜸을 들인 명희가 대답한다.
“덕 안 봤으면 진작에 죽었을지도 모르는 거,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잖아.”
나는 무슨 말을 더 보탤 수가 없어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명희가 보낸 스티로폼 택배 속에 담긴 닭을 꺼냈다. 오래전 명희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비닐장갑을 끼고 닭을 죽죽 찢어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먹을 저녁 식탁에 올렸다. 닭은, 애석하게도, 여전히 맛있었다. 식탁에 앉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이쪽과 저쪽 사이의 글쓰기
유년 시절, ‘후레쉬맨’이라는 제목의 히어로물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했습니다. 평범한 사복 차림의 주인공들이 악당과 맞서 싸워야 하는 순간, 히어로로 변신하기 위해 각종 화려한 동작들을 선보이며 ‘쫄쫄이’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근사한 무기들을 장착하죠. 저는 늘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변신은 불과 몇 초 만에 완성되지만, 그 몇 초 동안 악당들은 뭘 하고 있는 걸까. 왜 그 순간에 공격을 안 하고 기다려 주는 거지. 어쩌면 ‘옷 갈아입을 시간 정도는 줘야지’와 같은 그 세계만의 암묵적인 룰이 있는 걸까. 이유야 어찌 되었든 악당들이 침착하게 기다려준 탓에, 주인공들은 평범한 시민에서 지구의 평화를 지키는 히어로로 정체성을 무사히 갈아끼운 뒤 대기하고 있던 악당들을 무찌르는 데 성공합니다.
두 아이의 엄마, 광고 카피라이터, 그리고 글 쓰는 사람. 비록 히어로는 아니지만 저 역시 하루에도 몇 번씩 변신을 거듭하며 이쪽 저쪽의 정체성을 분주히 오갑니다. 현실에선 색색깔의 유니폼도, 무기도 없지만요. 무엇보다 ‘옷 갈아입을 시간’같은 걸 기다려주는 이가 없습니다. 가족들 저녁으로 차려준 된장찌개 냄새가 잔뜩 밴 티셔츠를 입은 채 숨 고를 틈도 없이 노트북 앞에 앉기도 하고, 세 줄짜리 카피에 대한 고민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세 장짜리 에세이 초고를 들여다보며 머리를 싸매기도 합니다. ‘집안일 잠깐만 하고 글 써야지’라 마음먹은 어느 밤, 장보기 앱에서 국거리용 소고기 가격을 비교하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운 채로 아침까지 잠들어 버린 날엔 조금 울적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 순간들이 쌓일 때마다 어쩌면 내가 글을 계속 쓴다는 건 사치가 아닐까 하고 마음이 움츠러듭니다. 오로지 글 쓰는 사람의 정체성만 갖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기도 하고요. 그러나 만약 그렇게 산다면 아마 제가 쓸 수 있는 문장의 가짓수도 줄어들 것임을 압니다. 저에게 글쓰기는 이쪽과 저쪽의 정체성을 왔다 갔다 하는 동안 먼지처럼 흩날리는 생각의 잔해들을 한 톨 한 톨 채집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정체성 안에 고요히 머무른다면 흩날릴 먼지도 없어질 것이니까요. 그러니 아무리 힘겹고 피곤해도, 우아하게 변신할 시간도 없이 헐레벌떡 뛰어다니더라도, 저는 앞으로도 이쪽과 저쪽을 정신 사납게 오갈 것입니다. 