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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박구리
승학산 텃밭 일은 대중없다. 쉬엄쉬엄하는데 쉴 때마다 돌의자에 앉는다. 찹찹하다. 그게 되게 편하다. 물 흐르는 개울둑에 앉아도 되지만 비스듬해서 거북하다. 묵직하고 반반한 돌이 좋다. 괭이나 낫, 삽질하다 숨이 차면 빨리 앉아서 쉬어야 하는데 떨어졌거나 없으면 아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야 한다. 퍼질러 앉으면 오래 쉰다. 일어나기 구차하다.
구석구석 앉는 자릴 만들어놨다. 일하다 말고 이리 자주 쉬는 사람을 처음 본단다. 또 밭에 돌을 세워 놓은 곳도 본 적이 없다. 별나다며 농군이 이런가 뭐라 한다. 일하다 쉬는 것만 생각한단다. 한번 엎드리면 한참 일해야지 조금 하다간 앉으니 언제 끝내나. 아낸 부지런해서 날 나무라면서도 호미질을 연신 한다.
“밥 빌어먹기 알맞다.”
“밭에 돌의자 놓는 사람 어디 있나.”
작은 밭이어서 힘들게 일할 것도 없다. 그래도 한참 삽질하다 보면 땀이 나고 숨 찬다. 뒷일은 아내가 다 한다. 풀뿌리와 돌을 골라내고 골 타서 씨 뿌린다. 그땐 돌에 앉아 한숨 돌리고선 피리를 분다. 노래 좋아하는 아낼 즐겁게 해 주기도 하지만 잊어버리지 않으려 불어줘야 한다. 아리랑과 한오백년, 희망가, 강원도아리랑, 올드랭 사인, 어메이징 그레이스 등 대여섯 곡이다. 그것뿐이다. 더 외워서 불려니 힘들다.
처음 소리를 틔우기 위해 「삘릴리」 하고 내 멋대로 분다. 곡을 외우려 애쓰지 않아 좋다. 그 청승맞게 부는 일이 참 재미있다. 마치 전설의 고향에나 나올 법한 소리다. 그때 까치가 한 소절 끝날 때마다 「깍 깍깍」 잘한다 맞장구친다. 어디서 듣고 나타나 계속 맞받아친다. 다른 새들도 주위를 날아다니며 뭐라 한다.
“직박거린다.”
새 소리가 예쁘다 하는데 주위의 갈매기나 거위, 고니, 기러기, 까마귀, 두루미, 백로, 부엉이, 비둘기, 오리, 왜가리, 참새, 황새 등이 내뱉는 게 별로다. 깍깍 꼬이 짹짹 끼럭 하는 게 뭐 좋나. 닭이나 뻐꾸기, 제비, 종달새는 꼬꾜, 뻐꾹 뻐꾹, 조잘대는 게 그런대로다. 두견새는 말은 많이 들어도 한 번 본 적 없고 우는 소릴 들은 것 같지 않다.
“휘파람새 봉황새는 말만 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린 사람의 목소리라니 놀랍다. 거기다 색소폰이나 대금 관악기들이 좋다. 그중에서 단소가 내겐 멋지다. 살살 넘어갈 땐 정신이 다 어질해진다. 내가 열심히 불어도 사람들은 잘한단 칭찬 말이 드물다. 가족도 그리 불렀는데 늘었다거나 좋다는 말을 아낀다. 새들만 「잘한다」 알아주는 것 같다. 그래도 아무렇게나 부는 청승 떠는 게 좋다. 손가락으로 작은 구멍을 막거나 열어주는 일이 까다롭다.
어중간은 사람이 열두 가지 재주라더니 하나라도 똑바로 할 줄 알아야 하는데 이것저것 걸친다. 남이야 알건 말건 내 좋아 신명 나는 일이다. 「중림무황태」 낮은음을 불다가 높은음으로 올라가면 가냘프게 간들거리는 소리가 참 좋다. 불고 나면 「피피」거리고 안 나와 새로 사 모으다 보니 여러 개다. 사람들은 퉁소라 부른다. 예전 것을 조금 고쳐 단소라 이름 붙였다. 처음 불 때 소리 내는 게 어려웠다.
시작할 때 낮은 「중림」을 불면 비 오는 날 연기 깔리듯 저 아래 골목을 살살 퍼져 맴돈다. 올려서 높은 「황태」를 길게 꼬불꼬불 내면 저 봉우리 승학산을 올라 구름으로 흐른다. 나는 내렸다 올랐다 하면서 예쁜 소리에 묻혔다. 뱀 나올라. 시끄럽다. 누가 나무라지 않는 여기서 천연덕스레 불고 앉았다. 솔바람 소릴 들으며 까치와 주고받는다.
「영산회상」을 연습해서 부니 어렵다. 여러 날 동안 악보를 익히고 구멍 찾는 걸 거듭했다. 겨우 다 외워서 부니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 한오백년을 불면 속이 다 시원하다. 꾸불꾸불 넘어가는 게 산하를 굽이쳐 흐른다. 아리랑은 불고 또 불어도 좋다. 참배 맛같이 잘 나오다가도 뒤틀어지면 통 안 된다. 입술을 대고 부니 습기에 부풀어선가. 취구가 말을 안 듣는다. 애먹이길 잘한다. 헛소리 잘하는 사람을
“퉁소 부네.”
가는 오죽이나 살진 대나무에 구멍을 뚫어 불었다. 그게 길어서 음을 맞춰 조금 짧게 했다. 노란색의 플라스틱으로도 만들어졌다. 오죽이나 가녀린 대나무로 만들기도 하지만 마디를 넣어 비슷하게 대량으로 찍어낸다. 얼른 보면 구별이 안 된다. 양산 배내 골짝 대밭에서 뿌리 달린 것을 뽑아 구멍 뚫어 만드니 어렵다. 소리 나는 곳을 잘 다듬는 게 쉽지 않다.
