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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해우(海隅)의 백합국어사랑방(신문사설&칼럼) 원문보기 글쓴이: 해우(海隅)
2010년 6월 12일 토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100612토] 검찰 개혁 요란한 다짐보다 실천이 관건
검찰이 11일 기소배심제 도입을 비롯한 고강도 개혁방안을 내놓았다. 핵심은 김준규 검찰총장이 대국민 사과에서 적시한 대로 '검찰권의 국민 통제'다. 과거 검찰이 위기 때마다 내놓은 대책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파격적이다. 스폰서 검사 파문에 휩싸인 검찰이 비로소 안이한 현실 인식에서 벗어나 국민의 요구 수준에 맞추려는 노력을 보인 것을 평가한다.
검찰이 마련한 개혁 방안은 기소권한 분산, 감찰기능 강화, 검찰문화 개선으로 압축된다. 특히 검찰권의 요체인 독점적 기소권을 상당부분 포기, 법적 구속력을 지닌 기소배심제를 도입해 검찰시민위원회가 기소ㆍ불기소의 옳고 그름을 심의하도록 한 것은 검찰 사상 가장 획기적 개혁조치다. 이 제도가 제대로 정착해 고위공직자나 정치인 등의 권력형 비리 수사 및 기소 여부를 합리적으로 통제하게 된다면 정치적 편향 시비에서도 상당히 자유로워질 것이다.
감찰부를 감찰본부와 감찰위원회로 확대해 외부 민간인이 통제하도록 하고, 검사의 범죄는 감찰위원회 산하의 독립된 특임검사가 맡도록 한 것도 제 식구 감싸기로 유명무실화한 감찰기능 복원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검찰 비리가 불거질 때마다 낡은 관행을 척결하겠다는 의지표명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다짐이나 선언을 넘어 제도적 견제의 틀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기대할 만 하다.
물론 새로운 제도만으로 뿌리깊은 비리 구조가 한꺼번에 바뀔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정치적 사건이 대개 내사 단계에서 처리가 결정되는 만큼 이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 기소배심단과 시민위원회, 감찰본부장과 감찰위원을 국민이 신뢰할 만한 중립적이면서도 전문성을 지닌 인사로 구성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할 것이다. 검찰 불신의 또 다른 축인 인사와 관련해서도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검찰인사위원회 구성을 검토할 만하다.
관건은 진정성과 확고한 실천의지다. 대검 감찰부장을 외부에서 뽑겠다고 선언하고는 흐지부지한 과거를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이번에도 국민을 실망시키면 검찰은 정말 끝이다.
[한겨레신문 사설-20100612토] 통수권자는 사과하고, 지휘부는 군법회의 회부하라
이상의 합참의장이 천안함 침몰 당일 밤 술에 만취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군의 위기대응 태세와 기강에 심각한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사태다. 당연히 진상을 철저히 조사해 공개하고 엄정하게 문책해야 한다.
