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일본 역사상 가장 안정 되었다는, 말 그대로 편안한 시절이라고 여기면 기억하기가 쉬겠지요! 이렇게 모두들 관심 없어하는 얘기지만 계속 올리는 이유는 아주 옛날에 나름대로 관심 갖였던 일본 역사를 다시금 되새김 하는 뜻도 있지만, 이미전에 언급했듯이 현재 서울시 문화관광해설사(일본어담당)인 소생에게 해설사중 일본어 담당 회원들이 일본의 역사에 대해 두어시간 정도의 강의 내용 요청이 있어 준비도 하면서, 장님이 코끼리 만지고 진단하듯 합니다만...,
일본에서 간행된 역사참고서를 인용하고 있으며, 특히 청아 출판사의 "이야기 일본사"의 번역서는 무시하고 있으니 중복되지는 않으려니 합니다만..
오늘은 헤이안 시대의 전체적인 사건들을 열거 하기로 하지요! 400 여년을 짧게 요약 하는게 웃기는 얘기일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제4장 헤이안(平安)시대 제50대 간무천황때 平安京(京都)로 수도를 옮기고 400년 간이나 지속된 긴 시기입니다 간무천황이 천도 하면서 율령정치의 재건을 시도하나 결국은 후지와라씨 를 중심으로한 귀족 시대의 전성기가 됩니다 또 이시대에는 귀족 문화의 전성기 이기도 합니다 견당사(겐도우시) 제도를 폐지하고 일본적인 문화인 國風문화(코쿠후우분카)가 개화 합니다 그러나 지방에서는 새로운 세력의 무사단이 점차 힘을 키우게 됩니다 후지와라(藤原)씨의 힘에 놀라 인세이(원정)시대의 경쟁속에 무사가 실권을 확실히 쥐어 갑니다
시기별 주요사건은아래와 같습니다
*794년: 간무천황이 수도를 헤안교우(평 안경)으로 옮김 *797년:사카다노우에다무라하마(坂上田村麻呂)를 정이대장군에 임명 속일본기 40권이 완성됨 *801년: 사카다 마로무라가 에미시(호카이도 남단지역)평정을 추진 *8C-10C :(壯園/사유지)가 증가하고 장원의 기신(寄進)이 진행됨 *806년: 사이쬬우(最增가 천대종을 열고, 密敎(미쯔키요유)를 확장함 간무 천황은 나라의 불교 세력을 누루기 위해 사이쬬(최鄧)쿠우가이 (空海)의
중국 도항을 허락 했는데 이 두 사람이 개척한 신불교는 귀족이나 민중에게
널리 퍼지고 깊이 뿌리 내린다 미쯔고우(密敎)를 전수함 *810년;쿠라우도도코로(藏人所)를 설치하고, 후지와라노 휴유츠쿠(藤原冬嗣) 를 쿠라우도노도우(藏人頭)로함 -후지와라노 쿠스게(騰原藥子)의 변란 발생 *816년:空海가 고우야마산(高野山) 金剛峯寺를 창건하고 이때부터 게비이시 (檢非偉使)를 둠 *820년:고우닌갸쿠시키(弘仁格式)가 생김 *866년:후지와라 모토쯔네(등원기경)에게 섭정의 조칙이 내림 -후지와라 요시후키가 황족 이외에는 최초로 섭정이 되고, 이후 후지와라 가는 황실과
혈연 관계를맺어 섭정, 관백이 되어 정치에 참여함 *869년:쇼쿠니혼고우키(속일본후기) 20권이 완성됨 *887년:후지와라 모토쯔네에게 칸바쿠(관백)의 조칙이 내림 *901년: 스가와라노 미찌기네(관원도진)이 다이자이후(대재부)에 유배됨 *902년:최초의 쇼우엔세이리렌(莊園整理令)가 내림 *903년: 스가와라노 미찌자네가 다이자이후에서 죽음 *905년: 코긴와카슈(古今和歌集)완성/최초의 사이죠노 죠쿠센와카슈 ( 和歌集) *914년:미요시키요유키(三善淸行)가 정치에 대한 12조 의견서 제출 *927년; 엔기시키(延喜式)사 완성 *930년:세이료우덴( 淸諒殿)에 번개가쳐서 스가와라 마찌자네의 저주라고 겁을 냄 *935년: 도사니쯔기(土佐日記) 완성. 히라노 마사카도(平將門)란이 일어남 *1016년: 후지와라미찌나가(藤原道長)가 섭정이 됨 *11세기초: 세이쇼나곤(淸少納言)이 “마쿠라노소우시(枕草子)를 지음 - 무라사키부(紫式部)가 “겐지모노카다리”(源氏物語)를 지음 -후지와라씨의 전성기 스토리로 헤이안 문학을 대표함 *1051년:東北地方에서 란이 발생, 겐지(源l氏)가 이를 진압함 *1053년: 히요우 도우인호우오우도우(平等院鳳凰堂)이 완성됨 *1086년: 시라카와(白 河) 상황이 인세이(院政)을 시작함 *1098년:미나모토노 요시이에(源義傢)가 쇼우덴(昇殿)을 허락함 *1124년: 오루슈우 후지와라(奧州藤源의 아들 요시찌가(義親)을 토벌 *1158년: 호우겐(保元)의 란이 일어남
** 74대 도바(鳥羽)천황 사후에 75대 스도쿠(崇德)상황과 77대 고시라가와 (後白河)천황의
대립에 세쯔칸게(抗關傢)의 다툼이 전란이 되는데, 이 전투를 계기로 "겐시"씨(源氏)와
"헤이"시(平氏)의 힘이 인정되는 결과가 되었다 -상황측과 천황측이 적이되어 싸워 상황이 패하는 골육 상쟁의 전란임 *1159년; 헤이씨(平氏)의 란 발생
-호우겐의 란때 이긴 77대 고시라가(後白河)천황은 상황이 된후 원정(院政)을 시작 하는데
이를 둘러싸고 귀족과 겐씨, 헤이씨의 대립이 다시 전란이 됨 다이라노 기요모리(平淸盛)가 승리 *1167년; 다이라노 기요모리가 태정대신이 됨 -공卿(구교우):위계가 3위 이상의 귀족 *1173년:다이라노 가 항구를 개수하고 일송(日-宋)무역을 발전시킴
황실과의 혈연을 깊게하여 세력을 구축함 *1180년:미나모도노 요리토모(源賴朝)가 거병함 -헤이지의 란에서 이수(伊豆)에 유배 되었던 미모도노 요리도모가 드디어 헤이지 토벌의 란을 일으킴 *1185년: 히이씨가 멸망하고 미나모도 요리도가 제국에 시유고(牛護), 지도우(地頭)를 세움 -겐헤가센(源平合戰)에 의해 平氏가 망했다 가마쿠라(鎌倉)로를 근거지로 東國 을 평정한
미나모도노 요리도모는 요시쯔네(義經_토벌의 명분으로 시유고, 지도우를 두고 전국지배를 목표로 함
*나라시대, 헤이시대를 거치며 수도로 사용한 나라에서 근거지인 가마쿠라 로 옮기면서
가마쿠라(鎌倉막부의 지배 체제가됨 *시유고(護호):국내의 군사 경찰권을 관장 *지도우(地頭):고우리요우(公領), 뇨우엔(藏園)의 관리, 세금징수
이상으로 헤이안 시대를 마치고 일본의 본격적인 막부체제의 권력개편이 되고 바쿠후(幕府)통치의 시작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