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고궁 전시회
지난 가을 11월19일 삼화회 모임에서는 새로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소격동)을 대충 관람하고
(중학생 때 경무대 언덕 충성문 앞에서부터 경복공 돌담길을 끼고 이 앞 개천 옆으로 자전거를 냅다 달리기도 하고
놀았었는데.. 초가집도 있었고.. 동란 후 한때 팔판동 당고모 댁에서 기거했던 인연으로 종종 팔판동으로 놀러다녔다, 왜냐면 동갑인 고종육촌과 배포가 잘 맞아서..ㅎㅎ)
(중1때 이 동네 감천당 아이스케키 집에서 케키와 통을 받아 어깨에 둘러메고 하루종일 팔아 몇백원인가 벌었던 적이 있었다. 다 팔고 저녁에 계동 집에 돌아가 큰어머니에게 자랑스럽게 나의 무훈을 보고했다가 지독하게 야단맞은 일도 있었다는.. 아 그리운 그 시절이여..! )
다시 덕수궁 미술관으로 가서 지난 세월 쟁쟁했던 화가들의 그림을 둘러보았다.
덕수궁은 가을의 막바지를 알리고 있었다.
지나간 여름의 꿈에 아쉬운 작별을 고하는가
다가올 겨울의 뿌듯한 만남을 노래하는가
아름다운 단풍의 향연을 펼치고 있고..
오랜만에 보는 지나간 예술가들의 작품과 이름을..
그 역사 문화의 흔적을 더듬다보니 감회가 새롭다.
그 빛나는 이름들을 어찌 다 나열하랴..
구본웅, 이인성, 이상범, 이응노, 박노수, 이세득,
김기창, 박내현, 천경자, 도상봉, 장두건, 김인승, 윤중식,
유영국, 최덕휴, 남관, 한묵, 권옥연, 박상옥(우리 은사님),
박고석, 김영주, 장욱진, 이중섭, 이수근.. 끝없이 떠오르는 이름들..
나는 그 이름들과 더불어 내 청춘의 시작과 끝을 같이 하였다..
점차 잊혀져가는 수많은 추억들이 그들의 그림과 얽혀있는데
그들의 그림을 보니 다시 젊은 추억들이 살아나오는구나..
괴롭고 아리고 달콤하고 씁쓸하고 떨리면서 그립기도 한이런저런 추억들이 뒷꼭지 말초를 자극하누나.. 허
박노수 화백.. 청색 녹색을 좋아하던 한국화의 대가.. 탤런트 이민정의 외조부그가 살던 송석원 건물을 서울시에 헌납(?)하였는지.. 지금은 종로구립미술관(박노수미술관)이 되어있다.그거 원래 친일파 윤덕영이 제 딸을 위하여 지어 준 집인데..해방후 한때 병원으로도 사용.. 어릴 때 내가 옥인동 우리동네에서 놀다 자전거에 치어 입술과 이마가 찢어져거기서 수술도 하였는데.. 복도에는 붉은 금붕어가 어항 속에서 몇마리 놀고 있었지.. 아픈 나의 눈에 띈그넘들의 유유자적하던 예쁜 모습은 아마 내가 죽을 때나 나의 뇌 속에 묻혀서 함께 사라질 테지..ㅎㅎㅎ내가 태어난 우리집과는 불과 50여 미터 정도 거리였던가.. 지나간 역사가 아프게 다가오네.. ㅋ
[윤덕영의 초호화 별장 ‘벽수산장’이 있던 곳이다. 정조 때 만든 정원인 ‘송석원’이 있던 자리를 윤덕영이 사들여 프랑스풍의 초호화 별장을 지었다. 벽수산장은 1966년 화재로 사라졌지만 석축 등 일부분이 곳곳에 남아있다 :
네이버 참조 - Chosun Biz 2013. 12. 5 (목)]
(이 '송석원'의 발음이 어린 내 귀에는 '송수관'으로 들려서 한참동안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다는.. ㅎㅎ)
남관 화백.. 나의 은사..홍대대학원에서 그 분의 지도를 한 학기인지 두 학기인지 받았었지..(대학원을 두 개나 다녔지요 ㅎ)김원, 박서보, 이일..등등 몇몇 분의 선생들과 얽힌 얘기는 생략하기로 하고..(이일 선생과는 술을 많이 마셨다..^^)
그 때 동문수학하던 친구 중에는 안병석(테마:바람-보리밭, 중대미대교수-이젠 정년하였겠지만)여운(한양여전교수-작고-용환준 부군과 동료 친구), 이옥련(재독 작가), 김점선-무척 유명했었는데 역시 암으로 작고) 등등이 있었는데.. 은사께선 우리 타대학 타전공 출신들한테 용기를 주셨었지.. 학부에서 그림 아닌 타분야 전공한경력이 오히려 작품 창작에 또 다른 이점이 될 수 있다고.. 요즘 말로 '발상의 전환' 차원이랄까.. ㅎㅎ훌륭하신 선생님께서도 별세하신지 벌써 한참 지났네..