여름밤 무더워 잠은 쉬 오지 않는데 어디서 피리 소리가 끊어질 듯 이어 들려와 애태운다. 데려오게 해 곁에서 불어달라 부탁했다. 청아한 소리에 감동한 세종이 그 퉁소 소리에 잠이 들었다. 왕궁을 지키던 군졸이다. 차츰 올라 무관에서 문관으로 귀한 당상관 정승의 자리에까지 앉았다. 청렴한 고불 맹사성이다.
아내 잃고 적적할 때 청와대에서 단소를 불었다는 대통령도 있었다. 휴대하기 간편하다. 속주머니나 뒤에 넣고 다닌다. 차에도 둬 가다가 쉴 때마다 한 곡 한다. 삽질 괭이질이 쉽나 끙끙 일하고 나면 얼굴에 땀이 흘렀다. 그때 돌에 앉아보라. 그 맛이 대단하다. 고된 것이 피리 소리에 날아간다. 누군 시끄럽단 말 대신
“뱀 나올라.”
청주 교원대학교에서 달포 자격연수를 받고 대전 시내 큰 연회장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조별 장기자랑이 있었다. 불려 나가 한오백년을 불었다. 안 되면 어쩌나 불안했다. 3백 명 전국에서 모인 선생들 앞이라 떨렸다. 얼떨결에 마치고 내려오니 한숨이 다 나온다. 그런데 막 박수하고 「앵콜 앵콜」한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올라가 희망가를 멋지게 해냈다. 의자에 앉히고 마이크를 가까이 대준다. ʻ피피ʼ 하면 어쩌나 가슴 떨려 못할 일이다. 잘 나오다가도 피피 하면서 안 나올 땐 고집스레 말썽이다.
해양대학교 실습선으로 독도를 간다. 새벽에 보인다기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갑판으로 올라갔다. 저 멀리 조그만 바위가 보인다. 점점 가까워지는데 사진으로 보던 섬이다. 파도가 거세 내리진 못하고 몇 바퀴 돌다가 내려왔다. 시내 고교 교사들이 모였다. 강당에서 여흥시간을 갖는데 단소를 불었다. 대나무가 아니고 배관 작업에서 버린 회색 플라스틱에 구멍을 내 만들었다. 사람들이
“그런 것으로 어찌 노랠 할 수 있나.”
처음엔 을숙도 파밭 농부에게 말해 옆에다 일궈 채소를 갈았다. 모래땅이어서 가물 땐 말라 죽는다. 물을 줘도 이내 스며들고 증발해서 여전하다. 그래도 아내와 엎드려 저물도록 일하던 때가 좋았다. 강에서 낚시하고 둑에다 접시꽃과 봉선화, 코스모스, 백일홍을 심었다. 그득히 피어났다. 자꾸 늘려 수십 평 됐다. 온갖 걸 다 심었다. 이곳에서도 버드나무 아래 앉아 피리 분다. 갈매기가 끄륵끄륵 따라 외쳤다.
여객기가 금방금방 강을 따라 날아온다. 아랫배가 허연 것이 피둥피둥 살졌다. 얼마나 낮게 오는지 손짓하면 보일 것이다. 피리 소리도 들리잖겠나. 긴 여름 해는 퇴근하고 밭에 가 일할 수 있다. 가로등이 밝아 늦게 있어도 된다. 주말은 종일 들어가 산다. 동대신동에 있다가 당리로 이사 가면서 더 가까워졌다. 시간만 나면 찾는다. 아내가 채소 가꾸는 걸 좋아한다. 흙 만지는 게 포동포동 아기 살갗 같단다.
위아래 두 개의 섬을 가운데 길 내면서 하나로 만들었다. 일웅도를 합쳐 을숙도로 했다. 명지 일대가 보리밭이었다. 을숙도 갈대밭은 건너 에덴동산과 함께 관광지다. 통통배 타고 건너다니던 갈대밭이 조금씩 파밭으로 변해갔다. 얼마 뒤 그 많던 갈대는 온데간데없고 드넓은 밭이다. 뿌리 깊은 갈대와 쑥대를 걷어내고 빠르게 대파와 시금치를 심었다. 겨울인데도 푸른 섬이다. 라면 공장에서 주문이 들어온단다.
낙동강이 바다로 들어가면서 여러 섬이 나타났다. 화명을 내리면서 앞 드넓은 삼각 모래톱 평야를 이룬다. 김해 벌판이다. 가락 동쪽 강이라 해서 이름 붙여졌다. 좌우로 갈라지니 두 갈래다. 그 섬 가운데 비행장도 있다. 다시 낙동강 끝에 백만 평 을숙도가 생겨나면서 그 아래 맹금머리와 백합등, 도요등이 있다. 강물이 짠 바닷물과 어울려 밍밍한 기수가 되는 곳이다. 마지막 사하구를 흐르는 강이다. 먹이가 떠내려오는 게 많은가 여기에 온갖 것들이 득실댔다. 재첩과 멸치, 김 양식으로 유명했었다.
강기슭에 뱀과 쥐들이 살다가 갑자기 불어난 물에 떠내려간다. 을숙도 아래 다대포 가까운 섬에 닿는다. 강바닥엔 게와 조개, 물고기 등 이것저것 걸린 것도 있어 먹을 게 깔렸다. 서로 잡아먹고 먹히며 지난다. 도망 다니며 살다가 만조 사리 날이 오면 쥐는 갈대 끝에 오르고 뱀은 여러 개를 감아 머리를 위로 치켜세워 물 가라앉길 기다렸다.