그 이동의 궤적 사이에 흩뿌려진 단어와 문장의 파편들을 빗자루로 싹싹 쓸어 담아서, 악당이 나타나지 않는 고요한 밤에 우두커니 앉아 한 편의 글로 꿰어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마음을 굳게 먹어도 몸은 하나라는 변함없는 사실 앞에 지쳐갈 때쯤, 이 소중하고 감사한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이번 수상 소식은 피로와 스트레스를 날려줄 비타민이기도, 앞으로 더 부지런히 이쪽과 저쪽을 오가며 살라는 채찍이기도 합니다. 제게 과분한 상을 주신 시와산문 심사위원 및 관계자 여러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2년 넘게 저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준 ‘까불이글방’ 양다솔 작가와 동료들에게도 깊은 감사와 애정을 보냅니다. 당신들의 응원과 격려가 아니었다면 제가 가진 글 쓰는 사람의 정체성은 금세 말라붙어 사라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글을 쓰는 동안 집안일과 육아를 혼자 감당해낸 남편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끝으로, 차마 글 안에 다 담기지 않는 긴 세월을 보내며 마흔이 훌쩍 넘은 큰 딸을 여전히 ‘양육’ 중인 저의 어머니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껍데기를 먹는 가재처럼
박지영
죽은 듯이 웅크리고 있는 것이 하나가 아니다. 자갈 틈에 몸을 숨기고 이따금 집게발을 움직이는 생명이 본체다. 벗어놓은 껍데기는 물발이 없는 어항 안에서조차 가재의 미약한 움직임에 힘없이 휩쓸린다. 가재가 움직이지 않으면 껍데기도 움직이지 않는다. 하루가 지나고 들여다보아도 가재는 숨었던 자리에 그대로다. 이틀째, 드디어 껍데기를 끌고 가서 갉아먹기 시작한다.
가재는 옛 껍데기를 벗어야 성장할 수 있다. 낡은 껍데기가 압력을 받고 쪼개지면 그사이를 빠져나와야 하는데 아마 끔찍한 고통일 게다. 새 껍데기가 단단해질 동안 몸은 무방비 상태다. 탈피 직후에 한참 숨어 지내는 이유다. 잘못하면 죽거나 기형이 될지도 모르지만 탈피를 못 하면 그 껍데기 안에 갇혀 결국 죽고 만다.
처음 탈피한 빈 껍데기를 보았을 때는 가재가 죽은 것인 줄 알고 가슴이 내려앉았다. 똑같은 모양과 색깔 그대로 벗어둔 그것은 너무 감쪽같아서 놀랄 만했다. 발가벗은 과거를 마주하는 일은 죽어버린 시간을 보는 것만큼 섬뜩했다.
가재가 탈피각을 스스로 먹는 것은 새 껍데기를 단단하게 하기 위함이다. 좁은 어항 안에서 갉아 먹던 껍데기 일부가 부유한다. 그것은 마치 보이지 않는 경계에 부딪히기만 하는 내 안에 맴도는 메아리처럼 보인다. 돌고 돌아도 닿는 곳 없이 떠다닐 뿐이다. 걷어내지 않으면 어항 안을 흐려 숨을 막고 말 것이다.
원기를 회복한 가재는 손바닥만 한 어항에서도 분주하다. 가재의 작은 세상에는 물레방아도 있고 열리지 않는 창문도 있다. 사람의 집을 본떠 만든 풍경에 더해 홍예다리를 건너다니는 가재는 나름대로 제 몫의 일을 하는 모양이다. 껍데기의 색도 점점 짙어진다. 튼튼해졌다는 증거다. 내 방의 창문은 언제든 활짝 열어젖힐 수 있는데 커튼을 걷지 않은 지가 오래다. 배불리 먹을 음식과 멀쩡한 두 다리가 있지만 모든 것이 빛바랜 고물처럼 붙박여있다. 핏기 없는 살갗은 제풀에 지쳐 꼬집고 때려도 한참 동안 창백하다.
지난겨울 우연히 대학 시절 은사님을 마주쳤다. 철벽같이 근엄한 교수님이었지만 졸업 후 첫 스승의 날에 보낸 작은 선물에 손수 안부 문자를 보내주셨던 분이다. ‘강의 시간에 늘 반짝이던 네 눈동자가 아직 선하다.’라는 답장에 십수 년 전의 나는 뿌듯하게 웃었다. 그때의 나는 눈부시고 돋보였다. 엄격한 교수님의 눈길에서 총애를 느낄 만큼 스스로 빛났다. 다만, 넝마 같은 일상의 자락 겨우 붙들고 있는 지금의 나는 몸을 숨기고 말았다. 빛바랜 내 눈동자를 알고 있었다. 어디선가 비춰주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는 그림자 같은 내 처지가 뼈아프게 실감 났다.