(이 참 그러고보니 옥련이 점선이 요뇬들이 수유리 어딘가에 화실을 갖고 있었는데 찾아가 그림도 함께 그리고 술도 함께 마시고 좁은 방에 나란히 누워 함께 잔 일도 있었지.. 내가 가운데 누워서..ㅋㅋㅋ..술 많이 마시고 먼저 곯아떨어졌지만.. 아마도 요 계집애들의 묘한 질투심을 배려했던 나의 깊은 속이 작동하였었겠지..? ㅎㅎㅎ ^^)
박고석 화백..한 때 한 그룹이 되어 고대 앞 화실에서(제대후 복학 때) 누드 크로키를 서너달간 같이 그리기도 하였는데..신문연재 삽화를 그리시기도 하였고..필치가 투박하고 서민적이어서 편안한 화풍을 보여주던 분. 누드 역시 그런 화풍을 벗어나지 않더이다.. ㅎㅎ
나야 뭐 별로 특징도 없는 무미한 그림을 그렸을 뿐이지만.. ㅎ
(이 누드 크로키를 그리고 이 해(1973년)2월에 때늦은 졸업(고대 불문과)을 하고(군생활이 길었기에-김신조 덕분) 바로 3월에 홍대대학원회화과(서양화전공)에 입학하였다. 고대대학원불문과에 다시 입학한 건 한참 후의 일이다..ㅠㅠ)
이상훈, 박철준, 정병관, 박상옥, 이용환, 안영일 화백들은 우리 왕십리 학창의 은사들이시다.참으로 인자하신 이상훈 선생님은 나의 혼례 주례를 해주셨고..
정병관 선생은 파리에 계실 때 나와 편지도 주고받고 하였다.고2 때 프랑스어학원(충무로 C.E.F)에서 불어 배우려 오신 선생님을 졸업이후 처음 만나뵈었는데 말하자면 불어공부는 나의 후배이신 셈.. 결국 불어를 배우시고 나보다 훨씬 먼저 도불하셨고 그래서 나와 편지 왕래가 몇차례 있었다(편지도 불어로 써서 보내주셨다 ㅎㅎ) 나중에 이화여대 교수하실 때 파리에서 또 만나뵌 적이 있다. 들라크르와 박물관 앞에서.. ^^
박상옥 선생께선 목우회 회원.. 교실 하나를 화실로 쓰시면서 그 옆방은 미술부 학생용 화실..여기서 김일평, 임수영, 장공자 등과 함께 데생도 하고 수채화도 그리고 하였지..나의 석고 데생을 보시고 칭찬도 해주셨었는데..^^선생님 화실에는 커다란 황소 그림과 아름다운 서울시내 전경 그림이 벽에 기대어 놓여있기도 하였다.일평과 수영은 뭐가 그리 급한지 이미 세상을 떠났고..아마 공자는 나와 마찬가지로 미대 진학을 단념하였나보다..