이 의장은 양주 등을 열 잔쯤 마셔 만취한 상태로 사건 당일 밤 10시42분께 국방부 지휘통제실에 도착해 장관 주관 회의에 10분쯤 참석한 뒤 사실상 일을 놓고 잠을 잤다고 군 소식통들은 말한다. 그는 또한 지휘통제실을 비웠다가 자신이 제대로 상황을 지휘한 것처럼 나중에 문서를 꾸몄다고 한다. 합참의장은 전군에 대한 작전지휘권을 행사하는 군령권자다. 그런 사람이 위기상황에서 술에 취해 상당한 시간 동안 지휘통제 기능을 놓고 있었다니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전군의 작전태세에 공백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감사원은 이런 정황을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한다. 그런데 감사원은 그제 발표에서 이 의장의 ‘개인적 책임’을 언급하면서도 구체적 행적 공개를 거부했다. 감사원은 또한 이 의장을 비롯한 군 지휘부 인사들에 대해 군인사법에 따른 징계 요청 사실만을 밝혔다. 일부 인사들에 대해 군형법 적용을 요구한 사실을 어제 뒤늦게 공개했으나 군 지휘부를 봐주려는 미온적 태도가 묻어난다. 군형법은 군무태만과 거짓 명령, 통보, 보고 등을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감사원은 문제의 핵심인 이 의장의 개별 행적을 추가로 공개하고 군형법을 적용해 엄중히 문책하도록 해야 한다. 합참은 ‘이 의장이 술은 마셨지만 지휘기능은 유지했다’고 하지만 납득하기 어렵다. 술을 그렇게 마시고 어떤 의사결정을 한다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청와대에서는 김태영 국방장관의 유임론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천안함 사건의 후속 대응을 잘해서 대통령의 신임을 샀다는 말도 떠돈다. 어처구니가 없다. 이 대통령은 군이 이 지경까지 흔들린 데 따른 책임을 물어 김 장관을 해임해야 마땅하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군 장악능력에 허점을 드러낸 점도 큰 문제다. 사건 초기 이 대통령은 청와대 벙커에서 네 차례나 회의를 주재하면서 상황을 직접 챙겼다. 하지만 결국 군 지휘부가 조작한 허위정보를 토대로 우왕좌왕하다가 국민들한테는 대응을 잘하고 있다고 허위발표까지 한 꼴이 됐다. 군 통수권자로서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가 반드시 필요한 까닭이다.
[조선일보 사설-20100612토] '이광재 강원지사 직무정지'에 답답한 道民들
서울고법은 11일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기소된 이광재 강원도지사 당선자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이 당선자는 이번 판결로 7월 1일 취임과 동시에 직무가 정지돼 도지사직을 수행(遂行)할 수 없게 됐다.
지방자치법은 지자체 장(長)이 금고(禁錮)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그 형(刑)이 확정될 때까지 부지사 등 부단체장이 단체장 권한을 대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광재 당선자에게 선고된 형량은 금고 이상에 해당한다. 2002년 6월 지방선거에서 당선돼 7월 1일 취임한 이병령 대전 유성구청장이 구청장 취임 이전(以前) 대주주로 있던 회사의 공금을 횡령한 혐의로 그 해 9월 1심서 징역 8월·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나중에 벌금형으로 낮아질 때까지 5개월간 직무 정지를 당한 적이 있다. 단체장이 불법이나 비위(非違)에 연루돼 1,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상태에서 직무를 하게 되면 부하들의 지휘·통솔에 권위가 서지 않고 결국 그 피해는 주민들에게 돌아간다. 직무정지 규정을 둔 이유는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단체장이 직무가 정지돼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면 지자체 행정은 공백 상태에 빠진다. 도지사는 도 전체의 도시 계획, 지역 개발, 주민 복지 등 도민들의 생활과 직결된 정책을 세우고 이에 필요한 예산을 편성해 집행한다. 산하 시·군의 부시장·부군수 인사권도 갖고 있다. 부지사가 도지사 권한을 대행하는 체제로는 주요 정책과 대형 사업을 결정하고 추진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광재 당선자의 직무정지로 인한 이런 현실적인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다.
경찰청은 이번 선거 당선자 가운데 기초단체장 7명·광역의원 10명·기초의원 31명·교육의원 2명 등 50명을 불구속 입건했고, 광역단체장 2명과 기초단체장 52명을 포함한 177명을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유죄 판결을 받아 직무정지를 당할 단체장이나 지방 의원이 계속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직무정지를 둘러싼 법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이제부터라도 논의해봐야 한다. 당장은 검찰과 법원이 단체장들의 수사와 재판을 최대한 서둘러 단체장이 직무정지를 당하더라도 그 기간을 최단기간으로 줄여줘야 한다.