초라해지는 스스로를 긍정하기란 쉽지 않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시류에 올라타지 못한 나의 처지를 연민 없이 사랑하는 일은 버겁기만 하다. 주름은 늘어 가는데 진실 된 삶의 흔적은 헐겁다. 번지르르한 잉어등처럼 반사된 빛으로 연명하고 있을 뿐 언제 불어닥칠지 모를 진실이라는 폭풍은 가볍디가벼운 나를 늘 위협한다.
인생의 절정을 함께 했던 이들을 다시 만나는 일은 씁쓸하다. 우리는 더 이상 순수하지 않고, 나는 시들어갈 일만 남은 것처럼 보인다. 살림에 보탬이 되려고 남에게 굽실거리며 보내야 하는 나의 하루와 쉽게 털어놓지 못하는 주소, 누가 볼까 봐 쫓기듯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일은 꽉 끼는 껍데기 안에 짓눌린 모습이다.
오열이 필요할 때가 있다. 숨이 멎을 만큼 울면서 속을 덜어내야 하는 때가. 애를 쓰며 버티던 무의식이 찢어졌다. 그토록 작은 눈물방울의 무거움을 이겨내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얼어붙은 거리에서 나는 온몸으로 울음을 토했다. 사기를 당해 재산을 잃었고, 혈육과 연을 끊었고, 몸 안의 물질들이 뒤엉겨 약이 없으면 등을 펴지 못하는 날들이었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내 무릎은 그 무게를 짊어지고 삶의 예각을 버티고 있었건만, 20대의 그림자와 마주친 날에 결국 꺾이고 말았다.
눈물은 삶의 고난보다, 몸피보다 무겁다. 그동안 나는 왜 울지 못했던가. 토해낸 울음은 몸을 절반쯤 가볍게 해주었다. 눈물에 불어 터져버린 틈새로 껍데기가 열렸다. 옛 시절 빛났던 것은 맞으나 지금은 바래져 버린 과거의 영광을 붙들고 그 시절에 머무르려 했나보다. 작고 낡은 껍데기에 갇혀 현실을 회피하는 나, 눈앞에 두고도 보지 못하고 갈망하기만 하는 나는 찢어지고 말았다.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한다. 방문을 열어젖히고 처음 찾은 곳은 글을 배우는 곳이다. 쉽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지 못했다. 글을 쓰며 만난 스승은 내 안의 고인 물을 다 퍼내야 새로운 샘이 솟는다고 하셨다. 아직 의연함이 부족한 탓일까. 빈 종이 위에 껍데기를 벗어놓고 상처 입은 몸으로 활자 뒤에 숨는다. 문장 사이사이에 부식된 감정이 떠다닌다.
새 껍데기가 기대했던 만큼 근사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그대로를 사랑하리라. 형편이 크게 나아지지 않더라도 나만큼은 변하리라. 누군가에게 내 글을 보여주는 것은 낡은 껍데기를 갉아먹는 일이다. 맵고 쓰다. 어쩌다 목에 걸려 헛구역질이 나기도 한다. 반짝이던 시절은 더 이상 달지 않고 악취만 풍긴다. 가재가 벗어놓은 껍질을 먹으며 양분을 채우듯, 내 안에서 소란스럽게 부딪히는 상념과 메아리를 삼킨다. 과거의 나도 지금의 나도 부정하지 않는 것, 자신을 완전하게 드러내는 것이 단단한 껍질이 되어 나를 감싸고 성장시킬 줄 믿는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단연코 껍데기 안에 있는 것이다.
