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대의 불교 유적지 보로부두르Borobudur(서쪽)와 힌두교 유적지 프람바난 Prambanan 사원(동쪽)이 있는 곳이다. 천년고도라고나 할까. 한국의 경주와 같은 곳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도네시아의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여행자들은 꼭 족자카르타를 방문할 일이다. 족자카르타는 옛 자바지역의 중심지로서 전통문화와 다양한 풍물이 보존되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보로부두르 사원은 족자카르타 북서쪽 42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한 대승불교의 성지이다. 화산재에 묻혀 잊혀졌던 불교 성지로 1814년 식민지 시대 자바를 지배했던 총독 영국인 토마스 스탬포드 래플스(싱가포르의 개척자)에 의해 폐허가 된 채 1000년의 침묵을 지키다가 발견되었다.
이 사원은 "언덕위의 대가람"이라는 뜻을 가졌다고 하는데, 산스크리트어로 '보로'는 僧房을 의미하고 '부두르'는 높게 쌓아 올린곳이라는 뜻이란다. 즉 '언덕위에 세워진 승방'으로 해석되는데 이 거대한 건축물이 왜 지어졌는지 해명되지 않고 있다. 왕의 무덤, 사원, 왕조의 사당, 승방(승려의 가옥), 만다라(고대 인도형식의 靈域의 의미), 우주삼계의 구상물이라는 등의 의견이 분분하다. 더욱이 천년 영겁의 시간을 지나 역사에서 소각된 것도 큰 의혹이다. 무슨 이유로 이 정도의 건축물이 1814년 흙속에서 발굴되기까지 사람들이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인가? 왕조의 쇠퇴, 염병의 만연, 머라삐 화산의 분화에 의한 매몰설 등이 있는데 보로부두르의 토대에 사용된 흙과 사원을 덮고 있던 토사의 토질이 같은 점에서 완성과 동시에 묻혀버렸을 가능성도 크다고 한다.
8세기경 자바를 지배했던 샤이렌드라 왕국에 의해 82년에 걸쳐 지어진 보로부두르 사원은 왕국의 몰락과 함께 화산흙먼지 속에 사라졌다. 매몰된 이유조차 의도적인지. 화산의 분화에 의한 것인지 밝혀지지지 않은 인류 역사상 풀지 못한 수수께끼의 유적지가 된 것이다. 발굴에는 성공했지만 붕괴위기를 맞아 유네스코 개발위원회의 도움을 받아 1968년부터 1983년까지 총공사비 450억원, 15년에 걸친 복구 작업을 하였다.
이 사원은 언덕에 흙을 높이 쌓아 올린 뒤 그 위에 총면적 1.5 ha에 35m 높이. 23㎝의 안산암 블럭 100만개로 접착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단지 쌓아올리기만 하는 공법(空積)으로 만들어졌다. 즉 하부 정방형의 6층과 상부 원형의 3층으로 된 이 사원의 내부에는 공간이 없는 것이다. 외벽의 1층은 복구 작업 중에 역학적인 보강이 필요하여 쌓아올린 것인데 그 안에는 최초로 지은 외벽(숨겨진 기단)이 있고 정교환 부조와 유적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문자 (까위문자)가 새겨져 있다. 형태는 피라미드와 같이 아래로부터 위로 올라가면서 좁아진다. 4층까지는 기단으로 되어 있고 3층은 원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불교의 이치를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맨 상층부에는 돔 형태의 거대한 스투파가 놓여 있는데 1층에서 시계방향으로 각 회랑을 돌아야 제대로 보는 것인데 4층까지 하부의 네모꼴 기단은 한 변의 길이가 약 120m이고, 층마다 약 2m 넓이의 회랑이 있어서 모든 회랑을 돌아서 정상에 까지 가려면 4킬로미터(10리길)이다. 2층에는 부처의 일대기를 표현한 릴리프(조각 벽화) 1460면이 있고(4층까지 총 2500여면), 그 중에서도 석가탄생도는 볼수록 감명깊다.
깊숙히 새겨진 릴리프는 극도로 정교해서 불교의 탄생과정을 알기 쉽게 전해주고 있다. 석가를 비롯하여 보살. 왕족. 병사 등 1만명의 인물이 등장하고 인도 굽타풍의 흐름을 추구하는 쟈바 양식이 유연하고 우아한 선으로 새겨져 있다. 제1회랑에는 상단에는 '방광대장엄경'에 의한 석가의 생애가 초전법륜(깨달음을 얻고 최초로 한 설법)까지 새겨져 있고 하단에는 석가의 전생을 만화로 설명한 '본생담'과 '비유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제2화랑부터 4회랑까지는 善財 동자가 발심하여 53명의 현명한 사람을 차례로 방문하는 내용의 '화엄경 입법계품'이 차례로 새겨져 있다.
회랑의 부조는 석가의 가르침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신앙의 대상은 主壁의 432기의 불감佛龕에서 좌불하고 있는등신대의 석불이다. 동서남북 각 면에 따라 불상의 표정과 손의 표시법이 다르므로 가만히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 회랑을 한 개 올라갈 때마다 카아라의 큰 입속을 빠져나가는데 순례자의 과거의 재앙을 삼킨다. 제4회랑에서 마지막 계단을 올라가면 갑자기 시야가 열리며 스투파가 서 있는 넓은 원단圓壇으로 나온다.
눈앞에는 숲이 펼쳐져 있고 멀리 머라삐 산이나 슨빈 산이 바라보인다. 부조가 있는 정방형과 분위기가 너무 달라 놀라게 된다. 기단 부분의 욕망의 세계에서 4층 회랑이 있는 형상의 세계를 거쳐 원형의 테라스 부분에 도착하면 대지의 광대함과 사원의 웅장한 자태에 다시금 신비로운 체험을 하게 된다. 4층에서 원형으로 시작되는 단은 다시 32, 24, 16기의 釣鐘型의 스투파가 원(총 72기의 스투파 위치)을 그리며 놓여 있다. 스투파는 마치 鐘을 뒤집어 엎어 놓은 것 같은 모형의 조형물로서 그 안에 불상이 모셔져 있는 것을 말한다.
가장 위층인 제3원단 스투파의 봉창 외에 2층의 창은 모양이 다르다. 바깥쪽 2층의 창은 능형菱形으로 불안정한 속세 사람의 마음을 나타내고 가장 위층의 정방형 창은 안정된 현자의 마음, 그리고 창이 없는 '無의 세계', 즉 대 스투파로 수속收束 되어 간다. 이들 스투파 안에는 석불이 한 개씩 안치되어 있는데 바구니처럼 틈이 있어 그 틈 사이로 손을 집어 넣어 불상의 몸에 닿으면 행운이 따른다 하여 많은 사람들이 불상을 만지려 애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보로부두르의 최상단에는 직경 16m의 대불탑 스투파가 하늘을 찌를 듯 자리잡고 있으며 불교 신도들은 이곳에서 우요右繞(시계 반대방향으로 돌면서 불공을 드리는 예배법)를 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동쪽 교외에 같은 시대에 공존했던 마따람 힌두교 왕국의 사원인 쁘람바난 사원(높이 47m의 동남아 최대의 힌두교 신전)이 남아있어 동시대에 불교와 힌두교가 이 자바섬 일대를 이끌어 가고 있었음을 반증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