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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찾아 광교산으로
임 애 월 (시인, 한국시학 편집주간)
임병호 시인은 수원의 토박이 시인이다. 수원에서 태어났으며, 70년이 넘는 세월을 오롯이 수원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임병호 시인의 수원 사랑은 참으로 유별나다. 수원 곳곳의 명승지는 물론이고 산과 호수와 동네 골목골목까지 시인의 시선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고향을 향한 시인의 무한애정은 작품을 통하여 무시로 나타난다.
1975년 첫 시집 상재 이후 스물 한 권의 시집을 펴낸 시인은, 그 동안 써놓은 수원 관련 시 150여 편 중에서 90여 편을 묶은 시집 『광교산 가는 길』을 펴낸다. “지면에서 물 水자만 봐도 반갑다”고 이 시집의 冒頭에서도 밝혔듯이 시인의 수원 사랑은 지고지순하여 차라리 눈물겹기까지 하다.
1. 빛의 근원인 광교산
고려 태조 왕건이 광교산에서 솟구치는 환한 빛을 보고 가르침을 얻었다는 전설도 있듯이 수원의 광교산은 빛을 상징한다. 빛은 진리이고 희망이며, 임병호 시인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존재의 근원이다. 『광교산 가는 길』, 그 길은 존재의 근원을 찾아가는 시인의 긴 여정일지도 모르겠다. 그 길을 왜 가야하는지는 알 필요도, 굳이 물을 필요도 없다. 그저 시인의 안내하는 대로 한번 따라가 보려한다.
광교수변로 따라가면
원근법으로 다가오는
3월을 만난다.
멀리서 보면
더욱 선연한
나무들의 체온이여
과수원 길
보리밭 둔덕에
햇살이 쌓이고
문암골
느티나무
봄빛이 완연하다.
그리운 사람 만날 수 있을까,
가슴 설레며
광교산 가는 길
시루봉, 형제봉, 종루봉
산정에서
세월이 미소 짓고
골짜기 푸른 물소리
숲속 새소리, 산수유꽃, 진달래가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데
하늘 품은
광교호 둘레길
벚꽃나무 사이로
수원여객 13번 버스가
광교산
봄소식 싣고 돌아간다.
- 「광교산 가는 길」전문
광교산(해발 582m)은 수원의 진산이며 시인의 영혼 속 진산이기도 하다.
마음 한 구석이 외로워서 무언가 든든한 곳에 기대고 싶을 때, 시인은 광교산의 넓은 품에 기대어 위로를 받기도 하였을 것이다. “산문에 들어서면 평안하고, 산정을 우러르면 삶이 푸르러진다”는 시인의 말을 통해 그것을 느낄 수 있다.
표제 시이기도 한 이 작품에서 3월=나무들의 체온=햇살=봄빛=봄소식이라는 긍정의 등식을 통해 그가 광교산에 기대고, 광교산을 사랑하며, 광교산에 가는 이유가 나타난다. 그것은 곧 “그리운 사람”으로 상징되는 빛(진리)을 통한 존재의 근원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광교산의 기운을 빌어 “푸르”른 현재의 시간을 향유하고 싶은 작은 욕망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광교산”은 시인의 내적사유의 진산이 된다. 광교산에 가서 감성의 샘물을 가슴 속에 가득 채워 넣고 “봄소식 싣고 돌아가”는 13번 버스는 바로 시인 자신인 셈이다.
그 옛날 한 사람의 푸른 청년이 있었다
동굴 생활 백일이면 넓은 소망 이룬다고
수원 광교산 유곡에서 곰처럼 살았다
소름 못이 그 광교산 비경을 품고 있는 곳
꽃 피고 달 뜨는 호심에서 세월이 머물고
해 뜨면 영봉에 올라 하계를 내려다 봤다
광교산 산신령님이 지켜 주셨던 백일백야
소름못 맑은 물, 술 대신 마시고 취하고
달밤이면 하강한 선녀와 정담을 나눴다
그래도 사람 사는 세상이 그리워 밤이면
북두성 바라보며 눈물겨워 시름 달래고
아침을 기다렸다 다시 하산을 꿈꾸었다
반백년 전 시절처럼 깊고 맑은 봄 소름못
산목련 피어 옛날로 가는 길 향기로운데
산중 은거 백일 추억이 숲빛으로 푸르다.
- 「소름못」전문
소름못(小留池)은 광교산 산중에 있는 큰 연못이다. 지금도 산골짜기인데 50여 년 전이면 더더욱 깊고 깊은 산중이었으리라. 여기서 “그 옛날 한 사람의 푸른 청년”은 시인 자신으로 보인다. 사람으로 환골탈태한 단군신화 속의“곰”처럼, 시인은 마음 속 진산인 그곳에 스스로 자신을 위리안치 시키고 100일 동안 빛을 찾아 정진하며 살았나보다. 부조리한 이 세계와 어떻게 대결할 것인지, 혹은 화합할 것인지를 화두로 삼고 존재의 근원을 찾아가는 구도의 과정이었을까...
