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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의 성찬론
부제: 『취리히 합의서』(The Consensus Tigurinus)를 중심으로
-목차-
I. 서론 ·······································································1
A. 문제제기 및 연구목적 ················································1
B. 방법 및 진행 ············································· ··············3
II. 본론 ························································ ··············4
A. 성찬논쟁의 배경 ··········································· ·· ·········4
1. 성만찬 논쟁의 발단과 그 전개 ·························· ····· ····· 4
가. 1524년 이전의 루터의 성만찬 이해 ················ ·······. ····4
나. 종교개혁 세력 내부의 성만찬 논쟁의 초기상황 ··· ······ ···..·6
2. 종교 개혁자들의 성찬론 개괄 ··························· ···········12
가. 루터의 공재설(consubstantiation) ············· ············12
나. 쯔빙글리의 기념설 ·································· ·················15
다. 쯔빙글리의 성만찬에 관한 후기 입장 ·········· ·················.19
B. 취리히 합의서 연구 ····················································22
1. 합의에 이르는 단계 ·····················································23
2. 티구리누스 합의 내용 ··················································27
가. 26항목·····································································27
나. 합의서에 관한 몇몇 결론 및 의미····································45
C. 칼빈의 성찬론 연구······················································50
1. 성찬의 의미··············································· ·················50
2. 성찬의 본체(실체)·················································· ·····52
3. 성찬의 효과·································································57
III. 결론 ·········································································60
참고문헌 ········································································ 63
I. 서론
A. 문제제기 및 연구목적
기독교 예배의 역사에서 성만찬의 의미와 그 비중은 교리적인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가 예배를 드리는 현장적 측면에서도 매우 소중하게 여겨 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성만찬이 이론적 교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예 배 가운데서 “하나님과의 만남”, “주님과의 연접”이라는 가장 중요한 신앙 의 표현과 경험을 수반하고 있기 때문이다.1) 이러한 성례전의 중요성은 오 늘 뿐만 아니라 기독교가 탄생하던 때로부터 종교개혁 시까지 가장 핵심적 인 예배의 초점이 되어왔었다.
종교개혁이 있기 전까지는 기독교의 성례전은 오늘날 구교에서 지켜오는 것처럼 일곱 가지 성례를 가지고 있었는데, 칼빈은 이와 같은 일곱 가지 성례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성례전은 오직 두 가지 뿐임을 강조하고 있 다. 그것은 곧, 세례와 성만찬이 기독교 예배의 성례전 이어야한다는 입장 이다.
또한 종교개혁사를 살펴볼 때, 이러한 성찬예식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교회분열의 원인으로 작용함을 볼 수 있다. 성찬은 그리스 도께서 재정하신 것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떡과 잔에 참여한다는 점에 서는 개혁가들이 일치를 보았지만 그리스도의 성만찬의 임재방법에는 루터 와 쯔빙글리와 칼빈은 각각 다른 입장을 취하였다는 것이 일반 사학가들의 입장이다.
특히 쯔빙글리의 성만찬 신학은 루터란과 개혁교회를 갈라놓은 역사적인 분기점으로 작용했다. 흔히 쯔빙글리의 성만찬 이해에는 그리스도의 몸이 실재적으로 임재하지 않으며, 반면 루터의 이해에는 그리스도의 몸이 실재적으로 임재 한다는 식으로 말해져 왔다.2) 그리고 칼빈은 그리스도가 영적 으로 임재 한다고 말해져 왔다.
이상이 지금까지의 성찬에 대한 많은 사학자들의 보편적인 견해이다. 우 리는 이러한 내용을 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왔다. 그리하여 쯔빙글리는 상 징설, 칼빈은 영적임재설이라는 시각이 우리에게는 고착되어 있었다. 그러 나 본 논문을 연구하던 중 교수님께서 제시한 몇몇 자료로 그것만이 전부 가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초기 쯔빙글리의 상징적 이해에 미친 에라스무스와 호엔의 영향은 은총 의 수단으로서 성찬보다는 인간의 주관적인 신앙에 집착하게 했다. 그러나 후기에 나타나는 강조점의 변화는 그리스도의 실제적 임재를 향해 개방한 다. 이러한 맥락속에서 필자는 여러 자료를 모으는 과정 속에서 쯔빙글리 와 칼빈의 성찬에 관해 일치를 본 『취리히 합의서』The consensus Tigurinus를3) 접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본 고는 1549년 불링거와 칼빈 사이에 이루어진 성만찬에 대한 취리히 합의서를 중점으로 연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리고 이 합의 문의 의미에 관한 몇몇 결론을 얻고자 한다. 더 나아가 이러한 내용을 근 거로 해서 후기의 쯔빙글리의 성찬관을 바로 알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 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칼빈의 성찬론과 합쳐질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 인지? 그리고 실재로 합쳐진 내용은 무엇이지를 살펴보겠다.
더 나아가 칼빈의 신학적 입장을 받는 장로교 목회자 후보생으로 개혁교 회의 표상인 칼빈의 성찬론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본 연구로 성찬의 의미 와 실체와 모든 유익을 깨달을 수 있게 될 것이며 교회가 진정한 칼빈주의 입장에서 성찬을 시행하고 있는가를 알게 될 뿐만 아니라 인간의 우둔함을 위하여 가시적인 말씀으로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될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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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장복, 「예배학 개론」 (서울: 종로서적, 1988), p.181.
2) 정승훈, 「종교개혁과 21세기」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1), p.135.
3) 이 합의서의 명칭은 티구리누스 합의서, 취리히 합의서, 또는 제네바 일치 신조 라 불리 운다.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명칭 중, “취리히 합의서”로 사용코자 한다.
B. 방법 및 진행
본 연구는 아직 취리히 합의서에 대한 연구 논문들의 번역본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철저히 원서를 번역하여 연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겠다.4) 그 리고 칼빈에 관한 일차자료로서는 교의학적 내용이 집대성되어 있는 칼빈 의 기독교강요와 그의 주석이 될 것이고, 다음으로 칼빈에 관한 신학논문 집들을 주로 참고할 것이며 그 외에 교회사와 예배학에 관한 저서들이 참 고 될 것이다.
본 논문의 구성을 자세히 살펴보면 제1장에서는 문제제기와 연구목적 및 방법에 대해 기술할 것이다. 제2장에서는 성찬 논쟁의 배경을 다루면서 루 터의 성찬론과 쯔빙글리의 성찬론의 초기입장과 후기입장을 개괄하겠다. 그리고 제3장에서는 서로의 일치된 합의서인 취리히 합의서를 중점적으로 연구하면서 쯔빙글리와 칼빈의 성찬론이 무엇이 다르며, 무엇이 일치하였 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그리고 그것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다. 더 나아가 그것이 가능하게 된 이유까지 추론할 것이다. 다음으로 제4장에서는 칼빈의 성찬론을 더 깊이 있게 고찰하도록 하겠다. 왜냐하면 칼빈의 입장을 받는 신학도로서 의미있는 작업이라 사료되기 때문이다.
마지막 제5장에서는 이 논문의 결론으로서 요약과 제언으로 본 논문을 끝맺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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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번역본으로 사용된 문서로는 취리히 합의서를 연구한 George Timothy교수와 Henry Beveridge교수의 글이다.
II. 본론
A. 성찬논쟁의 배경
1. 성만찬 논쟁의 발단과 그 전개
가. 1524년 이전의 루터의 성만찬 이해
루터는 로마-카톨릭의 희생제의(Meßopfer)로서의 성만찬 이해를 비판함 으로써 자신의 독자적인 성만찬론을 전개하였다. 1519년의 “세 개의 성례 전에 관한 설교”에서 루터는 성례전(das Sakrament) 혹은 표지(das Zeichen)와 의미(Bedeutung), 그리고 신앙(der Glaube)을 구분하였다. 여기 에서 신앙이 성례전의 정의에 중요한 구성요소가 된 점이 독특한 것이다. “성만찬에 관한 설교”에서 루터는 표지로써 빵과 포도주의 형식(Form)과 모양(Gestalt)을, 의미로써 모든 성도들의 참여 혹은 교제(Gemeinschaft)를 들었다. 루터는 이 설교에서 성만찬은 성도의 교제와 참여이며, 성만찬을 통해 죄의 용서의 은총이 주어짐을 강조하였다.
1520년 봄에 루터는 “새로운 약속에 대한 설교”(Sermon von dem Neuen Testament)에서 이전의 “성만찬에 대한 설교”와는 다른 관점의 성 만찬론을 제시하였다. 여기에서 루터는 제정사(Einsetzungsworte)에 표현 되어있는 예수의 마지막 의지로서의 약속(Testament)에서 성만찬의 주된 의미를 찾았다. 이로써 성도들의 참여 혹은 교제로서의 성만찬 이해는 뒤 로 물러나고 하나님의 약속(Verheißung)과 신앙의 상호관계라는 새로운 관 점이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다.5) 그 약속의 내용은 죄의 용서와 영원한 생명이다. 이러한 은총을 바라보면서 예수는 죽음을 감당하신 것이다. 성만찬 에서의 빵과 포도주는 바로 이러한 사고 속에서 이해되어져야 한다.
루터는 빵과 포도주는 “말씀에 부착되어 있는 상징과 표지이며, 그것은 빵과 포도주 아래 있는 그 본래의 참된 몸과 피이다”(sigill und zeychen an und in die wort gehenckt, das ist sein eygen warhafftig fleysch und blut unter dem brot und weyn)라고 주장하였다. 여기에 빵과 그리스도의 몸, 포도주와 그리스도의 피가 성만찬에서 서로 나란히 분리되지 않고 결 합되어 실재한다는 소위 루터의 공재설(Konsubstantiationslehre)6)의 기초 가 놓여진다. 이 단계에서는 아직 로마-카톨릭의 화체설 (Transsubstantiationslehre)에 대한 명확한 비판이나 후에 보여지는 것과 같은 성만찬에서의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임재(Realpräsenz)에 대한 정치 (精緻)한 논리가 등장하지는 않는다.
루터의 본격적인 로마-카톨릭의 성례전에 대한 비판은 1520년 가을에 출판된 “교회의 바빌론 포로”(De captivitate Babylonica ecclesiae praeludium)란 글에서 이루어졌다. 루터는 여기에서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7성례전에 대해 비판하였으며, 교황제도를 교회를 포로로 잡아갔던 바벨론 왕국으로 묘사했다.7) 결론적으로 루터는 세례와 성만찬은 성서에 근거한 성례로서 인정할 수 있고, 고해성사는 무조건적으로 성례에 포함시키기에 는 부족하다고 주장하였다. 루터는 이전의 “새 약속에 대한 설교”에서 보 다 더 강하게 성만찬에서 약속과 믿음의 의미를 강조하였으며, 약속 혹은 말씀을 표지(Zeichen) 위에 두었다.8)
1523년 루터는 “그리스도의 성체에 대한 경배에 관하여”(Von Anbeten des Sakraments des hi. Leichnahms Christi)란 글에서 네덜란드의 인문주 의자 호엔(Cornelius Hendricxz Hoen)이 성만찬의 제정사를 상징적으로 해 석하는 것과 보헤미아 형제단이 로마-카톨릭의 화체설을 비판하면서 그리 스도의 임재를 영적으로(geistlich) 해석하는 것에 반대하면서 이전 보다 더욱 분명하게 성만찬의 빵과 포도주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실제적인 임재를 주장하였다.9)
결론적으로 로마-카톨릭과의 대치 상황에서 루터의 성만찬 이해는 문제 의식에 따라 그 강조점이 다르게 나타나기는 하지만 1524년부터 종교개혁 내부에서 발생한 치열한 성만찬 논쟁에서 극명하게 나타나는 루터의 기본 입장이 배태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그의 성만찬 이해는 내적인 연속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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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WA 6, 356, 3-6. “재인용”
6) 루터 자신은 “Konsubstantiation”이란 용어를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 개념
은 1560년대 개혁교회 신학자들에 의해 루터교의 성만찬론을 지칭하는 개념으 로 등장하였다. 루터는 빵과 몸의 하나됨(Einheit)을 “unio sacramentalis”라는 용어로 표현하였다.
7) 이은선, 「주제별 교회사 하(下)」 (서울: 요나출판사, 1995), p.32.
8) 이성덕, “루터와 쯔빙글리의 성만찬 논쟁이 지니는 교회 정치적 의미”, 한국교회 사학회지 11집(2002), p.3.
9) 이성덕, “루터와 쯔빙글리의 성만찬 논쟁이 지니는 교회 정치적 의미”, p.3.
