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주의 '마지막 스승 법정스님'
책 및 지은이 소개
◦지은이 정찬주
◦출판사 여백
◦정찬주
-호는 벽록. 동국대학교 국문과 졸업
-국어교사, 월간 <불교사상> 및 <샘터>의 편집자로 근무
-행원문학상, 동국문학상, 화쟁문화대상, 류주문학상, 유신작품상 등 수상
가. 법정스님의 흔적
모처럼 마음을 맑게 해주는 책이다. 저자는 법정 스님의 재가제자라는 특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 그런 저자이니만큼 스님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할 것은 당연하다. 그런 그리움을 저자는 이 책에 수십 편의 수필에 오롯이 담았다. 이 책은 글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놓았다.
1부는 법정 스님을 그리워하며 스님의 글씨와 책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이 이야기들을 통해 스님이 얼마나 청아하고 고결한 분인지 실감한다. 뿐만 아니라 세속을 염려하면서도 늘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2부는 법정 스님이 불일암에 기거하실 동안의 에피소드와 저자의 거처를 찾아와 들려준 법문을 중심으로 엮어놓으며 스님을 추억하고 있다. 저자는 스님의 제자답게 무소유의 삶을 사신 스님의 이야기에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다.
저자가 진솔하게 풀어내 놓은 이야기 속에서 스님의 무소유는 나눔의 실천에 있음을 본다. 스님은 나눔이 없는 무소유는 허망한 주장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그렇기 때문에 나눔은 스님에게 있어 자비와 사랑의 구체적 표현이었다고 저자는 회고한다.
저자는 불일암을 오르는 대나무 숲에서 법정 스님을 가장 극명하게 그려볼 수 있는 짤막한 시 한 수를 소개하고 있다. 책장을 넘기다 이곳에서 나는 한참을 서성거렸다. 짐짓 당연해 보이는 말처럼 보이지만 한없는 무게로 가슴 깊숙이 달려들었다.
나. 깨달음을 준 시 한 수
“대나무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움직이지 않고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물에는 흔적 하나 없네.”
저자는 스님에 대한 이야기는 기억을 더듬은 것도 있고, 기억이 아련한 것들은 과거 자신이 썼던 글들을 다시 옮겼다. 스님의 행적에 누가 될까 염려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글 속에는 스님의 진한 말씀과 그 말씀을 되뇌는 저자의 마음속에 스님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 담겨 있다.
그리고 마지막 3부는 저자가 산중생활을 20년째 이어오고 있는 이불재의 사 계절 이야기다. 그러니 당연히 글의 주인공은 저자 자신이다. 그의 삶 속에는 이미 법정 스님이 조용히 머물고 있었다.
책은 법정 스님의 고요한 삶을 응축하고 있고, 넉넉한 마음으로 그를 추억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삶이 번거롭게 지칠 때면 이 책을 가까이 하기를 권한다. 처음부터 읽을 필요도 없다. 그저 손길 닿는 곳이면 어디를 펼쳐 읽어도 좋다.
요즈음 더 가지려는 앙칼진 목소리가 세상을 뒤덮고 있다. 정치인들은 서로에 대한 험담을 예사로 하고, 그에 따라 세상을 갈기갈기 찢어진 채로 부유한다. 의술을 행해야 할 의사들은 제 밥그릇 챙기느라 병원을 박차고 나갔다. 법정의 무소유가 이보다 절실한 적도 없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