[서울신문 사설-20100612토] 檢 기소독점권 찔끔 떼어주고 개혁 생색내나
‘스폰서 검사’ 파문으로 환골탈태를 요구받아 온 검찰이 어제 자체 개혁안을 내놓았다. 우선 고질적인 스폰서 문화와 무소불위 권력의 원인인 기소독점권을 시민 배심원단에 맡기는 ‘기소배심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한다. 각계 인사로 구성된 ‘검찰시민위원회’를 두어 뇌물·정치자금·부정부패 등 중요 사건의 기소 여부를 심의토록 한다는 방침도 밝혔다. ‘감찰본부’를 만들어 검사의 위법·탈선을 철저히 차단하고, 검사의 범죄를 ‘특임검사’가 독립적으로 수사토록 한다는 것이다. 윤리강령을 강화해 향응·금품수수 등에 대해서는 대가성에 관계없이 중징계·형사처벌로 대응하겠다고 한다. 검찰은 나름대로 초고강도의 처방전이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운용을 엉터리로 하면 무용지물이다. 검찰은 최근 10여년간 수차례 개혁을 외쳤지만 모두 시늉에 그쳤다. 이번 개혁안도 진정성에 회의가 드는 것은 그 때문이다. 1998년 검찰총장 임기제를 도입했지만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은 여전히 의심받고 있다. 2007년 윤리강령을 만들어 사건 관계인과 사적(私的) 접촉을 금지했으나 허사였다. 2008년 대검찰청 감찰부장과 법무부 감찰관을 외부인사로 충원하겠다던 약속도 헌신짝으로 만들었다. 기소배심원제 도입 후에 검찰이 기소권을 주도하고 배심원들은 들러리가 된다면 권한 분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법률지식이 부족한 배심원들이 기계적으로 기소를 승인할 가능성이 높기에 하는 말이다. 검사의 범죄를 특임검사가 수사하는 문제도 그렇다. 총장의 지휘를 받지 않는다지만 내 식구 감싸기가 어디 한두 번이었나. 윤리강령도 휴지조각이었다. 범법 검사도 봐주는데 강령쯤 어겼다고 중징계 하리라고 믿을 수 있는가.
검찰의 개혁 의지에 신뢰를 갖지 못하는 것은 실속을 차리면서 생색만 낸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우리는 일전에 검찰에 차관급(검사장)이 50명이나 있는 것을 지적한 바 있다. 권력이나 직급 중 하나는 스스로 내려놓아야 한다는 취지에서 대폭 축소를 권고했다. 제 살을 도려내는 고통이 없는 개혁은 또 구두선이 될 공산이 높다. 검찰의 실천 의지를 지켜보겠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00612토] 건설경기 부양 철저한 구조조정 전제돼야
이명박 대통령이 어제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지방에 가면 건설경기가 부진해 바닥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가 이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주택시장이 얼어붙으면서 특히 지방의 경우 대다수 건설사들이 연쇄도산의 위기에 직면해있는 실정이고 보면,건설경기 부양의 필요성을 강조한 언급으로 볼 수 있다.
정부 움직임 또한 모종의 건설경기 부양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국토해양부 고위 관계자들이 지난 며칠 동안 부동산 전문가 및 건설업계 관계자들을 잇따라 만나 간담회를 가졌다. 업계 실태를 파악하고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과정으로 본다면 정부가 조만간 부동산 및 건설산업 대책을 내놓을 가능성이 매우 커지고 있다.
