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와 체인백은 디올(Dior), 벨트는 에피타프(Epitaph), 가죽 스커트는 DVF. 옐로 골드 귀고리는 디올, 화이트 골드와 블랙 다이아몬드가 세팅된 귀고리는 샤넬(Chanel). 서클 형태의 옐로 골드 목걸이는 에르메스(Hermès), 프린트된 해골 브로치와 큼직한 루비가 세팅된 브로치는 모두 디올. S자 형태 브로치는 조르지오 아르마니(Giorgio Armani), 오른손의 볼드한 골드 뱅글과 꼬임 뱅글은 디올, 종이 프린팅된 다이아몬드 뱅글과 시계는 루이 비통(Louis Vuitton). 오른쪽 손가락에 낀 종이 프린팅된 골드 반지는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로즈 골드 반지는 디올, 지르코니아 원석이 세팅된 반지는 조르지오 아르마니. 왼손의 실버 뱅글은 에르메스, 손목에 감은 목걸이는 랄프 로렌(Ralph Lauren), 종이 프린트된 골드 체인 팔찌와 골드 반지는 보테가 베네타.
파리 방돔 광장은 수백 년의 역사와 전통을 내건 보석상들이 밀집한 요새 같은 곳이다. 부쉐론, 까르띠에, 쇼메, 반 클리프 아펠, 브레게, 티파니, 피아제 등. 발음하는 것만으로도 입가에서 빛이 새나가는 듯한 그런 이름들이 즐비한, 수억원대의 하이주얼리 하우스가 팔각형 광장의 쇼윈도를 은하수처럼 가득 채우는 바로 그곳! 명망 높은 주얼리 가문이 철옹성을 쌓은 지극히 폐쇄적인 이 지역에 패션 하우스 레이블이 깃발을 꽂고 있다. 1997년 샤넬의 하이주얼리 부티크를 시작으로 2001년에는 디올 주얼리가 입성했고, 지난 7월 오뜨 꾸뛰르 기간에 드디어 루이 비통이 하이주얼리 공방 겸 매장을 열었다. “우리 고객들을 위해 숙련된 장인들이 최고의 실력을 발휘해 특별한 주얼리를 만들 겁니다.” 루이 비통의 이브 카르셀 회장은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 사실 몇 년 전만 해도 아르마니, 샤넬, 디올, 프라다 등의 비즈니스는 패션에서 자연스럽게 코스메틱 론칭으로 이어졌지만, 이제는 하이주얼리 시장을 기웃거리며 영역을 넓히고 있다. 1932년 반짝거리는 보석에 심취했던 마드무아젤 샤넬은 “보석이 우리에게 주는 기쁨과 감동이야말로 보석의 진정한 가치다”라고 찬양하며 ‘비주 드 디아망’ 컬렉션을 발표했다. 그 후 코코는 평생 동안 진주를 탐닉했다. 칼 라거펠트가 샤넬 하이주얼리는 물론 커스텀 주얼리 컬렉션에도 진주를 빼놓지 않는 이유다.
패션 브랜드의 철학과 이념을 담은 하이주얼리는 기존의 예술성과 기술, 정통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보석상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최근 랄프 로렌도 기성복에 하이주얼리 라인을 함께 선보이고 있다. “고객들이 옷을 구입하면서 패션쇼에서 함께 매치된 주얼리를 동시에 구입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저 커스텀 주얼리가 아닌 격식에 맞게 연출하고 싶을 때 같은 브랜드에서 한꺼번에 구입하는 것만큼 잘 어울리는 건 없죠.” 한국에는 아직 바잉되지 않았지만, 랄프 로렌 주얼리는 뉴욕의 장인이 100% 수작업으로 만들고 있다며 자부심 가득한 투로 랄프 로렌 측은 전했다. 이번 시즌 랄프 로렌은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을 다양한 커팅 방법으로 조각해 옐로 골드와 매치한 화려한 주얼리를 소량 선보였다. 한편 디올의 경우 1947년 무슈 디올이 자신의 두 번째 컬렉션 ‘코롤라(뉴룩)’를 발표하며 주얼리를 옷의 실루엣에 따라 장식했던 게 시초다. “다이아몬드의 물결! 정교하게 어우러진 패턴에 풍성한 흑진주 장식이 매혹적인 네크리스”라고 무슈 디올은 주얼리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었다. 그는 옷에 장식된 주얼리를 ‘꾸뛰르 주얼리’라고 지칭했지만, 사실은 모조 다이아몬드와 인조 진주를 사용한 것. 이후 패션 액세서리의 개념을 넘어 1998년에는 빅투아르 카스텔란을 영입해 꾸뛰르 아틀리에 안에 파인 주얼리 공방을 만들었다. 유니크한 디자인과 독특한 스톤들을 믹스매치하는 것이 특징! 밀라노의 보테가 베네타도 파인 주얼리 컬렉션에 눈을 돌렸다. 브랜드의 시그니처 기법인 ‘인트레치아토(위빙)’ 방식이 특징으로, 단순히 고가의 원석을 세팅하는 것이 아니라 금을 직조할 수 있는 장인을 발굴해 가죽을 통해 선보인 위빙 기술을 파인 주얼리에 반영했다. 또한 후발 주자로 출발한 에르메스는 이번 시즌 오뜨 주얼리 컬렉션을 통해 예술과 접목한 조각품 같은 파인 주얼리를 선보였다. 디자이너 피에르 하디의 영감의 원천은 브랜드의 클래식 아이콘들. 그는 켈리, 버킨, 노시카 백을 모티브로 그물망 형태의 아트 피스인 ‘삭 비주(Sac Bijou)’를 제작했다. 이런 아트 피스는 한국 땅을 밟기도 전에 부호들에게 팔리거나 전시 형태로만 공개될 때가 많지만, 몇몇 파인 주얼리는 엄청난 가격 태그를 달고 무대에 막 소개된 컬렉션 의상과 함께 서울 매장에 도착할 때도 있다. “몇 년 전, 블랙 다이아몬드로 된 1천만원을 호가하는 반지가 금세 다 팔렸습니다. 우리 고객은 정통 주얼리 하우스와 달리 큼직한 디자인을 선호합니다. 이번 시즌에 바잉된 27.5캐럿 모거나이트 펜던트 목걸이와 184개의 샴페인 다이아몬드로 세팅된 21캐럿 칵테일 반지는 벌써부터 문의가 많아요.” 구찌하우스는 결혼을 앞둔 젊은 예비 부부들이 구찌 하이주얼리를 선호한다고 귀띔했다.
숙련된 장인들을 영입해 파인 주얼리 라인을 확장하는 패션 하우스의 열정과 달리, 전통과 역사를 소중히 여기는 보석 명가들은 패션 하우스의 주얼리를 쉽게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파인 주얼리 컬렉션과 앤틱 비엔날레에서 물과 기름 같은 주얼리 하우스와 패션 브랜드의 대립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그리고 화보 촬영시에도 브랜드가 섞이는 걸 원치 않는다. 그러나 마드무아젤 샤넬의 말처럼, 태생을 떠나 예술성과 장인 정신이 깃든 파인 주얼리는 보는 것만으로도 여자에게 꿈과 판타지를 선사하기에 충분하지 않나. “순수한 눈빛으로 보석을 바라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