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사지리지권2에 나오는 한민족 왕조와 관련된 매우 중요한 지명이다.고려가 어떻게 몽골의 공격에 속국화되어가는지 알 수 있다.실제 고려사절요를 보면 중으로 변장한 김인후가 살리타이를 척살하는 기록에서 고려인들의 저항이 끈질기다.고려나 조선이나 어지러운 시기에 重臣들이 나라를 팔아먹었다.지리의 역사적 설명은 이당시에도 이미 부분적으로 왜곡되어 원나라가 천시한 漢人중 고용한 漢人學者들에 의해 전수되고 있다는것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사기,한서,당서등에 기록된 같은 내용과 문귀가 많이 반복되는데 이것이 그사실을 반증한다.
거란지리도를 잘보아야한다 주필산 동경은 현 하북 북경서북부이다.
원나라구획도 (위 거란지리도와 동북부 지명위치는 거의 차이없다)
東寧路,本高句驪平壤城,亦曰長安城。漢滅朝鮮,置樂浪、玄菟郡,此樂浪地也。晉義熙後,其王高璉始居平壤城。唐征高麗,拔平壤,其國東徙,在鴨綠水之東南千餘里,非平壤之舊。至王建,以平壤為西京。元至元六年,李延齡、崔垣、玄元烈等以府州縣鎮六十城來歸。八年,改西京為東寧府。十三年,升東寧路總管府,設錄事司,割靜州、義州、麟州、威遠鎮隸婆娑府。本路領司一,余城堙廢,不設司存,今姑存舊名。
동녕로, 본고구려평양성 혹은 장안성이라 하다.한나라가 (위만)조선을 멸할때 낙랑,현토군을 설치하였는데 바로 낙랑땅이다.진 의희후(415) 고구려왕 고련이 평양성에 처음으로 머무르다.당이 고구려를 정벌할때 평양을 공격헀는데 압록수 동남천여리에 있었으나 옛 평양이 아니다. 왕건에 이르러 평양을 서경으로 하다. 원나라 지원6년(1269) 이연령,최원,현원렬등이 부,주,현,진 60성을 들고 래귀하다.지원8년(1271) 서경을 동녕부라 고치고 13년(1276) 동녕로총관부를 이어서 녹사사를 설치하고 정주,인주,의주,위원진을 나누어 파사부에 속하게하다.
瀋陽路,本挹婁故地,渤海大氏建定理府,都督沈、定二州,此為沈州地。契丹為興遼軍,金為昭德軍,又更顯德軍,後皆毀於兵火。元初平遼東,高麗國麟州神騎都領洪福源率西京、都護、龜州四十餘城來降,各立鎮守司,設官以撫其民。後高麗復叛,洪福源引眾來歸,授高麗軍民萬戶,徙降民散居遼陽沈州,初創城郭,置司存,僑治遼陽故城。中統二年,改為安撫高麗軍民總管府。及高麗舉國內附,四年,又以質子淳為安撫高麗軍民總管,分領二千餘戶,理沈州。元貞二年,並兩司為瀋陽等路安撫高麗軍民總管府,仍治遼陽故城,轄總管五、千戶二十四、百戶二十五。至順錢糧戶數五千一百八十三。
심양로,본시읍루의 옛땅이다.발해가 정리부를 설치하고 심,정2주에 도독을 두다.그곳이 심주땅이다.거란이 흥요군이라하고 금이 소덕군,현덕군이라 다시고치다. 후에 병화로 무너지다.원초 요동을 평정할때 고려국신기도령 홍복원이 서경,도호,귀주등 40여성을 이끌고 항복하다.각가 진수사를 세우고 백성을 위무하는 관청을 세우다.후에 고려가 다시 반란을 일으키자 홍복원이 백성을 이끌고 귀부하다.고려군민 일만호 항복한 백성을 요양,심주에 흩어 살게하였다.초에 성곽을 세우고 치사가 있었다.요양고성을 임시로 관리하다.중통2년(1261) 안무고려군민총관부라 고치다.고려가 나라를 들어 내부하다.4년(1263)인질 왕순을 안무고려군민총관으로하여 2000호를 떼어주었고 심주를 정리하였다.원정2년 심양등로안무고려군민총관을 같이 설치하고 요양고성은 그대로 관리하고 총관을 5천호 24,백호 25 로 나누다.
開元路,古肅慎之地,隋、唐曰黑水靺鞨。唐初,渠長阿固郎始來朝,後乃臣服,以其地為燕州,置黑水府。其後渤海盛,靺鞨皆役屬之。又其後渤海浸弱,為契丹所攻,黑水復擅其地,東瀕海,南界高麗,西北與契丹接壤,即金鼻祖之部落也。初號女真,後避遼興宗諱,改曰女直。太祖烏古打既滅遼,即上京設都,海陵遷都於燕,改為會寧府。金末,其將蒲鮮萬奴據遼東。元初癸巳歲,出師伐之,生禽萬奴,師至開元、率賓,東土悉平。開元之名,始見於此。乙未歲,立開元、南京二萬戶府,治黃龍府。至元四年,更遼東路總管府。二十三年,改為開元路,領鹹平府,後割鹹平為散府,俱隸遼東道宣慰司。至順錢糧戶數四千三百六十七。
개원로,옛 숙신땅이다.수,당이 흑수말갈이라 하다. 당초,거장아고랑시가 래조하다 후에 신하가 되다.그땅을 연주라하고 흑수부를 두다.이후 발해가 융성해져 말갈모두가 예속되다. 이후 발해가 약해지매 거란이 공격하다. 흑수가 그땅을 다시 점유하니 동으로 빈해요 남에는 고려 서북으로 거란이 그땅을 접하다. 즉 금시조의 부락이다.처음엔 여진으로 하다 후에 요 흥종을 피해 여직이라 고치다.태조오고타가 요를 멸하고 상경에 도읍을 세우다.해릉을 연으로 옮기다.회령부로 고치다.금나라말 그장수 포선만노가 요동에 은거하다. 원초 계미년 장수를보대어 정벌하고 만노를 살려 풀어주다.장수가 개원,솔빈,동으로 남김없이 평정하다. 개원이란 이름은 여기서유래한다. 을미년 남경2만호부 황룡부를 다스리다.지원4년( 1334) 요동로총관부를 고치다. 23년(1353)개월로로 고치다.함평부를 령하다. 후에 함평을 나누어 산부라하고 요동도선위사에 예속하게하다.지순 1330년 호수는 4267이다.