빛의 진원지인 광교산 소름못 근처 동굴에서 시작한 자신과의 싸움, 인적 하나 없는 고요하고 적막한 깊은 산중에 혼자뿐이라는 외로움, “광교산 산신령님이 지켜주셨”다는 구절에서 광교산에 대한 시인의 믿음이 얼마나 견고한지 읽어낼 수 있다. 좋아하는 술 대신 “소름못”의 물을 마시면 술 마신 것처럼 취해서 나뭇가지에 부서져 내리는 달빛이 하늘에서 “하강한 선녀”의 환상으로 보였음직도 하다.
어둔 밤마다 빛의 시간을 기다리며 하산을 꿈꾸고, 또 밤이 오고... 그런 고통의 시간 100일을 보내고서 결국은 다시 사람 사는 저잣거리로 돌아온다.
인간을 '세계-내-존재'라고 했던 하이데거의 명제처럼 인간은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없고 세계와 긴밀하게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러므로 사회로부터 받은 상처는 결국 사람 사는 세상을 통해서 구원받을 수밖에 없다. 그게 비록 한시적일지라도 사람을 통해 위로를 받으며 상처를 치유한다. 즉 빛의 시간은 사람의 무리 속에 섞여서 흐르고 있는 것이다.
50여년이 지난 지금 다시 돌아보면, 젊은 시절 치열했던“은거 백일”이 하나의 추억으로 “푸르”게 “향기롭”게 다가온다. 유행가 가사처럼 세월이 약이 되어 한 시절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게 있긴 있나 보다.
2. 맹목적인 수원 사랑
고향
하늘에서
뜨고 지는
해와 달은
가장 아름답다.
맨 처음
해와 달
우러러 본
고향.
아, 고향의
산천초목은
삼라만상 중에서
가장
푸르고 푸르다.
꿈속에서도
꽃 피고
새들 지저귀는
고향,
나의 영토여.
- 「수원별곡」전문
앞에서도 거론한 바 있지만 임병호 시인의 수원 사랑은 참으로 유별나다. “나의 영토”인 수원에서 뜨고 지는 해와 달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수원의“산천초목”은 “삼라만상 중에서/가장/푸르고 푸르다”라는 찬사는, 팔이 안으로 굽는다거나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는 정도를 넘어 맹목적인 고향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다음에 제시된 시 「수원의 꿈」에는 시인이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꿈꾸는, 사랑 하는 수원이 아주 잘 나타나 있다.
사람을 위하여 대지를 위하여 하늘을 위하여
청동기적 여기산에서 비로소 품은 영생의 꿈
온 누리 빛이 수원산하에 모여들어 눈부셨다
하늘이 보살피시어 만든 큰 고을 넓은 마을
광교산 팔달산 숙지산 여기산 칠보산 청명산
구름 속 봉우리마다 새 빛이 솟구쳐 올랐다
일찍이 화산 그 요람에 가꾼 영토 수원이여
성군 정조 효심으로 이룬 팔달기슭 신읍치
아, 백성사랑 어버이사랑 이웃사랑 펼쳤다
광교 발원 맑은 물, 동 서 남 북 흘러내려
물고을 가가호호 생명수로 밤낮 솟아오르고
축만제 만석거 제방 넘치도록 출렁거렸다
화홍문 칠간수, 남수문 구간수 폭포 이루고
사람들 가슴 적시며 젖줄처럼 흐르는 수원천
깊은 물결 옥수로 매양 철철 넘실거리는데
광교적설 화홍관창 용지대월 북지상연이여
팔달청풍 서호낙조 남제장류 화산두견이여
삼라만상 절경이다 신비롭다 수원팔경이여
천만억년 우리 강토 지켜주는 저 수원 화성
이끼 푸른 성벽 높은 누각 펄럭이는 깃발
화성행궁 화령전 가득 서린 순백의 민족혼
서로 돕고 믿으면서 먼저 양보하는 사람들
사대문 오고 가는 발자국 소리들 흥겨운데
복음처럼 열리는 금빛 내일이여 희망이여
이 나라 태평성세 여기 수원에서 이루리
수원 백성 자자손손 무궁무진 평안하리라
수원 하늘 수원 땅 산천초목 은혜로워라
한반도 고을 고을이 가족처럼 어울려 사는
瑞光의 꿈, 바야흐로 무르익어 비상하리니
천리만리 퍼져가는 아, 축복의 땅 수원이여.
