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72)
청송홍매백자
‘도공’ 용래, 청송골에 가마터 지으니
동생 업은 열두살 소녀가 빌붙는데
산첩첩 골첩첩 청송골에 젊은이 하나가 들어와 여기저기 흙을 파보다가 무릎을 쳤다. 양지바른 산자락에 초막을 지어 제 한몸 눕히더니 막사를 짓고 물레를 들여놓고 가마를 앉혔다. 이른 봄에 시작한 공사가 만산이 홍엽으로 물들 때 마감됐다.
띄엄띄엄 다섯집이 사는 청송골에 외지 젊은이가 들어와 초막을 지을 때부터 토박이 화전민들이 기웃기웃 구경하더니 흙을 빚어 물레를 돌리고 가마에 불을 때 도자기를 구워내자 신기한 구경거리에 온종일 떠날 줄을 몰랐다.
그중에는 열두어살 먹은 여자애가 코흘리개 남동생을 업고 와 아침부터 저녁나절까지 가마에 붙어 살았다. 노인들은 이제 그 구경거리도 시들해져 발길이 뜸한데, 한결같이 하루도 빠짐없이 찾아오는 건 어린 동생을 업고 오는 여자애였다.
“네 이름이 뭐꼬?”
“내 이름은 홍매고 내 동생은 홍택이에요. 그런데 오빠 이름은 뭐예요?”
“나는 용래야, 민용래.”
도공(陶工) 용래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오빠’ 소리가 들어보니 이상하기도 하고 흐뭇하기도 하다. 용래와 홍매는 말동무가 되면서 점점 친해졌다.
홍매의 처지는 딱하기 그지없었다. 원래 홍매네도 청송골 다른 집처럼 화전민이었다. 두해 전 홍매 어머니가 십년 터울로 고추 달린 홍택을 낳아 홍매 아버지 입이 찢어졌지만 홍매 어머니는 산후독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장례를 치르는 둥 마는 둥 홍매 아버지는 간난아기 홍택을 포대기에 싸안고 십리나 떨어진 아랫동네로 젖동냥 다니는 게 하루일이 됐다. 두해 만에 홍택이 젖을 떼고 밥을 먹자, 술로 세월을 보내며 금실 좋던 마누라를 그리워하다가 보부상이 돼 일년이면 한두차례 집에 들르곤 한다.
도자기 빚는 날이 아니면 용래는 온산을 헤집고 다녔다. 하루는 송이버섯도 따고 머루·다래도 한망태 따서 돌아오니 해가 졌다. 그걸 싸들고 초롱불빛 따라 홍매네 집으로 갔더니 싸늘한 냉방 관솔불 아래서 남매가 누룽지를 먹고 있었다.
겨울은 한발 한발 다가오는데 홍매네 집 처마밑엔 장작도 몇토막 남지 않았다. 늦가을이면 집에 돌아와 겨울나기 준비를 해 놓고 떠나던 홍매 아버지는 그해는 오지도 않고 소식도 없었다.
며칠 후 홍매 남매는 용래네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용래는 한여름에만 초막집에서 지내고, 봄·가을·겨울은 가마에 기대어 달아낸 뜨끈뜨끈한 방이 거처다.
홍매와 홍택은 너무 좋아했다. 용래는 가끔씩 꿩도 잡아오고 산토끼도 잡아와 셋이서 고기잔치를 벌였다.
삼남매처럼 오손도손 살아가는 이 집에 세월이 끼어들었다. 삼년이 흐르자 홍매가 열다섯이 되고 용래는 스물한살이 됐다. 홍매 얼굴은 꽃처럼 피어오르고 치마끈을 바짝 조여도 가슴은 부풀고 엉덩이는 솟고 골짜기는 깊어졌다. 용래가 흙벽돌을 찍어 방을 하나 더 달아내 딴방을 쓰자 홍매의 얼굴에 실망의 빛이 역력했다.
용래의 청송백자가 이름을 얻기 시작했다. 아쉬운 것은 백자에 문양이 전혀 없는 것이다.
용래가 가마로 들어가기 전 백자에 철화로 매화가지를 그리고 진사로 붉은 매화를 그렸지만, 천지신명은 용래에게 모든 재주를 다 주지는 않았다. 그림을 그려도 맘에 차지 않아 초벌구이도 하기 전에 깨뜨려버렸다.
어느날 산속을 헤매다 돌아왔는데 깨뜨린 도자기 반쪽에 그려진 매화 그림이 용래의 눈을 사로잡았다. 홍매가 그린 것이다. 용래는 홍매를 얼싸 안았다. 홍매도 용래의 허리를 깍지꼈다.
용래는 도자기를 매고 삼십리 밖 저잣거리 서화상·골동품상까지 갈 필요가 없어졌다. 그들이 청송골로 찾아왔다. 장터에서 보리 한자루를 사서 매고 오는 일도 없어졌다. 쌀장수가 황소 등에 쌀가마를 싣고 올라왔다.
봄비가 주룩주룩 오는 날 밤, 이웃 황씨 댁에서 닭볶음탕에 좁쌀술을 얻어마시고 돌아와 젖은 옷을 벗어던지고 이불속으로 들어갔던 용래가 깜짝 놀라 튀어나왔다. 홍매가 속치마 하나만 걸치고 누워 있었던 것이다.
며칠 후, 동네 사람만 모인 가운데 따뜻한 혼례식이 치러졌다. 홍매는 열여섯살, 용래는 스물두살. 신랑신부는 그렇게 기쁜 날 눈물만 흘렸다. 용래의 눈물 속엔 만감이 교차했다. 조실부모하고 어린 거지가 돼 겨울에 얼어죽지 않으려고 도자기 가마에 기대어 잔 게 인연이 돼 도공 밑에서 물레를 돌리며 살아온 일이 꿈처럼 떠올랐다.
혼례식을 올리고 사흘 만에 홍매 아버지가 초췌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다리를 다쳐 어느 주막에 몇년 동안 마당쇠로 있다가 절뚝거리지만 걸을 수 있어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또 한번 동네잔치를 했다.
용래가 동네의 숙원이던 다리를 놓았다. 장마 때만 되면 떠내려가버리는 징검다리를 뜯어내고 석공들을 불러 돌다리를 놓았다. 용래가 빚고 홍매가 그린 청송홍매백자는 궁궐까지 들어갔다. 여섯살이 된 홍택은 물레를 돌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