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토지에 설치된 분묘를 소유하기 위하여 타인 소유 토지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합니다. 법원이 '관습상의 물권'의 한 종류로 인정하여 지금까지도 대법원 판례에 따라 인정되고 있는 권리이지요.
이러한 분묘기지권이 인정되면, 토지 소유자의 분묘를 철거하라는 요구에 대해서도 대항할 수 있는 권리가 생깁니다. 즉, 토지 소유자라도 무단으로 설치된 분묘를 함부로 철거할 수 없게 되는 것이지요.
분묘기지권은 분묘를 수호하고 봉제사하는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범위에서 인정되고, 봉분 등 외부에서 분묘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형태를 갖추고 있으면 등기 없이도 성립합니다(대법원 1996. 6. 14. 선고 96다14036 판결).
통상 분묘기지권의 종류는 다음과 같이 총 3가지 형태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 승낙형 분묘기지권 : 땅 소유자의 허락을 받아 묘지를 설치한 경우(대법원 2000. 9. 26. 선고 99다14006 판결)
○ 양도형 분묘기지권 : 자신의 땅에 묘지를 설치한 후 땅을 다른 사람에게 팔면서 묘지 이전에 대해서는 별다른 약정을 하지 않은 경우(대법원 1967. 10. 12. 선고 67다1920 판결)
○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 : 남의 땅에 허락 없이 묘지를 설치하고 20년 동안 평온·공연하게 점유해 사용한 경우(대법원 2011. 11. 10. 선고 2011다63017) |
"타인의 토지에 허락 없이 묘지를 설치한 경우"에도 20년 동안 그 묘지가 온전하게 존재했다면, 취득시효를 인정하여 분묘기지권 권리를 인정해주는 것이 우리 법원의 입장입니다. 토지 소유자 입장에서는 돌아버릴 노릇이지요.
단,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 새로 제정되어 시행되면서 2001. 1. 13. 이후에 타인의 토지에 무단으로 설치한 묘지의 경우 분묘기지권이 인정되지 않지만, 그래도 아직 위 날짜 이전에 설치된 묘지가 있는 토지는 경매물건에서도 종종 확인할 수 있습니다.
타인의 토지에 무단으로 묘지를 설치해서 20년이 지나도 분묘기지권이 인정되는 것도 토지 소유자 입장에서는 돌아버릴 지경인데, 기존 대법원 판례는 분묘기지권을 시효취득하는 경우에는 토지 소유자에게 지료를 지급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기까지 했습니다(대법원 1995. 2. 28. 선고 94다37912 판결).
이게 사실 말이 되는 얘기인지, 대법원이 진짜 이런 판결을 했었다니 믿기 어려울 수준이지요. 토지 소유자의 권리 따위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판결입니다.
근데 이번에 위 대법원 판례가 폐기되고 새로운 판례가 나왔습니다. (기존 판례는 정말 당연히 폐기되어야 할 판례입니다)
대법원 2021. 4. 29. 선고 2017다228007 전원합의체 판결
장사법 시행일 이전에 타인의 토지에 분묘를 설치한 다음 20년간 평온·공연하게 그 분묘의 기지를 점유함으로써 분묘기지권을 시효로 취득하였더라도, 분묘기지권자는 토지 소유자가 분묘기지에 관한 지료를 청구하면 그 청구한 날부터의 지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 이 사건 임야에는 1940년과 1961년 각각 설치된 분묘 2기가 있고 피고는 현재까지 위 분묘를 수호·관리하고 있음. 원고들은 2014년 이 사건 임야의 일부 지분을 경매로 취득한 다음 분묘기지에 대한 소유권 취득일 이후의 지료를 피고에게 청구하였음. 원심은 분묘기지권을 시효로 취득한 경우 토지 소유자가 지료를 청구한 때부터 지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보아 원고들의 지료 청구를 일부 받아들였고, 이에 대해 피고가 상고하였음
☞ 대법원은 분묘기지권자는 토지 소유자가 분묘기지에 관한 지료를 청구하면 그 청구한 날부터의 지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보아, 상고를 기각하였음 |
대법원은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에 대해 "토지 소유자의 지료 청구일"부터는 분묘기지권자가 지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하면서 기존 판례를 폐기했습니다. 지료 청구의 시기는 분묘를 설치한 날이 아니고, 토지 소유자가 지료 지급을 청구한 날부터입니다.
분묘기지권은 법정지상권과 유사한 측면이 많습니다. 그런데 분묘기지권은 아무래도 '묘지'와 관계가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토지소유자의 이익을 희생해서라도 묘지를 보호하려는 측면이 강합니다. 법정지상권은 당연히 지료를 내야 하는 것인데, 분묘기지권은 지료 청구를 미리 해야 그날부터라도 지료를 받을 수 있네요.
앞으로 분묘 있는 토지를 취득하시는 분들은, 취득하자마자 분묘기지권자에게 지료 지급을 구하는 내용증명이라도 보내두셔야겠습니다. 지료 2기 연체가 되면 분묘기지권 소멸청구가 가능하고, 분묘의 철거를 구할 수 있다는 점도 기억해두시면 좋겠습니다^^ (대법원 2015. 7. 23. 선고 2015다206850 판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