나. 종교개혁 세력 내부의 성만찬 논쟁의 초기상황
종교개혁 세력 내부의 성만찬 논쟁은 칼슈타트(Andreas Bodenstein von Karlstadt)10)가 공개적으로 루터의 성만찬에서의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임 재’(Realpräsenz)설을 비판하고 영적인 임재를 주장함으로써 시작되었다.11)
루터는 칼슈타트의 주장이 종교개혁 세력 내부에서 광범위한 지지를 얻어 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이것은 복음의 본질을 위협하고 종교개혁의 성과 를 위태롭게 하는 일로 받아들였다. 무엇보다 1524년 겨울 요하네스 외코 람파트(Johannes Oekolampad)가 칼슈타트의 성만찬에 관한 저술을 바젤에 서 출판하도록 승인하고, 쯔빙글리가 이를 지지한 사건이 사태를 더욱 악 화시켰다. 성만찬 논쟁은 원래 루터 자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반대편의 선 동에 의해 가속화되었다.12)
루터는 이미 칼슈타트가 뮌처와 연결되어 있음을 보았기 때문에, 그 이 후의 성만찬 논쟁에서 적대자들 간에 입장의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 두 칼슈타트와 같은 무리들로 여기게 되었다. 루터의 이러한 선입견과 확 신이 이후의 쯔빙글리와 그의 추종자들과의 성만찬 논쟁을 더욱 어렵게 만 든 요인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루터는 칼슈타트의 견해를 비판하기 위해 1524/1525년에 “천상의 예언자들에 대한 반대”(Wider die himmlischen Pripheten, von den Bildern und Sakrament etc.)란 글을 발 표하였다. 이 글에서 루터는 성만찬과 관련하여 칼슈타트가 성서본문을 영 성화(Spiritualisierung)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합리적인 이성으로 해석하려 는 태도를 용납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칼슈타트의 주장을 반박하는 한편, 성체 성사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혀두었다.13) 쯔빙글리의 성만찬 이해 역시 루터와 마찬가지로 로마-카톨릭의 희생제 의(Meßpfer)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하였다.14)
그러나 이미 1524년 가을에 루터는 베르트 하임(Wertheim)에 있는 프란츠 콜브(Franz Kolb)로부터 취리히(Zürich)에 있는 쯔빙글리도 성만찬의 제정사(Einsetzungsworte)를 상 징적(symbolisch)으로 해석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쯔빙글리가 첫 번째로 자신의 상징론적인 성만찬론을 전개한 것은 로이트링(Reutlimg)의 설교자 마테우스 알버(Mattäus Alber)에게 보낸 편지에서이다. 루터가 1523년 네 덜란드의 인문주의자 호엔(Cornelius Hendricxz Hoen)이 제기한 성만찬의 제정사에 대한 상징적 해석을 단호히 거부한데 반하여, 취리히의 쯔빙글리 는 호엔의 견해를 자신이 이해하는 감사와 고백으로서의 성만찬 이해를 뒷 받침하는 근거로 사용하였다. 쯔빙글리와 바젤의 외코람파트는 칼슈타트의 성만찬에 대한 이해를 공유하였다. 그리고 슈트라스부르크(Straßburg)의 종교개혁자들도 루터가 칼슈타트와 결별했다는 사실을 아주 못마땅하게 생 각하였다. 1524년에 루터와 결별하였던 칼슈타트도 바젤에 있는 외코람파 트를 방문하였다. 이로써 남서부 독일은 성만찬 이해를 둘러싼 비텐베르크 (Wittenberg)와 취리히(Zürich)의 각축장이 되었다.15)
쯔빙글리의 성만찬 이해와 칼슈타트의 등장은 슈트라스부르크의 종교개 혁자 지도자인 마틴 부처(Martin Bucer,1481-1551)와 볼프강 카피토 (Wolfgang Capito, 1478-1541)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고, 그들의 이제 까지의 입장을 흔들어 놓았다. 그들은 쯔빙글리의 입장에 기울기는 했지만, 1524년 12월에 조심스럽게 루터에게 이에 대한 입장 표명을 요청하였다. 쯔빙글리, 외코람파트, 부처, 카피토는 서로 다른 색채를 띠긴 하지만 종교 개혁의 대열에 합류하기 전에 인문주의적인 배경을 갖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1525년 7월에 슐레지안(Schlesien) 지방에서도 칼슈타트와 나란히 쯔빙글리의 성만찬 이해가 공감을 얻고 있다는 소식이 비텐베르크의 종교 개혁자들에게 전해졌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부겐하겐(Bugenhagen)은 “우 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의 성례전에 있어 새로운 오류에 반대하는 서한”(Sendbrief wider den neuen Irrtum bei dem Sacrament des Leibes und Blutes unseres Herrn Jesu Christi)을 작성하였데, 이것이 비텐베르크측이 쯔빙글리를 비판하는 첫 번째 출판물이 되었다. 루터는 이 논쟁에 직 접 개입하지 않고 다른 신학자들에게 위임한 채, 침묵으로 일관하였다.16)
슈트라스부르크의 개혁자들은 비록 루터의 농민전쟁에 대한 비판의 글이 나 이미 1523년에 발표된 “Von Anbeten des Sakraments...”에 표명된 성 만찬 이해에 대해 비판할 요소를 발견하였지만, 그에 대한 비판을 주저하 였다. 그러나 카피토는 부겐하겐의 “Sendbrief...”에 대해 반대하였으며 핵 심에 있어 쯔빙글리와 외코람파트도 완전히 일치된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들은 성만찬을 본래적인 신앙에 비하면 주변적인 것으로 본 반면에, 루 터와 비텐베르크 개혁자들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말씀과 신앙에 비해 결코 주변적인 것이 아니라, 구원을 가져오는 것이며 따라서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인식하였다. 루터는 슈트라스부르크의 개혁자들에게 다른 영혼들을 잘못된 길로 이끌지 않도록 성만찬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부터 돌아설 것을 요청하였다.
다른 한편 슐레지안 출신의 슈벵크펠트(Kaspar von Schwenckfeld)는 성 만찬에 대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비텐베르크를 방문하였다. 그는 1519년 루터의 저작물에 의해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성만찬이 실제로 많은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사실로 인해, 루터의 성만찬 이해에 대 해 회의적이 되었다. 그러던 차에 요한복음6장에 따라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은 믿음과 일치되며, 빵과 포도주는 하늘의 빵에 대한 단순한 상징에 지나지 않으며, 그 천상적인 것은 지상적인 것과 연합될 수 없다는 쯔빙글리의 주장이 그에게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였다. 결국 루터 와 슈벵크펠트는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결별하게 되었다.
1526년 2월 루터는 요하네스 브렌츠의 주도로 작성된 “슈바벤의 문서 (Syngramma Suevicum)”17)을 접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하이브론(Heibron)과 슈바벤 할(Schwäbisch Hall) 사이의 지역에 있는 14명의 소위 “슈바벤 의 설교자”들이 쯔빙글리의 동조자, 특히 외코람파트를 반박하는 글이었다. 이것을 통하여 루터와 같은 입장을 견지하였던 이들은 쯔빙글리의 성만찬 론이 남서부 독일지역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고자 하였다.
브렌츠와 그의 동료들은 외코람파트와 부처와 동일한 인문주의적인 정신적 배경을 지녔지 만, 제정사에 대한 상징적인 해석에는 근본적으로 찬성할 수 없었다. 루터 는 요한 아그리콜라(Johann Agricola)로 하여금 “Syngramma”를 독일어로 번역하도록 하였으며, 그 문서에 제정사를 상징적으로 해석하는 시도에 대 해 격렬하게 비판하는 서문을 첨가하였다. 이것은 쯔빙글리의 추종자들을 향한 루터의 첫 번째 공개적인 비판이었고, 이를 계기로 성만찬 이해를 둘 러싼 논쟁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되었다. 루터의 “Syngramma” 서문 이 나온 후 쯔빙글리는 일반 대중에게 자신의 성만찬 이해를 분명히 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성만찬에 관한 명백한 교훈(Eine klare Unterrichtung vom Nachtmahl Christi)”18)이란 글을 발표하였다. 비록 쯔빙글리가 이 글 에서 마지막 부분에 루터를 공격하려는 뜻이 없음을 밝히고 있지만, 전체 글을 통해서 볼 때 루터의 입장을 공격하고 있음은 분명했다.19)
쯔빙글리의 추종자들은 오랫동안 루터의 공식적인 입장 표명을 기다려왔 었다. 외코람파트는 루터의 “Syngramma” 서문에 대해 응답하면서, 자신을 “새로운 폭도(Neue Rotten)”라고 지칭하는 것에 대해 거부하였다. 루터와 쯔빙글리 추종자들과의 관계사를 더욱 악화시킨 것은 부처가 부겐하겐의 시편주석(Psalmenauslegung)을 독일어로 번역하면서 많은 곳에서, 특히 시 편111:4절20)에 ‘순수한 기억으로서의 성만찬’
(Gedächtnismahl) 이해를 첨가한 일이었다. 부처는 더 나아가 루터의 금식묵상집(Fastenpostille)을 라틴 어로 번역하면서 서문에 쯔빙글리와 외코람파트의 거룩한 열정에 호감을 표시하면서, 루터의 권위를 약화시키기 위해 그리스도를 ‘영적인 반석 (Geistlicher Felsen)’으로 이해하는 고전10:2-4에21) 대한 설교를 첨가하였 다. 당연히 비텐베르크의 개혁자들은 자신들의 책에 적대자의 견해를 첨가 한 것에 대해 분노하였다. 이 때문에 루터 진영과 부처는 오랫동안 불신 관계에 처하게 되었다.
부처는 양 진영의 성만찬 논쟁이 단순한 외적인 것에 관련된 것이기 때 문에 종교개혁 진영에서 어떤 원칙상의 차이를 의미한다고 보지 않았다. 이에 반해 루터는 이것은 중요한 문제이고 양 진영 중 누군가가 그리스도 를 신성모독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루터에게 이 간격은 극복될 수 없는 것이었다. 루터는 이러한 진리의 문제에 있어서는 어떤 관용이나 타협도 용납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하였다.
성만찬을 논하는 루터의 독립적인 저작이 나오지 않자, 그의 추종자들은 1526년 10월 “열광주의자에 반대하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성례전에 관 한 설교(Sermon von dem Sakrament des Leibes und Blutes Christi wider die Schwarmgeister)”22)를 출판하였다. 여기에서 루터는 성만찬에서 의 그리스도의 실제적임 임재(Realpräsenz)를 동정녀 마리아의 수태나 그 리스도의 인성이 승천하여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시며 하나님의 편재 (遍在)에 참여하는 것과 같은 기적이라고 이해하였다.
종교개혁 내부의 성만찬 논쟁은 이렇게 전개되어 갔다. 그들은 자신들의 견해를 더욱더 확고히 세워갈 필요를 느끼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종교개 혁 세력 내부에서도 자신들의 입장표명을 요구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쯔빙글리의 성찬론에 대한 초기 사상도 이러한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 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필자는 그 당시의 종교개혁자들이 성찬에 대해 어 떻게 이해하고 있었는가를 개괄하도록 하겠다. 이어서 특별히 쯔빙글리의 성만찬에 관한 후기 입장을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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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에르푸르트와 퀼른에서 수학하고, 스콜라주의 신봉자로 1505년 비텐베르크대학 교수가 되었다. 그러나 15년 로마를 방문하고 이듬해 돌아온 후부터 아우구스 티누스의 교리, 특히 인간 의지의 무력성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18년 엑크(J. Eck)를 논박하면서 프로테스탄트의 기본 교리를 정립했으며 이듬해 라이프찌히 에서 엑크와 공개토론을 벌였다. 이후 종교개혁 좌파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 하여 21년 성탄절 첫 개혁교회 성찬식을 거행했다. 22년 루터가 비텐베르크로 돌아온 후 칼슈타트의 과격한 개혁운동을 비판하기 시작했고 24년 루터로부터 ‘새 유다’라는 칭호를 받고, 교수직을 박탈당하고 오를라뮌데로 추방당했다. 한영재 편, 「기독교 사전」 (서울: 기독교문화사, 1991), p.938.
11) Martin Brecht, Martin Luther Bd. 2, (Stuttgart, 1994), 163; Ders., Luther und Karlstadt: Der Beginn des Abendmahlsstreits 1524 und seine Bedeutung für Luthers Theologie, ZSRG 100, kan Abt. 70 (1984), 197-198; Firedel Kriechbaum, Gundzüge der Theologie Karlstadts, (Hamburg-Bergstedt), 1967, 102-104. “재인용”
12) 이성덕, “루터와 쯔빙글리의 성만찬 논쟁이 지니는 교회 정치적 의미”, p.5.
13) 벵크 헤그룬트, 박희석 역. 「신학사」 (서울: 성광문화사, 1997), p.337.
14) 쯔빙글리가 처음으로 전통적인 로마-카톨릭의 희생제의(Meßopfer)를 비판하는 태도를 취한 것은 콘스탄츠의 감독의 편지에 답하는 글인 “Apologeticus Archeteles”에서 이며, 1523년 1월 29일 취리히 시의회에서 있었던 논쟁을 위해 작성하였던 67개 조항 중 18번 째 조항에서 보다 분명하게 표명하였다
15) 이성덕, “루터와 쯔빙글리의 성만찬 논쟁이 지니는 교회 정치적 의미”, p.5.16) Ibid., p.7.
17) “Syngramma clarissimorum qui Halae Suevorum convenerunt virorum
super verbis Coenae Dominicae et pium et eruditum ad Johannem Oecolampadion”, in: Johannes Brenz: Frühschriften, Teil 1, hersg. von
Martin Brecht, Gerhard Schäfer und Freda Wolf, (Tübingen, 1970), 222-278.“재인용”
18) “Eine klare underrichtung vom nachtmal Christi durch Huldrychen Zuingli
tütsch(als vormal nie) umb der einvaltigen willen, damit sy mit niemas spytzfüdigheit hindergangen mögind werden, beschriben”, in: Zwinglis Werke, Bd. 4, CR 91, 789-862. “재인용”
19) 이성덕, “루터와 쯔빙글리의 성만찬 논쟁이 지니는 교회 정치적 의미”, p.8.