그때 공중에는 어김없이 매와 솔개가 나타난다. 아래로 꽂히듯 내려 이들을 낚아채 간다. 아미산에 살다가 이날을 기다렸다. 날아와 풍성한 잔칫상을 받는다.
“맹금머리다.”
바로 아랜 백합이 많이 나는 백합등이다. 그 밑엔 도요새가 날아와 잠시 머물다 가는 도요등이다.
도요새는 바이칼과 흡수굴에 겨울이 오면 남쪽으로 먹이 찾아 내려온다. 도요등에 머물다가 저 멀리 태평양을 건너 호주나 뉴질랜드로 날아간다. 부리와 다리가 길다. 물가를 쪼르르 다니며 작은 게를 잡아 흔들어 다릴 떼고 먹는다. 많이 먹어 둬야 머나먼 곳으로 날아갈 수 있다. 그곳에 겨울이 오면 다시 아득한 붕정만리를 건너 도요등을 찾아온다. 한번 뜨면 내려앉을 곳이 마땅찮아 몸이 절반으로 줄어들어 홀쭉한 고달픈 새이다. 모두 들어갈 수 없는 천연기념물이다. 다대포 아미전망대에서 내려다볼 수 있다.
저쪽 서낙동강은 강서구를 지난다. 아래 진우도와 신자도, 장자도, 대마등이 가로놓여있다. 토사가 밀려 내려와 쌓여 자꾸만 섬이 길어지고 새로 생긴다. 둥글게 갈대가 솟아나다가 모래섬으로 바뀐다. 밀물에 잠겼다가 나가면 드러난다 해서 등이라 불렀다. 동 낙동강과 달리 서낙동강은 물 나가면 뻘밭이 저만치나 드넓다. 진우도는 전란 때 어린이를 보호했던 보육원이 빈집으로 남아있다. 장자도엔 우물이 있어 농사지은 흔적이 있다.
요즘 재첩이 한창이다. 없어졌다가 다시 생겨났다. 동 낙동강은 강바닥에 지천으로 많아서 오르내리며 재첩 긁는 배가 온종일 다녔다. 장림과 신평의 얕은 곳은 김 양식으로 이름났었다. 우리나라에 처음 생긴 일이다. 강이 끝나는 다대포엔 멸치가 득실거려 멸치잡이가 좋았다. 젓갈로 유명해 전국으로 팔려나갔다. 「멸치후리기」 노래도 있다. 장림 신평은 매립되어 공단으로 변했다. 다대포는 해수욕장으로 다듬어졌다. 다 없어지고 맨송하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어디까지나 공장이 들어서고 공원으로 바뀌었다.
놀랍게 수십 년 지나자 반대로 서낙동강에서 재첩과 조개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한다. 물이 맑아졌는가 썰물 때 호미든 사람들이 다리 위쪽에 바글바글하다. 어떤 사람은 많이 긁어 몇 자룰 매고 나온다. 구포 재첩국 음식점에 넘기는 것 같다.
별것 아닌 에덴동산 명칭에 놀라 뭣이 있는가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 조그만 동산일 뿐이다. 을숙도 갈대밭은 가 볼 만하다. 에덴동산은 마을 가운데 조그만 산으로 이름만 거창하게 붙였다. 새벽잠을 깨우던 정겨운
“재첩 사이소.”
전엔 부산시 서쪽을 흐르는 낙동강에 다리가 일정 때 놓은 구포다리 하나뿐이었다. 을숙도를 가자면 배를 타야 한다. 갈대꽃이 흐드러져서 마음을 설레게 한다. 키 넘는 울창한 밀림 속을 헤집고 다니는 게 좋다. 작은 게들이 버글거리는 별난 곳이다. 질퍽한 곳에 갈대를 밟아 넘어뜨린 곳으로 길이 이곳저곳 났다. 한참 빠져나가다 보면 다시 강이 나온다. 미로를 빠져나온 기분이다. 대포 종 치면 배 떠나는 나루터이다.
그러던 곳이 갑자기 갈대밭으로 되돌아갔다. 시에서 예전처럼 을숙도를 제자리로 돌려놨다. 넓던 밭은 뒤집히고 갈아엎어졌다. 농부들이 드러누워 반대하고 아낙들이 밀고 들어오는 불도저와 구청 직원들을 향해 흙을 뿌렸다. 눈에 들어가라고. 그게 가당키나 하나 모두 쫓겨났다. 그동안 농사지은 보상을 조금씩 받았다.
“우린 어찌 되나.”
그 난리를 치고 난 뒤 가봤다. 단소 불던 수양버들 아래 평상과 둑으로 죽 가꾼 꽃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하늘하늘 바람에 흔들리던 코스모스가 어디 가고 사라졌다. 층층이 핀 희고 붉은 접시꽃도 간 곳이 없다. 내 밭은 뚤뚤 말려 마구간 옆 구석에 처박혔다. 고추 고랑이 멍석처럼 말린 곳에 뒤엉겨있고 배추, 상추, 무가 희뜩거리며 엎어졌다. 공사장 기계로 밀어버렸다. 옷가지와 신발, 농기구 움막도 짓밟혀 박살이 났다.
“덧정이 없다.”
이곳 승학산 밭에 와서도 한참 동안 을숙도 밭일이 떠올랐다. 웅어와 전어 낚시가 좋았다. 채낚시로 끌어올리던 숭어가 굵었다. 망둥이는 한 양동이를 잡았다. 가까이 돌 틈으로 넣으면 팍팍 물려 올라왔다, 차를 밭둑에 댄다. 늦게 일해도 신작로 가로등이 밝아 좋다. 수만 평에 코스모스를 심어 가을은 너풀대는 꽃밭으로 가슴이 다 시원하다.
