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에세이
알고리즘과 휴리스틱
유진 (시인)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한다는 건 불행이고 비극이다. 알면서도 나는 약속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과는 어떠한 형태로든 관계를 잘 이어가지 못한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사람과의 관계 중에 가장 으뜸으로 여기는 것이 신의(信義)이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껏 살아오면서 겪었던 굴곡들을 돌이켜보면 모두 어긋난 약속과 지켜지지 않는 신의 때문이었다.
넉넉하고 대범하면서도 경우가 밝다는 말이 듣기 좋아서 마구 오지랖을 펼치던 시절도 있었고, 사람을 무조건 믿고 보는 탓에 생긴 생채기들 때문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의심증부터 내밀었던 적도 있었다. 뿌리를 찾아가 보면 언제나 어리석고 고집스런 나의 무지 탓이었다.
스스로 자책의 구덩이를 파고 앉으면 나조차 잃어버리게 되는 나의 존재, 파도처럼 한 순간도 쉼 없이 출렁이는 감정의 어느 순간을 ‘나’라고 믿어야 할까? 나의 의구심을 의심하는 버릇이 생긴 것도 정직하고 정확해야 직성이 풀리는 내 성격 때문이었다.
한동안 나의 의구심을 들여다보며 매순간 나를 의심하는 버릇이 얻어낸 답은 원칙이 없는 ‘다름’이었다. ‘다름’을 인정하고 우선 나부터 나를 사는 일이었다.
그러나 현대적 휴리스틱적인 사고는 번번이 나를 혼돈에 빠트렸다.
일정한 순서대로 풀어 나가면 정확한 해답을 얻을 수 있는 알고리즘적인 사고와는 달리 경험과 상식에 따라 단순히 판단하고 결정하는 휴리스틱적인 사고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은 언제나 갈등으로 찾아왔다.
한동안 바다를 읽었다.
빛과 바람과 감정에 따라 달라지는 물결, 빛깔, 소리...
저 다변의 감정들을 넓고 푸른 바다라고 단정한
당신은 누구였지?
잘못 읽힌 바다, 깨지고 부서진 기억의 조각들 둥둥 떠다니
는 바다를
너 혹은 나라고 읽어도 될까 보고
봐도 모를
듣고 들어도 모를
나를 잘라낸다
귀를 자르고 눈과 입을 자르고
몸통부터 다시 퍼즐한다
옅은 물자락 당신, 너울파도 당신, 해일로 치솟은 산을 일
시에 뭉개고 다만 넓고 푸른 바다라 일축하는 당신을
믿음이라 불러도 될까?
ㅡ「편견」전문
때와 장소에 따라 감정이 변하고, 시대와 환경에 따라 사람도 변한다. 나는 누구였고, 누구일까? 또 많은 당신은 누구였고 누구일까? 결코 단정지울 수 없는 사실을 두고 자신의 바램대로 믿고 싶어 한다. 나와 우리의 미래는...? 구구나 ‘갑’이 되고 누구나 ‘을’이 되는 사회, 극대화된 자본주의사회에 속해 있는 우리는 이미 휴리스틱적인 사고에 적응되어 있는 것 같다. 불의를 보면서도 불이익이 염려되어 고개를 돌리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악행과 굴종을 불사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뉴스를 장악하면서부터 대다수의 사람들이 세상을 겉돌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모든 것은 변화를 거듭하며 순간순간을 흘러가고 있을 뿐이다.
경험과 상식에 따른 주먹구구 셈법이나 어림짐작으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휴리스틱사고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폭넓게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나는 작별을 연습하는 버릇이 생겼다.
이별에 대한 연민은 서글픔과 아픔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경험하고부터는 더욱 철저한 작별을 택한 것이다.
약속이 깨진 건 한순간이다
시기를 놓쳐버린 꽃은 시름시름 피거나 아예 피지 않는다
꽃은 꽃답게 피어야지, 입술을 깨물며
꼬깃꼬깃 접혔던 나를 편다
문신인 듯 박혀있는 너를 도려내는 오후가
레인지 위의 검은콩조림처럼 졸아든다
캔 속에 갇혀있던 내가 천정까지 튀어 오른다
식은 아이스크림을 버리는 일보다 쉽다는 아이의 이별과
깨진 항아리를 순간접착제로 붙여주던 아버지를 떠올리자
가장 느리고 완곡한 방법으로 해가 저문다
소음을 먹어치운 드럼세탁기에서 몸의 껍데기들 검은 거품을 토해낸다
밀실의 은밀한 교감은 진즉 탈수되었다
비좁고 길었던 울음의 통로가 폐쇄되고 저녁이 환해진다
미움이 손 메모지 한 장보다 작고 얇다
이별은 죽음직전의 서랍처럼 간결해졌다
약속을 깨는 일보다 문신처럼 박혀있는
너를 지우는 일이 더 쉬운 저녁이다
ㅡ「작별의 알고리즘」전문
이익과 불이익을 생각해볼 여지도 없이 신의가 우선이었던 나는 배려와 이해를 거듭해야 했던 상대와의 관계유지를 하느라 꼬깃꼬깃 접혀서 미움까지 끌고 갔던 경험을 기억한다.
절대적인 신의를 고집하는 한 외로워져야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질척거리는 감정을 잘라낸 외로움이 곧 평안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깨진 약속은 이미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깨진 약속을 붙들고 전전긍긍하는 미련함이 더 이상 미덕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일정한 순서대로 풀어 나가면 정확한 해답을 얻을 수 있는 알고리즘,
‘신의’와의 작별이 아니라 신의를 지키지 않는 사람과의 작별에게 지난 추억까지도 말끔히 지워버릴 수 있기를 다짐하며 나에게 보냈던 시가 ‘작별의 알고리즘’ 이다.
불행하게도 나는 작별의 달인이 되어 버린 것일까? ‘오는 사람 막지 말고 가는 사람 잡지 말라’는 법구경구절도 예전처럼 생활지침이 되어주지 못한다.
실체가 없는 무상(無相)과 무아(無我)의 존재, 카르마의 노예......부끄럽게도 나는 알아차림과 선정을 보존하고 지켜나가기에 급급하다.
○의 마음상태를 두고
혹자는 텅 빈 무(無)라 하고
혹자는 꽉 찬 완성이라 하고
혹자는 영감의 원천이라 한다
아직 해독되지 않은 마음을 들고
날마다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나는
혹자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ㅡ「변증법」전문
자본주의에 잠식된 우리는 서로의 ‘다름’에 대해 살펴 볼 겨를 없이 이미 제각각 살기에 익숙해 있다. 외로움을 견디는 일도 각자의 방법에 길이 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과 사람관계는 신의가 가장 으뜸이라는 생각에는 추호도 변함없이 오늘은 또다시 오늘,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어 다행이다.
되도록 단순하고 간편하게, 불필요한 생활은 가지지 않는 미니멀 라이프(Minimal Life)...!
의미 있고 가치로운 삶을 추구하고 실천하는 미니멀리스트(Minimalist)가 될 수 있기를...!
ㅡ『우리詩』 2019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