- 「수원의 꿈」전문
“온 누리 빛이 수원 산하에 모여들어” “광교산 팔달산 숙지산 여기산 칠보산 청명산/구름 속 봉우리마다 새 빛이 솟구쳐 올”라 수원이 바야흐로 세상의 중심이 되게 한다. 빛의 근원인 광교에서 발원하는 물은 동서남북을 흘러 “가가호호 생명수”가 되고 ‘수원 화성’은 “우리 강토를 지켜주는”파수꾼이 된다. “이 나라 태평성세 여기 수원에서 이루리”니 “瑞光의 꿈, 바야흐로 무르익”는 “아, 축복의 땅 수원이여”라고 노래하는 시인의 수원 사랑에 대해 더 이상 무엇을 더 덧붙일 필요가 있을까.
임병호 시인에게 <수원>은 지상낙원이고, 유토피아이며, 이 지구의 중심이다. 시인은 그 피안의 세계에서 빛을 찾아 서로 나누고, 감사하고, 꿈꾸고 사랑하며 살고 있다.
3. 수원의 역사성을 문학적으로 승화
동녘을 품에 안고 밝아오는 수원 땅
팔달산 기슭 아래 백성들이 모여 살고
온 누리 빛이 모인 광교산 푸른 영봉
십 여리 버들 따라 수원천 흐르는데
격양가 드높다 옥야천리 넓은 들
화홍문 칠간수에 무지개 영롱하면
세월도 쉬어가는 방화수류 팔각정
만석거 맑은 호심 희고 붉은 연꽃이여
공심돈 소라각에 명월이 떠오르고
봉화대 힘찬 횃불, 나라 앞날 밝힌다
속세를 씻겨주는 광교산 계곡 옥수
낙락장송 팔달산에 백화천조 어울리면
어버이 향한 마음 두견으로 울어 예고
현륭 송충 깨문 아픔 비단잔디로 꽃 피는데
가이없는 효도의 길 거룩한 발자취여
뒤주 속 슬픈 생애 사도세자 그 통한
애달프다 임의 호곡 따라 울던 강산이여
배봉산 외로움을 마침내 불사르고
하늘 우러러 화산에 모신 어버이 혼 앞에서
극락왕생 길 밝히는 용주사의 목탁소리
백성 사랑 어진 뜻 삼천리에 펼치시며
어버이 위한 수원 화성 겨레 얼로 이룩하고
현륭원 오고 가신 능 행차 백리 길
지지대 고갯마루 피눈물에 젖을 때
초목들도 목이 메어 고개 숙여 흐느꼈다
돌 하나 기와 한 장 풀꽃에도 서린 효심
동서남북 사대문 깊은 역사 오고 가고
민족의 정기 성곽 따라 화성장대 오르면
연무대 천군만마 함성소리 드높은데
꿈인 듯 생시인 듯 구름 속의 수원 팔경
수원천도 크신 뜻 이승에서 못 이루고
불효자 죽거든 부왕 곁에 묻으라
오늘도 가슴 적시는 높고 깊은 임의 말씀
만백성 통곡소리 하늘가에 울렸는데
무릎 꿇어 숨죽인 청산이여 강물이여
머리 풀어 옷감 짜고 뼈 깎아 만든 바늘
살가죽 신을 삼아 어버이께 드리리라
천지의 햇살처럼 임의 숨결 영원한데
청솔 숲 바람소리 부모은중 일깨우는
찬연하다 이 땅의 빛, 아아 수원 화성!
-「아, 수원화성」전문
임병호 시인이 40여 년 전에 쓴 이 시는 수원화성의 역사적 의미를 한편의 사극처럼 서사적으로 풀어낸 명시이다. 수원에서 공연되는 연극이나 합창, 퍼포먼스, 시낭송 행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 시는, 이상길 작곡가가 교향곡으로 작곡하여 수원화성과 관련된 행사 때마다 널리 불리고 있는 수원을 대표하는 시라고 할 수 있다. 80년대에는 중·고등학교에서 교내 아침방송으로 이 노래가 자주 나갔다고 한다.
수원화성의 상징성을 대표하는 이 시가 수원의 어디에도 아직 詩碑로 세워지지 않고 있다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이다.
총 8연으로 된 이 시의 제1연은 수원의 아름답고 넉넉한 자연환경을 노래하고 있다. “온 누리 빛이 모인 광교의 푸른 영봉”에서도 보이듯이 “광교의 빛”은 수원시민들의 희망이며 안전하고 평화로운 나날이라고 필자는 읽는다.
