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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배령 그리고 설악산과
소금강에서 진고개를 넘으며 ....(5부)
제5부; 소금강, 용문사
[ 소금강]
준문진항에서 출발 소금강 주차장에 도착한 시각은 15:30분경이었다.
오대산국립공원인데 소금강계곡입구 주차장 주변은 너무 마음이 혼란스럽도록 상점, 가게가 즐비한 상가가 필요악으로 비추어지는 것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3번째 탐방인데도 오늘따라 그렇게 느껴진다.
입구에는 50여m 상가가 즐비하고 그 옆 계곡에는 유원지를 방불케 하고 계곡물을 이용하여 물장구를 치며 놀 수 있도록 되어있는 물놀이장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곰배령 과 설악산계곡에는 철저한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 ‘소금강’ 돌탑, 여기서 부터가 본격 소금강 탐방로가 된다.>
상가를 지나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소금강분소 부근에 ‘小金剛 ’이라고 새겨진 돌탑이 보인다. 여기서부터 십자소, 식당암, 구룡폭포, 노인봉, 진고개, 오대산으로 등산로가 이어진다. 오늘 우리는 오전에 설악산이어 소금강에 왔는데 구룡폭포까지가 목표지다.
< 소금강 계곡으로 들어가는 길 >
소금강은 수려한 기암괴석과 맑은 폭포 등, 풍경이 금강산을 축소시켜놓은 것 같다하여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계곡의 탐방로가 잘 만들어져 있어 무리하지 않고 완만하게 오를 수가 있어 한결 여유를 가지고 자연과 어우러질 수 있는 공간이 계속 이어진다.
< 십자소 >
탐방로 좌측 10여m 아래에서는 계곡물이 흐르는데 돌탑 입구에서부터 20여분 지나니 십자소가 보인다.
십자소(十字沼)는 화강암으로 된 바위사이로 사방에서 물이 흘러들어 십자형의 소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 이정표를 지나고 >
아직도 소금강 구룡폭포까지는 1.6km가 남았다. 입구에서 구룡폭포까지는 2.5km이다. 왕복 2시간 이 예상되는 코스이다.
<연화담>
십자소에서 300m더 올라가면 아름다운 풍경과 어우러진 연화담이 나타난다.
<가까이서 본 연화담 >
연화담은 하늘에서 7선녀가 내려와 목욕하고 올라갔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지만 거북이 형상을 하고 있는 돌 거북이 앞에서 떨어지는 물 모습이 마치 연꽃을 연상시킨다고 연화담으로 부른다고 한다.
< 연화담 옆에서 >
연화담을 지나 금강사 입구에 있는 약수 물로 목을 축이고 나니 소금강이 새로운 풍광으로 내 머릿속에 곽인이 되는 순간이다.
오래된 시간과 계절의 탓도 있겠지만 육십 중반으로 접어든 우리들에겐 감회가 새로울 만도 하다.
< 금강사 대웅전 >
< 금강사>
금강사는 정각스님이 창건한 사찰로서 주변 경관이 아름다운 기암 괴석과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다.
금강사 앞마당 느티나무아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소금강계곡의 아름다운 경관에 처음 주차장부근의 무질서에서 짜증스러웠던 인상은 사라지고 잘 보존된 계곡의 모습에 감사하는 마음이 앞선다.
실제로 소금강분소를 지나고부터는 계곡물에 발도 담글 수가 없을 정도로 통제되고 있었다. 아니 안내문에 관광객이 절제된 모습으로 잘 지키고 있어 관광객들의 성숙된 자세가 또한 아름다웠다.
< 식당암 방향을 걸어가고 있다 >
금강사를 지나 식당암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는 주변 산세도 만만찮은 기묘한 풍광이 펼쳐지고 있었다.
< 이곳이 식당암이다 >
식당암은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고려에 나라를 내주자 이에 반발 경순왕의 아들인 마의태자가 군사를 이끌고 이곳으로와 훈련시키면서 식사했던 곳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율곡 이이가 식사했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위로는 만물상의 기암괴석, 밑으로는 넓적한 큰 바위가 버티고 아래는 담소를 이루고 있는 이곳 식당암에 앉아서 잠시 역사 속으로 스치고 지나가면서도 아름다운 풍광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 식당암에 앉아서 ..>
< 식당암 뒷 배경 >
앉아있다 보니 솔직히 일어서기가 싫어진다. 설악산에 비선대에서 이곳까지 왔으니 지칠 만도 하다,
이제 마지막 남은 목적지 구룡폭포까지는 1,000m 남았다. 마음은 굴뚝같지만 몸은 절벽이다. 가느냐 마느냐의 갈등은 가는 쪽으로 결정되었다.