鹹平府,古朝鮮地,箕子所封,漢屬樂浪郡,後高麗侵有其地。唐滅高麗,置安東都護以統之,繼為渤海大氏所據。遼平渤海,以其地多險隘,建城以居流民,號鹹州安東軍,領縣曰鹹平。金升鹹平府,領平郭、安東、新興、慶雲、清安、歸仁六縣,兵亂皆廢。元初因之,隸開元路,後復割出,隸遼東宣慰司。
함평로,옛 조선지다.(흔한귀절 중략) 안동도호부를 설치하고 통치하다.이어 발해대씨가 머무르다.요가 발해를 평정할때 그땅을 험하고 협소해 성을 쌓고 유민이 기거하다.함주 안동군 현이름은 함평이라하다.평곽,안동,신흥,경운,청안,귀인 6현을 다스리다. 전쟁시 전부 폐하다. 원초에 이것으로 인하여 개원로에 속하게하고 후에 다시나누어 요동선위사에 속하게 하다.
고려가 원세조 쿠빌라이의 정복전쟁에 의해서 굴복하기전에 원나라 지원6년(1269) 이연령,최원,현원렬등이 부,주,현,진 60성을 들고 투항하고 지원8년(1271) 원에서 서경을 동녕부라 고치고 또한 원초 요동을 평정할때홍복원 홍다구 등이 서경,도호,귀주등 40여성을 이끌고 항복하게 되는데 무려 100여城을 들어다 원에게 팔아먹는데 이는 고려로 보아 엄청난 지역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고구려가 망할때 300여城이었기 때문이다. 이연령등이 배반한 지역중에 서경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이지역이 하북 초중기 고려개경지역으로 보는것이다.
八年,改西京為東寧府 에서 서경을 동녕부로 고쳤다 했는데 학계에서 서경을 평안남도 평양으로 보고있으나 위의 원나라제작지도를 보면 동녕로가 압록강(?) 서쪽이며 장성 북쪽으로 그려져있다. 실제 명시대 이전만 해도 북쪽장성은 현 산해관이 아니고 역현 북쪽에서 끝났다. 윗 원나라 서지자료로 본다면 윗 지도는 후대에 덧칠한것이거나 실제 동녕로의 위치는 장성북쪽이 되는것이다. 따라서 윗지도 어디에도 고구려 평양이자 고려 서경인 동녕부가 한반도 평양이란 위치에 그려있지 않다.
慈悲岭 在平壤东百六十里。宋淳熙二年,高丽西京留守赵位宠慈悲岭至鸭渌江四十余城附金,金人不纳,位宠伏诛。元至元六年,高丽臣李延龄等以西京以下六十城来归,元因改置东宁路,以慈悲岭为界云。○嘉山岭,在嘉山郡西,郡以此名。《图经》:朔州西北有狄喻岭,朝鲜谓之西北雄关 。
자비령은 평양 동쪽 160리에 있다.송순희2년 고려서경유수 조위총이 자비령에서 압록강40여성을 금나라에 바쳤다.금나라 사람이 받질 않았다 조위총을 주살하다.원지원6년 고려신하 여연령 등이 서경이하 60성을 들어 바쳤다.원이 동령로를 설치하는 원인이 되다.이로서 자비령을 경계로 하다.○ 가산령은 가산군 서쪽에 있다.<도경>가주 서북에 적유령이 있다.조선의 서북은 웅관이다. (독사방여기요)
개원로에 대해서는 金始朝 아골타가 중국학계에서 말하는 만주 북쪽 회령지역으로 오도하고 있지만 실제 기록을 보면 아골타의 선조 김함보는 黑水復擅其地,東瀕海,南界高麗,西北與契丹接壤,即金鼻祖之部落也. 기록대로 흑수지역으로 동으로 빈해,남으로 고려,서북으로 거란을 접하는 지역이다라고 하니 이지역은 바로 고려지역 인것이다. 瀕은 濱과 같은데 瀕을 가까운 바다라 해석하면 일컽는 지역이 달라질수 있고 濱은 하북과 산동경계의 바다를 말한다. 濱지역이 고려인종때 고려를 다녀간 서긍의 고려도경에 기술된 고려수도 개경의 위치와 일치한다. (필자의 고려수도추적 개성을 읽어보라)
또한 고려현종기록이다.
禮賓卿朴忠淑,爲中軍兵馬使,刑部尙書崔士威,爲統軍使,率兵三十萬,軍于通州,以備契丹
(전략) 형부상서최사위를 통군사로하여 30만병을 이끌고 군을 통주에서 거란에 대비하다- 바로 거란왕 성종이 고려현종시 침략할때 북경 바로옆 통주에서 싸웠다.
계속
심제 글.
첫댓글 동녕부가 고구려 평양이라면 회령은 이조 때 까지 내려오는 회령일 것 같습니다.
조선 회령은 함경도 회령이지만 우리가 알고있는 회령이 아닌것으로 보입니다. 현재의 내몽골 북부 혹은 흑룡강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