‘낙락장송 팔달산’ ‘두견으로 울어 예고’ ‘비단 잔디’ 등에서 느껴지듯이 3연에서는 시각과 청각, 촉각으로 번져가는 점층적인 공감감적 이미지 구조로 아버지를 향한 정조대왕의 ‘송충 깨문 아픔’이 명치끝에 감각적 아픔으로 되살아나 읽는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4연에서는 굴곡의 역사 속에서 정치적 당쟁의 희생물이 되어 뒤주 속에서 죽어간 사도세자의 통한을 ‘극락왕생 길 밝히는 용주사의 목탁소리’로 승화시키고 있다. 이 어지러운 인간세계를 떠나 평화로운 극락정토로 혼을 인도하는 ‘용주사의 목탁소리’는 독자들의 심금을 조용하게 울린다.
필자는 지지대를 지날 때마다 이 시의 제 5연이 생각난다. 그곳에 서 있는 소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도 범상치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화산에 부왕을 모셔두고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그 고갯마루를 지날 때 몇 번이나 뒤돌아보느라 행차가 느려져서 ‘지지대’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곳. 그곳을 지키는 노송들이 정말 정조대왕의 슬픔을 함께 나누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이 시가 주는 강렬한 메시지 때문이다. 그게 바로 문학의 위대한 힘이기도 하다.
불효한 독자들의 가슴을 아프게 후벼 파는 부분은 이 시의 마지막 연이다.
우리들을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하고 키워주신 부모에 대해 우리는 사실상 모두가 죄인들이다. 부모가 보살펴준 것만큼 되갚아 봉양하는 자식들이 어디 흔할까마는 “머리 풀어 옷감 짜고 뼈 깎아 만든 바늘/살가죽 신을 삼아 어버이께 드리리라”에서는 울컥 치밀어 오르는 뜨거운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다. 물론 불효한 자신에 대한 후회와 반성의 눈물이다.
어느 문학행사에서 이 작품을 낭송했을 때 ‘몸에 소름이 다 돋더라’는 말을 행사 참석자들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시 한편이 주는 감동이고 힘이다.
불효자들에게 “부모은중”을 일깨워 참회의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이 시는 ‘효원의 도시 수원’이라는 이름에 참으로 걸맞는 명품시라고 하겠다.
천년 그리움이
달빛으로
피어오른다
화홍문 흐르는
수원천
푸른 물소리
가슴을 적시면
세월도
쉬어 가는
방화수류정
그리운 사람아
용지 호심에 떠오른
팔각정이
오늘 더욱 유정하다.
-「방화수류정」전문
수원팔경 중의 하나인 “방화수류정”은 숲과 호수를 아우르는 곳에 멋들어지게 자리하고 있어 그 풍광이 매우 수려하다. 화홍문 일곱 수문의 찬란한 물줄기가 굽이치며 수원천을 흐르는 용연 벼랑 위에서 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
원래 戰時用으로 지어진 건축물이었으나, “세월도 쉬어”갈 만큼 용도와는 어울리지 않는 아름다움을 뽐내는 정자이다. 달밤에 술벗들과 그곳에 간 시인은 수원천 물소리에 젖어 “천년 그리움이/달빛으로 피어오르”는 황홀경에 한잔 술과 함께 빠졌으리라. 그윽한 달밤에 방화수류정에 올라 단골 醉友들과 용지에 떠오른 달을 건지며 흥건하게 취흥에 젖는 시인의 모습이 눈에 삼삼하다.
귀신들도 몰랐다
동장대 서쪽 동암문
서장대 남쪽 서암문
서암문 남쪽 서남암문
팔달문 동쪽 남암문
동북각루 동쪽 북암문
수원 화성 지키기 위하여
수원 백성 지키기 위하여
수원 산천 지키기 위하여
바람처럼 구름처럼
달빛처럼 별빛처럼
산새처럼 안개처럼
城 안, 城 밖
암문으로 오고 갔다
가고 또 왔다
암문이 열리면 민심이 들어오고
닫히면 성곽,
청솔숲이 되었다
화성행궁 신풍루 軍旗들이 나부꼈다
둥 둥 둥 울리는 승전고 큰 북소리!
민초의 환호가 장안 사대문을 넘쳤다
누가 알랴, 알았으랴
암문이 열리고 닫히는 순간
팔달산 귀신들도 몰랐다.
