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타오르는 불길에 영혼을 던져보았는가
선선한 새벽이다.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김남주 평전』을 읽는다.
앞 이야기
낫 놓고 ㄱ자도 모른다고
주인이 종을 깔보자
종이 주인의 목을 베어버리더라
바로 그 낫으로
「종과 주인」 全文.
참 이상한 시다. 제목에 사용된 ‘주인’이니 ‘종’이니 하는 낱말도 고색창연하지만, ‘낫’으로 ‘모가지’를 벤다는 비유도 한없이 식상한 표현이다. 시라고 하기에는 구성도 너무나 흔해터진 조선말의 연결이 전부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나 읽다 보면 깜짝 놀랄 만큼 섬뜩한 꼬리가 딸려 나온다.
와, 무섭다. 한 편의 시가 독자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는 것은 매우 희귀한 현상이다. 시 읽기를 하던 어느 중년 노동자가 ‘낫’이라는 말이 너무 섬뜩하다고 말했다. 김남주 시인은 이렇게 해명했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으로부터 인격적인 수모를 당했을 때 그냥 참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노예가 노예인 것은 자기가 노예이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한 자나, 그것을 깨닫고는 있으면서도 주인이 무서워서 노예이기를 거부하지 못하고 그냥 눌러사는 그런 경우입니다.
- 김남주 에세이 『불씨 하나가 광야를 태우리라』에서.
마치 서슬 퍼런 낫이 금방이라도 위에서 아래로 사선을 그을 것만 같은 느낌? 이런 느낌이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흘러나오는 것일까?
김남주 시인의 아버지는 머슴살이를 했다. 아버지는 평생 그가 검판사가 되기를 바랐다. 김남주 시인은 “어찌 내가 인두겁을 쓰고 그런 짓을 하고 있을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아버지가 숫돌에 낫을 벼르던 그 마음처럼 저의 마음도 벼려져 있습니다.
왜 낫인가?
농사꾼들이 사용하는 도구 중에 유독 무기로 변용되는 것이 낫이다. 농사꾼들은 분노를 참을 수 없을 때 낫을 휘두른다.
김남주 시인의 아버지는 평생 남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면서 낫을 갈았다. 낫을 갈면서도 자식에 대한 기대가 끔찍하게 컸다.
‘하나만 잘 가르쳐도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다.’
김남주 시인은 이른 나이에 아버지의 꿈이 허상임을 알아 버렸다. 개인의 출세가 세계의 평화를 가져다주는 건 아니다. 사회적 존재 하나가 세상의 자유를 독식하려고 몸부림친 결과가 만인을 지옥에 빠뜨리는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면서 한 인간의 존재는 거룩하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으로부터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인격적인 수모를 당했을 때 절대로 그냥 참아서는 안 된다. 이것을 하나의 사상으로 완성해 간 생애가 김남주의 삶이었다. (10~1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