김성수님의 강한 의지가 결정적이었다. 성수가 이번 여행에 적극적자세가 돋보였다.
< 구룡폭포 부근에 있는 침대바위(?)>
구룡폭포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어린아이가 탐방로 철재계단을 내려오면서
거의 다 왔으니 힘내라는 표시로 엄지손가락을 주먹손에서 펴 보인다.
예쁘게 생긴 녀석이 귀엽기도 하였지만 어린아이도 힘찬 모습인데 나이 먹은 우리가 지친모습이었으니 민망스럽게도 느껴졌다.
철재계단을 올라 조금 들어가니 구룡폭포가 보인다. 와~! 다 왔구나!
마치 침대처럼 생긴 기묘한 바위가 있고 그 아래쪽에 구룡폭포가 버티고 있었다.
< 소금강을 대표하는 구룡폭포의 위용>
< 구룡폭포에서 꽃 할배들 >
소금강의 구룡폭포!
소금강을 대표하는 구룡폭포는 구룡포에서 나오는 9마리의 용이 폭포 하나씩을 차지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명소라고 한다.
6번째 폭포는 군자폭이고 마지막폭포는 상팔담 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7,8,9폭만 볼 수 있었으며 9폭인 상팔담을 배경으로 인증샷에 만족해야했다.
계속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면 진고개 그리고 오대산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물론 구룡폭포의 상단도 볼 수가 있는데 일정계획도 그렇지만 체력이 받쳐주지 못 한 것도 한 몫 한 샘이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구룡포 상팔담을 배경으로 몇 장의 인증샷을 추가 하고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다시 계곡 입구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구룡폭포의 상팔담을 배경으로 >
<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가고...>
앞만 보고 구룡폭포까지 왔으나 내려 갈 때는 다소 여유를 가지고 내려가니 소금강 계곡의 진수를 보는 풍광에 또 한 번 감탄하는 경치가 펼쳐지고 있었다.
계곡의 물소리가 정갈하게 들려오고 숲과 돌, 바위, 괴석, 오묘한 자연경관은 계속 이어지면서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다.
17:30분경 소금강계곡 주차장에서 주문진 방향으로 가다가 6번 국도를 만나서 좌회전하면 진고개로 가는 방향이다. 진고개로(路)로 차는 피곤함이 없이 묵묵히 달린다.
진고개로 좌측에는 오대천 줄기의 시내물이 흐르고 있었다. 아~ 우리가 원하는 천렵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라는 생각이 번뜩 뇌리에 떠오른다.
< 쪽대로 물고기를 잡고 있다 >
삼산리에서 ‘계곡의 아침’이라는 팬션에 여장을 풀고 1박을 하기로 하였다. 친절한 주인님도 마음에 들고, 팬션도 마음에 들고, 풍광과 여건이 마음에 속 드는 것이었다.
여장을 풀고는 곧바로 주인아주머니에게 쪽대를 빌려 냇가로 가서 천렵을 하였다. 어릴 때 해보고는 처음이라 그리 쉽지는 않았다. 매번 허탕 치기 일 수였다. 그러나 나는 미리 비밀 병기를 준비해 간 것이다. 바로 어항이었다.
어항 주둥이에 밑밥을 붙여 고기를 유인하면 고기가 어항으로 들어가면 나올 수 가 없도록 만든 물고기 잡는 기구가 어항인 것이다.
미리 어항은 물속에 장치 해 놓고 나서 쪽대로 고기 몰이를 하면서 그토록 하고 파 했던 천렵을 하게 되어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푹 빠져 있었다.
< 김성수님이 잡은 물고기를 손질하고 있다 >
< 천렵은 끝나고 >
천렵은 18:27 시작하여 약 1시간 남짓 하고서는 끝을 내야했다. 시간도 늦었지만 날씨가 비가 올듯하여 철수를 하였다. 나는 무척 아쉬웠었다.
< 피라미 튀김 >
처음 휴가 출발 전에 튀김가루와 식용유를 준비해 갔고, 튀김 요리는 내 몫이었다. 급하게 하다 보니 1차 튀김은 실패였다. 어?? 이상하다.
원인을 몰라 쩔쩔매는데 친구 성수가 보더니
“야, 밀가루 반죽을 한 후 피라미에 튀김옷을 입혀야지~”
“아~ 참! 그렇구나.”
“ 하하하하~ ”
“...... ”
실패의 원인은 반죽을 하지 않고 생밀가루에 피라미 튀김옷을 입힌 탓 이었다. 모두 함께 웃으며 즐거운 시간은 계속되었다.
저녁 매뉴는 피라미 튀김과 잣 막걸리에 소주 그리고 주문진에서 사온 오징어 회였다.