- 「暗門」전문
화성에는 숨겨진 “암문”이 5개 있다고 한다. 주로 후미지고 으슥한 곳에 비밀스럽게 만들어둔 이 문을 통해 戰時에는 양식이나 물자 등이 “바람처럼 구름처럼” 적에게 발각되지 않고 슬며시 드나들 수 있게 하였다. “팔달산 귀신들도 몰랐”을 만큼 은밀히 드나들게 만든 수원화성의 구조는 지금 다시 봐도 참으로 놀라울 따름이다. <수원화성>이 여러 면에서 대단한 역사성과 가치를 지녔다고 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암문을 “귀신들도 모”르게 “수원 백성”과 “수원 산천”을 지키기 위한 장치라고 노래하는 시인의 ‘수원 사랑’은 이 작품에서도 드러난다. “암문이 열리면 민심이 들어”온다는 시인의 ‘수원 사랑’은 정치의 중심에는 항상 백성이 있어야 한다는 정조대왕의 ‘애민정신’과 서로 상통한다는 걸 느낄 수 있다.
4. 우만동 이야기
꽃인 양
다소곳이
이슬비를 맞으며
아내 혼자서
채마밭 김을 매고 있네
부끄러운
속살
젖어도
보조개 그리는
착한 눈매
다섯 살
막내딸이
호박잎 우산 들고
토끼처럼, 토끼처럼 뛰어오네.
-「우만동 빛」전문
우만동은 소가 살찌는 마을이다. 마을 이름에서부터 평화로운 기운이 흠뻑 느껴진다. 시인은 이 마을 산자락에 처음으로 내 집을 짓고, 채마밭을 가꾸고, 올망졸망한 자식들을 키우며 조촐하지만 평화로운 일상의 삶을 안착시킨다.
“이슬비” 내리는 날에도 “꽃인 양/다소곳이” 채마밭에 앉아서 밭을 매는 아내의 모습이 참으로 대견하고 흐뭇하다. 게다가 “다섯 살/막내딸이/호박잎 우산 들고/토끼처럼, 토끼처럼 뛰어오”는 모습은 삼라만상의 “빛”들이 우만동으로 모여들어 한 폭의 그림을 꾸며놓은 것처럼 아름답다.
소가 살찌는 마을에서 내 집을 마련하고 퇴근시간이면 “착한 눈매”의 아내와 토끼 같은 자식들이 마중 나오던 그 시절이, 시인에게는 가장 뿌듯하고 설레던 시절이 아니었을까 싶다.
바람이 푸르게 모여 살던
우만동 山이
포크레인에 피 흘리며 쓰러지고
점령군 보초병처럼 세워지는 전주들
허리 잘린
청솔 그루에 앉아서
아이들은
떠난 지 오랜
산새들 노래를 찾았다
물꼬에 살찐 송사리
개구리 울음
문전옥답
웅덩이에 떠오르던
달빛 속에서 잠들던
부엉이도 사라지고
시야에
난입하는
도심의 네온들
인근 산업도로 자동차 소리가
밤마다
추억을 깔아뭉개며 질주했다.
-「잃어버린 노래」전문
소가 살찌던 그림 같은 마을 우만동에도 산업화시대의 개발이라는 바람이 불면서 푸르던 산이 파헤쳐지고 “산업도로 자동차 소리가/밤마다/추억을 깔아뭉개며 질주하”는 이른바 아파트 건설 붐이 시작되었다. “바람이 푸르게 모여 살던/우만동 山이/포크레인에 피 흘리며 쓰러지고/점령군 보초병처럼”전주들이 세워진다. “달빛 속에서 잠들던/부엉이도 사라”져 밤새들의 노래가 끊이지 않던 산자락까지 “도시의 네온”불빛이 난입을 하고, 마을 아이들은 “잃어버린 노래”를 찾아 떠돌기 시작한다. “문전옥답/웅덩이에 떠오르던” 둥근 달이 기울고 제 짝을 부르던 “개구리 울음”도 사라져버린 마을, 소들은 풀을 뜯을 들녘을 잃었고, 빛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흙냄새 나는 사람들은
떠나고, 모두 떠나가고
허무가
누워 있는 마을
재벌 회사 공장부지 푯말에
가슴 찔린 전답이
죽음 곁에서 신음하고
그리웠다
거머리 떼어 내며
모내던 시절
몌밀꽃 밭 너머
수수 이삭 흔들며
참새 떼 몰려다니던 소리
품에 다시 안고 싶을 때
이태 째
허수아비 뼈다귀 뒹굴고
하루살이 들끓는
수만 평 유휴 농경지
온갖 잡풀 속에서
흙의 뿌리처럼
오, 몇 포기 저절로
검푸르고, 푸드득
뜸부기가 날고 있었다.
-「부활」 전문
그로부터 “이태”쯤 지난 뒤 “흙냄새 나는 사람들”이 모두 떠나간 자리에 다시 돌아와 선 시인의 눈에는 문전옥답에 깊게 찔러 박은 “재벌 회사” 표식이 먼저 들어온다. “가슴 찔린 전답”처럼 짜르르 전신통증이 몰려오고, 다리에 달라붙던 “거머리 떼어내며/모 내던 시절”이 더더욱 그리워진다.