생각이 길어지는 동안 여기저기가 아파 실제로도 앓아누웠다. 탈피가 진행 중인지도 모르겠다. 껍데기를 벗어내고 얻는 삶은 온전히 내게 달린 일이다. 온갖 가능성과 빛나는 미래로 점철된 젊은 날의 나에게 전하고 싶다. 그 빛을 잃어야 더 밝은 영광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껍질을 벗고 나오면 새로운 내가 과거의 나를 바로 보고서리라. 그 안에 갇혔던 시간 또한 나의 것이기에 버리지 않고 가치 있게 여기려 한다. 그 낡은 껍질이 나를 더 옹골지게 만들어 줄 터이므로.
현실에 잠겼던 길이 드러나다
해가 서쪽으로 휘어질수록 발아래 고인 볕이 묵직하게 걸음을 붙들어 한 발짝 걷기도 힘든 하루였습니다. 분 단위로 쪼개지는 시간에 떠밀리다가 저물녘의 문턱에 서면 삶에 진력이 나는 순간이 있습니다. 선 채로 잠들 수도 있겠다는 한심한 생각을 하다 헛웃음이 나오려고 하는데 당선 소식을 들었습니다. 전화를 주셨던 편집주간님께 죄송한 마음입니다. 모르는 번호로 걸려 온 전화를 받은 제 목소리가 곤고한 처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을까 봐 부끄럽습니다. 걸핏하면 눈물이 터지는 저는 새어 나오는 눈물을 집어넣느라 하늘을 볼 때가 많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눈을 떴을 때는 땅에 그려진 제 그림자가 일렁였습니다. 헛웃음이 아닌 진짜 웃음이 저의 세계에서 공명했습니다. 꼼짝 못 할 듯이 붙매여 있던 걸음을 다시 내디딜 수 있었습니다.
엊그제는 먼 바다로 떠났습니다. 굽이진 길을 달려갈 때 창 너머로 보이는 외딴섬이 있었습니다. 수평선 너머를 상상하며 풍경에 빠져들다 보니 어느새 걸어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그 아래 바다의 속살에는 본 적 없는 많은 생명이 얽히고설켜 있었습니다. 길이 끊겨있는 동안에도 그들은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었을 테지요. 저는 더 성실히 삶에 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시와산문』에서 뭍으로 드러내 주셨으니 파도에 부서지더라도, 밀물에 쓸려가더라도 끊임없이 흔적을 남기고 저를 세상에 드러내야겠다고.
세상에 다시없을 수재처럼 저를 치켜세워주는 사랑하는 남편, 매일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나의 우주, 나의 환희인 아들과 영광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제게 배냇저고리를 입히고 둥둥 얼러주듯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시는 부산외대 수필아카데미 박희선 교수님과 문우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덕분에 씩씩하게 걸음마를 뗐습니다. 쉬지 않고 걸으며 정진하겠습니다.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과 『시와산문』 관계자들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배웅
이현희
대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걸쇠를 풀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조용한 마당을 지나 현관문을 열려했지만 잠겨있었다. 앞마당에 있던 호랑가시나무도 집 모퉁이에 있던 무화과나무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로 여기를 정리하실 모양이구나.’ 외할머니가 안 계신 외가는 쓸쓸하기만 했다.
어린 시절 우리 형제들은 방학만 되면 서로 외가에 가려고 했다. 매일 똑같은 집과는 달리 외가는 좀 더 특별했다. 부대끼던 식구들로부터 달아날 수 있는 자유의 시간이자, 따뜻한 환대가 있는 공간이었다. 할머니가 해주시는 맛있는 것들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손님 대접을 받는 것이 기분 좋았다. 방학이래도 특별히 어딜 간다거나 하는 일이 없는 우리에겐 외가에 가는 것이 유일한 나들이이자 휴가였다.
마을 버스정류장에 내리는 순간부터 묘한 설렘이 우리를 반겼다. 발걸음은 허공을 걷는 듯 들떴고, 낮은 돌담이 둘러진 골목으로 들어서면 가슴이 간질거렸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며,
“할머니”하고 부르면,
“내 새끼들 왔는가.”
