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인면 유리구슬 펜던트
경주 황남동 미추왕릉에서 출토된 인면 유리구슬.
투명한 유리구슬 위에 있는 청색의 동그란 유리 구슬이 인면 유리구슬이다.
동자바 섬에 전래된 초창기 불교의 불상
프렌지판(용화수) 꽃나무
로마에서 홍해를 지나 인도를 거쳐 동자바 섬을 지나 광동을 거쳐서 울산까지 연결된 바닷길.
그리고 이 시기에는 백제와 가야로 이어지는 바닷길들 역시 각 나라들로 진입하는 여러 루트가 존재했을 것이다.
육로로는 비단길과 차마고도가 있었고, 바닷길 역시 활발하게 무역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함사
동자바 자팀(자바 유리구슬) - 동자바의 자팀은 거석문명과 거의 시기가 일치하고 있다.
인도 남부 아리카메두에서 출토된 씨앗 유리구슬
로마 유리구슬에 새겨진 인면상 - 이 인면상의 주인공은 메두사이다.
주로 전사들의 무덤에서 발견된다.
'메두사 머리' 펜던트
터키의 '악마의 눈' 펜던트
까메오 여인 펜던트
까메오 연인 펜던트
까메오 소년 펜던트
신라 인면 유리구슬에 대한 실마리를 풀어가는 다큐멘터리 역사 스페셜 '랭턴박사의 역사 추적' 을 보면서 오래전에 만든 유리구슬이 참 멋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유리구슬 하나로만 목걸이를 해도 예쁠 것 같았다. 솔직히 예쁜 목걸이에 시선이 가서 좀더 자세히 보게 되었다.
이 인면유리구슬이 신라까지 오게 된 배경을 살펴보자면...
로마에는 액막이 전통이 있어서 메두사의 머리 인면이 있는 유리구슬 하고 다니는 풍습이 있었는데 주로 로마의 인면 구슬은 전사들의 무덤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 풍습은 여러 지역에 액막이 부적 형태의 목걸이로 제작되어 팔리고 있다. 동유럽과 터키에서는 '악마의 눈' 이라는 펜던트나 다양한 장신구로 팔리고 있다.
로마의 유리세공 기술이 인도를 거쳐 동자바섬 까지 전파 되었는데, 동자바섬 에서는 조금 독창적인 유리구슬을 만들었다. 이 장신구가 네 면에 인면을 새겨 넣은 '인면 유리구슬' 장신구이다.
인면 유리구슬을 보고 일본인 사학자는 로마시대의 왕의 모습이라고 추정 하였으나, 추적결과 부처상을 인면상으로 형상화 한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이 인면 유리구슬의 인면의 주인공은 자바섬에 전래된 부처의 두상이다. 유리구슬에 새겨진 눈을 뜨고 있는 부처의 모습은 불교가 자바섬에 전래된 시기에서 초기 형태의 부처상을 본 딴 것이다. 그리고 유리구슬에 새겨진 새는 함사라는 상상의 새이다. 함사라는 새는 힌두교 브라흐만 사원에도 조각 되어져 있는데, 브라흐만이 이동할 때 타고 다닌다고 한다. 자바섬에 힌두교 전래는 4c경이고 불교의 전래는 5~6c경이라고 한다. 문화융합이거나 포섭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인거 같다. 유리구슬에 새겨진 꽃(용화수)은 프렌지판 이라는 꽃나무인데 부처에게 공양하는 꽃이다.
이로서 로마의 유리세공 기술의 전파 경로가 자바섬에 이르렀고, 로마의 인면 유리구슬이라는 모티브와 인도의 씨앗 구슬을 만드는 기술이 동자바에서 문화 융합을 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인면 유리구슬이 신라까지 바닷길을 통해 전래되었다. 그 당시에도 바닷길을 이용하여 다양한 문화적 교류와 무역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신라 인면 유리구슬을 통하여 해상무역의 거점들을 밝혀내므로 인해서 생생하게 바닷길의 실체를 살펴 볼 수 있었다. 이 인면 유리구슬을 통하여 그 당시 장신구의 멋스러움도 볼 수 있기도 하지만, 무역을 활발하게 하고 있었고 그리 닫혀있는 세상만은 아니었다는 것도 증명하는 거 같다. 각 나라에서 전해진 문화들이 서로 만나고 융합하고 새롭게 독창성으로 나타나고 있었던 것 같다.
여기서 왜 이런 액막이 부적 형태의 펜던트나 장신구가 만들어졌는지 살펴 보자면...
"악마의 눈(Evil eye)"은 어떤이가 마술적 눈으로 악의적 시선을 희생자에게 쏟아 부을 수 있다는 직설적 의미("저주(cursed)") 보다는 오히려 오래된 영국 이나 스코틀랜드 사전에는 어떤 사물이나 사람등을 탐낸 나머지 오랫동안 "바라보는 것(overlooking)"이라 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결국 이런 행위(overlooki ng)가 어떤 부러움의 대상한테 의도하지 않게 질투의 눈을 보내게 되고, 이때문에 상대방은 불운(misfortu nate)이 찾아올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 "
로마에서 유행했던 메두사 머리 유리구슬도 안 좋은 시선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하는 의미였을 것이다. 메두사 머리 펜던트나 악마의 눈 펜던트는 모두 시샘, 질투, 부당함으로 부터 보호하고자 하는 의미가 들어 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시선'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 같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가 아니라 너무 부러워 하면 타인을 해치기도 한다. 질투나 시샘은 대체로 불순한 의도가 생기기도 하므로... 너무 부러워 하지 말고 자기 삶을 살아야 할 듯....)
이러한 시선으로 부터의 보호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인면상의 주인공이 동자바 섬에서는 부처상으로 바뀌게 된다. 로마에서 안 좋은 것을 오히려 부적으로 사용함으로 인해서 액을 피하고자 했다면, 동자바 섬에서는 부처상이라는 어떤 성스러움이라는 것으로 대체한 것과 같다. 문화적 차이일 수도 있겠으나, 좀 더 적극적 자세 일 수도 있고, 부적보다는 부처상이라는 고귀한 상징물을 몸에 지니므로 인해서 더 큰 지혜로서 악을 멀리하고 액으로 부터 보호 받고자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패턴 유형은 악의 상징물을 몸에 지님으로서 악을 차단하고 선과 지혜의 상징물로서 선함을 유지하고 불러 들이는 유형이라고 볼 수도 있을 듯하다.
까메오 형태의 장신구들도 여기서 유래되었을 수도 있을 듯하다. 자신이 원하는 사물이나 인물을 조각하여 수호신으로 삼는 경우들이 생겨나고 정착되어 까메오 장신구 형태로 이어져 온 것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다만, 각 지역마다 문화적 차이가 있으므로 로마지역에서 들어온 유리 세공 기술과 메두사를 펜던트에 새기는 그 자체에서 영감을 받고 부처상을 유리구슬에 새긴 것일 수도 있다. 즉 그 나라에서 선호하는 그 당시의 지배적이고 전반적인 문화를 새겼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에 부적의 형태가 남아있는 경우를 보자면 처용설화가 그와 비슷한 형태라고 볼 수 있을 듯하다. 메두사의 머리나 악마의 눈은 그 유사성이 처용설화와 상당히 흡사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듯 하다.
고대에 바닷길을 통한 무역의 흔적이 현재에도 문화 형태로 남아 있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문화적 상관성에서 세계는 서로 그리 멀기만 했던 것이 아니었음을 또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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