안영일 선생은 내게 석고 소묘(데생)를 가르쳐주신 분이다. 묘하게도 우리 동네 계동으로 이사를 와서 화실을 열었을 때 가서 그림을 배웠는데 나중에왕십리로 오셔서 학교에서 다시 만나뵙게 된 묘한 인연이 얽힌 분이다..허..
정환섭 선생은 안국동 서실에 찾아뵙고 인사를 올린 일이 있다. 그 분의 동생 필섭군은 병중 동창(중2때 전학옴).
그 밖에도 참 많은 추억, 화가들에 대한 다양한 기억들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듯하다.말하자면 장욱진 화백은 술에 취하셔서 갤러리에서 만난 나를 보고 히죽~ 웃어주셨던 기억..ㅋㅋ길거리에서 만난 김영주 화백의 깐깐하던 모습..이충근 화백 전시회에서 인사도 못올리고 쭈볏거리던 내 모습..우리동네 막국수집에서 만난 김기창 화백의 호방하던 모습..
고1 때 명동 시공관(국립극장) 음악회에 화구를 들고 들어가 관현악과 오보에 연주에 맞추어 그림을 그리다
나도 몰래 발광기가 도져서 극장 왼쪽 복도로 뛰쳐나와 간질병 환자처럼 바닥에 뒤집어졌을 때, 그 때 내 눈에 띈게
복도 벽에 걸려있던 김환기의 달과 산과 나무와 새 그림이었다.. '이놈아 그만 진정해라..' 라는 듯이 그림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헐.. 지금도 눈에 선하넹...... ㅋ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경복궁 북쪽 건물 국전에 전시되었을 때 보았다.
대통령상을 수상했던 작품이라 여러사람이 몰려있었지...ㅋㅋ
그 마눌님은 수필가 김향안으로서 본명은 변동림이고 꼽추 화가 구본웅의 이모(계모의 이복동생)인데 친구인 이상(李箱)이 연모하여 결국 둘은 결혼하였는데 4개월만에 이상은 뜻을 세워 동경으로 갔으나 27세에 요절하고.. 김향안은 7년 후 김환기를 만나 동거하다 1944년에 재혼하는데.. 집안의 반대가 심하여 변씨 가문과 인연을 끊겠다고 김향안으로 개명했다고 한다. 혼례 주례는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 사회는 시인 정지용과 화가 길진섭이 하였다 한다.
김향안의 수필집 '파리'를 학생 때 사서 읽은 적이 있는데 지금 아마 내 책꽂이 어딘가에 꽂혀있을 것이다..
고희동과 관계 있는 나의 어릴 때 일화는 다음으로 미루어야겠다.
어쩌다 화가와 그림에 얽힌 추억을 나열하게 되었는데 사실 요점은 그게 아니고,친구들과 즐겁게 밥도 먹고 고궁을 산책하고 사진도 찍고 잘 놀다 왔다는 것이다.마지막엔 황교장과 둘이 남아 북창동 골목에서 대구탕을 안주로 맛있게 한잔하고 헤어졌다는 점도 부언해둔다..ㅎ ^^.. (내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니까.. ㅋㅋㅋ).
첫댓글 추남(秋男) 추녀(秋女)들이 뭉쳤구랴. 한번쯤 참가해보려 해도 그리 만만치를 않소이다.그 많은 분들 성함 중에 우리 은사님들을 빼고는 박내현 화백(? 여성화가도 화백이라 하나?) 성함은 내 누님 중 한분의 친구셨기에 김기창 화백 성함과 함께 어릴 때부터 익숙하고.이 시간에 집에서 마눌이 틀어놓은 찬송가를 들으며 이렇게 한가하게 구는 것은 낮에 목사님들 몇몇과 함께 점심약속이 있어서인데, 청일점인 내가 만든 일정은 인사동에서 김치샤브샤브를 먹고나서 발마사지(또는 스포츠마사지)를 하는 것.귀족이라는 집이 제법 건전(?)한 마사지샾인데, 귀족이라고 해서 貴族인줄 알았더니 貴足입디다.