작은 키에 뽀글 파마를 한 정겨운 얼굴이 환한 미소로 달려 나오셨다.
열여덟 명이나 되는 손주들에게 한없이 자애로운 할머니… 무더운 여름 장기투숙 손님이 번거로울 법도 한데, 그런 기색 하나 없는 할머니 덕분에 우린 마냥 즐거운 여름방학을 보내곤 했다.
외가는 온통 평야지대인 집과는 달리 바다와 산과 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아름다운 곳에 위치해 있다. 마루 끝에 까치발을 하고 서면 멀리 바다가 보였고, 집 뒤 텃밭 너머로는 커다란 바위가 우뚝 솟은 산이 보였다. 뜨거운 햇살이 마당 한가운데를 쏘아보는 한낮, 마루로 나 있는 앞문과 뒷마당으로 향한 뒷문을 열어놓으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더위를 데려가곤 했다. 그곳에 앉아 옥수수와 콩, 부침개를 먹을 때면 마당을 쏘아보던 햇살도 반짝반짝 빛이 났다. 어스름 저녁 무렵이면 밥 짓는 연기가 깔린 마당에는 어디에서 나왔는지 커다란 두꺼비들이 있었다. 이상하고 신비한 나라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바닷가에서 마을로 오는 길엔 염전이 있었는데, 그 옆 길가에는 작은 게들이 기어 다니곤 했다. 외가는 우리들에게 마냥 신기하고 재미있는 원더랜드였다.
그 원더랜드에 살고 계신 할머니는 손도 크셔서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손주들이 오면 맛있는 것을 많이 해주셨다. 바닷가 근처여서인지 집에서 먹어보지 못한 파래무침이나 풀치조림 같은 반찬을 자주 해주셨다. 집에 있는 재료로 뚝딱 만든 잡채도 맛있었지만, 어느 무더운 여름 바람이 불어오는 마루에 앉아 여럿이 함께 먹던 팥칼국수를 잊을 수 없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는 여름날, 할머니는 뜨거운 불 앞에서 팥을 삶고, 밀가루 반죽을 해서 직접 면을 만들고, 다시 큰 솥으로 한소끔 끓여서 팥칼국수를 만드셨다. 더위에도 아랑곳없이 손주들 왔다고 그 번거로운 수고를 하시며, 동네 어르신들까지 초대해서 함께 나눠 먹었다. 그런데 저녁에 자려고 할머니 곁에 누우면 할머니한테선 땀 냄새가 났다. 그땐 냄새가 싫어 돌아눕기만 했지 그 냄새에 밴 노고를 알지 못했다. 할머니가 주신 것들을 당연하다는 듯이 받기만 했다. 그렇게 우리는 할머니의 음식과 사랑을 먹고 자라 어른이 되었다.
외할머니가 우리 집에 방문할 때, 학교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수돗가나 방안에서 다감한 이야기 소리가 들려왔다. 외할머니와 엄마가 나란히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 그때의 엄만 내가 알고 있던 엄마와는 조금 다른 것 같았다. 평소보다 좀 더 수다스러웠고, 여태까지 느끼지 못했던 자부심이나 어리광 비슷한 것이 느껴졌다. 그때 처음 알았다.
‘아, 엄마에게도 기대고 응석부리고 싶은 엄마가 있구나.’
그래서일까 엄마 돌아가시고 나서는 명절마다 외가에 갔다. 우리만큼 엄마를 보고 싶어 할 누군가를 만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명절에는 엄마가 더욱 보고 싶었으니까. 우리가 외가를 찾은 건 자식을 잃고 가슴 아플 할머니를 위해서였지만, 사실은 엄마를 잃고 가슴 아픈 우리를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가면 할머니는 너무도 좋아하셨다. 먼저 와 계셨던 삼촌, 숙모와 모여서 명절음식을 먹으며 얘기꽃을 피울 때면, 자신은 잘 드시지도 않으면서 우리 먹는 것만 보고 있어도 좋다고 흐뭇한 표정을 지으셨다. 할머니의 사랑은 나이가 들고 몸이 쇠약해져도 약해지지 않고,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자꾸자꾸 솟아나기만 하는 것 같았다.