“어디 이런 데가 있나.”
“낙원이다.”
속절없이 쫓겨나 아파트 뒤 승학산 기슭 작은 밭머리 돌에 앉아 피리 불고 있다. 7층 방에서 보면 눈높이처럼 건너다보이는 가까운 곳이다. 가려면 동쪽 정문을 나서 한참 올라야 한다. 연장이나 거름, 비료를 매고 가려면 힘이 든다. 일하다 보면 아이들이 소리치고 오라 할 때가 있다. 우리도 필요할 땐 아들아 딸아 하고 부르면 고갤 내민다. 가깝고 먼 텃밭이다.
그런데 쉽게 갈 수 있게 됐다. 뒷문을 내줬다. 높고 굵은 철조망으로 둘러쳐졌는데 나가는 문을 만들었다. 학생들의 등하교를 도와준 것이다. 덕분에 우리가 편리해졌다. 바로 밭으로 들랑날랑한다. 아침저녁으로 올라간다. 운동하고 밭도 보기 위해서다. 굴참나무와 소나무가 빽빽하다. 아름드리 굵은 것들이어서 숲속 길이 멋지다. 반찬 만들다 모자라면 얼른 밭으로 올라가 뽑아온다. 문전옥답이 따로 없다.
그래도 을숙도 밭이 생각난다. 고춧대를 세우려고 가까운 강가 갈대를 꺾었다. 세차게 꺾으면 뚝 부러지는데 갈기 찢어지면서 끊어지질 않는다. 그러니 화나서 확 당기는데 손에 상처만 날 뿐 떨어질 생각이 없다. 여러 갈래로 갈라지면서 질기게 몸을 지키고 있다. 대나무 성질로 다들 잘 잘리는데 어찌 이리 모질까. 강에는 회색 갈대꽃이고. 산엔 흰색 억새꽃이다. 더 높은 곳엔 지붕 잇거나 도롱이 만드는 띠가 자랐다.
강물이 바닷물로 합쳐지는 곳에 갈대가 잘 자란다. 찰랑찰랑 물에 잠겨서 커간다. 새끼가 나오면 물속 어미 발치에서 비뚜름하게 솟는데 부드럽고 연약하다. 건드리면 부러져 떨어질 것 같다. 그 찰랑거리는 짠 물에 견디며 크는 게 신기하다. 파도는 얼마나 밀려드나 잠시를 가만있잖고 출렁인다. 높았다가 낮아지는 아침저녁 밀물 썰물을 참고 지난다. 물에 잠겼어도 비실거리지 않는다. 비바람 쳐도 잘 견뎠다.
파도가 심한 태풍 때도 괜찮다. 어미가 옆에서 지켜주기 때문이다. 농작물은 엎어지고 자빠지는데 갈대는 탈이 없다. 가로수 나무도 뽑히고 부러져나간다. 가로등도 떨어져 너덜너덜하다. 그 심한 폭풍이 삼킬 듯 넘실대는데도 끄떡없다. 어미가 곁에 바짝 붙어 안고 같이 휩쓸리면서 지난다. 키 올려주곤 어느 비 오는 날 어버이는 스르르 녹아 가뭇없다. 빽빽한 갈대밭엔 형제자매만 남았다. 부모는 흔적 없이 사라졌다. 상한 갈대 없이 모두가 싱싱하다.
아파트 나서면 깊은 산골이다. 노송과 참나무가 번갈아 서서 하늘을 가린다. 퇴근해 오면 아낸 없다. 뒷밭에 엎드렸다. 부채로 모길 쫓아야 한다. 흰 띠를 두른 모기가 극성을 부린다. 휘휘 저으면 달아난다. 물 고이는 웅덩이가 있어 자꾸 생긴다. 그러다가 파리채를 들고서 목덜미나 등에 붙은 걸 잡는다. 발전해서 나는 걸 재빠르게 정확히 쳐 정신을 잃게 한다. 물리면 금방 발진하며 퉁퉁 붓는다. 쓰라리다.
한참 토닥거리고 나면 이것들이 죽었거나 안 되겠다며 어디론가 사라진다. 갈 때마다 모기와 전쟁이다. 그리 잡아도 가면 또 나타난다. 뜸한 틈을 타 일하고 쉬면서 한 곡 늘어지게 분다. 청승을 떨어야 잠자는 숲을 깨운다. 어디서 새들이 모여 친군가 싶어 같이 「찍찍 박박」 한다. 오던 까치가 아니라 얼굴에 흰점이 있다. 얼른 보면 비슷한데 아니다. 좀 작다. 울음이 다르다.
“삐 삐-익 찌리릿”
잠시를 가만 안 있고 폴폴 날아다닌다. 입을 열어놓고 산다. 저러면 배 꺼질 텐데 괜찮나. 피리를 그치면 좀 조용한 것 같다. 그러다가 삑 한다. 또 불러보란 말 같다. 뒤늦게 찾아와 분잡스럽게 군다. 한참 불면 숨차 좀 쉬어야 다시 불 수 있다. 이제 불려 한다. 위 숲에서 아래 아카시아로 날아들었다.
열 평은 될까. 작은 텃밭으로 채소 갈아먹기는 알맞다. 모임이 있으면 못 가도 아침저녁으로 운동하는 산책길이다. 저 끝에는 구청에서 단련 기구를 많이 설치해 둬서 매달린다. 거기도 모기가 득실거린다. 빨리 움직여야지 어정거리면 막 문다. 내려오다 밭에 들러 땀 식히며 물 주고 단단한 돌의자에 앉는다. 얼룩 모기가 얼씬댄다. 산모긴 배고픈가 뜯어먹으러 막 달려든다. 손등과 모가지에 잘 붙어 빨았다.