바싹한 피라미 튀김에 오징어 회 그리고 한 잔의 술은 언제나 우리를 신나게 한다.
먹어주는 기쁨, 마셔주는 흡족함이 오늘 설악산에서 소금강까지 강행군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는 듯 피로가 풀린다.
밤 깊은 마지막 밤의 정담은 계속 이어지고 .....
< 신나는 만찬 >
< 한잔 더 >
신나는 만찬이었으나 모두들 술은 별로 못 마시고 소주 한 병과 막걸리 한 병으로 만찬은 끝이 났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풀린듯한 피로가 다시 한꺼번에 몰려오면서 일찍 취침으로 들어가자마자 모두 코를 골면서 깊은 숙면에 빠져든다.
역시 꽃할배 들에게는 강행군이었나 싶어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으나 나는 마지막 밤이 더 아쉬움이 남는다.
< 부리보! >
-.8월9일
05:30 어김없이 휴대폰 알람이 울린다.
늦잠을 잘 줄 알았는데 모두들 일어난다. 휴가의 마지막 날이다. 나만 아쉬운 줄 알았는데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다.
휴가차량 막힘을 염려해 일찍 서둘러 06시에 주인아주머니에게 인사도 못하고 출발하였다.
오늘의 일정은 진고개를 넘어 월정사를 지나치고 방아다리 약수터에서 약수 마시고 양평 용문사를 들리면 휴가가 마감되는 코스다.
< 진고개 휴게소 >
< 06:42분 텅 빈 주차장 >
백두대간의 구룡령 진고개에 도착하였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텅 빈주차장을 보는 순간 정말 여름 성수기가 맞나 싶을 정도로 쓸쓸하다 못해 구룡령 밑에서 위로 불어오는 써늘한 아침의 공기마저 그런 생각을 자아내게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고요가 가져다주는 아름다움은 이번여행에서 덤으로 선사 받은 기분이다. 멀리 산자락에 눈앞에 펼쳐지는 구룡령의 순수 자연의 풍광이 안개구름이 골짝이 와 능선을 오가며 휘감고 살아지는 모습은 신비감을 더해주고 있었다.
진고개를 출발 계속 직진하다보면 월정사로 가는 갈림길이 나오는데 그냥 계속 6번 국도를 따라 가면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수려한 산야가 휴가 길의 우리들에게 기쁨의 힐링 시간이 주어진다.
6번 국도에서 우측으로 방아다리로 로 우회전하여 들어가면 이름도 예쁘게 지은 팬션들이 간혹 보이는데 일상을 벋어나 잠시 산속에서 심신을 달래고 싶으면 이곳 팬션을 이용해도 좋을 것 같은 깊은 산속 팬션들이 이색적이었다.
< 탐방지원센터 앞 방아다리 약수터 입구>
방아다리로 를 계속 직진하다 ‘두일’에서 갈림길이 나오면 좌측으로 직진하면 방아다리 약수터 입구가 나온다.
07:27분에 오대산 국립공원 탐방지원센터에 도착했다. 탐방지원센터는 오대산 국립공원 주변 각 지역마다 설치가 되어있다고 한다.
< 약수터 입구부터 펼쳐지는 전나무 군 >
방아디리 약수터 입구에서 부터 펼쳐지는 전나무 도열은 아침의 신선한공기가 피톤치드를 가득 품으며 내뿌려주는 맑은 공기는 우리들의 폐 깊숙이 스며들며 뇌리까지 도달하여 머리를 맑게 해주는 청량감이 신선한 느낌이다.
< 방아다리약수터, 저 집속에서 방아다리 약수가 흘러나온다. >
< 방아다리약수 안내판 >
안내판 내용은 대충 이러하다
‘옛날 한 노인이 병으로 고생을 하다가 이곳에 이르러 기거하던 중 꿈속에서 “ 네가 누워있는 자리를 파보라”라는 산신령의 계시를 받고 땅을 파헤치니 지하에서 샘물이 솟아올라 노인이 그물을 마시고 점차 정신이 맑아지고 원기가 살아나 병을 씻은 듯 나았다는 이야기다.
재미있는 전설이 또 하나 있다.
이곳에서 화전을 하며 살던 아낙네가 절구가 없어 절구통처럼 생긴 움푹 파인 돌에가 곡식을 빻던 차에 절구통처럼 생긴 돌이 갈라지면서 약수가 솟았다 해서 “방아다리약수‘라고 부르고 있단다.
< 많이 드셔유~ 몸에 좋은 거니까 >
실제 방아다리약수는 탄산수에 녹아있는 무기질이 32종류가 되는 철분, 망강 등 이온수가 빈혈, 신경통, 위장병에 좋다고 알려지고 있다.
