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말쯤에 삼청동 현대겔러리에서 하는 박수근전을 다녀왔습니다.
제 컴퓨터에 그림판이 문제가 되어 사진과 그림이 잘 나오지 않네요.
준비되는 대로 사진과 유명한 박수근 그림 올려 놓겠습니다. ㅠ.^ *
모처럼 휴일날 정정자 선생님과 함께 겔러리 나들이에 나섰습니다.
오늘 내친김에 간송미술관에 들러 조선시대 마지막 화공들의 작품까지 보고나서
머리 가득 시원한 박하향을 담고 현대겔러리쪽으로 발길을 옮겻습니다.
" 아~ 아뿔싸 .... "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며 발을 조여오는 샌들을 신고 도대체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가 걱정이 앞섰습니다.
하지만 줄은 빨리 빨리 줄어들었습니다.
먼저 입구에서 큰 그림 (제목이 '두여인' 이던가 ... ) 앞에서
기념촬영을 마치고 순서에 의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단순한 그림. 너무 편안한 느낌을
주는 그림에서 나는 잠시 숭고한 인간 박수근의 정신과 잠깐 만날 수 있었습니다.
삶에 그리고 선을 표현하고자 하는 그 따스한 마음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거친 유화물감의 터치에서 화강암의 질감도 느꼈지만 나는 나름대로 박수근의
그림에서 '고흐'를 느꼈습니다.
정말 신기한 것은 그 그림을 그리고 있던 화가의 따뜻한 1960년대 초, 그시간으로
돌아가서 잠깐 서 있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간결하게 절제된 색감에서, 그리고 선에서 , 여백에서 느낀 작가의 마음을 짚어보려고
애쓰면서 모든 그림들을 감상했습니다.
따스했습니다.
그림이 쓸쓸한 느낌도 들었지만 오늘 너무 선한, 너무나 한국적인 예술가 한 사람과
조용히 만나고 온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화가 박수근을 만나고 돌아와서 간단히 느낌을 표현해 보았습니다.
다음에 사진 올리기로 하고 오늘은 박수근에 대한 간략한 자료 찾아 아래에 올려 놓겠습니다.
약손명가 역삼점 블로그를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박수근
박수근 [朴壽根 , 1914.2.2~1965.5.6 ]1914년 강원도 양구(楊口) 출생에서 출생하였다.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하고 1932년 제11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 화단에 등장하였다.
8·15광복 후 월남하여 1952년 제2회 국전에서 특선하고 미협전에서도 입상했다. 1958년 이후 미국 월드하우스화랑, 조선일보사 초대전, 마닐라 국제전 등 국내외 미술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1959년 제8회 국전에서는 추천작가, 1962년 제11회 국전에서는 심사위원을 지냈다.
작품경향은 회백색을 주로 하여 단조로우나 한국적 주제를 서민적 감각으로 다룬 점이 특색이다. 대표작에 《소녀》 《산》 《강변》 등이 있다.
태어났을 당시 넉넉했던 집안 형편은 그가 보통학교에 들어갈 즈음 어려워졌고 그 이후로는 계속 가난으로 인한 고단한 삶을 살았다.
12세 때 밀레의 '만종'을 보고 자신도 그와 같은 화가가 되고자 독학으로 그림 공부를 계속하여 18세인 1932년,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서 수채화 <봄이 오다>로 입선을 하게 되었고 이후 거듭 선전에서 입선하였다. 화가로서 그의 삶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6·25동란 후 박수근은 한동안 미8군 PX에서 초상화를 그려주고 그 대가로 가족의 생계를 꾸려나갔다.
이후 국전에 수 차례 입선과 특선을 하였고 이 때부터 가난한 이웃을 소재로 하여 평면적이고 독특한 마티에르(질감)를 가진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만들어 나갔고 화가로서도 어느 정도 인정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1957년 심혈을 기울여 그린 대작 <세 여인>이 국전에서 낙선한 것에 크게 낙심한 나머지 과음을 계속하여 백내장으로 한 쪽 눈을 실명하게 되었고 간경화도 심해졌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계속 작업을 해갔으나 건강이 더욱 나빠져 1965년 5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내가 그리는 인간상은 단순하고 다채롭지 않다.
나는 그들의 가정에 있는 평범한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물론 어린아이들의 이미지를 가장 즐겨 그린다."
이것은 박수근 자신의 철학과 그림에 대한 생각이 담긴 유일한 말로 여기에서 그의 작품의 주제와 특징의 근간을 엿볼 수 있다.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소박한 우리네 서민의 일상적인 모습이다.
일하고 있는 여인이나 장터의 풍경, 할아버지와 손자 등 생각만으로도 따뜻한 정을 느끼게 하는 그들을 박수근은 그리고자 하였다.
그들의 '선함과 진실함'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화강암의 거친 질감을 화폭에 옮겨왔고 그 위에 공간감을 무시하고 극히 단순한 형태와 선묘를 이용한 평면화된 대상을 모노톤의 색채로 그려내어 마치 바위에 각인된 듯한 이미지로 표현했다. 그리고 이렇게 표현된 그의 작품에서는 숭고한 기운마저 느껴진다.
박수근은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였고 서구예술을 접할 기회도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불리한 상황 속에서 그림을 그리고 계속 실력을 쌓아간 것이 오히려 그 자신만의 시각과 표현을 가능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현재 그는 누구나 인정하는 가장 한국적인 화가가 된 것이다.
또 다른 그림 박수근 빨래터는 최종적으로 법정공방까지 간 끝에 미국의 소장가에 손을 들어 주어 45억 2천만원에 낙찰 되었습니다.
최초 공개라니,
얼마전 TV에서 위작 작품으로 시끌뻑적 했던 박수근 빨래터 아닌가 하지만,
고려장터에 소장한 빨래터는 대한민국 하나뿐인 빨래터입니다.
무슨 소리하는지! 하시겠지만
박수근 빨래터 그림을 자세히 쳐다보면 빨래터 인물수가 6명으로 고려장터에서 소장한 5명보다 1명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대한민국 화랑가나 갤러리에 박수근 그림을 보는것은 아주 희귀하지만 빨래터 5명 있는것은 오직 고려장터뿐입니다.
5명의 그림 구도상 크기도 서양화 약 10호로 6명 빨래터 보다 조금 작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미국 소장가 빨래터의 그림 구상과 유사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대한민국 조계종에서도 이름만 되도 유명한 사찰 스님이 수십년동안 보관한 미술품으로 믿음과 신용을 지닌 고려장터에 2년전에 입고하게 되었습니다.
위의 글은 고려장터라는 미술경매하는 사람의 블로그에서 퍼왔습니다.
첫댓글 본점 황선생님, 본점 피부실에 있는 박수근 작가의 그림 제목은 강변입니다. 고객님들이 물어보실때 제목이 강변이라고 얘기해주시면 됩니다. 그 그림은 1950년대에 그려졌습니다. 우리나라 그림 경매가격 최고로 높은 작가 중 한 분 입니다. 궁금하신점 해결되셨죠? 그 그림을 자세히 보면 나목 몇 그루 사이에 강이 보이고 작은 나룻배도 몇 척 보이실 거예요. 그 당시 풍경을 작가의 따뜻한 시선으로 표현해 놓은듯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