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 34명 『이럴 땐 쓸쓸해도 돼』(천년의 상상, 2016)를 읽고
가수 김광석이 세상을 떠난 20년을 추모하기 위해 시인들이 모였다. 시인들의 김광석에 관한 쓸쓸한 사연들이 에세이로 풀어지고 자작시 한 편이 나온다. 잔잔한 에세이도 좋고 울림 있는 시도 좋다. 시인의 사연을 듣고 그 시를 읽으니 공감도 더욱 잘 된다. 김광석의 노래에 얽힌 이야기와 시들이다.
김광석은 90년대를 풍미한 싱어송라이터로 통기타를 들고 노래를 부르는 그의 노래에 매료되지 않은 청춘이 있었을까? 나 또한 김광석의 광팬이기에 그의 죽음을 슬퍼했으며 수도 없이 노래를 들었다. 제일 좋아하는 가수를 꼽으라고 하면 망설임 없이 ‘김광석’을 외칠 것이다.
이런 내용일 줄 알았으면 진즉 읽었을 텐데 다른 책들에 밀려 몇 달을 책상에서 읽히기를 대기하게 만든 책에 너무나 미안했다. 가끔 잘 모르는 노래가 있어 검색해서 들으며 책을 읽었다. 정서도 어쩌면 내 이야기 같은 내용들이다. 딱! 내 취향! 김광석, 그 깊은 쓸쓸함과 그리움에 흠뻑 젖어 밤새 책을 읽었다.
조용미 시인 편 「세상의 모든 노래들은 어떻게 사람을 위로하는 걸까」에서 “시적 순간이란 문득 그렇게 찾아온다. 목이 메고, 마음이 사무치는 소소한 깨달음과 슬픔의 순간에. 누군가의 노랫말 속에도 그런 순간이 드문드문 있어서 우린 아직까지도 그의 노래를 듣고 그를 추억한다. 그의 노래도 긴 시간 동안 마늘과 꿀처럼 스며들고 스며들어 우리에게 따뜻한 한 잔의 차가 되었다. 너무 쉽게 변해가는 것들 사이에서 우리는 이렇게 변하지 못하고…….
정호승 시인 편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에서 “김광석의 노래는 이제 시대를 초월한 영원성을 지닌다. 그것은 인간의 삶이 비록 본질적으로 비극성을 지니고 있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만은 아름다운 진실의 서정성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일 것이다.”
부치지 않은 편지 (정호승)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 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의 자유를 만나
언 강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흘러 그대 잘 가라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 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 되리니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
“1987년 1월 14일에 일어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즉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다가 경찰의 물고문으로 사망한 서울대생 박종철 열사의 시대적 죽음을 생각하며 쓴 시다. 박종철 열사를 생각하며 썼으나 시는 시대를 초월한다. 지금도 이 시는 시대적 죽음에 대한 헌사이자 노래로 끊임없이 재탄생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라고 썼다. 어쩌면 이 시는 이 시를 노래한 김광석 자신에게 들려주는 노래가 된 것도 같다.
황인숙 시인 편 「상처받은 영혼의 청순한 노래」에서 부치지 않은 편지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시를 지은 정호승, 그 시가 가장 아름답게 들리게 곡조를 입힌 백창우, 그 가사와 곡조를 이 빠진 데 없이 살리며 노래하는 김광석! 이 세 사람이 만나 우리 노래의 보석 중에 보석을 만들었다. 얼마나 무상하고, 서럽고 시린 아름다움인가. 기억하라, 기억하라! 의롭게 살다 죽음을 당한 이름 없는 사람들이 이 노래로 우리 기억 속에 영원히, 꽃잎처럼 강물처럼 흐르리라. 김광석의 노래는 그 강물 위에 부는 바람으로 흐느끼고 속삭인다.”