정부가 또 다시 건설업체들을 지원해줘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최근 건설경기,특히 지방의 경우 최악의 상태에 놓여있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난해부터 올 2월까지 100여개사가 문을 닫았고 성원건설 남양건설 등 이름이 알려진 중견업체들이 최근 잇따라 쓰러졌다. 8일에는 인천에서 가장 큰 전문건설업체인 진성토건이 최종 부도처리되는 등 건설업계에 부도 도미노 공포가 몰아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건설업계뿐 아니라 금융권을 비롯 경제 전체에 충격을 줘 자칫 경기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연말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 규모만 15조원이 넘는데 이중 상당 부분이 상환 여부가 불투명하다고 한다. 정부가 추가적인 건설 및 부동산 대책을 고려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건설산업이 경제와 고용에서 차지하는 막대한 비중을 감안하면 건설경기 부양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다만 그렇더라도 업계에 대한 철저한 구조조정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부실 건설사를 가려내기 위한 신용위험 평가 결과를 이달중 발표하기로 한 만큼 명확한 기준을 제시, 객관적이고 공정한 옥석가리기를 통해 산업구조와 업계 체질을 바꿔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현재 5만6000여개에 달하는 건설업체 수는 확실히 과잉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살려낼 업체는 자구노력을 통해 자생력을 키우도록 유도하되 회생 가능성이 없는 업체는 과감히 퇴출시켜야 한다. 건설업계를 지원하더라도 구조조정 고삐를 조금도 늦춰선 안된다는 얘기다. 그렇지 않을 경우 정부가 또 다시 건설업계의 모럴해저드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00612토] 남아공월드컵, 한국 심는 계기 되길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이 11일 밤 개최국 남아공과 멕시코의 경기를 시작으로 개막됐다. 오는 7월12일까지 열리는 이번 대회에는 한국 등 32개국이 참가해 FIFA컵을 놓고 다툰다. '유쾌한 도전'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한국 축구대표팀은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 재연을 꿈꾸며 12일 밤 그리스와의 첫 시합을 치른다. 16강 진출이 일차적인 목표다. 선수들과 함께 정부ㆍ기업도 이번 대회를 발판 삼아 아프리카에 한국을 심는 기회로 활용하기 바란다.
이번 월드컵은 오랫동안 식민지로서 고통을 당한 아프리카에서, 그것도 인종차별이 가장 심했던 남아공에서 열린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2010 월드컵은 아프리카의 긍지이자 세계 모든 사람, 특히 개발도상국 국민을 위한 희망의 횃불"이라고 말했다. 이번 월드컵이 피부 색깔과 인종ㆍ빈부를 초월해 전인류를 하나로 묶는 성공적인 대회가 돼야 한다는 바람이 담겨 있다.
한국대표팀은 국내에서 열린 2002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창조했지만 역대 원정 월드컵에서는 1승5무11패라는 초라한 성적을 남겼다. 이번 월드컵의 경우 한국팀이 속한 B조에 강호 아르헨티나ㆍ나이지리아가 도사리고 있어 많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그러나 해외진출을 통해 경험을 쌓은 선수가 많고 연습량도 충분해 역대 최강팀으로 평가되고 있어 16강 진출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기량을 충분히 발휘한다면 더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도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서 한국이 돌풍을 일으킬 경우 부수효과도 클 것으로 기대된다. 아프리카는 자원ㆍ시장 개발을 노리는 선진국과 중국 등 신흥국가의 각축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프리카 지역 진출이 늦은 우리로서는 이번 월드컵이 아프리카에 한국을 알릴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기회다. 기업도 스포츠 마케팅 등을 적극 활용할 경우 아프리카 진출에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번 월드컵 중계는 연 300억명이 시청할 것으로 예상되고, 특히 개최지역인 아프리카의 관심이 뜨거울 것으로 보인다. 국내기업으로서는 현대ㆍ기아자동차가 FIFA 공식 파트너이고 KTㆍSK텔레콤이 한국팀 공식후원업체로 활동하고 있다. 더 많은 기업들이 이번 월드컵 후원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 '유쾌한 도전'에 나서는 한국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뜨거운 응원을 보내자.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동아일보 칼럼-오늘과 내일/방형남(논설위원)-20100612토] 예비역 장성들의 ‘한국군 진단서’
대한민국 군(軍)이 나로호처럼 추락했다. 감사원의 천안함 사태 감사 결과는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송두리째 앗아갔다. 술에 취한 합참의장이 지휘통제실을 비웠다가 복귀한 뒤 자신이 상황을 지휘한 것처럼 문서를 꾸몄다는 그제 감사원 발표는 참으로 충격적이다. 전직 대북 공작원에게 군사기밀을 누설한 혐의로 구속된 육군소장 사건도 군의 신뢰와 명예에 먹칠을 했다.
