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 하였느니라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6:20-21).
사도 바울의 서신서들을 보면 그의 시간은, “전과, 이제”로 나누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만난 시간은 낮 12시 정오(正午)였습니다. 만나기 전의 오전시간과 만난 후의 오후시간은 극적인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19절에는 “전에와, 이제”가 있습니다.
21절에는 “그 때와, “이제”가 있습니다.
20절에는 “죄의 종이 되었을 때”가 있고, 22절에는 “그러나 이제는” 합니다.
이와 같은 분기점은 다른 서신서에서도 나타납니다. 에베소서 2:12절에서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하고 말씀합니다.
베드로 사도도 “지나간 때와, 남은 때”(벧전 4:2-3)로 구분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인류의 역사는 BC와 AD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개개인에게 있어서도 그의 삶은 주님을 만나기 이전과, 만난 이후로 갈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전에”는 죄의 종이었으나(20), 이제는 하나님께 종”이 되었다(22)는 것입니다.
①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 하였느니라”(20) 합니다. 사도는 본문을 통해서 “죄의 종”이 되었을 때의 상태를 말씀하고 있는데, 크게 네 마디로 되어 있습니다. 6:20-21절
㉠ 첫째로, 그 때는 “의에 대하여는 자유(自由)였느니라”(20하) 하고 말씀합니다. 이 “자유”는 좋은 뜻의 자유가 아닙니다. 그 때는 죄에게는 속박을 당해 있었을 때요, 하나님께는 버림을 당한 비참한 상태, 하나님의 통치와 지배에서는 벗어난 상태, 하나님과 상관이 없던 상태, 그것을 “의에 대하여는 자유하였느니라” 하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 지금 형제가 누리고 있는 자유(自由)는 누구에 대한 자유인지 알고 계십니까? 하나님께 대한 자유입니까? 아니면 사탄에 대한 자유입니까? 사탄에 대한 자유입니다. 하나님께 대하여는 “의의 종”인 것입니다. 은혜의 줄로 매임 받은 사랑의 노예입니다. 분명합니까? 이 점에 대해서는 안심해도 되겠습니까? 그러나 전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하였다는 것입니다.
㉢ 이점을 11절의 원리로 말씀을 드린다면 “죄에 대하여는 산 자요, 하나님께 대하여는 죽은 자였다”는 것이 됩니다.
② 둘째로,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21상) 합니다.
㉠ 다시 말씀드리면 “죄의 종”이었을 때에, 즉 “전에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19절) 그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하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1:29절 이하에는 하나님께 내어 버려두심을 당한 상태(죄의 종이었을 때)의 일이 열거 되어 있습니다. “곧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등 이것이 “죄의 종” 때에 맺은 열매들인 것입니다.
③ 셋째로,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21중) 합니다.
㉠ 베드로 사도도,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벧전 4:3) 하고 말씀합니다.
㉡ 어떤 분은 말할 것입니다. “나는 그런 일들은 하지 않았소, 나는 이러 이러한 과업을 성취했단 말이요” 하고 자기의 업적들을 내세울 것입니다. 또 어떤 분은, “나는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일했으며 온 인류를 위해 공헌 했노라” 하고 말할 것입니다.
㉢ 그렇다면 묻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말씀하고 있는데, 당신의 업적들이 죽음 앞에 선 당신을 구원해 줄 수가 있단 말이요? 그 업적들이 당신을 심판대 앞에 세우기에 족한 것들이오? 당신은 속고 있는 것이요, 당신의 배후에서 당신을 조정하고 있는 세력이 있다는 점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요, 당신이 한 일들은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시 1:4)것들이요, 심판대 앞에 가지고 갈 열매는 되지 못한다는 말이오.
④ 왜 이점을 강조하고 있느냐 하면 성경이, “열매와, 일”을 엄격하게 구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갈라디아서 5:22절에서, “성령의 열매는” 한 바울은, 19절에서는 “육체의 열매는” 하고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의 일은” 하고 말씀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에베소서도 5:9절에서는, “빛의 열매는” 하고 말씀하는 반면, 11절에서는 “어두움의 일은” 하고 말씀합니다.
㉡ 죄의 종 된 신분(身分)으로 죄의 지배 하에서 행하여진 모든 일들이 그것이 비록 선한 업적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열매”로 취급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시편 1편은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시 1:6) 하고, 인정(認定)받지를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⑤ 넷째로, “그 마지막은 사망(死亡)이니라”(21하) 하고 말씀합니다.
㉠ “사망”(死亡)이란 표현은, 그가 의지하던 “자랑, 권세, 명예, 업적” 등을 단번에 모두 삼켜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그것들은 불타버리고 말 헛된 일들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명예와 영광을 위해서 행하여진 일들이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행하여진 열매는 아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21) 하는 것입니다.
㉡ 형제도 부끄러워 해본 적이 있습니까? 전에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 행한 일로 부끄러워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본적이 있으십니까? 예레미야 6:15절에서,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 아니할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않았느니라” 하고 말씀합니다. 부끄러워할 줄을 모르는 사람들! 이것이 오늘의 시대를 대표하고 있는 얼굴 모습은 아닌지요.
⑥ 이전에 행한 일들을 “부끄러워” 한다면, 어찌 우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부끄러운 일에 계속 머물러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이니라”(21). 그래서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하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