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가슴속으로 파고드는 듯한 추위가 며칠째 이어지고 있다. 뉴질랜드에서 따뜻한 날씨와 신록을 만끽하며 트레킹을 마치고 온 나에게 추위는 한결 더 심하게 느껴졌다. 날씨 탓도 있었지만 외유에서 돌아온 마음은 아직 시장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겨울에 먹으려고 갈무리해 둔 늙은 호박이 눈에 들어왔다. 이 한 통의 늙은 호박은 나를 50여 년 전 고향에서의 입맛을 찾아내 주었다.
가까이 지내는 친구네가 텃밭에서 유기농에 가까운 건강한 농사 를 짓고 있다. 텃밭이라 해도 500평이 훨씬 넘으니 작은 농사는 아 니라서 수확량이 만만치 않다. 수확한 농작물은 판매하는 것이 아 니고 친척이나 지인,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는데 그 중의 상당량을 나에게 준다.
봄이 되면 부추를 시작으로 상추, 아욱을 시작으로 여름에는 오 이, 토마토, 참외를 가을이면 강낭콩, 호박, 고구마 등 제철에 먹을 수 있게 채소들을 준다. 특히 김장철이면 배추, 무, 골파, 갓, 생강, 당근 등(를 비롯하여) 김장재료의 대부분을 받는다. 가을걷이가 끝날 무렵에 갔 을 때 잘 익은 늙은 호박 몇 통을 주어 가지고 온 것이다. 친구네서 받은 농산물이 무엇보다도 더 소중한 것은 제초체를 사용하지 않은 땅에서 퇴비를 사용하여 재배하기 때문에 믿음이 가서 더욱 좋이다. 이런 재료들은 시장에서 사는 것들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진한 맛이 일품이다.
예전에는 늙은 호박으로 호박죽을 쑤거나 꿀을 넣어 쪄 먹는 정도 였다. 그런데 지난 가을 요리 프로그램에 참가했을 때 (수업에) 강사님이 겨울 철에 늙은 호박 김칫국이 쉽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지나가는 말로 하 는 것을 들었다. 그 당시 마침 집에 호박이 있어서 관심을 가지고 궁금 한 것을 묻기도 했었다. 남편한테 늙은 호박 김칫국 얘기를 하면서 어 렸을 적 고향에서 먹은 적이 있었다고 했더니 시골 음식이라고 무시를 해 서운하기도 했다.
잘 익은 늙은 호박을 골라 손질하기 시작했다. 껍질이 두꺼워 내 힘 으로 자르기에는 벅찬 작업이었다. 남편의 힘을 빌릴 수도 있었지만 하찮게 여기는 눈치가 싫어 내가 하기로 했다. 있는 힘을 다해 힘껏 자 르니 반으로 두 동강이가 나면서 옅은(낯설지 않은) 향기가 코 끝에 닿았고, 속은 발 갛게 익었다. 호박씨는(도) 통통하게 잘 여물었다. 토막을 내고 속을 파내 어 호박씨를 골라내어 물에 씻은 뒤 햇볕에 말렸다.
우선은 조심스러워서 조금만 끓여보려고 1/4만을 잘라 준비하였다. 김장김치를 썰어 멸치육수에 넣고 간장과 약간의 새우젓으로 간을 한 뒤 파, 마늘을 넣어 끓였다. 맛이 어떨까 하는 설레는 마음으로 맛을 보니 꽤 괜찮았다. 그런데 갑자기 언젠가 먹었던 맛의 기억이 희미하 게 입안에서 느껴졌다. 그리고 고향에서의 기억들이 하나씩 눈에 보이 는 듯 펼쳐졌다. 겨울에 고향에서 엄마가 끓여주셨던 늙은 호박 김칫 국의 맛과 아침의 밥상 풍경(정경이)이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전깃불이 없었던 고향 세고개의 저녁의 모습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에 펼쳐졌다. 오후 4시가 되면 엄마는 스피커에서 나오는 경 제뉴스를 들으신 후 저녁을 하러 부엌으로 가셨다. 겨울은 해가 짧 아 일찍 어두워지기 전에 서둘러 저녁밥을 준비해야 하는 옛날 시 골의 풍경이었다. 옅은 어둠이 내려앉았을 때 저녁을 먹고 설거지 를 마치면 내일 아침 국 끓일 준비를 하시곤 했다. 그 준비가 바로 늙은 호박을 씻어서 방에 들어오셔서 하시는 일이었다. 호박을 반 으로 잘랐을 때 풍겨오는 상큼한 그 내음은 지금도 내 코끝에 와 닿 은 듯 느껴졌다. 잘 익은 속을 파내시면 나는 호박씨를 골라내어 자 리 밑에 깔아놓았다. 이튿날 아침 늙은 호박 김칫국이 아침상에 올랐다. 추운 겨울에 뜨끈한 국물과 함께 늙은 호박의 감칠맛이 김치와 어우러져 더 이 상의 양념이 필요 없이 맛있게 먹었던 기억과 맛이 되살아났다. 말 려 둔 호박씨는 간식거리가 변변치 않았던 시골에서 먹을거리와 재 미가 함께 있는 소일거리였다. 화롯불에 인두를 꽂아두었다가 호박 씨 몇 알을 올려놓으면 달궈진 인두에서 톡톡 튀며 통통하게 부풀 어 오른 것을 까먹는 것이다. 적당히 익어서 고소한 맛이 더해진 호 박씨의 맛은 추억으로 간직되어 있다. 먹을 것이 넘쳐나는 요즘에 그 작은 호박씨를 까며 시간을 허비하 는 것 같았지만 버리기가 아까워 오븐에 구어 틈틈이 까 보았다. 잘 영근 탓에 제법 실하고 고소했다. 그 호박씨는 남편이 좋아하는 멸 치조림에 넣어 주었다.
막내딸로 청주에서 자취하며 학교에 다녔지만, 방학에는 거의 고향 집에서 생활하였다. 어느 정도 일손을 도울 수 있는 나이가 되었던 대학 시절에는 특별한 일이 없을 때 많은 시간을 엄마와 함께 지냈다. 산촌이라 밭농사가 많은 탓에 여름에는 해가 질 때까지 엄마와 밭일을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했다. 그 당시 엄마는 서울에 계시는 아버지와 떨어져 고향에서 할아버지를 모시고 농사를 지으며 집안 살림을 꾸려 나가셨다. 어머니는 여자를 대학 보내는 일이 없었던 고향에서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불구하고 나를 대학에 보내주셨다. 마음고생을 많이 하셨을 엄마의 심정을 한 번도 헤아려 드리지 못한 것이 가슴이 저리도록 아프다. 내가 결혼을 하고, 엄마 가 돌아가시고, 지금 의 나이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너무나도 늦게 깨달았다. 이러한 엄마에 대해 누구보다도 회한이 많이 남아있다.
늙은 호박은 그동안 까맣게 잊고 살았던 고향에서의 입맛을 되찾아 주었을 뿐만 아니라, 고향에 살았을 때 겨울의 저녁 풍경속에서 엄마의 모습을 떠 올려 주었다. 가슴속에 묻어 두었던 엄마에 대한 잔잔한(애잔한) 그리움과 친구의 고마움이 겨울 내내 내 (겨우내 나의)마음을 촉촉하게 해 주었다.
첫댓글 교수님,
부족한 글을 지도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다듬어 주시니 큰 힘을 얻어 용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약력에 저는 정년퇴직이 아니라 명예퇴직을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