한 예비역 대장은 “가슴이 찢어진다”고 했다. 군 출신으로 부끄럽다는 말도 했다. 우리 군이 고작 이런 수준이었나. 북한의 도발을 저지하는 것은 고사하고 속절없이 당하고도 거짓보고나 하는 형편없는 조직이란 말인가. 국민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햇볕정책이 軍의 추락 부추겼다
어쩌다가 군이 이런 신세가 됐는가. 10여명의 예비역 장성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과거 지휘관으로 군을 이끌었고 지금도 국가와 군을 사랑하는 국방 전문가들이다. 북한의 핵개발과 도발에 대한 엄중한 대응, 그리고 굳건한 한미동맹을 역설해온 분들이다.
예비역 장성들의 진단은 비슷했다. 대부분 천안함의 불행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니라는 분석이다. 군사적으로 완벽한 경계는 힘들다. 더구나 북한의 주무기는 기습 도발이다. 그런 사정을 잘 알면서도 군은 제대로 대비하지 않았다. 국민은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예비역 장성들도 이 점에 대해 할 말이 없다고 했다.
문제는 군이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근인(根因)에 대한 분석이다. 햇볕정책 10년의 폐해가 군의 무능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A장군은 군의 근본 의식, 즉 군기(軍紀)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진단했다. “햇볕정책이 낳은 부작용이 크다. 적에 대한 경계심이 풀렸다. 과거 10년간 장교들 사이에 ‘정부가 화해협력을 추진하는데 우리가 뭐 하러 강력한 대북 대응을 위해 고생하느냐’는 인식이 퍼졌다. 야전 지휘관은 물론 정책파트인 국방부와 합참 인사들도 그런 인식 속에 지내왔다. 군은 추상같아야 하는데 의식이 해이해지고 충성심도 엷어졌다.”
B장군은 지난해 전방부대에 강연을 다니면서 깜짝 놀랐다. “이명박 정부 들어 군에서 정신교육을 강화했지만 내용이 부실했다. 정작 군에 필요한 통일과 주적(主敵)문제는 찾아보기 어렵다. 장교들이 진급과 출세에 지장이 생길까봐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는 거론 자체를 꺼린다. 전반적으로 군 간부들의 도덕적 용기가 부족하다.”
군 의식에 대한 경고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상희 전 국방장관은 2008년 전군 지휘관회의에서 “매년 입대하는 20만 명의 장병 중에 국가관 대적관(對敵觀) 역사관이 편향된 사람들이 상당수 포함돼있다”며 개탄했다. 그래서 육군 소장의 군사기밀 유출 사건이 심상치 않다. C장군은 “군에 불순분자가 상당수 침투한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며 전반적인 공안기능 강화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전쟁은 피하는 자를 쫓아다닌다”
일부 군 인사에 대한 문책이 불가피해졌다. 예비역 장성들은 앞으로 북한의 도발에 제대로 대비하는 차원에서 문책이 필요하다고 동의하면서도 더 중요한 것은 천안함 사태에 대한 확실한 대응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에 ‘도발하면 죽는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예비역 장성들은 북의 전략이 실패했다는 것을 인식시킬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전작권 전환 연기를 꼽았다. 우리의 독자적 억제능력 제고를 위해 미사일 사거리를 300km로 제한한 한미 미사일협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예비역 장성들의 진단을 실천할 수 있는 인물은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다. 군을 제대로 세우고 북한의 도발야욕을 꺾을 최종 책임은 대통령에 있다. 대통령과 국민, 그리고 군이 “전쟁은 피하는 자를 쫓아다닌다”는 경고를 공유해야 한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구희령(사회부문기자)-20100612토] 허위 보고
아편전쟁 때다. 1841년 3월 17일 청(淸)의 장군 양방은 광저우(廣州)에서 ‘청나라 군대가 적군에 대승했다’고 보고를 올렸다. 허위였다. 다음날 광저우성이 영국군에게 함락됐으니.