20) “그 기이한 일을 사람으로 기억케 하셨으니 여호와는 은혜로우시고 자비하시도 다”
21) “모세에게속하여다구름과바다에서세례를받고다같은신령한식물을먹 으며 다 같은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22) WA, 19, 471-523. “재인용”
2. 종교 개혁자들의 성찬론 개괄
가. 루터의 공재설(consubstantiation)
개혁자들은 중세 카톨릭 교회의 미사를 철폐하고 성서적 유카리스트의 개념을 회복시켰는데 무엇보다 미사에 있는 잘못된 희생(犧牲)의 개념을 반대한다. 즉, 성찬의 떡과 포도주의 요소들이 사제의 봉헌 기도를 통하여 그 본질이 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한다는 로마 카톨릭의 성찬의 교리는 갈보리 산상의 그리스도의 육체의 수난의 실제적인 재연 (再演)으로서 사제는 떡과 포도주가 변하여 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마 치 그리스도가 십자가상에서 희생의 제물로 자신을 바친 것과 꼭 같은 모 양과 효과를 가진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바친다는 것이다.23)
루터는 교회의 바벨론 포로 라는 논문에서 로마 카톨릭 교회의 성찬론은 세 가지의 포로, 곧 잘못이 있는데 첫째는 평신도에게 잔을 주지 않는것이고 둘째는 화체설이고 셋째는 그릇된 희생의 개념이라고 주장한다.24)25)
루터는 로마 카톨릭의 화체설에 대하여 공재설, consubstantiation을 공 식화한다. 즉, “그리스도 자신에 의해 제정된 것과 같이 우리에게 주어진 떡과 포도주 안에; in, 함께; mit, 밑에; unter 그리스도의 참 몸과 피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주의 만찬에 참여한 사람은 떡과 포도 주 안에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죄의 용서에 대한 약속으로 주어진다. 그 떡은 몸 떡; body-bread, 살 떡, flesh-bread으로 그것을 받는 자는 그리 스도께서 죄와 죽음에 대하여 약속한 것을 받게 된다. 곧, 그리스도의 몸 과 피로서 죄의 용서의 확실성이다.26) 이 떡과 포도주에 임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영적인 몸이 아니라 “자연적인 몸”이라고 주장한다. 우리 는 떡과 포도주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자연적인 몸”을 받아먹고 마 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인 몸, 곧 그리스도께서 머리 되시고 몸이 되시는 교회에 참여하게 된다.
성찬의 요소와 그리스도의 몸이 결합되어 있음을 강조하는 루터의 이러 한 주장은 특히 “떡과 포도주는 단순한 물질에 지나지 않는다.”는 쯔빙글 리로부터 강한 반발을 받는데 그는 이에 대하여 “떡과 포도주 안에 어떻 게 그리스도가 있을 수 있을까를 묻지 말고 단순히 믿으면 된다.... 그것이 어떻게 일어났는가, 우리는 모른다. 자연과 이성을 넘어 그리스도는 편재 하여 계신다.”라고 말한다. 주의 만찬에 사용되는 떡과 포도주가 물질적 요소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가 실제로, 그의 존재방법으로 현실적으로 존 재한다는 뜻이다.27)
두 본성의 교류, Communicatio idiomatum을 주장하는 루터는 예수 그 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은 불가분리의 혼동 불가한 것으로 보고 그의 신성 만이 편재(ubiquity)하시고 그의 인성은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계시다고 하는 쯔빙글리의 주장을 반대한다. 즉, “신성과 인성은 하나의 인격을 구 축하기 때문에 이 인격의 어느 한 본성에 해당되는 것은 전 인격에 해당 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몸 인성은 도처에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몸이 그의 지상 생애에처럼 공간적 제약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 나의 인격을 이루고 있고 또 “본성의 교류”로서 모든 장소에서 모든 것 위에 있다는 것이다.28)
루터는 떡과 포도주 속에 그리스도의 몸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떡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화체될 필요가 없 이 이 떡과 포도주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 모두 임재하므로 “이 떡은 주의 몸이고 이포도주는 주의 피이다.”29) 루터는 성찬의 세 가지 요소로서 첫째는 표지, sign이요 둘째는 이 표지의 의미요 셋째는 첫째 것 과 둘째 것을 위해서 요구되는 신앙이다. 즉 표지로서의 성례인 떡과 즙 밑에 그리스도의 참된 몸과 피가 있다는 것이다.30) 루터에게서 성찬의 핵 심은 “영적 사귐”의 “표지”요 이 영적 사귐은 참여하는 신앙에 의해 일어 난다. 로마 카톨릭은 사제에 의하여 집례되는 성찬을 통하여 은혜가 저절로 온다고 보는데, opus operatum 루터는 성찬을 받는 사람의 신앙, opus operantis를 중요시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루터가 로마 카톨릭 교회 의 성찬에 대하여 개혁한 것은 말씀 설교와 성찬의 관계이다. 즉, “복음 설교 없이는 성찬은 그 생명을 상실한다.” 루터의 종교 개혁은 복음의 재 발견이다. 말씀만이 은혜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성례전(세례와 성찬)이 말 씀과 긴밀히 관계되는 한, 은혜의 수단이 된다. 로마 카톨릭 교회의 미사 가 성례전 중심인 것에 비하여 루터에게서 예전의 중심은 말씀의 설교이 다.
루터는 카톨릭 교회에서 주장하는 성례전이란 집행하는 사람의 질적인 상태나 받는 사람의 신앙에 관계없이 떡과 포도주를 받는 것만으로 객관 적인 능력과 은혜가 역사한다는 기계주의적 성찬론 이른 바, ex opere oprato를 거부, 받는 사람의 신앙적 참여를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보았다. 여기서 루터는 성찬 자체가 아니라 신앙이 중요하다는 것과 신앙으로 파 악되는 성찬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와 믿는 자들의 사귐에 있고 믿는 자 들 상호간의 성도의 교제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곧 성찬으로 그리스도의 영적인 몸에로 합체되며 그리스도의 한 지체가 되는 것이다.31)
1523년의 성찬의 예배 에서 기독론적 근거를 강화시키는 것은 루터에 게서 성찬은 사제의 반복적인 제사 행위, sanctificium이 아니라 단유일회 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가 말씀 설교를 통하여 우리에게 유익, beneficium을 준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에게서 말씀 설교와 성례전(세례 와 성찬)이 교회의 필수불가결한 표지(標紙), notae, marks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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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개혁자들은 이러한 희생의 개념을 철저하게 반대하였다. 루터는 그리스도의 자 발적인 골고다 희생의 속량적인 유일회성을 들어 그 어떠한 반복이나 보조 행 위도 반대하였고 쯔빙글리는 성찬의 떡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희생의 단순한 기념의 표시로서 그리스도의 구속적 희생을 회상케 할 뿐이라고 말한다. 칼빈 은 카톨릭이 미사에서 그리스도의 희생을 반복하는 것은 잘못된 사탄의 가르 침 으로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은 영원한 것이어서 모든 시대를 통하여 유일회적으로 완전한 속죄의 능력으로 어떠한 복과 보충도 불필요하다고 주장 한다. 이장식, 「기독교 사상사 II」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86), p.262.
24) 이은선, 「주제별 교회사 하(下)」, pp.32-33.
25) 이장식, 「기독교 사상사 II」, p.262.
26) 이종성, 「교회론II」 (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89), p.441.
27) 루터는 그리스도의 편재성에 대하여 중세의 스콜라주의적 논리로 증명하는데 그에 의하면 세 가지의 방법으로 존재한다.
1 장소적, localiter 국소적, circumscriptive 방법이다. 포도주가 잔 안에 있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육체를 가지고 지상에 사셨음을 의미한다.
2 확정적, definitive 방법인데 한 음성이 여러 곳에 들릴 수 있게 존재한다.
3 충만적, repletive 방법으로 동시에 모든 장소에 모든 것에 충만하다. 그러나 그 장소나 공간에 의해 측량되거나 포착되 지 않는다. 이종성, 「교회론II」, p.439.
28) 벵크 헤그룬트, 박희석 역. 「신학사」 (서울: 성광문화사, 1997), p.340.
29) 루터는 “This is my body, this is my blood” 에서 is가 문자 그대로 등식을 나타내는 것이지, 쯔빙글리의 상징론처럼 signifies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예 수 그리스도와 떡과 포도주는 혼연일체가 된다. 봉헌된 성찬에서 “하나님이 인간이시고, is 인간이 하나님이시다, is.”
30) 그에 의하면 성찬이란 “복음 말씀에 덧붙여진 것으로 우리의 신앙을 더욱 확실케 하고 강화시키는 표지”이다. 루터는 구약으로부터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덧붙여진 표지들로서 창 9:12-17의 무지개, 창 17:11의 할례, 삿 6: 36-40의 양 털과 이슬을 예로 들고 있다
31) 이형기, 「종교 개혁 신학사상」 (서울: 장로회신학대학출판부, 1984),pp.112-113.
나. 쯔빙글리의 기념설
쯔빙글리는 1524년의 참 종교와 거짓 종교에 대한 논문 과 1526년의 주의 성찬 에서 그의 성찬 신학을 밝히고 있다.32) 쯔빙글리는 주의 성찬 은 그리스도와 신자들간의 공동식사, Gemeinschatsmahl로 생각하였다.33)
그에게서 성례는 한 거룩한 내용을 나타내는 표지, the sign of a holy thing 또 한 계약의 표지요 보증, a covenantal sign or pledge이다. 즉, 성 찬의 떡과 포도주는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에서 일어난 예수 그리스도의 단 유일회적 희생제사를 가리킨다. 그는 먼저 떡과 포도주가 예수 그리스 도의 살과 피로 변화한다는 카톨릭의 입장, 또 이 떡과 포도주가 봉헌 후 에도 그대로 있으나 편재하시던 그리스도, 특히 그의 인성이 봉헌된 떡과 포도주에 공재한다는 루터의 입장,34)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이 이 땅에 도 있고 저 하늘에도 있으면서 봉헌된 떡과 포도주가 이 부활체가 된다고 하는 인문주의자들의 주장, 그리고 성찬을 전혀 무시하는 재세례파 사람 들의 견해를 논박한다.35)
그의 신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찬 제정의 말씀, 곧 “이것은 나의 몸 이니라, 이것은 나의 피, 언약의 피니라...”(마 26:26f, 요 6:)의 해석에 있다. 즉, “This is my body”에서 is 가 등식을 나타내는 연결어가 아니라 무엇을 가리킨다; signifies , 의미한다; means, 상징한다; symbolizes라고 주장한다. 그 근거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요 15) “세상 죄 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로다.”(요 1),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밭은 세상 이니...”(눅 8)에서 is는 모두 signifies, menas, symbolizes의 의미라는 것 이다.
is를 signifies, menas, symbolizes로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보다 그의 기 독론이다. 그리스도의 인성은 부활, 승천, 승귀하사 하나님 아버지 우편, in uno loco에 계시고 어디에나 편재하시는 그리스도는 신성이라는 것이 다. 이것이 그가 기념설을 주장하면서 성찬의 실재론, the real presence of Jesus Christ를 거부하는 기독론적 근거이다.
“나를 기념하여 이를 행하라.”(눅22:19)는 말씀은 그리스도의 몸의 상징 인 떡을 받을 때 과거, 갈보리 언덕에서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내어 주신 사실을 기억, anmnesis, 기념하라는 의미이다.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당하 신 죽음과 수난은 우리의 구원의 수단이다.” 성찬의 의미를 구약의 유월 절의 기독론적 성취에서 찾는 쯔빙글리에게서 성찬이란 십자가를 통한 예 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에 대한 기념인데 믿는 사람들은 떡과 포도주라 고 하는 표지(標紙)를 통하여 이미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마치 눈앞 에 계신 것으로 보고 맛본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성찬을 받는 사람 의 신앙을 강조한다.
우리가 봉헌된 떡과 포도주를 받을 때 자연적이고 문자적으로 먹는 것 이 아니라 신앙 안에서 영적으로 먹게 된다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그리 스도의 몸을 먹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와 선하심에 대한 전적인 신뢰 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내어 주셨고 그의 아들을 통하여 자 신의 의를 우리에게 주사 사죄를 베푸셨고 영생의 기쁨을 주셨다고 하는 사실을 확신하는 신앙이다.
이러한 신앙- 성찬의 능력은 독자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신앙과 함께, 특히 성경 말씀과 복음 설교의 능력과 함께 일어난다. 그리하여 그 의 신학은 성례전 중심의 신학이 아니라 성령의 조명에 의하여 기록된 말 씀의 능력이 믿는 자에게 신앙을 일으키는 말씀의 신학이었다.