그래도 “참새 떼 몰려다니던 소리” 그리워 “흙의 뿌리”로 습관처럼 돌아온 날, “부활”의 이름으로 검푸르게 다시 돋아나는 것들이 있다.
절망과 희망은 서로 공생한다고 했던가. 절망의 끝에서 무거운 침묵의 날개를 털고 “푸드득” 허공을 차고 오르는 “뜸부기”의 날갯짓으로 형상화된 희망은, 절망이라는 사다리를 밟고 또 다른 빛을 향해 기운차게 날아오른다.
5. 따뜻한 인간애를 품은 휴머니스트
니체는 ‘필연적인 운명을 긍정하고 사랑할 때 인간이 위대해지며, 인간 본래의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했다. 이는 고통과 상실을 포함한 자신의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삶의 태도를 말한다.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거나 체념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과정에서 수반되는 고통까지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인데, 여기서 살펴보는 연작시 「연무동 이야기」에서는 현실적으로 힘이 약한 사람들은 운명에 대한 사랑(Amor Fati)이 더욱 각별하기를 바라는 시적화자의 믿음이 깔려있다. 이들 작품들에서는 소외된 이웃들에게 보내는 화자의 시선이 봄 햇살처럼 따뜻하다. 그 눈빛은 그럴 듯하게 글을 쓰기 위한 설정이 아니라, 그냥 그대로 따스하고 인간적이기 때문에 독자들의 공감대를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 즉 자연스럽게 화자의 시선을 따라가며 대상을 편견 없이 바라보게 된다는 의미이다.
오늘도 표준당시계포 주인 홍 씨는 고장 난 시계를 고쳐줍니다. 세월이 올바로 흐르게 합니다. 이웃집으로 꽃 넝쿨 넘겨주며 그냥 웃으며 살아가는 우리 동네 표준당시계포 홍 씨는 곱사등이. 그러나 생활은 청죽처럼 언제나 곧습니다. 우리들더러 고장 나지 않는 시계처럼, 자유를 위하여 흘러가는 오월의 강물처럼 올바르게 살아가라고 일러줍니다.
- 「올바르게 살아가라고」 전문
서사적인 작품에서 실명을 즐겨 사용하는 시인은 잘 나고 강한 것들이 아닌 쪽 사람들에게 더 관심을 보이는데, 이 작품들을 읽을 때 그 너머에 깊이 내장된 작가의 의도를 우리는 읽어낼 필요가 있다.
“고장 난 시계를 바르게 고쳐주”는 “표준당시계포 홍 씨”는 곱사등이다. 그러나 그는 “청죽처럼 언제나 곧”게 살고 있다. 오히려 육신이 정상인 사람들에게 “올바르게 살아가라고 일”러 준다. 지독한 아이러니이며 깊숙한 내적은유를 함의하고 있다는 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은 곱사등이 “표준당시계포 홍 씨”를 통해 겉과 속이 다르게 행동하는 표리부동한 자들에게 삶의 “표준”을 제시해 주고 싶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삶이 즐거운가 봅니다. 우리 동네에 있는 수원여객 차고 모퉁이의 서너 평 쯤 되는 비닐하우스에서 철 따라 다른 과일을 파는 젊은 아줌마의 얼굴은 내내 봄빛입니다. 눈 내리던 지난겨울 비닐하우스 안에서 젖 먹이던 아기가 햇살을 헤치며 걸음마를 하는 요즘, 그 기쁨을 바라보는 젊은 아줌마의 마음 둘레에 피어나는 패랭이꽃, 홍백의 패랭이꽃 향을 보았습니다.
-「패랭이꽃」전문
비닐하우스 과일매점 주인“ 젊은 아줌마의 얼굴은 내내 봄빛입니다”라는 구절에서는 고단해 보이는 그녀의 생활이 내내 즐겁기를 바라는 마음이 엿보인다. 비닐하우스 매점에서 어린 아기를 데리고 일을 해야 하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지만 아장아장 “걸음마하는” 아기를 보며 그나마 힘을 내주기를 바라는, 즉 아모르 파티(Amor Fati)적인 삶을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얼비친다. “젊은 아줌마의 마음 둘레에 피어나는 패랭이꽃”을 상상으로 피워 올리는 임병호 시인은 이 시대의 가장 따뜻한 휴머니스트가 아닐까.
엄마야 ! 나야 나, 희숙이. 요즘 엄마 아픈 데 없지? 응? 나는 잘 있어. 기숙사 언니들이 귀여워해주구, 식당 아줌마들두 내가 이쁘대. 밥두 잘 먹구 반찬두 남기지 않는다구. 근데 나 엄마, 나 어저께 월급 탔다. 자그마치 십사만 오천 원이야. 되게 많치? 그치? 앞으로 잔업을 많이 하믄 이십만 원도 탈 수 있대. 그때 내가 뭐랬어? 고등학교 안가길 잘했잖아. 취직하려구 학교 가는 건데 뭐, 난 벌써 수원에 와서 취직했잖아.