지난 가을 전주에서 김제 금산사로 향하다가 도중에 '귀신사'라는 고찰에 잠깐 들렸는데..뭔 절 이름이 귀신사라니.. 허.............. 가서 보니 '歸信寺'로 적혀있더만그려..ㅎㅎ아무튼 바쁘시구려.. 여성화가라는 표기가 참 반갑게 느껴지넹여류화가가 아니고.. ㅋㅋㅋ 한류가 높임말이 아니듯이 여류 또한 대접해서 붙인 말은 아니겠지요..?남성 무리의 변방에 있는 것이 '여''류' 아닐까 하오만..류에는 일류만 있는 게 아니고 삼류도 있듯이..ㅎ이런 류 저런 류에는 육류 어류도 있고 한류 여류도 있고.. 華類 和類는 없는지 모르겟구려..ㅎㅎ아 참 처음 쪽글에 성재가 댓글 단 걸로 착각하는 실수를 저질렀는데.. 참
참 나 이거 갈 때가 다 된 건지..허..ㄱ.. 아주아주 미안쿠려.. ㅠㅠ ^^*어쩐지 목사님들 이야기가 천주교 신자인 성재 이야기에 왜 나오는가 의아했는데도 다시 확인해볼 생각도 못하고..아마 어제 마신 술이 원인인 것 같소이.. 다시 한번 결례를 용서하시구려..사실은 '귀족'에 낚여서 (귀신사 이야기가 바로 떠올라 그 얘기부터 하기에 급급해서) 그리 된 게 아닐까 하오만..ㅋㅋㅋ
첫댓글 추남(秋男) 추녀(秋女)들이 뭉쳤구랴. 한번쯤 참가해보려 해도 그리 만만치를 않소이다.
그 많은 분들 성함 중에 우리 은사님들을 빼고는 박내현 화백(? 여성화가도 화백이라 하나?) 성함은 내 누님 중 한분의 친구셨기에 김기창 화백 성함과 함께 어릴 때부터 익숙하고.
이 시간에 집에서 마눌이 틀어놓은 찬송가를 들으며 이렇게 한가하게 구는 것은 낮에 목사님들 몇몇과 함께 점심약속이 있어서인데, 청일점인 내가 만든 일정은 인사동에서 김치샤브샤브를 먹고나서 발마사지(또는 스포츠마사지)를 하는 것.
귀족이라는 집이 제법 건전(?)한 마사지샾인데, 귀족이라고 해서 貴族인줄 알았더니 貴足입디다.
지난 가을 전주에서 김제 금산사로 향하다가 도중에 '귀신사'라는 고찰에 잠깐 들렸는데..
뭔 절 이름이 귀신사라니.. 허.............. 가서 보니 '歸信寺'로 적혀있더만그려..ㅎㅎ
아무튼 바쁘시구려..
여성화가라는 표기가 참 반갑게 느껴지넹
여류화가가 아니고.. ㅋㅋㅋ
한류가 높임말이 아니듯이 여류 또한 대접해서 붙인 말은 아니겠지요..?
남성 무리의 변방에 있는 것이 '여''류' 아닐까 하오만..
류에는 일류만 있는 게 아니고 삼류도 있듯이..ㅎ
이런 류 저런 류에는 육류 어류도 있고 한류 여류도 있고.. 華類 和類는 없는지 모르겟구려..ㅎㅎ
아 참 처음 쪽글에 성재가 댓글 단 걸로 착각하는 실수를 저질렀는데.. 참
참 나 이거 갈 때가 다 된 건지..허..ㄱ.. 아주아주 미안쿠려.. ㅠㅠ ^^*
어쩐지 목사님들 이야기가 천주교 신자인 성재 이야기에 왜 나오는가 의아했는데도 다시 확인해볼 생각도 못하고..
아마 어제 마신 술이 원인인 것 같소이.. 다시 한번 결례를 용서하시구려..
사실은 '귀족'에 낚여서 (귀신사 이야기가 바로 떠올라 그 얘기부터 하기에 급급해서) 그리 된 게 아닐까 하오만..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