이처럼 쯔빙글리의 성찬론이 로마 카톨릭 교회의 화체설과 루터의 공재 설을 거부하면서, 성찬식에 사용된 떡과 포도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의 상징일 뿐이고 거기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으며 성찬식을 행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는 의식일 뿐이고 따라서 성찬에서 우리가 주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이나 주님께서 임재하시는 것은 오직 “영적으로”라고 주장했다는 것이 아마도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쯔빙글리 의 성찬론에 대한 이해의 전부일 것이다. 물론 그와 같은 요약은 조금도 틀림이 없는 요약이다. 그러나 쯔빙글리의 성찬론적 사고의 가치를 정당 히 평가하기 위해서는 그의 그러한 주장의 동기와 논거들에 대한 보다 깊 은 고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성찬의 이해에 관한 그의 확고한 성서해석적 입장과 탁월한 통찰력과 명석한 논리, 그리고 진지한 자세는 간과된 채, 그가 성찬의 신비적이고 깊은 의미를 깨닫지 목하고 피상적으 로 성찬을 이해함으로써 성찬의 의미를 빈약하게 만들며 그 신비성을 퇴 색시키는 경홀한 성찬론을 주장했다는 비판을 종종 받아왔기 때문이다.36)
이제 우리는 역사적으로 쯔빙글의 성찬론에 가해졌단 일반적인 비판의 공정성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그의 성찬론은 성찬에 서의 그리스도의 실제적 임재를 부인했으며, 은혜의 역사를 부인했고, 신 비를 제거했다는 비판을 종종 받는다. 쯔빙글리는 과연 그러했는가? 쯔빙 글리는 성찬 속에서의 그리스도의 임재를 무조건적으로 거부하지 않는다. 단지 몸으로써 실제적 임재를 거부할 뿐이며, 영적 임재를 인정하려는 것 이다. 그에게 있어서 이 임재는 신앙의 동의어라고 할 수 있다. 즉 그는 그리스도의 영적 임재를 인정하는 사실과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죽음을 전심으로 믿는 사실 사이에는 등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음과 같은 그의 생각도 그것을 뒷받침해 준다. 즉 성찬 곧 거룩한 식 사에 떡과 포도주가 명해졌을 때, 이미 그 떡과 포도주는 보통 떡과 포도 주는 아닌 것이다. 비록 물질적 관점에서는 떡은 여전히 떡이고 포도주는 여전히 포도주이지만 “성찬에서의 사용과 그 존엄성은 그 떡에다 다른 아 무런 떡과는 같지 않은 어떤 고상함을 부여한다.” 이처럼 떡과 포도주는 자기 아들을 통해 자신을 인간과 화해시키는 이의 우애의 상징이니만큼 그것들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에 따라 생각될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의미 하는 위대한 일들을 따라 생각되어져야 한다. 그러한 이유에서 더 이상 보통 떡이 아니라 거룩한 떡이 있는 것이다. 그 떡은 그때부터 떡이라 불 리우지 않고 “그리스도의 몸”아라고 불리운다. 이러한 쯔빙글리의 생각은 그가 결코 성찬과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임재 사이를 단절시킨 것이 아 니라 “그리스도의 몸으로써의 실제적 임재”로서의 성찬의 의미를 오히려 심화시킨 것이며 성찬의 신비성을 약화시킨 것이 결코 아님을 보여주는 면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37)
쯔빙글리는 또한 성찬에서의 은혜의 역사를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떡 과 포도주라는 물질들이 성찬에 참여하는 사람의 감각을 붙잡아 실제적인 것(그리스도의 살과 피)에로 행하게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구속행위에 대 한 신앙의 성찬을 돕는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성찬 그 자체가 믿음을 강 화시켜 주는 구원의 극장(theatrum salutis)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 성찬이 믿음이 약한 사람들에게 특히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들은 성찬 없이는 그 리스도의 살과 피를 인식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믿음이 강한 사람들 보 다 더 자주 성찬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성찬을 하나의 신앙 고백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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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이들은 모두 루터를 상대로 해서 쓴 책들이다. 벵크 헤그룬트, 박희석 역. 「신 학사」, p.361.
33) 이종성, 「교회론II」 (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89), p.441.
34) 이형기, 「종교 개혁 신학사상」 (서울: 장로회신학대학출판부, 1984), p.97. 그 는 루터의 공재설이 로마 카톨릭의 화체설이나 다름없는 것으로 여긴다. 그리 하여 루터와 그의 지지자들을 “육식자, flesh-eaters blood-drinkers”로 비꼰다.이종성, 「교회론II」p.442.
35) 그의 세계관, 곧 하늘적인 것과 지상적인 것의 결합을 용납하지 못하는 생각이 그로 하여금 루터의 real presence를 강하게 반대한 것이다. 쾰러는 쯔빙글리의 성찬론이 형성된 배경에 대하여 1 “이것이 나의 몸이다.(is)” 를 의미한다, signifies로 해석하자는 Honius의 편지, 2 칼슈타트 등의 재세례파의 생각, 3 루터의 계속되는 real presence 주장에 대한 반감, 4 에라스무스와의 결별로 로마 카톨릭 교회와 더욱 멀어짐을 들고 있다. W. Koehler, Zwingli und Luther, 이종성, op. cit., p.441. “재인용”]
36) 이수영, “쯔빙글리의 성찬론”, 교육교회회지(1992), pp.58-59
37) Ibid., p.60.
다. 쯔빙글리의 성만찬에 관한 후기 입장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쯔빙글리의 성만찬 신학은 루터란과 개혁교회 를 갈라 놓은 역사적인 분기점으로 작용했다. 흔히 쯔빙글리의 성만찬 이해에는 그리스도가 임재하지 않으며, 반면 루터의 이해에는 그리스도가 임재한다는 식으로 말해져 왔다. 그러나 적어도 쯔빙글리의 성만찬 신학 을 언급할 때, 우리는 그의 초기 입장과 후기의 입장을 나누어 볼 필요가 있다.38)
“마르부르크 회담”에서 루터는 완고하게 쯔빙글리의 입장을 칼슈타트의 노선에 동조하는 것으로 의심했고, 성례전의 능력을 부인해 버리는 영적 주의자들과 같은 것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쯔빙글리는 루터가 여전히 카 톨릭의 화체설의 잔재에 사로 잡혀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마르크부르크 회담 이후 쯔빙글리의 성만찬 이해에 변화가 있었 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쯔빙글리는 성례전에 임하는 그리스도의 실제 적이며 성례전적 차원을 긍정하기 시작했다. 1530년과 1531년에 걸쳐 아 우구스부르크 화의(Diet of Augusburg)를 위해 작성된 “신앙의 해명(An Account of the Faith)”에서 그리고 “독일제후들에게 보내는 편지(The Letter the Princes of Germany)”에서 그는 성찬에 임재하는 그리스도의 실제적 측면을 받아들였다. “신앙의 해명”의 부록에서 그는 다음처럼 말한다.
“우리는 진실로 그리스도가 주의 만찬에 임재하는 것을 믿는다. 그리 스도가 임재하지 않으면 이것은 주의 만찬이 될 수 없다.”39)
그러나 이러한 입장을 지지하기 위해 쯔빙글리는 “두 세 사람이 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같이 하겠다.”는 본문에서 끄집어낸다. 그리스도의 참 된 몸은 신앙의 명상(Contemplation of faith)에서 일어난다. 그는 결코 그 리스도의 몸이 “참되게 성례전적으로 그리고 신비하게(truly, sacramentally, mysteriously)” 주의 만찬에 임재하는 것을 부인하지 않았 다.40) 그리스도의 몸이 성례전적으로 임재하는 한, 그것은 성례전적으로 먹는 것이다. 그러나 신앙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스도는 떡과 포도주의 상징을 통해 우리는 신앙을 증진시키며, 우리의 신앙은 성찬자체의 요소 보다는 성령의 선물로 온다. 떡과 포도주는 단순한 표식이 아니라, 그것이 가르치는 신적인 실제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떡은 거룩한 것이며 신성한 것이다.
보스하르트(Stefan Niklaus bosshard)는 노년의 쯔빙글리에게서 실제적 임재에 관한 변화된 입장을 추적했다. 성만찬 시행에서 빵과 포도주는 내 적인간(Inner person)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이러한 요소들은 성만찬에 참여한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해 준다. 떡과 포도주는 신앙의 명상 (contemplation fidei)을 강화한다.41) 초기 쯔빙글리의 상징적 이해에 미친 에라스무스와 호엔의 영향은 은총의 수단으로서 성찬보다는 인간의 주관적 인 신앙에 집착하게 했다. 그러나 후기에 나타나는 강조점의 변화는 그리 스도의 실제적 임재를 향해 개방한다. 이것은 훗날 칼빈을 통해 성령론적 으로 세련되게 정교화된다.42)
이후 1531년 12월 취리히 시의회는 헨리 불링거(Henry Bullinger)를 쯔 빙글리의 후계자로 선출했다. 그는 쯔빙글리의 수제자로서, 탁월한 노력과 헌신을 통해 취리히 시(市)를 여전히 개혁의 중심지로 삼았다.43) 불링거의 목회기간(1531-1575)은 칼빈의 제네바 활동의 기간(1534-1564)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특히 1549년 불링거와 칼빈 사이에 이루어진 성만찬에 대한 취 리히 합의서(Consensus Tigurinus)는 제네바 교회와 취리히 교회의 화해 를 가져왔고, 이것을 근거로 칼빈은 스위스 개혁파 교회 내에서 자신의 위 치를 견고히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은 루터란과 칼빈주의를 갈라놓는 계기가 되었다.
특별히 필자는 다음 장에서 취리히 합의서를 연구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합의서를 연구할 가치가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우리는 이 합 의서에 관한 선(先) 연구의 부제가 있었음을 잘 안다. 그러나 쯔빙글리의 후계자로서 스승의 신학적 내용을 잘 받았던 불링거와 칼빈 사이에 이루어 진 것이기에 필자가 거는 기대는 크다 하겠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우리는 이 합의문의 진정한 의미와 몇몇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물론 그것이 정당 한 결론인지는 더 깊은 연구가 계속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성만찬에 관 해 쯔빙글리의 사상을 잘 알았던 불링거로 인해 합의된 내용이기에 우리는 여기서 쯔빙글리의 후기 입장을 보다 선명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번역본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원서를 번역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남아 있다. 필자는 조지 티모디(Timothy George) 교수의 글인 John Calvin and the agreement of Zurich(1549) 와 헨리 비벌지(Henry Beveridge) 교수의 글인 Selected Works of John Calvin Tracts and Letters-Volume 2. 을 중심으로 26개 항목의 합의서를 연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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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정승훈, 「종교개혁과 21세기」 (서울: 기독교서회, 2001), p.135.
39) Z VI ii.806. 6-17; VI iii. 263.3-265.19. cf. W.P.Stephens, Zwingli : An Introduction to his Thouht, 106. “재인용”
40) 정승훈, 「종교개혁과 21세기」, p.140.
41) Stefan Niklaus Bosshard, Zwingli - Erasmus - Cajetan : Die Eucharist als Zeichen der Einheit(Wiesbaden, 1978), p.122. “재인용”
42) 정승훈, 「종교개혁과 21세기」, p.141.
43) 이은선, 「주제별 교회사 하(下)」, p.62.
B. 취리히 합의서 연구
1549년 5월 말, 칼빈은 그의 사랑하는 아내 이델레트 드 뷰레(Idelette de bure)를 잃은 슬픔에 잠겨있었다.44) 그 때 그는 그의 친구 화렐(Farel)에 의해서 취리히로 여행을 하도록 권고를 받았는데, 그 여행의 목적은 오랫 동안 추구되어온 스위스의 지도적인 두 교회 사이의 일치를 확실히 하고자 하는 희망에서였다. 이 회동으로부터 발생한 문서는 계속 이어진 협상에 의해서 간략하게 수정되어 2년 후에(1551) 출판되었는데, 그 제목은 “성례 에 대한 티구리내 사역자들의 교회와 칼빈의 교회 사이의 상호 합의45)”이 다. 19세기 이후로 The Consensus Tigurinus로 알려진, 이 문서의 중요성 은 16세기의 역사가들에 의해 널리 인정되어졌다. 티모디(George Timothy) 교수도 이 합의서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교회에 의해 분열로 표시되고 연합에 대한 계획들이 퇴보하던 시대에, 티구리누스 합의는 개혁주의의 주목할만한 교회일치의 성취중 하나로써 두드러진다.”46)
바젤의 역사가인 스태헨린(E. staehelin)은 그 합의를 다음과 같이 말하 고 있다.
“그것은 쯔빙글리안과 칼빈주의적 개혁주의가 하나의 개혁교회로써 영 원히 결합된 장엄한 행위이다.”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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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1540년 8월에, 그는 재세례파에서 전향한 과부인 이델레트 드 뷰레(Idelette de bure)와 결혼했다. 1542년에 태어난 그의 유일한 자녀는 몇일만에 죽었고, 칼빈 의 부인도 1549년에 죽었다. 그는 언제나 그의 아내와 그들의 행복에 대하여 자랑했다. 이은선, 「주제별 교회사 하(下)」, p.68.
45) Consesio Mutua in Re Sacramentaria Ministorum Tigurinae Ecclesia et D. Ioaneeis Calvini Ministri Genevensis Ecclesiae.
46) George Timothy, “John Calvin and the agreement of Zurich(1549)”, Calvin studies IV (1988), p.25.
47) Timothy, “John Calvin and the agreement of Zurich”, p.26.
1. 합의에 이르는 단계
칼빈의 주의 만찬에 대한 복음주의적인 참된 이해에 대한 관심은, 벽보 사건에서 그의 의도가 지시하고 있는 바와 같이, 초기 종교개혁 운동에 대 한 그의 애착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536년 기독교 강요 초판에 의해서 칼 빈은 주의 만찬에 대한 독립적인 위치에 이르렀는데, 그 견해는 빵과 포도 주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실재의 형식보다는 성만찬사건에서 성령의 양육을 강조하는 것이었다.48) 성만찬에서 중도적 위치를 취하고자 노력하는 칼빈 의 노력은 다음 해인 1537년 베른 총회에서 더욱 확실해진다. 칼빈의 스트 라스부르그에서의 여행(1538-1541)은 그를 부처와 그의 동료들에 의해서 촉진된 연합적 제안과 대화에 있어서 그 중심에 위치하게 했다.
성찬에 대한 취리히와 다른 스위스 교회들 사이의 동의에 도달하고자하 는 칼빈의 정열적인 노력이 그에게는 그것의 마지막으로써 이해되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넓은 범교회의 일치를 위한 필수적인 첫 단계로써 이해 되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교회 연합에 새로운 장애 를 제공한 것은 불링거나 취리히 교회가 아니라 루터 자신으로써, 1544년 9월에 출판된 그의 간략한 편지인 “거룩한 성만찬에 대한 고백49)”으로 그 역할을 했다.