-「질경이꽃」부분
“희숙이”는 식구가 많고 가난한 어느 시골 가정의 맏딸이었을까. 고등학교도 못가고 취직한 “밥 잘 먹구, 반찬도 남기지 않는” 순하고 착한 딸. 그렇지만 “앞으로 잔업을 많이 해”서 월급을 많이 타야하는 산업화시대의 억척스러운 딸... 남들은 대학엘 가고 멋도 부리고 미팅도 하는데 그저 공장에 취직한 게 엄청난 행운을 받은 것처럼 고마워하는, “질경이 꽃”처럼 밟혀도 자신의 운명을 적극적으로 사랑(Amor Fati)하는 긍정적인 딸... 70∼80년대 우리나라의 산업화를 이끌어간 주역들이다.
작품 전체가 대화체인 이 작품의 분위기는 씩씩하고 밝은 모양새를 취하고 있지만 그 저변에는 얼룩진 눈물자국이 보인다. “질경이꽃”이라는 제목에 작가는 이미 그 숨겨둔 고통과 슬픔을 제시해 놓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감지하면서 읽게 되지만, 이 작품을 읽으면서 ‘눈물이 없으면 꽃도 없다’는 단순 명제를 그냥 믿고 싶어진다. 뒤집으면 눈물은 반드시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는 의미가 될 테니까.
6. 조원동 별곡
비 오는 날 저녁 무렵이면 맹꽁이들이 유별나게 맹꽁 맹꽁 합니다. 논밭이 없어졌는데 개구리들도 따라서 개골 개골 그럽니다. 한 십년 전 아파트단지로 변했지만 옛날 마을 이름 그대로 대추나무 골입니다. 아파트 사이사이 작은 공원이 있지만, 텃밭은 여기 저기 조금 남아 있지만 도대체 맹꽁이, 개구리들이 어디서 살고 있는지 신기합니다. 느티나무, 밤나무, 상수리나무 가지에서 까치들이 깍 깍 까악, 참새들이 짹 짹 짹 까불어대는 조원(棗園) 뉴 타운 아침나절엔 광교산에서 내려오는 뻐꾸기가 정겹습니다. 한 밤 중 소쩍새도 이따금 찾아옵니다. 상추밭, 아욱 밭, 열무 밭 근처에 지렁이도 살고 있습니다. 날마다 맹꽁이들이 개구리들이 울어댔으면, 아니지요 합창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귀여운 고놈의 맹꽁이, 개구리 모습이 눈앞에 삼삼한데 목소리만 보여 줍니다. 맹꽁이, 개구리가 옛날을 부르는 조원 뉴 타운엔 흙이 살아 있습니다. 흙 내음 향기롭습니다.
-「조원 뉴타운 엽서 1」전문
조원동은 현재 임병호 시인이 살고 있는 동네이다. 이 동네도 예전에는 논밭이 있고 대추나무가 많던 시골이었는데 지금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고 시인은 그곳에 입주해서 살고 있다.
“비 오는 날 저녁 무렵이면 맹꽁이들이 유별나게 맹꽁 맹꽁 합니다. 논밭이 없어졌는데 개구리들도 따라서 개골 개골 그럽니다” “도대체 맹꽁이, 개구리들이 어디서 살고 있는지 신기합니다”
시인은, 아파트가 생겨난 뒤에도 그 주변에 아직도 맹꽁이와 개구리들이 살아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작은 위로를 받는다. 도시개발이라는 광풍이 휩쓸고 지나간 그 자리에서 메마른 감성의 한끝을 촉촉이 적셔주는 맹꽁이와 개구리 소리가 들리다니... 게다가 “아침나절엔 광교산에서” “뻐꾸기” 소리가 내려오고 “한밤중”엔 “소쩍새” 소리도 들려오니 얼마나 고맙고 반가운 일이겠는가. 날마다 그들이 “합창을 했으면 좋겠”다는 시인은 그들의 합창을 들으면 “흙 내음이 향기로”워진다고 어린 아이처럼 좋아한다. “조원 뉴타운” 아파트는 광교산에 인접해 있어서 산이 주는 혜택을 오롯이 받고 있나보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서 만난 대추나무 잎들이 제법 자랐습니다. 어제보다 한결 예뻐졌습니다. 오동나무 꽃이 하얗습니다. 새들이 놀러 왔는지 오동나무가 춤을 춥니다. 나뭇가지 사이로 초록 음표가 뚝뚝 떨어집니다. 아파트에서 경기일보까지 걸어서 한 십오 분이면 넉넉한데 요즘은 보통 삼십분 걸립니다. 신문사까지 가는 동안 풀, 꽃, 나무, 새들이 자꾸 아는 체 해 차마 그냥 갈 수 없습니다. 어떤 날은 까치들이 길에서 깡충거리며 못 가게 합니다. 개미들이 분주히 지나가면 또 기다려야 합니다. 오늘 아침엔 민들레꽃, 망초꽃과 얘기했습니다. 토끼풀들이 저쪽에서 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습니다. 가끔 출근 시간이 늦어지긴 하지만 조원동 뉴 타운 아침이 상쾌합니다. 요즘은 밤꽃 향기가 한창입니다.