아파트 지을 때 산자락을 무너뜨려 절벽 담을 만들었다. 비 오면 물이 넘치지 않도록 배수로를 팠다. 위와 좌우 세 통로를 통해 모여 고였다가 아래로 내려가는 웅덩이가 있다. 그곳이 토사로 쌓이는데 들어가 흙을 퍼낸다. 담긴 물을 긴 바가지로 물통에 담는다. 그 물을 가물 때 채소에 뿌리면
“내 사내.”
하고 좋아한다.
처음에는 햇볕이 잘 들었는데 가을이 되면서 아파트 그늘도 슬며시 들고 나무도 햇살을 막는다. 응달은 채소가 안 된다. 아카시아가 멀대같이 키 크고 무성하다. 멋없이 커서 그늘을 만드니 어쩌면 좋아. 음침하다. 꽃필 땐 좋았는데 밉상이다.
죽으라고 밑동을 톱으로 한 바퀴 썰었다. 옆 소나무도 너 죽어라 하고 톱질을 했는데 여전하다. 왜 그런가 보니 진이 나와 다시 붙었다. 아 미안하다. 저래 살려고 발버둥 치는 걸 그랬나. 밭 못 하면 그만이지 저런 걸 어찌 죽이나. 그래도 한 자락은 자글자글 해가 들어온다. 옆 밭 아주머니는 그늘지니 아무것도 안 되자 호미로 툭툭 땅을 치다간 나타나지 않는다. 아낸 구청에서 뭐라 한다며 톱질을 못 하게 막았다. 그늘져서 밭이 점점 줄어들었다.
죽치고 앉아 피리만 분다. 승학산 밭이야 되든 말든 내 할 일이나 하자. 운동하고 내려오면서 물주며 부는 게 하루 일 시작이다. 박새가 나타나 같이 놀잔다. 어떨 땐 까투리가 내려와 솔솔 기어 다닌다. 그 뒤에 잘생긴 수꿩이 따라오면서 「꿔겅꿔겅」 지켜본다. 구석진 곳을 살짝살짝 쏘다니니 걱정인가 눈을 부릅뜨고 꾸짖는다. 가장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다그쳤다.
“거긴 철조망이야 목 끼여.”
박새가 삐삐 삐리릿 주절대며 피리 소리에 맞춰 장단을 놓는다. 어디서 들리나 하고 머리 위를 폴폴 날아다니며 외친다. 까치보다 작은 몸집으로 배가 회색이고 얼굴 눈 밑이 희다. 날개와 꼬리에도 흰 반점이 돈다. 까치처럼 까딱까딱 꼬리 치는 게 비슷하다. 지긋하게 있질 못한다. 파도처럼 울렁거리며 싸돌아다녔다. 박새 비슷한 친구도 같이 날아와 논다. 오라 불렀는가. 그도
“비비 삐리릿 직직.”
눈가에 붉은 점이 보인다. 고라니가 낮에도 내려와 설설 다닌다. 큰 것은 셈이 있어 안 내려오고 새끼들이 멋모르고 설친다. 큰 건 밤에 내려와 고춧잎과 줄기를 끊어먹어 못 쓰게 만들었다. 그물을 치고 문을 달아둬야 한다. 분질러 먹은 고추는 그만 뽑아낸다. 다시 심어야지 구실 못해 소용없다. 사람이 오면 먹다가 실 숨는다. 옆 섶 속이다. 가까이 가면 놀라 후다닥 튄다. 깜짝 놀라 나자빠질 뻔했다.
내려가는데 길가 바로 곁에서 입을 오물오물하기에 이웃 개인가 했다. 자세히 보니 고라니다. 자지러지게 놀라는데 저는 무심코 쳐다보고 있다. 뭘 그리 놀라느냐 눈치다. 기가 막혀서.
“야 넌 왜 남의 고춧대를 망쳐놨나.”
멀뚱멀뚱 보면서
“무슨 말을 하느냐.”
이다. 귀찮다며 비실비실 숲속으로 사라진다. 빨리 안 간다. 엉거주춤 저 집 마당 가듯이.
“괜히 나만 갖고 야단이야.”
새끼는 영도철도 없이 나다녔다.
그늘로 점점 줄어드는 텃밭이다. 을숙도 밭이 그립다. 싱그러운 부추와 채소가 밀려 멍석처럼 굴러서 구석에 나가떨어졌다. 지주대들이 삐죽삐죽 나왔다. 우리 부부가 가꾼 정성이 저리 허망하게 나뒹군다. 그곳에서 이것저것 보았다. 갈대꽃이 씨 맺으면 아무리 세찬 바람에도 떨어져 나가지 않는다. 붙어서 옴짝달싹 안 하는 수수와 같다. 따스한 봄날 딱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모르던 씨앗이 한꺼번에 자욱이 하늘을 날아오른다. 서로 통하는가 약속이나 한 것 같다. 버들꽃이 지고 솜털이 씨앗을 안고 멀리 눈보라 치듯이 날아갔다.
아파트 창문을 열면 뒷밭이 훤히 보인다. 젖빛으로 된 것을 아내가 맑은 유리로 바꿔줬다. 밤중엔 부엉이가 「부헝 부헝」 울고 소쩍새가 늦도록 소쩍소쩍 한다. 거기다 으스스하게 고라니가 꽥꽥 소리 지른다. 저들 세상이다. 가끔 적막한 낮엔 뻐꾸기가 뻐꾹 뻐꾹 외친다. 도심 속에서 산골 맛을 보고 산다. 딸과 아들 방이 비었다. 딸은 경기도로 아들도 서울에 산다.
