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찾아서] 어지러운 봄…… 치유를 위해 서있는 나무 그늘에 오세요
월요일 아침에 띄우는 《나무편지》가 늦었습니다. 봄맞이에 분주해 그랬습니다. 지난 금요일에 학교 수업을 마친 뒤, 봄이 오는 길을 찾아 부랴부랴 떠난 길, 이제야 돌아왔습니다. 남도의 강진 순천에 찾아온 봄을 맞이했습니다. 봄 바람을 담고 생명의 기운을 키워내는 여러 나무, 여러 꽃을 만났습니다. 한꺼번에 들려드리기가 벅찰 만큼 아름다운 봄 소식을 가슴에 담아왔습니다. 언제나 봄은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벅차게 합니다. 마음에 담아온 봄 소식을 조금 더 느끼기로 하고 오늘 《나무편지》에서는 지난 주 하동에서 만난 큰 나무 이야기부터 보여드리겠습니다. 위 사진은 우리의 봄을 가장 또렷하게 알려주는 순천 선암사의 매화 길 풍경입니다. 어제 낮의 모습인데요, 아마도 이번 주말이면 가장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주리라 생각됩니다.
하동의 큰 나무 이야기 전에 먼저 산수유 꽃망울의 봄마중 걸음걸이부터 전하겠습니다. 봄을 찾아 나선 산수유 꽃망울의 걸음걸이는 참 더디네요. 지지난 주에 띄운 《나무편지》에서 보여드렸던 산수유 꽃망울 기억하시나요? 작은 구슬 모양의 갈색 껍질이 살짝 갈라진 그 꽃봉오리 말입니다. 겨우 지름 팔 밀리미터밖에 안 되는 작은 알갱이입니다. 그 꽃봉오리가 언제 열리나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립니다만, 나무는 사람의 성마름을 따라주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뚜벅뚜벅 갈 뿐입니다. 두 주, 그러니까 열나흗날이 지났건만 산수유 꽃봉오리는 아직 터지지 않았어요. 물론 두 주 전보다는 조금 더 벌어져서 이제는 봄의 노란 빛이 또렷하게 드러납니다만, 아직 꽃이 제대로 피어나기에는 이릅니다. 아직 봄을 제대로 느끼려면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산수유가 머뭇거리는 동안 남녘의 매화는 벌써 한창입니다. 경상남도의 하동을 찾은 지난 주말, 매화로 유명한 광양 가는 길은 하루 종일 교통은 정체를 이뤘습니다. 올에는 조류독감 때문에 매화마을에서 진행하는 매화축제를 취소했습니다만, 꽃을 보고 이 땅에 다가오는 봄의 사신을 맞이하려는 탐매객들을 막을 수는 없었던 겁니다. 봄빛이 산과 들에 뚜렷합니다. 봄빛 따스하게 피어오르는 들녘 내다보며 우뚝 서 있는 한 그루의 커다란 푸조나무, 지난 주 하동에서 만난 평사리 푸조나무 이야기를 오늘 《나무편지》에서 전해드리렵니다.
섬진강이 느리게 감돌아 흐르는 경상남도 하동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게 무엇일까요? 어쩌면 섬진강 재첩을 먼저 떠올리실지 모릅니다. 물론이지요. 하동에서 뵈온 어느 선생님은 우리나라에서 산과 들과 강과 바다, 그 네 가지를 동시에 품고 있는 지역으로는 하동이 대표적이라고 하시더군요. 그 말씀 또한 하동을 떠올리기에 매우 훌륭한 말씀입니다. 하동도서관에서 뵈었던 여러분들께 여쭈니, ‘하동솔숲’을 먼저 이야기하시는 분이 많더군요. 젊은 시절에 되풀이해 보았던 소설 〈토지〉의 영향인지, 저는 하동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토지〉의 무대인 악양들판입니다.
그래서 하동은 제 마음에서는 곧바로 ‘하동 평사리’로 이어집니다. ‘악양면’이 끼어들어가야 하지만 마음에서는 언제나 ‘하동 평사리’가 자연스럽게 발음되어지는 곳입니다. 그 하동 평사리에 하동에서 몇 손 안에 꼽는 매우 크고 오래 된 나무가 있습니다. 〈하동 평사리 푸조나무〉입니다. 하동 평사리에는 소설 속의 최참판댁을 소설에 나오는 대로 꾸며놓고 〈토지〉의 감흥을 다시 한번 느껴보게 한 ‘최참판댁’이 있습니다. ‘최참판’이라는 인물이 소설 속의 가상인물이니, 이 대궐같은 집이 실제로 오래 전부터 존재했던 건 아니고, 소설 속 최참판댁이라는 공간을 재현한 거죠.
