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水雲文集, 道源記書 乙亥 十月十八日조에 “俱製冠服以仙道創始”라 했다. 侍天敎宗繹史, 法冠 四圍高三層 中盖正圓 前後葉圓而較 左右葉尖而較低 色或紫或黑 內貼藍網而 無定色 法服 正邪幅 前五後四 袂身直經 一尺三寸 縱經七寸 袂後方 直貼 於 前後 幅兩縫問 袂口僅容覆手 法帶廣二寸 圍二尺餘, 袂口於 右腋下 前垂二穡 廣亦如之長稱身 色純黑
현재 활용되고 있는 예복은 포덕 109(1968)년 전국대의원대회의 결의로 제정되어 포덕 111년6월 11일 종무위원회의 및 기관 연석회의 결의를 거쳐 전국에 공고되어 활용되고 있다. 색은 검은색이며 가슴부위에 노란색 궁을장을 부착했고 모양은 두루마기와 가운을 절충해서 편리하게 착용토록 했다.
⑨ 제의규범(祭儀規範)16)
포덕 25(1882)년 10월 28일 해월신사께서 제61회 대신사 탄신 향례(大神師 誕辰 享禮)를 기하여 다음과 같이 제의규범(祭儀規範)을 정하였다.
<제의규범(祭儀規範)>
1. 목욕재계(沐浴齊戒) 1. 예복환착(禮服換着) 1. 고천(告天), (심고) 1. 초학주문(初學呪文) 3회 낭독 1. 강령주문(降靈呪文) 3회 낭독 1. 본주문(本呪文) 3회 낭독 1. 축문(祝文)낭독 1. 고천(심고) 폐식
이 때부터 의절의 체계가 구체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 같다.
⑩ 향아설위(向我設位)
포덕 38년(1897)년 4월 5일 해월신사께서는 오랫동안 숙제로 삼아왔던 벽(壁)을 향해 차려놓던 제수설치법을 나를 향해 차려놓도록 바꾸어 놓았다. 이를 향아설위라고 한다. 경기도 이천군 설성면 수산리 앵산동(利川郡 雪星面 樹山里 鶯山洞)에서 71세 때에 이처럼 제수설치법의 일대변혁을 단행한 것이다. 이후 동학의 모든 제례의 제수는 오랫동안 벽을 향해 차리던 것을 나를 향해 차려 놓고 올리게 됐다. 이 향아설위제는 오랫동안 생각한 끝에 내려진 결단이었다고 생각된다.
교훈가에 “네몸에 모셨으니 사근취원(捨近取遠)하단 말가”라고 하신 말씀과 한울님을 내 몸안에 모셨다는 시천주(侍天主) 정신으로 볼 때 벽을 향해 제례를 지내는 것은 어딘가 석연치 않았던 것이다. 해월신사는 설법에서 “부모의 정령(精靈)은 자손의 심령과 융합하였을 것이요, 선사(先師)의 정령은 제자의 정신에 융합하였을 것이라 - 아(我) 부모를 위하든지 선사(先師)를 위든지 향사(享祀)할 시에 그위(位)를 반드시 아(我)에게 향하여 설함이 가하다”고 하셨다.17)
⑪ 수도의 절차(節次)
천도교서(포덕 61(1920)년 천도교 교리강습회 교재)와 기념사보(천도교 중앙총부 105년 발행)만 보더라도 동학초기의 수도절차를 알 수 있다. 천도교서(天道敎書)에 수록된 수도절차 내용은 앞의 천도교 의절의 유래에서 언급한 바 있다. 기념사보를 보면 수계(修誡)에 “일정한 과목으로 오계 혹은 십계등의 정칙(定則)이 있는 것이 아니고 대신사의 법설 또는 임시 훈계로 제자들에게 들려준 바를 종합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번복지심 두게 되면 이는 역시 역리자요, 물욕교폐 되게 되면 이는 역시 비루자요, 헛말로 유인하면 이는 역시 혹세자요, 안으로 불량하고 겉으로 꾸며 내면 이는 역시 기천자라.” “간음하지 말라. 악육(惡肉)을 먹지 말라.” 뒷짐지지 말라. 일체 몸에 해로운 것은 하지 말라.” 그리고 윤리적 방면에 있어 적극적으로 권면한 말씀중 중요한 것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1. 충효(忠孝)를 주로 하라. 2. 사람을 한울같이 섬기라 3. 부부화순(夫婦和順)하라. 4. 의관(衣冠)을 정제(整齊)하라. 5. 음식을 공경히 먹으라. 6. 청결을 중히 하라. 7. 매사에 성경신(誠敬信)을 다하라. 8. 수구여병(守口如甁)하라. 언어(言語)의 경신(敬愼)18)
현재는 주문을 외우면서 수심정기(守心正氣), 성경신(誠敬信), 이신환성(以身換性)을 수도의 요체(要諦)로 하고 위의 수계(修誡) 사항을 지키는 동시에 주로 사계명, 참회문, 팔절, 여덟가지수칙, 십무천(十毋天), 임사실천십개조(臨事實踐十個條) 등을 실천 요목으로 삼고 있다.