가운데 딸 방은 비워두고 뒤 창가 아들 방을 썼다. 책상을 놓고 긁적이다가 쳐다보면 승학산 정상이 뵈고 비행기도 지나간다. 그림이다. 새끼들도 함께 살 땐 복작거렸는데 가고 나니 허전하다. 언제까지 같이 있을 줄 알았는데 떠나갔나. 삐죽 열린 빈방을 보면 배시시 나올 것 같은 아이들이다. 늦잠 자고 늦게 들어오며 말썽 피웠어도 늘 기다렸는데 그리움이다. 아이들 생각으로 북쪽 산을 쳐다본다. 쓰다 막힐 때도 뒷산을 바라봤다.
건너 신평 고갤 넘어가는데 현수막을 얼른 지나치면서 봤다. 하모니카가 어떻다 적혔다. 며칠 뒤 다시 그 길을 가면서 맘먹고 살폈다. 초급반 모집이다. 마침 잘 됐다. 그러잖아도 어디 배울 데 없나 했는데 아무 데도 가르쳐주는 곳이 없다. 아내와 다녔다. 「미화」를 사서 불고 그날 배운 것을 연습했다. 책을 보며 익혔다. 교회 사무원 집사가 가르쳤다. 뚱뚱한 분이 귀에 쏙쏙 들어오도록 알려주고 멋지게 불었다.
어릴 때 저게 불고 싶어 부석 장날에 따라가 졸랐다. 엄마는 무거운 무쇠솥만 짊어지게 하고 그냥 왔다. 얼마나 무거웠는지 헉헉댔다. 한번 사서 불어야 한다면서 지나쳤다. 친구들이 손을 오므렸다 폈다 하면서 부는 게 멋졌다. 그걸 이재서야 배우게 됐으니 그래도 좋다. 아낸 열심이다.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나갔다. 집에 와선 입이 아프도록 불었다. 저절로 노래가 되는 줄 알았다. 어렵다.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내 불고 들이마시는 게 정확해야 한다. 하나만 틀려도 노래가 안 된다. 이리 어려운 걸 쉬 불었을까. 모든 관악기는 내 부는데 이건 들이마시기도 한다. 그게 쉽나. 시작도 잘해야 한다. 처음이 틀리면 안 된다. 잔잔한 구멍이 많은데 한 음만 내라 가르친다. 불면 「도미솔」이고 마시면 「레파라시」 소리가 난다. 교차하는 데 앞이나 끝으로 가면 맞지 않아 어긋나게 된다. 피리 불 듯이 한 소리만 나오도록 혀를 댄다. 가냘픈 소리가 나야 곱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무엇이 무엇이 똑같을까 젓가락 두 짝이 똑같지요.”
「똑같아요」를 시작으로 사이좋게, 학교 종이, 나비야, 고기잡이, 작은 별을 하나하나 익히고 외웠다. 그러다 우리의 소원을 하니 내 노래에 취한다. 이제 그 불고 싶었던 하모니카를 부는구나. 감동이 왔다. 계속 에델바이스를 익혔다. 악보를 보면서 하다가 스스로 불기 시작했다. 내 쉬고 들이마시는 노랠 틀리지 않고 분다. 악보를 보지 않고 외운다. 수십 곡을 할 수 있다.
창원에 있는 동요 작가 이원수 기념관을 다녀왔다. 섬 집 아기와 여수를 부니 기막히게 좋다. 내가 불고 그 감동에 취한다. 언제 이리 불게 됐나. 퇴직하고 나서 잘한 일이다. 나이 들어 흐릿한데 맘먹고 애쓰니 뭣이 되는 게 놀랍다. 문인들 등산 때 울산 어느 고개 정자에서 노래 부르며 피로를 풀 때 반달을 불었다. 동요가 정겹다. 가곡도 불렀다.
교회 성탄절 예배 때 앞에 나가 고향의 봄과 「주 예수보다 귀한 것은 없네」를 했다. 모두 놀라 그런 걸 할 줄 아나 의아히 여겼다. 중급반에 올라가 한 해를 꼬박 다녔다. 민요 아리랑과 찬송가 내주를 가까이, 천부여 의지 없어서, 주안에 있는 나에게,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감동으로 한다. 조경수의 「행복이란」 가요도 외웠다. 아리랑은 언제 불어도 좋다. 그윽한 찬송가를 하면 마음이 차분해졌다.
당구 치는 친구가 담배를 피워선가. 갑자기 폐암으로 죽자 여럿이 철마 산속 무덤을 찾아가 기도하고 「하늘가는 밝은 길이」를 하모니카로 가늘고 애달프게 불렀다. 또 이 곡을 장인 묘소에 장모 합장 때도 불었다. 가족들이 모두 고개 숙이고 숙연했다. 졸업생이 안동 묵계교회 목사로 부임하자 찾아가 「내주의 보혈은」을 예배 시간에 올렸다. 한번 하니 짧은 것 같아서 거듭해 불렀다. 밋밋한 예배에 난데없는 악기를 선보이니 다들 놀랐다.
하다가 긴장해서 끊기거나 다른 소릴 내면 어쩌나 했는데 잘 해냈다. 신문사 넓은 강당에서 시조 문학 총회 때 과수원 길을 가늘고 이쁘게 하니 모두 박수를 했다. 언제 그런 걸 부나이다. 서운암 마당에서 시조 시인들의 그득한 모임에 바위고개를 불었다. 숨이 차 껄떡거리면서 그런대로 마쳤다. 문학중심 모임에서도 등대지기를 불렀다. 여 저 다니면서 너스레를 떨어 환영을 받았다. 행사 때마다 그런대로 잘 불었다.