이것은 영적임재주의자인 카스파르(Caspar)에 반대하여 유도된 것일지라 도, 루터를 그의 논쟁에서 최고 혹은 최악으로 보여주었다. 15년 동안 마부 르크(Marburg)에서 타오른 적대감의 불씨는 조용하게 연기가 났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거대한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나는 칼슈타트(Karlstadt)와 쯔빙글리(Zwingli), 왜클람파디우스 (Oecolampadius), 스테켄펠트(Stenckfeld)와 취리히(Zürich)와 그 밖의 곳에 있는 그들의 제자들과 같은 성례의 적들을 정죄하고 대적한 다.”
루터가 말하기를 “그러한 몽상가들은 같은 케익의 전체로써 간주되어져 야 한다.” 더욱이, 쯔빙글리의 추종자들이 그의 불명예스러운 전장터에서의 죽음 이후에도 계속해서 그에게 경의를 표했기 때문에, “나는 그들의 진보 에 대한 나의 모든 희망을 버렸다... 그리고 더 이상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 지 않는다.” 칼빈은 물론 이러한 조악한 표현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가능 한 한 멜랑히톤에게 그의 위대한 동료를 자제하도로 권면했다. 이러한 상 황에서, 칼빈 자신이 루터에게 그를 자신의 믿음의 아버지로 세 번 표현한 편지를 썼다. 그러나 멜랑히톤은 칼빈의 편지를 루터로부터 보류해두었는 데, 그 이유는 스위스 몽상가들로부터 그러한 평화적인 접근이 더한 폭발 로 인도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50)
취리히는 1545년에 나타난 루터의 공격에 대하여 참된 고백(True Confession)으로써 응답했다. 불링거에 의해 초안된 이 논문은 신실하고 찬양의 가치가 있는 쯔빙글리와 왜클람파디우스에 대하여 우정어린 방어를 제공했고, 그리고 루터의 책은 “사단으로 가득찬, 비기독교적 표현들, 비방 하는 말들, 싸우기를 좋아하는, 순수하지 못한 언변, 분로, 속임수, 분노와 거품을 일으키는 것”으로 규정했다. 더욱 중요하게 우리의 목적에 대하여, 그것은 주의 만찬의 중요한 특성을 우리의 죄를 위하여 희생당하신 그리스 도의 살과 피에 대한 기억으로써 묘사하고 있다. 기억의 이러한 행동을 위 하여 믿음의 필연성이 강조되었다. 그리고 쯔빙글리안의 표제어, ‘믿는 것 이 먹는 것이다(credere est edere)’가 반복되었다.51)
칼빈은 이러한 일에 대해서 멜랑히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배운자들보 다 더 완고한”것으로 묘사함으로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동시에 그는 만찬
에 대한 불링거와의 상호적 이해를 추구하기를 갈망했다. 칼빈은 1538년 이전에 바젤을 여행하는 동안 처음 불링거를 만났고, 그에게 권징과 교리 에 대한 차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대중적인 종교회의를 제안했다. 칼빈은 이제 얼굴을 맞대고 만나는 이러한 제안을 새롭게 하고 있다. 1544년 그는 불링거에게 편지를 썼다.
“만일 우리가 그 문제에 대하여 반나절 동안만이라도 토론할 수 있다 면, 내가 희망하기로는, 우리는 그 문제 자체뿐만 아니라 그 문제의 형식 에 대해서도 쉽게 동의할 것이다. 이러는 동안 이 작은 차이는 우리가 같 은 그리스도를 갖고, 그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이다.”52)
불링거에의해 화답되었을 때, 이러한 태도는 티구리누스 합의를 위한 길 을 준비하는 엄격하고도 실질적인 협상의 과정동안 확대되었다.
티모디(George Timothy) 교수는 그 문서 자체를 개관하기 전에, 16세 기의 대부분의 교리적 형식과 고백들과 같이 그 합의도 부분적으로 대립하 고 있는 교회적이고 정치적인 고려에 의해서 형성되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53)
그는 자세한 설명 없이 칼빈의 취리히와 일치에 대한 갈망을 촉발했던 세 개의 그러한 요소들을 언급할 수 있다고 하였다. 첫 번째는 제네바와 베른의 민감하고 깨지기 쉬운 관계였다. 스위스 중심에서 베른의 군사적 주도권, 두 지역 사이의 사법적 논쟁들, 그리고 베른이 제네바에 있는 칼빈 의 반대자들에게 제공했던 정치적 기초들은 모두 이러한 두 중요한 이웃들 사이의 긴장을 제공했다. 베른 사람들을 달래고자하는 노력에서, 칼빈은 1549년 3월 베른에서의 종교회의를 위하여 성례에 대한 20항의 논문을 준 비했다. 편지의 수신자인 베른의 종교개혁자 홀러(Haller)가 더 많은 적대감을 야기할 것을 두려워하여 그것을 종교회의에 제출하지 못하고 있는 동 안에, 이 조항들은 취리히 토론에서 표면화 되었고, 대부분에 대해서 그 합 의의 본문에 합쳐졌다.
스위스 연방의 경계 너머로 두개의 다른 국제 정치적 중요성의 상황들이 취리히와의 일치에 대한 칼빈의 소망 안에 계산되어졌다. 첫 번째로, 그는 프랑스와의 동맹을 변호했는데, 프랑스 왕 앙리 2세는 스위스 주들로부터 군사와 정치적 지원을 찾고 있었다. 이 동맹을 통해 칼빈은 프랑스 왕과 함께 어떤 수단을 얻어서 자신의 조국에서 개신교 신자들에 대한 핍박을 완화하고자 희망했다. 쯔빙글리로 되돌아가는 정책을 유지하고 있는 불링 거는 프랑스와 어떠한 동맹도 반대했다. 또한 칼빈과 불링거 모두에게 있 어서 근심스러운 관심거리는 1545년의 트렌트공의회의 소집에 의해서 표시 된 로마 카톨릭 세력의 부활과 1548년의 제국 안에 있는 프로테스탄트에 대한 아우구스부르그(Augsburg) 잠정협의에 대한 부담이었다. 불링거를 합의하도록 권면하면서, 칼빈은 1547년에 편지를 썼다.
“만일 황제가 스트라스부르그(Straßburg)에 입성한다면, 그는 당신이 인식하고 있는 바와 같이 진을 치고 거기서부터 우리를 침략할 것입니 다... 침묵을 지킴으로 당신의 목이 잘리도록 하시겠습니까?”54)
1548년 10월에 실제로 제국의 군대가 콘스탄스를 점령했을 때, 불링거 는 그 위협이 얼마나 급박한지 그리고 스위스 프로테스탄트의 연합된 반응 이 얼마나 절박한지를 깨달았다. 그러므로 티구리누스 합의는 프랑스와 스 위스의 독일어 사용 개혁 교회를 함께하도록 하는 교회일치적인 성취만큼 이나 국제 정치적 위기에 대한 시기적절한 반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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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Timothy, “John Calvin and the agreement of Zurich”, p.26.
49) Confession Concerning the Holy Sacrament.
50) Timothy, “John Calvin and the agreement of Zurich”, p.28.
51) Timothy, “John Calvin and the agreement of Zurich”, pp.27-29.
52) Timothy, “John Calvin and the agreement of Zurich”, p.28.
53) Timothy, “John Calvin and the agreement of Zurich”, p.29.
54) Timothy, “John Calvin and the agreement of Zurich”, p.29.
2. 티구리누스 합의 내용
가. 26 항목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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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자료로 Henry Beveridge의 번역을 사용하였다. 참고로 번역의 부자연스러움을 염두에 두어 라틴어 원문을 같이 싫어두기로 한다. Henry Beveridge, Selected Works of John Calvin Tracts and Letters, Vol. 2, (Baker Book House , 1983), pp.212-220.
56) 이것은 1523년 쯔빙글리의 67개항 중 세 번째 항을 반영한다.: “그러므로 그리 스도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사람들의 구원에 대한 유일한 길이시다.” 오직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교리(instituta dei)와 하나님의 의식(성 찬식)에 대해서 말할 수 있다. Timothy, “John Calvin and the agreement of Zurich”, p.30.
제 1항. 교회에 대한 모든 영적인 통치는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한다.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마침이시라는 것과 그에 대한 지식이 그 자체 안에서 전 복음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교회의 모든 영적인 통치의 목적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한다는 것은, 오직 그에 의해서만 우리가 행복한 삶의 궁극적 목적이 되시는 하나님께로 인도되는 바와 같이 의심의 여지가 없다.56) 조금이라도 이로부터 벗어난 자들은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어떠한 법령(의식)에 대해서 정당하게 말할 수 없다.
(1. Totum ecclesiae regimen spirituale ad Christum nos ducit. Cum Christus sit finis legis, et eius cognitio totam in se evangelii summam comprehendat, non dubium est, quin huc spectet totum spirituale ecclesiae regimen, ud ad Christus nos ducat: sicuti per eum solum ad Deum pervenitur, qui ultimus est beatae vitae finis. Itaque quisquis hinc vel minimum deflectet, nunquam de ullis Dei institutis rite vel apposite loquetur.)
제 2항.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으로부터 나오는 성례에 대한 참된 지식.
성례가 복음의 부속물인 것처럼, 그리스도와 함께 시작하는 사람만이 오직 성례의 본성과, 덕, 직무와 유익을 적절하고 유용하게 말할 수 있다.; 그 시 작은 엉성하게 그리스도의 이름을 언급함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 서 성부에 의해 우리에게 주어진 목적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가 우리에게 부여하시는 은혜가 어떤 것인지를 확실하게 주장함에 의해서이다.
( 2 . Sacramentorum cognitio vera, ex cognitione Christi. Cum autem sacramenta sint Evangelii appendices, is demum et apte et utiliter de eorum natura, vi, officio et fructu disseret qui a Christo exordietur. Neque id modo, ut obiter Christi nomen attingat, sed ut vere teneat, quorsum nobis datus sit a patre, et quid nobis bonorum attulerit.)
제 3항.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의 본성.57)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시고 하나님과 동일한 영광과 본체이신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본성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것을 양자의 권리에 의해 우리에게 주시기 원하신다. 말하자면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로 만들기 위하 여 우리의 육신을 취하셨다는 것을 붙잡아야 한다. 이것은 믿음에 의해 그 리스도의 몸에 접붙여졌을 때 발생한다. 그리고 성령의 작용으로 의의 자 유로운 전가에 의해서 우리가 처음으로 의롭게 여겨지고, 그리고 나서 새 로운 삶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그것에 의해서 우리가 하늘 아버지의 형상으로 다시 형성되었을 때, 우리는 옛 사람과 관계를 끝는다.
(3. Cognitio Christi qualis. Sic ergo habendum est, Christum, cum aeternus esset Dei filius, eiusdem cum patre essentiae et gloriae, induisse carnem nostram, ut iure adoptionis, id quod natura proprium habebat, nobis communicaret, nempe, ut simus filii Dei. Quod fit, dum fide inserti in corpus Christi, idque spiritus sancti virtute, primum iusti censemur gratuita iustitiae imputatione, deinde regeneramur in novam vitam: quo reformati in imaginem patris coelestis, veteri homini renunciem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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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3항과 4항은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대한 간결한 문장을 제공하는데 그 문 장은 주관적이고 객관적인 기독론적 두 기둥을 미묘하게 균형을 이룬다. 그러 므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고 아버지와 동일 본질과 동일 영광 이시다.” Timothy, “John Calvin and the agreement of Zurich”, p.30. Henry Beveridge, Selected Works of John Calvin Tracts and Letters, Vol. 2, p.213.
제 4항. 제사장과 왕이신 그리스도.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그의 인성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도달하도록 하기 위 하여 우리의 죄를 자신의 죽음의 희생에 의해 속죄하고, 자신의 순종으로 우리의 범죄를 제거하고, 우리에게 완전한 의를 제공하셨다. 그리고 이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우리의 제사장으로 고려되어져야 한다. 그는 우리 가 세상과 육신에 대하여 사는 것을 멈추고 하나님 자신이 우리 안에 사시 도록 하기 위하여 성령의 작용으로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사악한 것들을 고 치시는 수리자로 간주되어져야 한다. 그는 우리를 모든 종류의 축복으로 부유하게 하고, 그의 능력으로 우리를 다스리고 보호하시며, 영적인 무기들 로 우리를 무장시키시고, 모든 해로부터 구원하시며 그리고 그의 입의 왕 권으로 우리를 다스리고 인도하시는 왕으로써 간주되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는 궁극적으로 발생할 모든 것들의 성취 때까지 우리를 그 자신에게로, 참 하나님께로, 그리고 아버지께로 올리실 그러한 분으로 간주되어져야 한 다. 즉, 하나님은 모든 것 안에 계신 모든 것이시다.
(4. Christus sacerdos. Christus Rex. Ita Christus in carne sua considerandus est nobis sacerdos, qui peccata nostra unico mortis suae sacrificio expiavit, qui omnes nostras iniquitates delevit sua obedientia, qui perfectam nobis iustitiam comparavit, qui nunc intercedit pro nobis, ut accessus nobis ad Deum pateat. Considerandus est tanquam victima expiatrix, qua placatus est Deus mundo. Considerandus est frater, qui nos ex miseris Adae filiis effecit beatos Dei filios. Considerandus est reparator, qui spiritus sui virtute reformat quicquid in nobis est vitiosum, ut mundo vivere desinamus et carni, ac deus ipse in nobis vivat. Considerandus est Rex, qui omni bonorum genere nos ditat, qui nos gubernat sua virtute, ac tuetur, qui spiritualibus nos armis instruit, ut adversus diabolum et mundum invicti stemus qui nos ab omni noxa liberat, qui oris sui sceptro nos moderatur ac regit. Atque ita considerandus, ut ad se Deum verum, et patrem nos evehat, donec impleatur illud, quod tandem futurum est, nempe, ut sit Deus omnia in omnibus.)