양방의 후임자 혁산은 한술 더 떴다. 혁산은 같은 해 5월 26일 ‘영국 함대를 침몰시키고 불태우는 혁혁한 전공을 올렸다’고 황제에게 보고한다. 그가 ‘영국과 통상을 재개하고 보상금 600만 냥을 주겠다’는 굴욕적인 조건으로 황제 몰래 영국군과 정전협정을 맺은 바로 그날에 말이다.
이중톈 중국 샤먼대 교수는 『제국의 슬픔』에서 아편전쟁의 패인을 설명하면서 “청나라 군대를 이끌던 장수들 대부분이 허위 보고를 했다. 이 때문에 황제는 매 순간 거짓말만 믿고 의사 결정을 해야 했다. 그러니 군대가 어찌 패하지 않고 견디겠는가. 그러한 국가가 어찌 망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라고 탄식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이 이런 식이었다. 전쟁으로 혼란한 틈을 타 허위보고가 난무했다. 이순신 장군도 허위보고에 희생됐다.
사연은 이렇다.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조선과의 화의를 방해하는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밉다. 그의 상륙일을 알려줄 것이니 조선 수군이 무찌르라”는 정보를 조선에 준다. 이를 믿은 조정에선 이순신에게 출병을 재촉했다. 하지만 장군은 적의 간계를 간파하고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고니시는 “가토가 벌써 상륙했다. 아까운 기회를 놓쳤다”고 비난한다. 조정은 ‘이순신 문책론’으로 들끓었다.
선조는 성균관 사성 남이신에게 한산도로 가서 이순신의 잘못인지 확인하라고 했다. 전라도 백성들이 이순신 장군의 원통함을 호소했지만 남이신은 “가토가 암초에 걸려 7일 동안이나 머물렀는데 이순신이 머뭇거려 그만 기회를 놓쳐버렸다”고 사실과 다르게 보고했다. 이로 인해 이순신 장군은 옥에 갇혔다. 장군을 잃은 조선 수군은 왜군에게 전몰하다시피 했다. (유성룡, 『징비록』)
모두 정보를 정확하게 확인하기 어려웠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런데 천안함 사건 당시 군이 허위보고를 했다는 사실이 최근 감사원 감사 결과 밝혀졌다. 북한 반잠수정으로 의심되는 미식별 물체를 새떼라고 보고하도록 조작했단다. 사건 발생 시간도 왜곡하고 중요한 동영상을 누락시켰다고 한다. 폭발음을 들었다는 최초 보고도 상부에 숨겼단다. 지금이 임진왜란 때인가, 아편전쟁 때인가.
[경향신문 칼럼-여적/김태관(논설위원)-20100612토] 월드컵 징크스
나폴레옹은 검은 고양이를 무서워했다. 불길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꿈을 두려워했다.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는 다리 건너는 것을 병적으로 꺼렸다. 영국의 시인 새뮤얼 존슨은 건물을 출입할 때 언제나 오른발부터 먼저 들여놓았다. 모두 징크스가 불러온 금기들이다. 미신이라고 할 주박(呪縛)이지만, 역사의 인물들에게서 보듯 징크스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많지 않다.
피겨여왕 김연아 선수도 최근 TV에서 징크스에 대한 일화를 털어놓아 눈길을 끌었다. 김 선수는 묵주 반지를 끼는데, 밴쿠버올림픽 때는 은반지를 끼었다고 한다. 오서 코치가 금반지를 하면 올림픽 금메달을 못딴다는 징크스가 있다고 ‘코치’했기 때문이다. 또 올림픽에서는 푸른 옷을 입어야 우승한다는 징크스가 있는데, 공교롭게도 김연아의 마지막 의상은 푸른색이었다. 그러면 징크스는 과연 맞는 것일까. “김연아, 올림픽 징크스 날렸다.” 금메달을 땄을 때의 언론 보도다. 세계 랭킹 1위는 올림픽 금을 못딴다는 징크스가 있는데, 김연아가 그것을 날려버렸다는 뜻이다. 징크스가 징크스를 깼으니, 둘다 옳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징크스는 스스로 만드는 불길한 징조다. 어떤 일이 우연하게 반복되면 사람들은 그것이 미래에도 필연적으로 되풀이된다고 여긴다. 그러나 그것은 주관적 생각일 뿐 과학적 근거나 논리적 타당성은 전혀 없다. 고약한 것은 징크스를 불면증처럼 의식하면 의식할수록 거기에 갇힌다는 점이다. 징크스는 마치 거미줄과도 같다. 파리 따위는 걸리지만, 독수리 같은 강자는 뚫고 나간다.