그런데 수필 문학 모임에서 한번 불러보래서 하다가 혼쭐났다. 부르곤 지명을 하는데 난데없이 내 이름을 대는 사람이 있었다. 이런 사달이 날까 싶어서 하모니칼 준비해 갔다. 노래는 안 하고 속주머니에서 작은 악기를 꺼내니 눈들이 휘둥그렇다. 잘 불러 본때를 보여줘야지 맘먹었다. 첫 음을 잘 못 들어가 그만 노래가 안 된다. 시작 때마다 망설여졌는데 일 났다. 작은 구멍에 맞춰 불기 어렵다.
낭패다. 다시 미안하다며 다 아는 쉬운 곡을 불었는데 아뿔싸 그것도 들어가는 음이 헷갈려 그만 놓치고 말았다. 낯선 여자가 갑자기 내 이름을 불러 놀랐는가 안 된다. 그 뒤부턴 자주 불러 익혀야겠다며 애쓰는데 그게 쉽지 않다. 게으름이 생기기도 했는데 이 산속에서 부니 얼마나 마음 편한가. 내 맘대로 불면서 틀려도 그냥 넘어간다.
승학산 텃밭에서 피리에 이어 하모니카도 분다. 박새와 또 다른 새들과 어울린다. 어떨 땐 딱따구리가 와 「따르륵 따르륵」 한다. 난데없이 까마귀도 나타나 깍깍하다가 사라진다.
“여기 뭐 하는 거냐.”
며 되통스럽게 소리쳐 들러보고 간다. 승학산 깊은 골짝 약수터에서 단소를 감질나게 불렀더니 물 뜨던 아주머니가 좋다며 다가와 인사이다. 박새 춤추며 머리 위를 폴폴 날아다닐 때가 신났다. 힘이 솟아났다.
명지 해안 산책로가 근사하다. 중간쯤 걷다 정자에 앉아 꽃밭에서와 오빠 생각을 불었다. 숲에 쉬던 사람이 가까이 와 고맙다는 말을 한다. 두 가지 악기를 하자니 바쁘다. 자주 불다가 뜸할 땐 오래 간다. 안 하니 손 떠서 멀어진다. 계속 멈추게 된다. 이러면 힘들게 배운 것을 잊을라. 억지로 꺼내 다룬다. 잊어서 헤맬 때가 있다. 시작 때 불까 마실까 감감하다.
강원도아리랑과 영산회상은 그만 잊고 말았다. 다시 하려니 악보를 찾아 중림무황태를 익힐 일이 가마득하다. 한 구절 한 소절을 외우려니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릴 또 해야 한다. 수십 곡이어서 그걸 지탱하는 것도 벅차다. 아는 것만 갖고 자주 불러보자. 잊지 않게 달달 외우자. 흔해 빠진 동요나 민요를 잘잘 부니 점잖지 않아 보인다. 혀를 댔다 뗐다 베이스를 넣는다. 또르륵 올랐다 내렸다 멋을 부렸다.
베이스 넣는데 근 한 달이나 걸렸다. 한 번에 두세 번 넣는 빠른 것은 못 한다. 「작 작 자작」 정도이다. 단음을 내는 것과 한 음을 떨거나 높낮이로 갈라내는 소리, 높을 때 가늘게 넘어가는 기교가 필요하다. 쉽지 않다. 평이하게 부는 것보다 가늘게 연약한 듯 나가다 강조하듯 올리는 부분이 가끔 있어야 좋다. 크게 불지 않는다. 가냘프게 경쾌히 불어야 듣기 편하다.
시내 볼일 보고 집에 오니 아내가 없다. 승학산 밭에 갔을까 올라가니 혼자 호미질하고 있다. 무엇이 들어가 빠졌다. 물통에서 「후절펑 후절펑」 소리가 난다. 뱀이라 생각하니 겁부터 난다. 보니 반쯤 빗물 고인 통 안에서 꾸불텅꾸불텅 한다. 정말 무섭게 생긴 것이 뱀 같은 느낌이다. 아내에게 여기
“뭣이 들앉았어.”
소리치니,
호미를 들고 왔다. 보더니 손으로 덜렁 들어냈다. 새이다. 물에 젖어 후줄근하다. 번득이는 눈이 까만 게 반들거린다. 척 늘어져 딸깍딸깍 숨넘어가는 듯 기진해 엎드렸다. 가끔 눈을 지그시 감는다. 햇볕을 가려주고 퍼져있는 젖은 날개를 닦아줬다. 살아나겠거니 내버려 뒀다. 한참 일하는데 움직이는 느낌이 있어 보니 꿈틀꿈틀한다. 정신이 드는가 퍼덕인다. 몸에서 물기가 흘러 땅이 젖어 촉촉하다. 박새가 아닌 것 같다. 비둘기도 아니다.
막 날려고 푸드덕푸드덕한다. 언덕을 굴러떨어지는데 날지 못한다. 그제야 불쌍한 마음이 든다. 그래도 흠뻑 물에 젖어 험하게 생겨 징그럽다. 직-직-. 소리도 요란하다. 지쳤다가 이제 힘이 나는가 보다. 날겠다고 난리를 피우며 야단이다. 꼭 붙잡아 쥐었다. 꽤 크다. 참새보단 커 보이고 비둘기보다는 작다. 힘이 대단하다. 날개가 부러졌다. 벌레 잡으려다 빠진 것 같다.
장갑 낀 손가락을 꽉 물곤 놔 주질 않는다. 죽을 것처럼 기진맥진하더니 힘이 생겼나. 손인지 발인지 장악력이 대단하다. 빼려니 그대로다. 내가 저를 살려주려는데 물고서 표독하게 군다. 새끼가 있는가 버둥댄다. 가게 해 달라니 이래 갖고선 턱없다. 피리 불 때 맞장구치던 벗인데 날갤 어찌 고쳐줘야 하잖나. 여기 내버려 두고 갈 수 없다. 고양이와 매가 설치고, 밤엔 부엉이도 다닌다. 동물병원에 가면 될까.