〈하동 평사리 푸조나무〉는 바로 그 최참판댁 입구에 있습니다. 관광지로 조성한 최참판댁의 입구 주차장 맞은편 골목 안쪽에 있는 큰 나무입니다. 오백 년 전의 옛날에 이 마을 어른들은 마을의 맥이 흐르는 첫 자리와 끝 자리에 한 그루씩 두 그루의 나무를 함께 심고, 마을의 상징으로 여기며 보호해 키웠다고 합니다. 마을의 길흉화복을 지키며 커다랗게 자란 이 두 그루의 나무를 사람들은 할배나무, 할매나무로 불러왔습니다. 그 가운데 할배나무는 오래 전에 명을 다했고, 지금은 할매나무만 홀로 남아 마을을 지키고 있습니다.
할배나무가 서 있던 자리에는 새로 한 그루의 나무를 심어, 옛 일을 기억하게 하고 있다고는 합니다. 할매나무는 오백 년이라는 오랜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건강한 상태입니다. 긴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나무는 25미터까지 높이 솟아올랐고, 사람 가슴 높이에서 잰 줄기의 둘레도 14미터 정도 됩니다. 매우 큰 나무입니다. 나무는 오래 전부터 우리 땅, 남쪽 지방에서 잘 자라는 푸조나무입니다. 푸조나무라는 이름이 조금 생경하게 들리실 겁니다. 마치 외국 자동차 브랜드를 말하는 듯도 하지요. 그러나 푸조나무는 순수한 우리 토종나무입니다.
왜 나무에 ‘푸조’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궁금하실 겁니다. 식물명 어원사전에서도 그 어원을 찾아볼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 전라남도의 담양 지방에서 만난 한 분이 제게 짐작할 수 있는 푸조나무의 어원을 알려주신 적이 있습니다. 우리말 가운데에 ‘푸지다’라는 말이 있지요. 사전에도 표준어로 등록된 말인데, 전라남도 지방에서 많이 쓰이는 데 비해 다른 지방에서는 그리 많이 쓰지는 않는 말입니다. 사전에는 ‘매우 많아서 넉넉하다’라고 뜻이 풀이돼 있고, 비슷한말로 ‘푸짐하다’가 등록돼 있습니다. 푸조나무가 중부지방보다는 남부 지방에서 많이 자라는 나무인데, 이 나무가 워낙 풍성하게 가지를 펼치다보니 사람들은 이 나무를 보고 “나무 한번 참 푸지요”라고 흔히들 말했던 거죠. 그 표현이 잦다 보니, 마침내 ‘푸조나무’라는 이름이 굳어진 게 아니냐는 말씀이었습니다.
기록에 의한 근거가 없으니,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푸조나무의 어원으로 가장 알맞춤한 말씀이라고 생각됩니다. 〈하동 평사리 푸조나무〉 역시 참 푸진 나무입니다. 마을에서는 예전부터 섣달 그믐날 밤에 나무 앞에서 동제를 올린다고 합니다. 원래는 할배나무 앞에서 먼저 제를 올리고, 이어서 자리를 할매나무 앞으로 옮겨서 제를 이어가는 방식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할배나무가 죽은 뒤부터는 할배나무 앞에서의 동제 형태는 달라졌겠지요. 여태 동제가 이어지는지를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동제가 아리라 해도 하동 평사리 푸조나무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마을의 길흉화복을 지켜주는 수호목임에 틀림없습니다.
나무 앞에는 ‘위민정慰民亭’이라고 적힌 특별한 표지석이 하나 있습니다. 위민정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영조 때에 도호부사都護府使를 지낸 전천상(田天祥, 1705 ~ 1751)이 손수 지은 이름이라고 합니다. ‘백성의 고달픈 삶을 위로받을 수 있는 정자’라고 해석할 수 있겠지요.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백성들이 큰 나무 그늘에 들어앉아 삶의 노고를 위로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한 벼슬아치의 생각이 담긴 정자입니다. 전천상은 앞에서 하동 지역민들이 하동의 대표적 자랑거리로 여기는 〈하동 송림〉을 조성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하동 평사리 푸조나무 그늘에 놓인 긴 의자에 자리잡고 편안히 앉으면, 제가 하동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른다고 말씀드렸던 ‘악양 들판’이 훤히 내다보입니다. 그야말로 풍요로운 들판입니다. 들판 한가운데에는 이른바 ‘부부송’이라고 불리는 나무도 있고, 그 들판 건너편 산골짜기에는 바위 위에서 바위 안에 뿌리를 깊숙이 박고 자라는 소나무도 있습니다. 참 하동에서의 나무 답사는 하루로는 턱도 없는 일입니다. 들녘에 찾아온 이 땅의 봄을 바라보며 주섬주섬 자리를 거두고 돌아나서는 길이 아무래도 아쉽기만 합니다.
오늘은 특별한 뉴스로 마음이 참 번거로우실텐데, 《나무편지》에 담아 전해드리는 〈위민정〉 즉 하동 평사리 푸조나무의 큰 그늘에 들어서서 잠시나마 마음의 평안 얻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남도의 봄소식은 다음 편지에서 전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