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센강의 올림픽 개막식 ◈
프랑스 대통령 관저(官邸) 엘리제 궁에서 파리 올림픽 취재를 온
해외 기자 대상 리셉션이 지난 22일 있었어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200여 명의 외국 기자 앞에 직접 나섰지요
그는 이날 하루 프랑스 대통령이 아닌, 프랑스 대표 ‘올림픽 홍보맨’이었어요
마이크 앞에 서자마자 “프랑스가 해냈다”며
‘사상 최초의 야외·수상 개막식’ ‘최고의 지속 가능 올림픽’
‘최초의 성평등 올림픽’ 등 파리 올림픽의 역사적 의의를 줄줄이 읊었지요
무엇보다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프랑스라는 나라의 존재감을
다시 한번 세계에 각인시키겠다는 열정이 대단했어요
그는 “파리 올림픽을 통해 세계인은 프랑스의 미식(美食),
다양한 문화 유산, 과학 기술 혁신, 그리고 신기술 기업들을
보게 될 것”이라고 했지요
그러면서 “이번 올림픽을 경험한 이들이 앞으로 (여러 분야에서)
다시 프랑스를 선택하게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했어요
올림픽을 프랑스 문화와 경제·산업을 홍보하는 장으로
적극 활용하겠다는 선언으로 들렸지요
마크롱은 솔직했어요
‘세계인의 스포츠 제전’은 그저 명분인지도 모르지요
올림픽은 한 국가의 수준과 역량을 대규모 스포츠 행사를 통해
전 세계에 선전하는 기회로 더 중요할 수 있어요
올림픽이 항상 그런 이중적 모습을 지녀온 것도 사실이지요
1924년 파리 올림픽은 1차 대전의 참화에서 회복한 프랑스의 영광을,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은 나치 독일이 유럽 최강국이 되었음을
공표하는 무대였어요
1964년 도쿄, 1988년 서울,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은
각각 일본·한국·중국의 경제성장과 굴기(崛起)를 드러내는 기회이기도 했지요
각국이 수십조 원의 막대한 예산이 드는 올림픽 행사를
서로 하겠다고 경쟁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 법이지요
물론 멍석을 깔아준다고 아무나 재주를 보일 수 있는 건 아니지요
이날 외국 기자들 앞에서 ‘프랑스 세일즈’에 나서는 마크롱의 모습은
그저 감탄스러웠어요
그는 12분에 걸친 연설을 모두 영어로 했지요
그러곤 단상 아래로 내려와 1시간 가까이 기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기념사진도 찍었어요
브리짓 마크롱 여사도 현장에 나와 그를 거들었지요
먼저 다가와 말을 건네고, 기자들의 셀피(selfie) 요청에
일일이 응답하며 매력을 발산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한국 정치인 중 여야를 통틀어 과연 몇이나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싶은 의문이 들었지요
외국어 실력은 물론이고, 자신의 유명세를 국가 홍보에 활용할 줄 아는 영민함,
또 그런 능력과 감각을 부부 모두가 갖췄다는 사실이 부러웠어요
편가르기와 줄서기, 남 탓하기 전문가들 대신
저런 인물을 뽑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도 들었지요
정치인의 능력과 품격을 겨루는 올림픽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어요
그런데 파리를 찾는 외국 관광객들이 빼놓지 않는 관광 코스가
‘바토 무슈’ ‘바토 파리지앵’ 같은 센강 유람선을 타고
파리를 선상 관람하는 것이지요
센은 고대 라틴어로 ‘세쿠아나’라 불렸는데
‘신성한’을 뜻하는 켈트어에서 유래했다는 말이 있어요
그 센강을 따라 에펠탑, 튈르리 정원,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노트르담 대성당 같은 명소들이 펼쳐지지요
‘파리 압축 관광’에 이만한 게 없어요
27일 새벽에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개막식은 각국 선수단이
배에 나눠 타고 센강에서 수상 퍼레이드를 하는 장관이 펼쳐졌지요
강폭이 1㎞ 안팎에 달하는 넓은 한강을 보다가
강폭이 100~200m밖에 안 되는 센강을 보면
“이게 강이야, 개천이야” 하는 말이 나오지요
그래도 길이는 한강의 1.5배나 되고 있어요
프랑스 중동부 발원지에서 777km를 흘러 북부 대서양으로 흘러 들어가지요
프랑스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지리적 중심지이지요
센강 가운데 시테섬은 파리의 발상지라 할수 있어요
기원전 52년, 율리우스 카이사르 휘하의 로마군이 센강변을 따라
쳐들어와 시테섬을 점령했지요
그로부터 파리의 로마 시대가 열렸어요
”글을 한 편 완성했을 때, 혹은 뭔가 참신한 아이디어를 얻고자 할 때
센강변을 거닐곤 했다.…
맑은 날이면 포도주 한 병과 빵 한 조각, 소시지를 사들고
강변으로 나가 햇볕을 쬐면서 얼마 전에 산 책을 읽으며
낚시꾼들을 구경하곤 했다.”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파리에서 보낸 20대를 회고하며
“젊은 시절 한때를 파리에서 보낼 수 있다면 파리는 마치
‘움직이는 축제’처럼, 남은 일생에 늘 당신 곁에 머무를 것”이라는
소회를 남겼지요
화가나 작가들에게 센강은 낭만의 공간이지만
프랑스 경제에는 오랫동안 물자 수송로, 교통 중심지였어요
지구 온난화로 인해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친환경 물류로
센강이 다시 활용되고 있지요
10여 년 전부터 프랑스 유통업체 프랑프리는 파리 시내 점포에
물건을 공급할 때 화물 트럭 대신 센강의 바지선을 이용하기 시작했어요
수질 악화로 오랫동안 센강에서는 수영이 금지됐지요
프랑스 정부는 100년 만에 올림픽을 유치하면서
‘친환경 올림픽’을 목표로 센강 수질 개선에 2조원 넘는 돈을 쏟아부었어요
철인 3종 중 수영 경기와 10㎞ 마라톤 수영 경기가 열린다는데
올림픽 개막 직전까지도 수질 논란이 끊이질 않았지요
센강의 수영 경기를 무사히 치르고
내년부터 파리 시민도 센강에서 수영할 수 있게 만든다는 게
프랑스 정부 목표이지요
오염수 오명을 벗고 청정 센강으로 거듭났으면 좋겠어요
-* 언제나 변함없는 조동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