-「조원 뉴타운 엽서 2」전문
모든 생물체는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매우 강하다. 사람도 마찬가지여서 우만동 들판 뜸부기의 날갯짓에 묻어온 긍정의 빛은 조원동 와서 다시 정착한다.
조원동에서 경기일보까지 도보로 걸어가는 출근길에서는 한결 가벼워진 걸음걸이가 느껴진다. 길가에서 “오동나무가 춤을 추”고 “풀, 꽃, 나무, 새들이 자꾸 아는 체”하고 “까치들이 길에서 깡충거리며 못 가게” 만들어 출근길이 늦어지기도 하는 시간들이 동화 속의 한 장면처럼 즐거운 비명으로 들려온다.
작은 풀꽃의 손짓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이름도 모르는 새들의 노랫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인의 눈빛은 열두 살 소년의 동심처럼 순수하고도 무구하다.
조원마을 사람들
가슴도 청결케 한다
폐암도 이겨낸 주인아저씨의 세탁 기술
시름을
펴주듯이
다리미질 솜씨도 제일이다
- 「뜨란채 세탁소 」전문
‘긍정은 힘이 세다’는 말처럼 조원동 “뜨란채 세탁소” “주인아저씨”는 폐암도 이겨내신 깨끗한 세탁기술을 자랑한다. 세탁소가 거기에 있어서 “조원마을 사람들”은 마음이 한결 청결해지고, 아저씨의 탁월한 “다리미질 솜씨” 때문에 이런저런 삶의 주름도 펴가면서 산다. 자신의 운명을 적극적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가끔씩 절망이 장난을 치더라도 언제나 희망의 끈(빛)을 놓지 않는다. 오히려 그 절망을 밟고 더 높게 오른다. 그게 Amor Fati적인 삶이고 철학이고 습성이다.
임병호 시인이 사는 마을 대추골은 광교산 자락에 있어 광교산의 정기(빛)를 흠뻑 받으며, 꿈속에 “전설처럼 들려오”는 “장닭 소리”를“나무의 마음처럼”(「조원동 2」) 언제나 맑은 예감으로 꿈꾸고 있다.
7. 마음 안에 쟁여놓은 빛의 원형
예술은 아름다움을 창조하거나 표현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예술가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빛을 내면에 품고 있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꿈(빛)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통해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취하게 되므로, 모든 예술작품은 아름다운 빛을 전해주기 위해 그 스펙트럼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
시인은 자기가 쓴 작품을 통해 시인이 되고, 그 작품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감화시킨다. 혹자는 한 편의 시를 통해 고통을 위로 받고, 혹자는 한 편의 시를 읽고 모순된 사회를 개혁하려는 꿈을 꾸기도 한다.
50여년 넘게 시를 써온 임병호 시인의 마음 안에 쟁여놓은 빛의 원형은 지극히 인간적이다. 잘 나고 힘 센 것들이 아닌, 작고 외로운 대상들에게 더 따스한 눈빛을 보내는 시인의 시선은 언제나 맑고 투명하다.
부모님의 품속과 같은 광교산 산자락에서, 천년 달빛이 일렁이는 소름못 물가에서, 역사의 향기 서린 팔달산 성곽에서, 봄빛 싱그러운 매향동, 남수동, 우만동, 연무동, 조원동 산책길에서, 소박한 사람들과 어우러져 살아온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시인은, 길에서 만나거나 지면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따뜻하고 맑은 빛을 나누어 주며 살고 있다.
‘성당을 그리느니 차라리 인간의 눈을 그리겠다. 왜냐하면 성당에는 아무것도 없지만 인간의 눈에는 영혼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라는 빈센트 반 고흐의 말처럼, 사람을 위해 시를 쓰고, 존중하고 위로하며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가장 인간적인 영혼의 소유자 임병호 시인은 그래서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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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임병호 회장님 <광교산 가는 길>시집상제하심을 축하드립니다.
늘 건강하고 축복의 날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