제 5항.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전달하시는가.58)
더욱이, 그리스도께서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보이시고 이러한 효과들을 우 리 안에 생산하시기 위하여, 그는 우리와 같은 자로 되어졌고, 우리는 그의 몸에 접붙여졌음에 틀림없다. 만일 그분이 우리의 머리가 아니라면 그분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입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로부터 모든 관절을 통하여 충분하게 연결된 온 몸은 그 분의 일하심을 따라 각 지체의 비율에 맞게 자라게 한다.
(5. Quomodo se Christus nobis communicet. Porro, ut se nobis talem exhibeat Christus, ac eiusmodi effectus in nobis proferat, unum cum ipso nos effici, et in eius corpus coalescere oportet. Quia non aliter vitam in nos suam diffundit, nisi dum caput nostrum est, ex quo totum corpus compactum et connexum, per omnem iuncturam subministrationis, secundum operationem in mensura cuiusque membri augmentum corporis fac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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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제 5항목은 23항목-“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는 것에 대하여”-과 함께 1549년 4월 취리히 회담 이후에 칼빈의 권면에 추가된 두 항목중의 하나이다. 그것은 1-4항목에 이미 진술된 그리스도와 신자의 연합의 필연성을 강조하고 있다. Timothy, “John Calvin and the agreement of Zurich”, p.30. Henry Beveridge, Selected Works of John Calvin Tracts and Letters, Vol. 2, p.213.
제 6항. 영적인 교제. 성례의 제도.59)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과 갖는 영적인 교제는 우리 안에 성령으로 거하시는 그분이 믿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자신 안에 있는 모든 축복들을 받을 수 있게 만들 때 발생한다. 이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복음의 전파가 우리에게 맡겨졌고 성례, 즉 세례와 성찬의 성례가 우리에게 위임되었다.
(6. Spiritualis communicatio. Sacramenta instituta. Haec spiritualis est communicatio, quam habemus cum filio Dei, dum spiritu suo in nobis habitans facit credentes omnes omnium quae in se resident bonorum compotes. Cuius testificandae causa, tam Evangelii praedicatio instituta est, quam sacramentorum usus nobis commendatus, nempe, sacri Baptismi et sacrae Coen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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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제 6항목은 초기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대한 강조에서 성례에 더욱 구체적으로 초점을 맞추는 다음 항목으로 넘어가는 다리로서 역할을 한다. 성례에 대한 서 두적 설명이 성령에 의한 영적 교통의 증인으로써 그들의 기능에 대한 용어들 안에 있다는 것-이것은 불링거에게 기쁨을 주었음에 틀림이 없는 것이다-은 중 요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설교와 성례의 병행적인 위치는 철저하게 스위스 개 혁자들의 작품들에서와 같이 칼빈의 초기 작품안에 반영되어져 있다. Timothy,“John Calvin and the agreement of Zurich”, p.31. Henry Beveridge,Selected Works of John Calvin Tracts and Letters, Vol. 2, p.214.
제 7항. 성례의 목적.60)
성례의 목적들은 그리스도인 고백과 연합 혹은 형제애에 대한 표현이 되는 것, 감사에 대한 자극과 믿음의 훈련이 되는 것, 그리고 경건한 삶이 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를 그것에 묶는 약정(계약)이 되는 것이다. 그 러나 다른 목적들 가운데에서 원리적인 것 하나는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사 용하여 그의 은혜를 우리에게 증거하고, 설명하고, 보증하는 것이다. 왜냐 하면 성례들이 그 말씀 자체에 의해 우리에게 발표된 것 이상의 다른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러나 첫째로 대상물을 직접적인 방식으로 그들 앞에 가져옴으로 우리의 감각에 더 깊은 인상을 만드는 어떤 종류의 살아있는 형상이 우리의 눈에 제공되어졌고 동시에 성례들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그의 모든 은혜들을 우리의 기억으로 가져오고, 그 결과 믿음이 더 욱 잘 훈련된다는 점에서이다. 둘째로 하나님의 입으로 발표한 것이 보증 에 의해서 확증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7. Sacramentorum fines. Sunt quidem et hi sacramentorum fines, ut notae sint ac tesserae christianae professionis et societatis, sive fraternitatis: ut sint ad gratiarum actionem incitamenta, et exercitia fidei ac piae vitae, denique syngraphae ad id obligantes. Sed hic unus inter alios praecipuus, ut per ea nobis suam gratiam testetur Deus, repraesentet atque obsignet. Nam etsi nihil aliud significant, nisi quod verbo ipso annunciatur, hoc tamen magnum est, subiici oculis nostris quasi vivas imagines, quae sensus nostros melius afficiant, quasi in rem ducendo, dum nobis Christi mortem, omniaque eius beneficia in memoriam revocant, ut fides magis exerceatur, deinde quod ore Dei pronunciatum erat, quasi sigillis confirmari et sanci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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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7-9항목은 성례에 대한 일반적인 진술을 제공하는데, 그 진술들 안에 쯔빙글리 와 칼빈주의 주제들이 최종적으로 균형을 이룬다. 7항목에서 성례들은 “기독교 삶과 유대 혹은 형재애... 우리를 경건한 삶으로 묶는 약정들에 대한 표징”으로 표현된다. 이 모든 모양들은 쯔빙글리의 생각 안에 있는 성례에 대한 공동체 생활적 성격을 강하게 상기 시킨다. 특별하게, 하나님께서 알리신 것을 확고히 하고 실증하는 공적인 보증으로써 성례를 묘사하는 제 7항목의 마지막 절은 쯔 빙글리가 선호하는 주의 만찬에 대한 은유(비유) 중의 하나와 아마도 꼭 맞을 것이다. Timothy, “John Calvin and the agreement of Zurich”, pp.31-32. Henry Beveridge, Selected Works of John Calvin Tracts and Letters, Vol. 2, p.215.
제 8항. 감사.61)
이제 주님께서 그의 은혜에 대한 보증과 증거로써 주신 이러한 것들이 참 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는 의심의 여지없이 참되게 그리고 성령을 통하 여 내적으로 성례가 우리의 눈과 다른 감각들에 표상하는 것을 실행하신 다.; 다른 말로 우리는 모든 축복의 근원으로써 그리스도의 소유를 얻는데, 그것은 우리가 그의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과 화해되고, 성령을 통해서 거 룩한 삶으로 다시 새롭게 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의와 구원을 얻기 위함이다. 그리고 또한 십자가에서 한번 보여지고 그리고 날마다 믿음으로 받는 복들에 대하여 감사하기 위함이다.
(8. Quod vere sacramenta figurant Dominus vere praestat. Gratiarum actio. Quum autem vera sint, quae nobis Dominus dedit gratiae suae testimonia et sigilla, vere procul dubio praestat ipse intus, suo spiritu, quod oculis et aliis sensibus figurant sacramenta: hoc est, ut potiamur Christo, tanquam bonorum omnium fonte, tum ut beneficio mortis eius reconciliemur Deo, spiritu renovemur in vitae sanctitatem, iustitiam denique ac salutem consequamur: simulque pro beneficiis his olim in cruce exhibitis, et quae quotidie fide percipimus, iam agamus grati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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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만일 제 7항목이 취리히의 관심으로 기울었다면, 제 8항목은 칼빈의 주된 주제 중 하나 “성례에서 하나님은 참으로 자신이 표현하신 것을 효과 있게 하신다.” 를 반영한다. 확실히 이 항목은 베른에 제출된 형식에서 성례를 그것들이 형상 화 한 것을 우리에게 참으로 보여주는(exhibere) 하나님의 은혜의 참된 표징으 로써 말하고 있는 칼빈의 최초 언어의 재작업을 표현한다. 여기서 그것은 주님 께서 참으로 그의 성령에 의해 성례가 우리의 눈과 감각에 형상화하는 것을 내 적으로 실행하신다는 것을 주장한다. 만찬에 대한 정당한 축하가 야기하는 감 사의 반응은 개인적 경건과 공동체적 예배 모두에 대한 중요한 성찬의 의미를 지적한다. Timothy, “John Calvin and the agreement of Zurich”, p.32. Henry Beveridge, Selected Works of John Calvin Tracts and Letters, Vol. 2, p.215
제 9항. 표징들과 의미되어지는 것들은 분리되지 않고 단지 구별된다.62)
그러므로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하는 바처럼, 표징과 의미되어지는 내용을 구별할지라도 그러나 우리는 그 실제로부터 표징을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 라, 거기에 주어진 약속을 믿음으로 받는 모든 자들이 영적으로 그리스도 와 그의 영적인 은사들을 받으며 동시에 오랫동안 그리스도의 참여자였던 자들은 그 교제를 지속하고 새롭게 한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9. Distincta signa et res signatae. Quare, etsi distinguimus, ut par est, inter signa et res signatas, tamen non disiungimus a signis veritatem: quin omnes, qui fide amplectuntur oblatas illic promissiones, Christum spiritualiter, cum spiritualibus eius donis recipere, adeoque et qui dudum participes facti erant Christi, communionem illam continuare ac reparare fateam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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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제 9항목은 그 전체적인 합의가 충돌을 추구하는 균형을 재 진술한다.: 표징과 표징을 나타내는 것 사이에는 중대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분리는 없다.; 그 결 과 믿음 안에서 성례에서 제공된 약속을 받아들인 모든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영적으로 받아들이고 그와의 연합을 경험한다. Timothy, “John Calvin and the agreement of Zurich”, p.32. Henry Beveridge, Selected Works of John Calvin Tracts and Letters, Vol. 2, p.215.
제10항. 성례들에서 원리적으로 약속이 보여져야 한다.63)
그리고 단순히 표징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거기에 결합된 약속을 보 는 것이 정당하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이 주어진 약속에서 효과가 있는 한, 그렇게 우리가 말한 것의 효험과 덕(은택)들이 그 자체를 보여줄 것이 다. 그러므로 물과 빵 그리고 포도주의 물질은 결코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제공하지 않고, 그의 영적인 은사들을 우리가 받을 수 있게 하지도 않는다. 그 약속은 오히려 우리를 그리스도의 참여자로 만드는 믿음이 보여지는 것 이다.
(10. Promissio maxime est in sacramentis spectanda. Neque enim ad signa nuda, sed potius ad promissionem, quae illic annexa est, respicere convenit. Quatenus ergo in promissione illic oblata proficit nostra fides, eatenus ista vis et efficacia, quam dicimus, se exserit. Ita materia aquae, panis aut vini, Christum nequaquam nobis affert, nec spiritualium eius donorum compotes nos facit, sed promissio magis spectanda est: cuius partes sunt, nos recta fidei via ad Christum ducere: quae fides nos Christi participes fac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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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제 10항목은 단순한 표징을 넘어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참여자가 되도록 만드 는 약속과 믿음”을 지적한다. Henry Beveridge, Selected Works of John Calvin Tracts and Letters, Vol. 2, p.215.
제11항. 우리는 그 요소들을 응시해서는 안된다.64)
이것은 그 요소(물, 빵, 포도주)들을 응시하고 그들의 구원에 대한 신뢰를 그것들에 부착시킨 자들의 오류를 반박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로부터 분 리된 성례들이 단순히 공허한 쇼(Shows)라는 것과, 우리가 오직 그리스도 에게만 붙어있어야 하고 오직 그로부터만 구원의 은사들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소리가 도처에서 명백하게 들리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11. In elementis non obstupescendum. Hinc concidit eorum error, qui in elementis obstupescunt, et illis affigunt salutis suae fiduciam: quum sacramenta a Christo separata nihil sint quam inanes larvae: et in ipsis omnibus haec vox clare personet, non alibi quam in solo Christo haerendum , nec aliunde petendam esse salutis grati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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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제 11항목은 우리가 그리스도로부터 떨어져서 단지 공허한 표시일 뿐 아무것 도 아닌 요소들에 의해서 지각을 잃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주장하고(inanes larvae), 오직 그리스도를 통한 초기의 주제로 돌아간다. Timothy, “John Calvin and the agreement of Zurich”, p.32. Henry Beveridge, Selected Works of John Calvin Tracts and Letters, Vol. 2, p.216.
제12항. 성례들은 그 자체로부터 어떤 효과도 내지 못한다.
게다가 만일 어떤 선한 것이 그 성례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수여된다면, 그 것은 비록 당신이 선한 것 안에 성례들을 구별시키는 약속을 포함해야 할 지라도 성례들 안에 어떤 적당한 덕(은택)을 돌리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성령으로 작용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가 성례들의 수 단을 사용할 때 그는 그것들에 자신의 덕(은택)을 주입하지도 않고, 성령의 효과적인 작용으로부터 어떤 면에서도 훼손시키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는 우리의 연약함에 대한 적용에서 그것들을 도움으로써 사용한다. 그러나 그 러한 방식에서 작용하는 모든 능력은 오직 그에게만 있다.
(12. Sacramenta per se nihil efficiunt. Soli Deo omnis actio salutis tribuenda. Praeterea, si quid boni nobis per sacramenta confertur, id non fit propria eorum virtute, etiamsi promissionem, qua insigniuntur, comprehendas. Deus enim solus est, qui spiritu suo agit: et quod sacramentorum ministerio utitur, in eo neque vim illis suam infundit, nec spiritus sui efficaciae quicquam derogat: sed pro ruditatis nostrae captu, ea tanquam adminicula sic adhibet, ut tota agendi facultas maneat apud ipsum solum.)