고두현 시인 편 「늦게 온 소포」에서 “얼마나 혼자 견디고 속으로 앓았으면 그 작은 체구에, 설산수도한 고승도 아닌 주제에 사리가 아홉 과나 나왔단 말인가. 서른 즈음에나, 광야에서나, 흐린 가을 하늘에서나, 늘 조금은 외롭고 조숙하고 속 깊은 모습으로 노래하던 그의 영혼이 박힌 뼈의 결정일까. 법정이 지어준 호 원음(圓音)처럼 웅숭깊은 저 우주의 ‘둥근 소리’가 바로 거기에서 발원한 게 아닌가 생각하면 새삼 명치끝이 아릿해진다.”
김기택 시인 편 「흥과 슬픔이 한 몸이 될 때」에서 “김광석의 노래는 늘 현재진행형이다. 그의 육성은 이미 20년 이상 지났지만, 그 육성의 주인은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이 노래를 떠올리거나 흥얼거리는 순간, 가락과 가사와 곡조는 즉시 현재가 되고, 내 몸과 마음으로 스며들어 나 자신이 된다. 김광석은 떠났지만 지금도 자신의 노래처럼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아직도 다 죽지 않아서 자신과 이별하고, 삶과 이별하고, 노래와 이별하고, ‘풀 한 포기 친구 얼굴’과 이별하고, 우는 여자 앞에서 놀라는 젊음과 이별하고, 자신이 아끼고 사랑했던 모든 것들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박정대 시인 편 「가재미, 나귀, 김광석」에서 “김광석은 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비 내리는 풍경, 물웅덩이, 새롭게 돋아나는 새싹, 편지, 떠나간 사람, 되돌아올 수 없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 자기 방의 풍경, 티끌과 먼지 같은 것들에 대하여 노래했다. 그가 노래한 것들은 대부분 우리들 삶의 가장 기본이 되는 풍경들이다. 또한 그 풍경들은 사랑과 이별, 그리움을 이루는 가장 근본적인 소립자이기도 하다.”
이달균 시인 편 「태양이 지고 하늘이 어두워지지 않으면」에서 “우리는 모두 관계를 지어간다. 새들도 서로 무리를 이룰 때 먼 길을 갈 수 있다. 길을 여는 새가 있는가 하면 힘찬 날갯짓으로 마음을 북돋우는 새들이 있다. 오늘의 성취가 어찌 혼자만의 것이랴. 내가 걷기 전 이미 누군가 먼저 걸어가 길을 낸 사람이 있었다. 그들이 흘린 땀방울 위에서 나의 작은 성취를 이룬 것이다. 저 별도 홀로 빛날 수는 없다. 태양이 지고 하늘이 어두워지지 않으면 별의 존재가 어찌 빛날 것인가.”
관계 (이달균)
혼자 이곳까지 걸어왔다고 말하지 말라
그대보다 먼저 걸어와 길이 된 사람들
그들의 이름을 밟고 이곳까지 왔느니
별이 저 홀로 빛나는 게 아니다
그 빛을 이토록 아름답게 하기 위하여
하늘이 스스로 저물어 어두워지는 것이다
유안진 시인 편 「우리 모두의 아들, 오빠, 동생 그리고 연인」에서 “음악이든 문학이든 그림이든 과학이든 철학이든, 모든 예술과 학문은 이렇게 설명 불가능하게 각자의 전공이 되고 평생의 영혼과 고향이 된다. 가객 김광석의 음악은 그의 요절과 함께 나에게는 예수그리스도의 짧은 생애마저 떠올리게 했다.”
34명 시인들의 김광석에 얽힌 각자의 사연과 주옥같은 문장들이 있고, 시들이 있기에 부족한 나의 말들을 덧붙이는 일이 무용하다는 것을 알겠다. 시인들의 말이 지극히 옳은 말씀이라서 백배 공감이 가는 내용들이다. 그저, 이 책을 읽는 동안 지금도 우리 곁에 살아 있는 김광석과 함께한 시간이라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