을숙도 텃밭에 다닐 때 동물보호소를 본 적이 있다. 그곳에 가 보자. 꼼지락거리는 새를 안고 차를 몰았다. 급히 가면서 오른손으로 운전했다. 왼손은 새를 잡았다. 어디 통에 넣어가면 될 텐데 경황이 없어 그냥 갔다. 하단 오거리를 지나면서 교통경찰이 보여 가까이 다가갔다. 사정을 얘기하니 앞서면서 따르게 했다. 이름 모르는 새를 살리려 경찰까지 동원됐다.
하구언 다리를 지나 일웅도를 빙 돌아내려 아래 을숙도로 들어선다. 파닥대던 새는 조용하다. 그래도 손은 계속 물고 있다. 눈 주위에 붉은 무늬가 예쁘다. 눈물이 흥건한 얼룩진 모양이다. 참새나 비둘기 빛깔이다. 귀한 천연기념물인지 모른다. 이 새를 처음 본다. 직직 찍찍 놔달라 버둥거리며 소리치더니 체념했는가 숨죽이고 조용히 있다. 손에 느껴지는 팔딱팔딱 놀란 새가슴만 콩닥콩닥 전해졌다. 자가용에다 경호로 호강하는 새다.
“치료받고 살아나거라.”
낯선 곳을 처음 찾아 들어갔다. 받아서 탁자 위에 포대기를 펴 돌돌 말았다. 「직박구리」다. 과실을 쪼아먹어 농민들이 싫어하는 새란다. 귀하기는 무슨. 텃새로 흔하단다. 그런데 난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새다. 그리 몰랐을까. 땅에는 잘 내려앉지 않는 나무에서만 돌아다니며 산다. 평소엔 목소리가 예쁘지 않아도 가끔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지저귄단다. 이제 살 수 있게 됐다.
“잘 치료받아 가라.
직박구리라니 무슨 말일까. 딱따구리가 있고 개구리도 있다. 옆구리와 너구리에 구리도 보인다.
“직박거리다.”
“딱딱거린다.”
“개굴거린다.”
굴다와 거리다가 구리로 변한 것인가. 과실을 좋아하고 노래하길 즐기는 새다. 날개 고쳐서 승학산 숲으로 오라. 단소와 하모니카 불 때 같이 주고받자꾸나. 함께 노래하다 안 보이니 찾아 왔다가 그리됐을 수도 있다. 처음은 버둥대고 찍찍하다가 이내 조용히 순해졌다. 피리 부는 사람인 걸 알았을까. 직박거리다가 고분고분해졌다. 포대기에 싸이면서 시키는 대로 가만있었다. 야단법석을 피우지 않았다.
텃밭 주위에 여러 사람이 부친다. 현수막이 붙었다. 구청에서 철거하라는 내용이다. 산을 자꾸 파헤친다며 몇 차례 말이 있었다. 그러려니 했다. 얼마 뒤 보니 나무를 심고 농기구와 그물, 물통을 모두 걷어갔다. 앉던 돌의자도 묻었는가 안 보인다. 농작물은 갈아엎었다. 휑한 게 찬바람이 쌩 난다. 그러잖아도 자꾸 그늘져 작아지더니 이 모양이 되고 말았다. 쫓겨났다. 을숙도 밭에서도 그리됐다. 일은 안 하고 피리 불더니 옹골지다.
그나저나 날개 나아 퇴원해 오면 날 찾을 텐데 어쩌나. 운동하는 체육기구가 있는 곳으로 올라가 이것저것 만진다. 몽둥이로 타이어를 두들겨 패는 것에서부터 낮은 철봉에 엎디어 팔을 굽히고 폈다. 또 매달려 턱걸일 하면 힘이 쭉 빠져 까라진다. 앉아 단소를 분다.
“좌우로 돌리기.”
“줄 당기기.”
“누워서 뒤통수 잡고 일어나기.”
모두 끙끙거리고 웅성거린다. 단소까지 시끌벅적하다. 얼마 뒤 올라갔더니 시설이 없어졌다. 수십 가지로 맞는 것을 골라 했는데 하나도 없다. 파간 흔적만 남았다. 왜 이리됐을까 궁금하다. 옆에 오래된 무덤 몇 기가 있다. 그 주인이 시끄럽다며 다른 곳으로 옮겨달라 요구해서이다. 우리가 옆에서 운동하고 떠들면 덜 적적할 텐데도···.
“시에서 밀어내고”
“구청이 가져가고”
“무덤이 쫓아낸다.”
가는 곳마다 푸대접이다. 오씨가 마침 지나다 보니 구청 차가 밑에 있고 직원들이 우우 달려들어 걷어오고 있었다. 겨우 농기구를 돌려받았다며 내 삽과 괭이를 전해줬다. 젊은 날 금은 세공을 배우면서 머리에 많은 꿀밤을 먹었다는 얘기가 구수하다. 둘은 철조망에 남아있던 오이를 잘라 먹으며 그동안 함께 짓던 얘기로 위로를 했다.
심어진 나무가 잘 자란다. 없어진 밭머리에 앉아 「삘리리」 분다. 사부작사부작 아내의 호미 소리가 들린다. 「삐-삐리릿」 「직직 박박거림」도 날아든다. 높은 황태를 길게 빼면 저 승학산 구름이 직박구리 날듯 울렁울렁 흘러갔다.
“아무렴 그렇지 그렇고 말고 한오백년 살자는데 웬 성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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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선생님 너무 재밋있는 글
수고하셨습니다 두고 두고 읽어야 겠서요
홍시가 맛납니다.
대추를 옥상에 널어 더 말렸너니 뽀송뽀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