할머니를 생각하면 커다란 늙은 나무가 떠오른다. 그 존재만으로 든든한 나무, 할머니의 주름살은 나무의 나이테 같다. 나무의 나이테처럼 할머니의 주름은 시간의 파도, 세월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 여름날 할머니는 가지가 많고 잎이 무성한 아름드리 나무였다. 그 나무아래에는 그늘을 찾아 모여든 자식들과 손주들로 왁자지껄했다
언제든 가고 싶을 때 갈 수 있고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라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외할머니를 뵐 때면 엄마와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다. 외가를 방문하고 집에 돌아올 때면, 할머니는 언제나 우리가 탄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서서 우리를 배웅하셨다. 그럴 때면 할머니 홀로 두고 돌아오는 우리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 하지만 이제 우리가 할머니를 배웅해 드려야했다. 할머니께서 몹시 그리워하시던 엄마를 만나러 떠나셨기 때문이다.
한 집안엔 구심점 역할을 하는 존재가 있다. 외가의 중심엔 언제나 외할머니가 계셨다. 그 품은 딸과 아들을 넘어 많은 손주들까지 품을 수 있을 만큼 넉넉했다. 아름드리나무 같았던 할머니의 넓은 품안으로 모두 모였다. 오랜만에 만난 삼촌, 이모, 숙모, 이모부, 사촌들과 서로 안부를 묻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단지 그곳이 할머니의 장례식장 이었을 뿐 명절이나 가족 모임 때와 다를 바 없었다. 음식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하고 때론 웃음꽃을 피우며 모처럼 반가운 얼굴들이 함께했다.
‘할머니가 계셨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할머니는 변함없는 모습으로 그 곳에 함께 계셨다. 꽃들에 둘러싸인 사진 속에서 예의 그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보고 계셨다. 할머니가 떠나시기 전 마지막으로 우리 모두를 초대한 것만 같았다.
소중한 한 걸음
학창 시절보다는 성인이 되어 뒤늦게 독서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힘들 땐 따뜻한 위로가 되어주었고, 멈춰 있을 때는 뒤를 밀어주는 바람, 나태해질 때는 강하게 내리치는 죽비가 되기도 했습니다. 책이 주는 물성도 좋았고 글이 주는 울림이 무엇보다 크다는 것을 알게 된 날들이었습니다.
내 생각이나 경험, 느낌을 무언가로 표현한다면 글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활자로 표현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처음 써보는 수상소감조차도 이리 힘이 듭니다.^^;;
저의 어린 시절 기억의 중심에는 외할머니와 외가가 있습니다. 이젠 더 이상 볼 수 없어 더욱 소중한 추억입니다. 사진으로 남아 있지도 않고 기억 속에만 있어 언젠가는 희미해질 테지만, 글로 쓰다 보니 이상하리만치 선명해져 조금 놀랐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에는 읽는 그것과는 또 다른 힘이 있다는 것을 쓰게 되면서 알게 됩니다.
저의 개인적인 글이 공감을 줄 수 있을지, 사실 반신반의하며 응모했습니다. 당선 소식을 듣고 조금 안심이 됐습니다. 좀 더 써보라고, 계간 『시와 산문』 그리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서 제게 용기를 주시고 응원을 보내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감사드립니다.
뒤늦게 시작했지만, 이제 첫발을 뗀 거라 여겨집니다.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가보고 싶어졌습니다.
나의 원더랜드에는 여전히 외할머니가 살고 계십니다.
외할머니와 할머니, 그리고 부모님께 감사와 사랑을 제대로 표현한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거라 생각했나 봅니다. 소중한 지면을 빌어 감사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