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은 한글로 소설을 써 노벨문학상을 받았고,
나는 할머니에게 한글을 가르쳐
가톨릭일꾼/2024.10.13일/김선주 칼럼
모르는 여인에게 전화가 왔다. 자신은 영동에 있는 요양원의 원장이며 순복음교회 권사라고 소개한다. 그러면서 익숙한 이름을 불쑥 꺼내든다. “성갑순 할머니 아시지요? 아니, 그 할머니가 글쎄 눈만 뜨면 목사님 얘기를 하시네요. 휴대폰에도 1번이 아들이나 딸인 줄 알았더니 목사님 번호네요.” 그녀의 요청은 한 번 면회를 왔으면 하는 거였는데 그 얘기를 내가 부담 느끼지 않도록 돌려서 말하고 있었다. 이런 말하기와 글쓰기는 인간만의 고유한 문학적인 장치다.
성갑순 할머니는 내가 영동의 시골교회에서 목회할 때 처음 교회 나오신 분이다. 그녀와 몇몇 할머니들이 함께 교회에 나오게 됐다. 그런데 교회에 나오기 시작한 할머니들은 마을 사찰에 모셔져 있는 자기 영감과 시어른들의 위패를 회수해서 폐기하고 제사를 없애버렸다. 내가 그렇게 하라고 말한 것도 아닌데 약속이나 한 듯이 노인들이 다 그렇게 했다는 말을 노인정에 가서 들었다. 절에서 제사 지내주고 위패 하나당 한해에 받는 금액이 3백만 원씩은 되었으니 주지스님은 나 때문에 큰 손해를 보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오가다 만날 때마다 교회는 잘 되시냐고 넌지시 물어보던 것이, 동종업계 종사자로서의 동병상련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당신이 우리 고객을 빼가고 있다’는 암시였던 것이다. 나는 한 번도 교회 나오시라고 권유한 적이 없는데...
나는 할머니들을 위한 한글학교를 열고 한글과 숫자를 알려드렸다. 그리고 숫자와 덧셈 뺄셈을 알려드리고 전화 거는 법과 시내버스 번호 보는 법을 알려 드렸다. 그 중 제일가는 우등생이 성갑순 할머니였다. 그는 영특하고 바지런한데다 명랑한 천품을 가진 분이다. 다른 이들보다 공부가 앞서서 성서 필사를 시켰는데 글씨는 또 얼마나 이쁘게 또박또박 잘 쓰시는지, 일 년도 안 되어 성서 한 권을 다 필사하셨다. “국민핵교 문턱에도 몬 가바서 눈뜬 장님맹키로 살었는데 목사님이 내 눈을 뗘 줘서 월매나 고매운지 몰라요, 아이고~”
나는 할머니들에게 교회의 직함을 주지 않았다. 한 사람의 자연인,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한 사람에게 제도 종교의 직제에 따라 직함을 부여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아름다운 사람으로 바라보고 싶었다. 내가 교회를 떠나온 후 후임자는 할머니들에게 줄줄이 직함을 부여했다. ‘집사’라는 그 낯설고 괴이한 딱지를 붙여 순수하고 아름다운 그들의 인간됨에 색칠을 해 버렸다.
그들은 나에게 교인이나 성도, 집사 따위로 부르기엔 너무 아름답고 소중한 사람들이었다. 한 사람에게서 여인의 느낌과 어머니의 느낌, 친구의 느낌, 할머니의 느낌, 어른의 느낌, 여리고 순박한 소녀의 느낌 등, 복합적인 감정을 선물한 것은 그 할머니들이었다. 그 중 특히 성갑순 할머니는 자식들에게 받은 용돈을 꼬깃꼬깃 꼬불쳐 뒀다가 나에게 생활비 하라고 눈을 찔끔 감으며 찔러 주시곤 했다. 교회에서 받는 내 생활비가 당신이 자식들에게 받는 용돈의 반의반도 안 된다는 사실에 늘 가슴아파했다. “고래가지고 워떠케 살아요, 목사님, 아유~”하면서 만날 때마다 안쓰러워 생마늘처럼 아린 눈빛으로 나를 보곤 했다.
요양원에서 만난 우리는 서로를 얼싸안고 펄쩍펄쩍 뛰었다. 후임 목사님에게 방해 될까봐 일부러 연락도 안 하고 살았다. 요양원에 계시니 교회와 거리가 멀어져 이젠 찾아가도 되겠다 싶어 이제야 갔는데, 할머니를 만나고 나니 내가 죄를 지은 것 같았다. 목회가 뭐라고 사람의 인연까지 이렇게 잔인하게 끊고 살았나 싶어 교회니 목사니 하는 이런 짓거리에 환멸감이 들었다. 사람보다 더 중한 것이 교회인가. 사람보다 더 중한 것이 목회인가. ‘중한 것이 뭔디, 이런 제기랄~’이란 말이 목구멍에서 불쑥 올라왔다.
할머니는 치매가 와서 기억들이 얼키설키 꼬여있었다. 친정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해 종이 쪼가리에 적어놓고 그것이 너덜거리도록 간직하고 계셨다. 그리고 작고 낡은 수첩에 일상에 필요한 전화번호들이 떠듬떠듬 적혀있었다. 수첩의 맨 앞 페이지에 내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다음 페이지에 첫째 아들, 큰딸로 이어지는 전화번호들이 늦깎이로 배운 글쓰기 솜씨로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했던 아름다운 추억들도 그의 기억 속에 또박또박 이쁜 글씨체로 남아 있었다. 목구멍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났다.
그런데 아까부터 자꾸 손지갑을 만지작거리시는 게 수상하다. 기어이 지갑에 있는 돈 모두를 꺼내서 나에게 꼭 쥐어준다. 이것이 그의 전 재산이라는 걸 담박에 알아차렸다. 완강하게 거절했다. 그가 요양원에서 돈 쓸 일이 없는 줄은 알지만 쓸 데 없는 돈이라도 지갑에 몇 푼 있을 때 심리적으로 위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은 내가 받아서는 안 될 일이었다. 할머니와 실갱이를 하다가 갑자기 꽃봉우리가 화악 피어나는 기쁨이 찾아왔다. 할머니가 쥐어준 돈을 들여다보고서야 말이다. 그것이 한국은행에서 발행한 진폐가 아니라 애정은행에서 발행한 모조 지폐라는 걸. 나에겐 모조 지폐지만 그에겐 진짜 돈이다. 그것으로 차비라도 하시라고 내 손에 쥐어주시는 손에서 인간의 마지막 체온을 느꼈다. 자신의 전 재산을 물려주고 싶은, 나는 당신의 아들이며 친구였다. 애정은행’, 그렇다, 성갑순 할머니는 나의 애정은행이고 나는 그의 애정은행이었다. 한강은 한글로 소설을 써 노벨문학상을 받았고, 나는 할머니에게 한글을 가르쳐 그의 전 재산을 받았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다른 요양원에 김부돌 할머니가 계신다 해서 그곳도 면회를 갔다. 우리는 서로 강아지처럼 볼을 부비며 눈물을 글썽였다. 반갑고 사랑스럽고 고맙고 이뻐서 눈물이 났다. 뜨거운 눈물이 목줄을 타고 내려왔다. 눈물은 참 뜨겁다.
김선주 목사
<한국교회의 일곱 가지 죄악>, <우리들의 작은 천국>, <목사 사용설명서>를 짓고, 시집 <할딱고개 산적뎐>, 단편소설 <코가 길어지는 여자>를 썼다. 전에 물한계곡교회에서 일하고, 지금은 대전에서 길위의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