제13항. 하나님은 도구를 사용하신다. 그러나 모든 덕(은택)은 그의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우리를 상기시키는 바와 같이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 무 것도 아니고 오직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렇게 성례에 대 해서도 그것들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하여질 수 있다. 왜냐하면 만일 하 나님께서 그 모든 것 안에서 효과 있게 하시지 않는다면 그것들은 아무 유
익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진실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때 효 과 있게 하시는 도구이고 결국 우리 구원의 모든 사역이 오직 하나님께 돌 려져야 한다.
(13. Deus organo utitur, sed ita ut omnis virtus sit Dei. Itaque, quemadmodum Paulus admonet, eum qui plantat aut rigat nihil esse, sed unum Deum qui dat incrementum: ita et de Sacramentis dicendum est, ea nihil esse, quia nihil profutura sint, nisi Deus in solidum omnia efficiat. Organa quidem sunt, quibus efficaciter, ubi visum est, agit Deus, sed ita, ut totum salutis nostrae opus, ipsi uni acceptum ferri debeat.)
제14항. 모든 것은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된다.65)
그러므로 진리 안에서 내적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은 오직 그리스도이신데 그분은 성만찬에서 우리를 그의 참여자로 만든다. 간단히 말해서, 성례가 보여주는 것을 성취하시며, 모든 효과가 성령 안에 거하는 그러한 방식으 로 성례의 도움을 사용하시는 분이시다.
(14. [Note: This article did not have a subtitle or heading in the source text consulted.] Constituimus ergo unum esse Christum, qui vere intus baptizat, qui nos in coena facit sui participes, qui denique implet quod figurant sacramenta: et uti quidem his adminiculis, ut totus effectus penes eius spiritum resid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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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제14항목은 전체 합의문 가운데에서 가장 강력한 성례적 실제주의에 대한 진 술을 담고 있다.: “그리스도는... 그 만찬에서 우리를 자신의 참여자로 만든다.” 비슷한 형태가 19항목에서 다시 보여진다. “만찬에서 그리스도는 자신을 우리 에게 전달하신다.” 그러나 “in coena”라는 구절이 이러한 상황들 모두에서 분명 한 도구주의적 관점을 보여주는 반면에, 그것은 엄밀하지 못한 해석을 허용할 정도로 충분히 모호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서 그 구절은 단순히 “만찬에서”라고 번역되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만일 이러한 방식에서 해석된다 면, 그것은 아마도 불링거의 성숙한 성례론에 조화되어진 것일 것이다. 그리고 불링거의 이 성례론은 제 2차 헬베틱 신앙고백에서 보여진 바와 같은데, 이 고 백서에 대해서 브라이언 저어쉬(Brian Gerrish)는 불링거의 “평행주의”라고 성 격을 규정했다. 제 21항목에서 불링거는 말하기를 “빵이 사역자에 의해 외적으 로 제공될 때, 동시에 내적으로, 성령을 통한 그리스도의 사역에 의해서, 그들 은 또한 주의 살과 피를 받고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그러나 그 합의에 대한 강조는 불링거의 평행주의나 칼빈의 도구주의로 기울어지지 않고, 오히려 신적 은혜의 선험성과 자유성을 위협하는 제국적 성례주의와 같은 종류에 반대 하는 편으로 기운다. 그러므로 제 15항목은 주장하기를 ”성례의 이러한 모든 속성들은 우리 구원의 최소한의 부분도 피조물이나 그러한 요소들에 해당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더 낮은 곳으로 가라앉는다. Timothy, “John Calvin and the agreement of Zurich”, p.33. Henry Beveridge, Selected Works of John Calvin Tracts and Letters, Vol. 2, p.216.
제15항. 어떻게 성례가 확증하는가.
그러므로 성례는 때때로 보증이라고 불리고, 믿음을 자라게 하고 확증시키 며 증진시킨다고 한다. 그러나 오직 성령만이 정당하게 보증이 되시며 또 한 믿음의 시작과 마지막이 되신다. 왜냐하면 이러한 모든 성례의 속성들 은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고 그 결과 심지어 우리 구원의 최소한의 부분에 서도 피조물이나 성례의 요소들로 옮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15. Quomodo sacramenta confirment. Sic interdum Sacramenta vocantur sigilla, dicuntur fidem alere, confirmare, promovere, et tamen solus spiritus proprie est sigillum, et idem fidei inchoator est et perfector. Nam haec omnia Sacramentorum attributa inferiore loco subsidunt, ut ne minima quidem salutis nostrae portio ab unico authore ad creaturas vel elementa transferatur.)
제16항. 성례에 참여하는 모든 자들이 그 실체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다.66)
게다가 우리는 조심스럽게 하나님께서 그의 능력을 성례를 받은 모든 사람 들에게 분별없이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택자들에게만 사용하신다 는 것을 가르친다. 왜냐하면 그분이 오직 영생으로 예정한 자들에게만 믿 음을 밝힌 것과 같이, 그렇게 그분의 성령의 비밀스러운 작용에 의해서 택 자들이 성례가 제공하는 것을 받도록 만드시기 때문이다.
(16. Non omnes sacramento participantes re quoque participant. Praeterea sedulo docemus, Deum non promiscue vim suam exserere in omnibus qui sacramenta recipiunt: sed tantum in electis. Nam quemadmodum non alios in fidem illuminat, quam quos praeordinavit ad vitam: ita arcana spiritus sui virtute efficit, ut percipiant electi quod offerunt sacramen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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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믿음의 필요성. 이러한 관점은 이어지는 다섯 개(16-20)의 항목에서 더욱 분명 해지고 세련되어지는데, 거기에서 만찬을 받은 사람들에게 믿음의 필요성이 강 조된다. 신적 은혜의 우선성과 자유는 예정의 교리와 성례의 효과의 관계에서 더욱 분명하게 보여진다. “하나님은 자신의 능력을 분별없이 성례를 받는 모든 사람에게 발휘하지 않고, 오직 선택된 자들에게 한정시키신다.(16)” 표징들은 유기자들과 택자들 모두에게 똑같이 작용하지만, 그 표징의 실제(veritas)는 오 직 택자들에게만 이른다(17). 다시 이것은, 1536년판 기독교 강요로 돌아가는 칼빈편에 대한 강조이다. 거기서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성령은 (성례는 성령 을 모든 사람에게 무분별하게 적용하지 않고 주님께서 배타적으로 성령을 자기 자신의 백성들에게 수여하신다) 주님과 함께 하나님의 은혜를 가져오시는 분이 시다. Timothy, “John Calvin and the agreement of Zurich”, p.33. Henry Beveridge, Selected Works of John Calvin Tracts and Letters, Vol. 2, pp.217-218.
제17항. 성례들은 은혜를 수여하지 않는다.
이 교리에 의해서 죽을죄의 장애물이 있지 않은 모든 사람들에게 성례들이 은혜를 수여한다고 가르치는 소피스트들(sophists)의 허구가 뒤집어진다. 왜냐하면 성례에서 믿음이 없이 어떠한 것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 외 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그 성례들에 결합되어 그 결과 그 표징을 받아들이는 이는 또한 그것이 소유하고 있는 바를 얻을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님을 붙잡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 표징들은 유기자들과 택자들에게 똑같 이 작용하지만, 실체는 오직 택자에게만 도달하기 때문이다.
(17 . Sacramenta non conferunt gratiam. Hac doctrina evertitur illud sophistarum commentum, quod docet sacramenta novae legis conferre gratiam omnibus non ponentibus obicem peccati mortalis. Praeterquam enim quod in sacramentis nil nisi fide percipitur, tenendum quoque est, minime alligatam ipsis esse Dei gratiam, ut quisquis signum habet re etiam potiatur. Nam reprobis peraeque ut electis signa administrantur, veritas autem signorum ad hos solos pervenit.)
제18항. 모든 이들에게 제공되지만 오직 신자들에게만 도달하는 은사들.
그리스도께서 그의 은사들과 함께 일반적으로 모든 이에게, 그리고 하나님 의 진리를 내던지지 않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 제공된다는 것과, 성례들이 항상 그들의 효과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그리스도와 그의 은사들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하 나님 편에서 어떤 것도 변하지 않고 오직 사람과 관련하여 각자가 자신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받는다.
(18. Omnibus offeruntur Dei dona, fideles duntaxat percipiunt. Certum quidem est, offerri communiter omnibus Christum cum suis donis, nec hominum infidelitate labefactari Dei veritatem, quin semper vim suam retineant sacramenta: sed non omnes Christi et donorum eius sunt capaces. Itaque ex Dei parte nihil mutatur, quantum vero ad homines spectat, quisque pro fidei suae mensura accipit.)
제19항. 신자들은 성례의 사용 전에 그리고 성례의 사용 없이 그리스도 와 교통한다
성례들의 사용이 비록 불신자들이 그것으로부터 절제할지라도 그들에게 어 떠한 것도 수여하지 못하는 것과 같이, 그렇게 성례들의 사용 없이도 신자 들은 성례에서 나타내는 실체를 받는다. 그러므로 바울의 죄들은 비록 그 것들이 이전에 씻겨졌을 지라도 세례에 의해서 씻겨졌다. 그러므로 마찬가 지로 고넬리우스(고넬료)가 이미 성령을 받았을지라도, 그에게는 세례가 중 생의 놋그릇(정결을 위해 쓰였던 것 maybe)이다. 그리스도께서 비록 이전 에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고 우리 안에 영원히 계실지라도 그렇게 성찬에서 자신을 우리에게 주신다. 왜냐하면 각자가 자신의 믿음을 시험하도록 명령 받았을 때 이것은 성례에 참여하기 전에 각자에게 믿음이 요구되어진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믿음은 그리스도 없이 있지 않다. 그러나 믿음이 성례에 의해서 확고히 되고 증가되는 한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사는 우리 안에서 확증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한 방식에서 우리 안에서 자라고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란다.
(19. Fideles ante et extra usum sacramentorum Christo quoque communicant. Quemadmodum autem nihilo plus sacramentorum usus infidelibus confert, quam si abstinerent, imo illis tantum exitialis est: ita extra eorum usum fidelibus constat quae illic figuratur veritas. Sic Baptismo abluta sunt Pauli peccata, quae iam prius abluta erant. Sic idem baptismus Cornelio fuit lavacrum regenerationis, qui tamen iam spiritu sancto donatus erat. Sic in coena se nobis communicat Christus, qui tamen et prius se nobis impertierat, et perpetuo manet in nobis. Nam quum iubeantur singuli se ipsos probare, inde consequitur, fidem ab ipsis requiri, antequam ad sacramentum accedant. Atqui fides non est sine Christo, sed quatenus sacramentis confirmatur et augescit fides, confirmantur in nobis Dei dona, adeoque augescit quodammodo Christus in nobis, et nos in ipso.)
제20항. 교제의 행위에서 항상 유익들을 받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성례로부터 받은 이 점들은 그것이 마치 보이는 표징이 제공되는 순간에 하나님의 은혜를 가져오는 것처럼, 결코 그렇게 성례들이 우리에게 행해지는 시간에 제한되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단순히 유아 때 세례를 받은 사람들에 대해서 하나님은 유아기에 혹은 장성했을 때, 때때로는 심 지어 늙었을 때 중생시키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례의 기능은 생의 모 든 기간동안 열려있다. 왜냐하면 그 안에 담겨진 약속은 능력에 있어서 지 속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찬의 사용이 이후에 그 열매를 맺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20. Adeo non alligatur actioni sacramentorum gratia, ut fructus eorum percipiatur aliquando post actionem. Utilitas porro quam ex sacramentis percipimus, ad tempus, quo ea nobis administrantur, minime restringi debet, perinde ac si visibile signum, dum in medium profertur, eodem secum momento Dei gratiam adveheret. Nam qui in prima infantia baptizati sunt, eos in pueritia, vel ineunte adolescentia, interdum etiam in senectute regenerat Deus. Ita Baptismi utilitas ad totum vitae decursum patet. Quia perpetuo viget quae illic continetur promissio. Et fieri interdum potest, ut sacrae Coenae usus, qui in actu ipso propter incogitantiam vel tarditatem nostram parum prodest, fructum deinde suum proferat.)
제21항. 공간적 임재는 상상되어서는 안된다.67)
우리는 어떤 공간적 임재에 대한 사상에 대항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표징 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고, 눈에 의해 보여 지고 손으로 만져지는 반면에 인성으로써의 그리스도는 하늘 이외에서는 찾아서는 안되고 또한 마음으로 혹은 믿음의 눈으로 말고 다른 것으로도 안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이 세상의 물질 요소들 아래 가두는 것은 사악하고 불경건한 미신이다.
(21. Localis imaginatio tollenda. Praesertim vero tollenda est quaelibet localis praesentiae imaginatio. Nam cum signa hic in mundo sint, oculis cernantur, palpentur manibus, Christus quatenus homo est, non alibi quam in coelo, nec aliter quam mente et fidei intelligentia quaerendus est. Quare perversa et impia superstitio est, ipsum sub elementis huius mundi includ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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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구체적인 오류들에 대한 반박(21-26). 이 합의문의 마지막 여섯 항목들은 구체 적인 성례적 오류들을 반박하고, 대부분이 차별적인 면에서 루터적 교리에 방 향 지워졌다. 제 21항목은 공간적 임재에 대하여 거부하고 그리고 그리스도는 하늘을 제외하고는 어디에서도 찾아져서는 안된다고 선언했다. 제 25항목은 루 터에 대하여 쯔빙글리와 불링거 그리고 칼빈에 의해서 공유된 이 주제를 더욱 분명하게 한다.: “그리스도의 몸은 제한되고 그 자리로써 하늘에 있다.” Timothy, “John Calvin and the agreement of Zurich”, p.34. Henry Beveridge, Selected Works of John Calvin Tracts and Letters, Vol. 2, pp.218-220.