⑫ 입교문(入敎文)
천도교 종령집(天道敎宗令集; 혁암조기주 편저. 128.8.1)에 수록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신사께서 개문납객(開門納客)하신 신유(辛酉) 6월에는 입교문이란, 특정한 양식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사연설법 기미기여(肆筵說法 其味其如)”라고 하였으니 만큼 길이 한울님을 모시고 지성으로 도를 닦고 지키겠다는 중한 맹세를 하게 한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내용은 알 길이 없다. 그 후 해월신사 시대에 이르러는 성문(成文)의 입도문이 있었으며 포덕 41년 4월 23일 종령제 23호로 개정한 입도문(入道文)은 다음과 같다. (천도교백년약사(上), 318쪽)
<입도문(入道文)>
龍潭水雲大先生主无極大道大德 無爲化氣 永侍布德劍岳 海月先生主无極大道大德 無爲化氣 永定布德 北接大道主无極大道大德 無爲化氣 永知奉命聖心傳授无極大道大德 無爲化氣 奉命奉受年 月 日
입교식 후에는 전교인(傳敎人)이 수교인(受敎人)과 같이 형편에 따라 3일, 7일, 21일 또는 49일의 치성(致誠)을 드리게 되어있는데 이 때에는 평생주문(平生呪文) 21회 후에 축문(祝文) 3회를 봉독케 하였다. 그리고 신입교인이 3개월간 성신(誠信)을 지켰을 때는 참회식(懺悔式)을 봉행케 하고 축문(참회문)을 봉독했다.
<祝文>
姓名 … 生居朝鮮 處人倫 叩感天地盖載之恩 荷蒙日月照臨之德 未曉歸眞之路 久沈苦海 心多忘失 今玆聖世 道覺先生 懺悔從前之過 願隨一切之善 永侍不忘 道有心學 幾至修煉 今以吉朝良辰 淨潔道場 謹以淸酌 庶需 至誠 至願 奉請尙饗
이것을 포덕 50년 4월 20일 부구총회(部區總會)의 결의로 축문의 말미 일부 문구를 “今以吉辰 淨潔道場 至誠至願 奉請感應”으로 바꾸고 축문(祝文)을 참회문(懺悔文)으로 바꾸었다. 포덕 47년 2월3일에 종령(宗令) 제3호로 입교문(入敎文)을 개정하니 그 원문(原文)은 다음과 같다.
<宗令第 3號>
入敎文에 揭明한 淵源次序에 直接薦引한 人의 氏名이 不載하여 薦人 及披 薦人에 兩間澹 이 亦繫人情小缺이라 自今으로 大敎領奉名布德下에 薦人의 氏名 添入하는 例를 左具公宣하니 準此照驗하여 爲敎門宗規이다.
淵源(薦人氏名) 无極大道大德 無爲化氣奉 信布德
※ 上記 二行을 添入한 入敎文은 다음과 같다.
<入敎文>
龍潭水雲大先生主无極大道大德 無爲化氣 永侍布德爲天主 顧我情 永世不忘 萬事宜 至氣今至 願爲大降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 萬事知 劍岳 海月先生主无極大道大德 無爲化氣 永定布德 大道主 義菴先生主无極大道大德 無爲化氣 永知布德 大敎領 姓名 某无極大道大德 無爲化氣奉 命布德 淵源 某 薦人 某无極大道大德 無爲化氣 奉信布德 某地(住址) 受敎人某 无極大道大德 無爲化氣奉 敎布德 年 月 日
입교식장은 아래와 같이하다.
東 청 수 촛 대 촛 대 향 노(香爐) 예 폐(禮 幣) 예 석(禮席) 西
그 후 입교문이 몇 차례 바뀌게 되었다. 포덕 66년 6월 30일 개정된 의절의 입교문19)
<入敎文>
水雲大神師無極大道大德 無爲化氣永 侍布德海月神師無極大道大德 無爲化氣永 定布德義菴聖師無極大道大德 無爲化氣永 知布德傳敎人 (氏名) 無極大道大德 無爲化氣奉 信布德受敎人 (氏名) 無極大道大德 無爲化氣奉 敎布德 布德 年 月 日
포덕 68년 2월호 천도교회월보에 개정 발표한 입교문20)에는 春菴 先生, 無極大道 大德無爲化氣奉命 布德이 추가되었고 포덕 87년 3월 21일 개정된 의절의 입교문21)에는 天宗水雲大神師, 道宗海月神師, 敎宗義菴聖師, 法宗春菴上師로 하였으며 포덕 66년 이후 몇 차례 의절 증보 재판이 있었으나 대동소이 하므로 여기에는 생략한다.
포덕 109년 4월 5일에 개정 발포(發布)한 의절(儀節)에는 입교문을 전폐하고 수교인 서천문(受敎人 誓天文) 낭독을 하게 되어 있다. 서천문은 다음과 같다
<서천문>
제가 일찍이 한울님의 은덕으로 만물의 영장으로 태어나는 영광을 입었사오나 오랫동안 혼탁한 세상물결에 잠겨서 참된 길을 찾지 못하였던바 다행하게도 …의 지도에 의하여 오늘 천도교에 입교하므로써 참된 길을 걷게 하여 주신 은덕을 영원히 받들어 잊지 않겠습니다. 이제부터 교회의 지도에 따라 주문, 청수, 시일, 성미, 기도 등의 오관을 철저히 실행함으로써 길이 한울님을 모시기로 맹세하오니 한울님과 스승님 감응 하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