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이 주신 돈도 다 떨어지자 나는 염체불구하고 다시 삼양동성당을 찾아갔습니다.
"신부님 또 왔어요 , 한 번 더 좀 도와주세요"
그러자 신부님은
"혹시 뭐 기술 하나 갖고 계신가요?"
라고 물어 보시는데
"아유 제가 기술이 있으면 신부님에게 와서 손을 내 밀겠어요?"
"기술이 아니라도 뭐 특별히 배운것 없어요?"
"저는 음대가려고 피아노를 배운것 밖에없어요"
"아 피아노를 배웠다고요?"
"예"
"내가 성당을 3층으로 지은것은 , 지금 서울에는 6.25 후 공부할 시기를 놓쳐 공부하지 못한 젊은이들틀 위해 야간학교를 운영하고 있어요"
"아 "
"신자들중에 대학생들이 밤에 와서 봉사하고 있는데 음악선생님이 아직 없어요, 우리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칠 수 있어요?"
라고 하시는게 아닌가?
"저는 청주 서운동 성당에서 일 할 때 성가단을 지도했어요"
'아 경험이 있군요"
'그런데 재가 머물 곳이 없어서 어려울 것입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머물 곳을 마련해 주면 되지요"
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신부님은 정말로 아래층 한쪽에 조그만 방을 하나 만들어 나를 머물게 하고
3층에도 방을 하나만들어 피아노 까지 한대 사 주시고 신자들의 아이들을 보내주시며 가르치라고 하시는게아닌가?
상상도 못한 일을 나에게 해 주신 신부님은 서울 교구의 김택구 루도비꼬 신부님이십니다.
모든 것이 일사분란하게 다 이루어진 것입니다.
신부님이 피아노 중고를 한대 사 주셨는데 소리가 너무 아름다워 살펴보니 일제 야마하 피아노 입니다.
역시 우리나라 피아노보다 훨씬 좋은 것을 보며 일본이 얼마나 기술적으로 발달 된 나라인지 짐작하게 됩니다.
나는 신자들의 아들 딸들을 가르치면서 매달 신부님의 피아노 값을 갚아 나갔는데 7개월만에 다 갚아버렸습니다.
그리고 나는 삼양동성당의 청년 성가대를 지도하고 어머니 성가대와 어린이 성가대를 가르칩니다.
성당 옆에는 작은 사제관이 있고 거기서 신부님이 생활하시는데 신부님의 식사를 해 주는 여자가 어느날
"신부님이 연탄깨쓰로 의식을 잃었어요 "
라고 하기에 나는 택시를 불러 신부님을 싣고 명동의 성모병원으로 모시고 갔습니다.
그리고 며칠후 다시 신부님이 돌아오셨는데
또 한번 그런일이 일어나서 나는 택시를 불러 등치가 큰 신부님을 식모와 함께 들어차에 태우고
문을 꽝 닫았는데, 문이 닫히지 않아 살펴보니 신부님의 발 하나가 밖으로 나와 있는것을 모르고 문을 세차게 닫은 것입니다.
나는다시 신부님의 발을 드리밀고 성모병원로 갔습니다.
나는 다시 돌아와 성당일을 하다가, 시간을 내어 다시 명동 성모병원으로 갔습니다.
내가 신부님 방으로 들어가자 반가워 하시며
"성당을 비워두면 안되는데"
라고 하시며 다리를 절룩거리십니다.
"신부님 다리가 아프세요?"
"다리에 멍이 들었어요"
라고 하시며 보여 주시는데 발목이 시꺼멓습니다.
"아유 이런 ! 신부님 제가 실수하여 택시에 태울때, 다리가 밖에 있는줄 모르고 문을 세차게 닫아서 그랬어요 아이구 죄송합니다."
"아 그랬군요 오히려 내가 정신이 들게 잘 한 일이지요"
"예?"
신부님이 냉장고를 여시더니 이것 저것 먹을 것을 꺼내주시며 먹으라고 합니다.
얼마나 자상하신 분이신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