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京)기(畿), 그리고 지방
마치 부딪히면 ‘쨍그랑’하고 깨져버릴 것 같은 세파이어 청보석처럼
맑게 갠 가을하늘이 눈부시도록 찬란한 아침이다.
평택을 지나는 하행열차는 기세 좋게도 질주하고 있다.
요즘은 무궁화열차에도 내비게이션이 달린 객차가 있었다.
인근의 열차여행지를 광고하면서 현재속도는 시속135km 라고 한다.
음, 열차가 고속버스보다 더 빠른 이유를 알겠다.
물론 KTX는 더 빠르지만 신탄진에 내릴 사람에겐 개콘 유행어마따나 별 의미 없다.
안 그래도 그제는 안양 예식장에 참석하고 어제는 서울중계동 예식장에 참석했다.
어디로든 하루로 모아졌으면 얼마나 좋아? 요렇게 양일로 나뉘었다니ㅠㅠ
그래서 그제 저녁에는 안양에서 다시 대전으로 일단 귀가했었다.
열차 안에서 깜박 졸다가 신탄진을 지나쳤고 대전역에 내렸다.
시내급행버스로 신탄진에 되돌아오니 35분 정도 소요되었다.
즉, 빠르다는 KTX로 대전역에 내려봤자 다시 신탄진으로 역행하면 무궁화열차 시간이다.
차창 밖으로 ‘평택’은 그 이름처럼 넓은 ‘평야’와 군데군데 ‘소택’들이 알맞게 섞여 있었다.
때마침 오곡백과가 영글어서 풍성해진 가을들녘을 바라보면 안 먹어도 배부를 것 같았다.
막상 대전에 낙향해보니 경기도가 다른 삼남지방보다 더 축복받은 땅이란 생각이 절실했다.
왜 아니겠는가.
다 아는 이야기지만 충청도는 충주와 청주의 합성어이다.
전라도(전주나주), 경상도(경주상주), 강원도(강릉원주)도 마찬가지로 다 그렇다.
경기도만 왕이 사는 경(京)과 그 京에서 500리까지의 기(畿)를 합해서 경기도라 했다.
즉 京이 1급지라면, 畿가 2급지인 셈이고, 경기도 이외의 지방은 3급지 이하인 셈이다.
난 생애의 대부분을 서울, 특히 종로에서 보냈는데 경기도로 이사하고도 서울에서 일했다.
70~80년대의 종로는 청춘남녀들이 모여들었던 요샛말로 물 좋은 동네였다.
‘빅3’ 서적상들만 해도 종로서적, 양우당, 문학당에다 동화서적, 교보문고가 ‘빅5’로 합류했다.
요새 스마트폰은 초등학생까지도 갖지 않은 애가 없다는데 그땐 누구나 책이 애장품이었다.
프러포즈용 선물도 시집 한 권이 훨씬 더 기품 있게 보였던 시절이다.
꼭 시인이나 문학애호가가 아니어도 지극히 당연하게 여겼던 책 선물들이다.
요샌 건강식품들이 유통시장에서 판치지만 그땐 문학전집, 사상전집, 백과사전들이 판쳤다.
말하자면 정신세계를 살찌우라고 했던 그때에 비해 늙어질 몸 건강이나 챙기라는 건가ㅠㅠ
하긴 그때는 그때대로 지극히 당연했던 풍조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책 뜯어먹고 사나ㅎㅎ
뭔가 몰두하면 회오리바람처럼 유행을 타는 우리나라의 국민성이 참 흥미롭다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