우리는 누가 누가 더 많이 마시나 내기라도 하듯 꿀꺽 꿀꺽 소리를 내면서 마셔됐다. 어느 정도 배가 불러 더 이상 못 마시게 되자 손에 쥔 생수병 외에는 별도 약수통이 준비가 안 되어 배가 부르도록 마셨던 것이다.
다행이도 많이 마셔도 배탈은 나지 않는단다.
< 기념 인증샷 >
< 주변 경관 >
이곳 평창 방아다리약수터에는 조림왕 김익로씨가 전나무 100만 그루를 비롯하여 잣나무, 소나무, 가문비나무, 박달나무, 주목 등 70여 종류의 나무를 심어 조성된 곳이라고 한다.
< 이곳이 진정한 힐링터가 아닌가 싶다 >
긴팔을 입지 않으면 추위를 느낄 정도로 기온이 서늘하다. 한여름에도 아침저녁에는 두꺼운 이불을 덮어야 한다고 한다.
제대로 피서 한 번 잘 하고 가는 기분이다.
약수터를 떠나야 할 시간, 아쉬움을 간직하고 우리는 다시 가던 길로 계속 전진하여 신수약수터를 지나 속사리에서 다시 6번 국도와 합류하여 양평으로 향했다.
< 용문사 일주문 >
장평에서 순대국 과 잣 술로 아침 겸 해장을 하고 용문사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은 11:27분경 이었다.
알찬 일정으로 휴가의 마지막 코스가 된 용문사로는 초행길은 아니나 예전에 왔던 기억과 사뭇 다른 느낌이 새롭다.
< 용문사 가는 길 >
< 나도 한 컷 >
용문사로 올라가는 길 좌측 가에는 맑은 물이 흘러내리도록 도랑을 만들어 놓은 것이 신선한 충격이다.
우측 길 아래 계곡에는 여느 계곡보다 풍광이 뒤지지 않을 만큼 수량이 풍부한 계곡에는 돗자리 깔고, 텐트까지 치고 준비한 음식을 먹으며 냇가에 발 담그고 피서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서울근교에 이런 곳이 있어 근교사람들은 행복하겠다싶다.
< 수령 1000~1500년으로 추정되는 용문사 은행나무 >
하늘을 가리는 숲 터널과 물소리와 매미소리를 들으며 10여분 걸으니 용문사 은행나무가 버티고 우리를 굽어보고 있다.
용문사에는 다른 사찰과 달리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사가 없다. 아마도 그를 대신(?)하는 은행나무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 본다.
용문사 은행나무에 대한 2가지 전설이 있다.
하나는 경순왕 아들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은 서러움에 금강산으로 가던 중에 이곳에 은행나무를 심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두 번째 이야기는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았는데 나중에 이것이 은행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이 재미있다.
< 인우회 꽃 할배들 >
< 용문산 은행나무의 위용 >
< 자비무적 (慈悲無敵) >
은행나무를 지나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 자비무적(慈悲無敵)이란 비문이 무척이나 마음에 와 닿는다.
‘남을 사랑하며 베풀면 적이 없다.’이렇게 해석해도 되나 모르겠는데....
< 용문사 대웅전 >
< 용문사 관음전 >
<법고가 있는 종각 >
용문사는 아직도 불사 중건이 계속되고 있었다. 불사가 완공되면 다시 찾겠노라는 심정으로 용문사를 뒤로하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우리의 금년 휴가의 여정도 여기서 끝나가고 있다.
용문사를 떠나오면서 나의 뇌를 맴도는 ‘너는 자비무적의 마음이 있긴 하는가?’ 였다.
자비무적(慈悲無敵)
불가의 말(言) 일지라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은 생각을 지워 버릴 수가 없었다.
끝까지 읽어 주신데 대하여 감사드립니다.
함께한 친구들 함께하지 못 한 친구들 모두에게도 감사드립니다.
2014년 8월29일 마침.
감사합니다.
첫댓글 갔다가와도 또 찾아 가 보고싶은 설악산과 소금강산의 아름답고도 멋진곳을 많이도 찾아가 보았지만 아련히 떠오르는
아름다운 곳을(1ㅡ5부까지)멋있게 촬영한 사진과 멋들어지게 쓴 기행문을 보고 그때 갔을때 보다도 더 세심하게 보고
신비하고도 멋진 자연의 아름다움에 실감을 느겼어며 앞으로 두고두고 볼수있어 정말 감사하며 하기휴가 여행한 분들
(염영호님 김성수님 김종석님)의 수고가 많았어나 평생에는 잊이못할 아름답고 멋있는 추억으로 남을꺼에요,
반갑습니다 . 추석명절은 잘 보내셨겠지요?
변함없는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