어제 막이 오른 월드컵과 관련해서도 이런저런 징크스들이 많다. 그 중 개최국은 16강 이상 오른다는 개최국 징크스, 펠레가 칭찬하면 그 반대로 된다는 ‘펠레의 저주’ 등은 유명하다. 한국과 관련해서는 ‘지그재그 징크스’라는 게 있다. 한 번 잘하면 그 다음 대회에선 안 좋다는 것이다. 2002년에 잘했고, 2006년에는 별로였으니 이번에는 선전할 것이라는 기대가 담겨 있다고 하겠다. 이것이 과연 들어맞을지는 오늘 밤 그리스전이 첫 가늠자다.
징크스는 빗나가야 좋은데 그렇지 않으니 묘하다. 하지만 태극용사에게는 어떤 징크스든 독수리 앞의 거미줄에 불과하다. 검든 희든, 그라운드의 나폴레옹이 어찌 고양이 따위를 겁내랴.
[매일경제신문 칼럼-매경춘추/윤재옥(경기지방경찰청장)-20100612토] 내용증명과 러브레터
`홀로 시부모님을 모시는 아내의 우울증이 심해져서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습니다. 집 근처로 발령내주십시오.`, `고생만 하신 어머니께서 암으로 내일을 기약하기 어렵습니다. 조금이나마 효도를 할 수 있도록 꼭 승진시켜 주십시오.`
인사철만 되면 저마다 구구절절한 사연을 담은 메일과 편지를 받는다. 그럴 때마다 조직의 관리자가 된 도리로 엄정하면서도 비정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어떻게 하면 그 고충을 해결해 줄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게 된다. 원칙을 지키면서 문제를 풀 수 있는 합리적 방법을 찾느라 보통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그런데 때로는 예의가 결여된 글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받기도 한다. 러브레터처럼 온갖 감성적 언어를 동원해 가슴 아픈 사연을 전해오는 것까지는 좋지만, 맡겨 놓은 물건 내놓으라는 식으로 마치 송사(訟事)라도 할 듯이 권리만 주장하는 `내용증명` 형식의 글을 보면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읽는 사람이 불쾌할 정도로 거친 표현을 쓰거나 사실 관계를 과장하며 경쟁 관계에 있는 다른 사람을 흉보는 경우에는 그 고충의 진정성을 믿기도 어려워진다. 어떤 사연이든 스스로 절제하는 예의가 없으면 감동은커녕 실망과 불신만 갖게 할 뿐이다.
필자는 업무 과정의 웬만한 실수에 대해서는 비교적 조용히 잘못을 바로잡아 주려 하는 편이다. 그러나 예절에 어긋나는 행동이 눈에 띄면 즉시 그 잘못을 지적하고 고쳐주려 애쓴다. 다소 서운할 수도 있겠지만 이를 짚어주지 않으면 자신의 잘못을 모른 채 같은 행위를 반복하면서 습관이 되고, 결국 개인의 발전을 가로 막는 큰 흠이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는 간혹 예절을 겉치레에 불과한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없지 않다. 원활한 소통이나 창의성을 가로막는 원인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큰 착각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인 이상 사람 사이의 윤활유 역할을 하는 예절은 시대를 불문하고 사회적 능력의 핵심 요소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쨌든 기왕에 받을 편지라면 마음에 울림을 만들고 어떻게 도와줄까 고민하게 하는, 그런 진솔한 사연을 읽고 싶다. 그래야 어려운 사람의 사정을 듣고 배려하고자 하는 관리자의 노력에도 약간의 보람이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