제22항. “이것이 나의 몸이다”라는 말씀에 대한 설명.
“이것이 나의 몸이다; 이것이 나의 피다”라는 성찬에 대한 말씀이 엄밀하 게 문자적 의미로 취하여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우리는 상 식을 벗어난 것으로써 반대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논쟁으로부터 상징적으 로, 즉 그것들이 의미하는 바의 이름을 담은 빵과 포도주로 취하여져야 한 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형상화된 것의 이름이 환유(metonoy)에 의해 표 징으로 옮겨지는 것이 새롭거나 드문 것으로 생각되어져서는 안된다. 왜냐 하면 유사한 설명의 방식이 성경 전체에서 나타나고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말함에 의해서 고대의 그리고 가장 인정받은 교회의 저술가들 안에서 발견 되는 것 이상은 아무 것도 주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22. Expositio verborum Coenae Domini, "Hoc est corpus meum". Proinde qui in solennibus Coenae verbis, "Hoc est corpus meum, Hic est sanguis meus," praecise literalem, ut loquuntur, sensum urgent, eos tanquam praeposteros interpretes repudiamus. Nam extra controversiam ponimus, figurate accipienda esse: ut esse panis et vinum dicantur id quod significant. Neque vero novum hoc aut insolens videri debet, ut per metonymiam ad signum transferatur rei signatae nomen, cum passim in scripturis eiusmodi loquutiones occurrant: et nos, sic loquendo nihil afferimus, quod non apud vetustissimos quosque et probatissimos ecclesiae scriptores exstet.)
제23항. 몸을 먹는 것에 대하여.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여기에 표현(형상화된 figured)된 그의 몸을 먹고 그 의 피를 마심으로 해서, 성령의 작용으로 믿음을 통해서 우리의 영혼을 먹 이신다고 했을 때, 우리는 어떤 물질의 혼합이나 투입이 발생하는 것처럼 이해해서는 안되고 희생에서 한번 제공된 살과 속죄에서 흘린 피로부터 생 명을 가져온다(draw)고 이해해야 한다.
(23. De manducatione carnis Christi. Quod autem carnis suae esu et sanguinis potione, quae hic figurantur, Christus animas nostras per fidem spiritus sui virtute pascit, id non perinde accipiendum, quasi aliqua fieret substantiae vel commixtio vel transfusio: sed quoniam ex carne semel in sacrificium oblata, et sanguine in expiationem effuso, vitam hauriamus.)
제24항. 화체설과 다른 어리석은 주장들.
이러한 방식에서 화체설에 대한 교황주의자들의 허구가 반박될 뿐만 아니 라 그리스도의 하늘의 영광을 훼손시키거나 혹은, 어느 정도에 있어서 그 의 인성의 실체를 부정하는 모든 총체적인 허구와 무익한 강변들이 반박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빵 아래 두거나 혹은 그를 빵과 결합시키는 것은 빵을 그의 몸으로 변화시키는 것만큼이나 불합리한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 하기 때문이다.
(24. Contra transsubstantiationem et alias ineptias. Hoc modo non tantum refutatur Papistarum commentum de transsubstantiatione, sed crassa omnia figmenta atque futiles argutiae, quae vel coelesti eius gloriae detrahunt, vel veritati humanae eius naturae minus sunt consentanea. Neque enim minus absurdum iudicamus, Christum sub pane locare vel cum pane copulare, quam panem transsubstantiare in eius corpus.)
제25항. 그리스도의 몸은 공간적으로 하늘에 계신다.
우리가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찾아져야 한다고 말했을 때, 어떠한 모호함도 남아있지 않는데 그 표현은 공간적으로 가까운 거리를 함의하고 우리에게 그렇게 이해되어진다. 왜냐하면 비록 철학적으로 말할 때 하늘들 위에 어 떤 공간도 없을지라도, 그러나 그리스도의 몸이 인간의 몸의 형식과 본성 을 갖고 있는 채로 제한적이고 장소로써 하늘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공 간적으로 하늘이 땅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만큼 그리스도께서 우리로부터 떨어져 있다는 것은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25. Christi corpus in coelo ut in loco est. Ac ne qua ambiguitas restet, quum in coelo quaerendum Christum esse dicimus, haec loquutio locorum distantiam nobis sonat et exprimit. Tamesti enim, philosophice loquendo, supra coelos locus non est, quia tamen corpus Christi, ut fert humani corporis natura et modus, finitum est, et coelo, ut loco, continetur, necesse est a nobis tanto locorum intervallo distare, quantum coelum abest a terra.)
제26항. 빵에서 그리스도가 숭배되어져서는 안된다.
만일 그리스도를 우리의 상상 속에서 빵과 포도주에 부착시키는 것이 합법 적이지 않다면, 마찬가지로 빵으로써의(or 빵안에 있는) 그를 경배하는 것 도 그러하다. 왜냐하면 비록 그 빵이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연합의 상징과 보증으로써 제시될지라도 그것이 표징이지 실체 자체는 아니며, 표 징 안에 포함되거나 고정되어 있는 실체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 것과 같 이, 그리스도를 경배하는 관점으로 그들의 마음을 그 표징들에 돌리는 사 람들은 그에 대한 우상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26. Christus non est adorandus in pane, vel in sacramento. Quod si imaginatione nostra Christum pani et vino affigere fas non est, multo minus licet in pane eum adorare. Quanquam enim panis in symbolum et pignus eius quam habemus cum Christo communionis, nobis porrigitur, quia tamen signum est, non res ipsa, neque rem in se habet inclusam aut affixam, idolum ex eo faciunt, qui mentem suam in eum convertunt, Christum adoraturi.)
나. 합의서에 관한 몇몇 결론 및 의미
티모디(Timothy) 교수는 이 합의서에 관해 몇몇 결론과 의미를 다음 과 같이 이끌어 내고 있다.68)
1. 그 합의는 칼빈이나 불링거에 있어서 완전한 승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대신에 개혁주의의 참된 교회일치적 성취를 표현한다. 두메큐(Doumergue), 콜하우스(Kolhaus) 그리고 그 밖의 사람들이 주의 만찬에 대한 16세기 논 쟁에서의 칼빈의 승리로써 그 합의를 간주하는 견해는 틀림없이 옳지 않 다. 불링거의 인내와 어려운 거래를 조절해 나가는 그의 능력은 쯔빙글리 적인 주된 관심에 대한 공평한 표현을 확신하게 한다. 심지어 쯔빙글리가 즐겨하지 않았던 언어들을 그 합의문이 사용했던 곳에서조차 우리는 이것 이 칼빈에게 기울어진 것인지 아니면 더욱 비슷하게 불링거 자신의 성례적 견해의 발전인지를 물어야 한다. 그럼에도 동의를 위해 압력을 가한 것은 칼빈이었으며 계속해서 협상에서 주도권을 가진 것도 칼빈이었다. 취리히 로 여행한 것도 칼빈과 화렐이었다. 그러나 불링거는 제네바를 방문한 적 이 없었다. 이러한 하나의 합의문이 만들어졌다는 정도의 의미에서 그것은 정당하게 칼빈의 승리라고 불려질 수 있다.69)
2. 대부분의 칼빈 학자들은 그 합의문이 완전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말하 는 바와 같이 칼빈의 성례론에 대한 충분한 표현을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 에 동의한다. 니젤(Niesel)을 반영하는 웬델(Wendel)은 취리히 합의를 실제 적인 칼빈주의 가르침에 대한 객관적인 근거로써 취하기에는 불안전하다는 것을 경고했다. 실제로 그의 친구들에 대하여 그 합의서의 변호를 시도했 었던 불링거에게 보낸 편지에서 칼빈은 다음과 같이 시인했다.
“당신은 경건하고 신중하게 성례의 효과와 그리고 성례를 통하여 주께 서 우리에게 수여해주시는 것이 다른 사람들의 경우보다 더욱 분명하고 충분하게 설명되어지기를 갈망합니다. 이러한 요소들이 더욱 충분하지 못 한 것은 나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르게 될 수 없었던 것 을 탄식함으로 인내합시다.”70)
그러나 절친한 친구들과의 개인적 일치를 위한 그 합의에 대한 칼빈의 두 번째 생각이 보존되어져 있다. 공식적으로 쯔빙글리도 루터도 그 안에 서 한 단어도 바꾸지 못했었을 것이라는 점과 그리고 심지어 루터 자신도 그것에 동의했었을 것이라는 점을 열정적으로 주장할 때, 그는 그 합의문 에 대한 열정적인 변호자였다. 더욱 중요하게 그 합의문을 변호하는 그의 논문에서 칼빈은 반복적으로 성례를 “은혜의 수단”으로써 언급하면서 그리 고 “우리의 하나님과의 화해의 사역은 그들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말하면서 그것을 변함없이 자신의 도구주의에 일치하게 해석한다. 그러므
로 그 합의문은 칼빈이 성례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가 빠뜨리려고 하지 않았던 것만을 보여준다.71)
3. 필립샤프(Philip Schaff)는 그 합의문을 제2차 성례전쟁의 순수한 경우 라고 언급했다. 이표현은 우리로 하여금 취리히 합의가 통일 노력만큼이나 많은 분리가 있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그것은 칼빈을 결정적으로 다른 스위스 개신교도들과 묶어주는 반면에 동시에 개혁주의와 루터주의 사이에 더 큰 쐐기를 박는다. 칼빈이 두 번째 결과를 의도하지 않았으며 루터란들 의 악독한 반응을 예견하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는 잔 라스키(Jan Laski)가 요하킴 웨스트팔(Joachim Westphal)의 「예수의 살과 피의 실재 를 부정하는 성찬 형식론자들의 책에서 취한 주의 만찬에 대한 혼란스럽고 다양하게 갈라진 견해들의 잡동사니」(Farrago of Confused and Divergent Opinions on the Lord's Supper Taken from the Book of the Sacramentarians, 1552)의 복사본을 보냈을 때 참으로 놀랐다. 이것은 함 부르크 목회자들이 비우호적으로 칼빈을 송아지로, 불링거을 황소로 그리 고 라스키를 폴란드 곰으로 희화하여 그 합의문에 대하여 정면공격을 한 것이었다. 칼빈은 「성례에 대한 건전하고 정통적인 교리에 대한 변론」 (1555)으로 응답했는데, 거기서 그는 웨스트팔을 “성미 급하고”, “악마의 아들”이라고 부르며 맞받아쳤다.
칼빈의 생애에서 마지막 10년은 지속적이 면서도 교화시키지는 못하는 소논문 전쟁을 웨스트팔과 그리고 나중에는 헤슈스시우스(Heshussius)와 벌이는 것으로 열중했다. 칼빈은 온건한 루터적 성례론이 그가 한때는 ‘아버지’라고 불렀던 사람(루터)의 제자들 가운데 확산되기를 지속적으로 기대했다. 그는 멜랑히톤이 웨스트팔의 공격에 직 면해서도 침묵을 지키고 멀리 떨어져 있었을 때, 비참한 모습으로 낙심했 었다. 1557년 칼빈이 루터의 영향 하에 있는 스트라스버그를 방문했을 때 그는 그 도시에서 설교하도록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어느 역사가가 “루터란과 개혁주의의 평화와 연합에 대한 칼빈의 매우 애처로운 갈망”이라고 불렀던 그러한 의미에 있어서 티구리누스 합의는 그 주요한 저자가 바랐던 것에 미치지 못했다. 그것의 실제적인 중요성은 개혁주의가 그들 사이에서 보호될 수 있는 그러한 정도의 연합과 그리고 개혁주의 전통안에 서 발전하는 고백적 인식이라 불릴 수 있는 것에 대한 그 합의문의 기여도 에 있다는 것이다.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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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취리히 합의서를 연구하면서 이 합의문의 의의에 대해 연구하고 자 했다. 더 나아가 불링거의 합의문 속에 담겨진 쯔빙글리의 성찬에 관한 후기 입장을 고찰하고자 했다. 그러나 티모디(George Timothy) 교수의 글 이나 합의문을 번역하는 과정 속에서도 쯔빙글리의 후기 입장을 명확히 고 찰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합의문 제 7항에 쯔빙글리의 사상이 좀더 명확히 기술되었으나 그 문장 안에서는 오히려 기념설 자체에 더 가깝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이에 이성덕 교수는 7항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한 다.
“이 Consensus Tigurinus는 성만찬에 관한 26개 조항 중 결정적인 것은 제 7조항이다. 이 조항에서 칼빈은 쯔빙글리의 성만찬을 상징으로 보는 ‘주관주의적’(subjektivistisch)한 이해를 승인하면서 성만찬의 주목적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신의 은총을 증거하고 현재화시키고 확증 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리고 성만찬에서 성령의 자유로운 활동이 강 조되었다.”73)
또한 티모디(George Timothy) 교수도 7항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7-9항목은 성례에 대한 일반적인 진술을 제공하는데, 그 진술들 안에 쯔빙글리와 칼빈주의 주제들이 최종적으로 균형을 이룬다. 7항목에서 성 례들은 “기독교 삶과 유대 혹은 형재애... 우리를 경건한 삶으로 묶는 약 정들에 대한 표징”으로 표현된다. 이 모든 모양들은 쯔빙글리의 생각 안 에 있는 성례에 대한 공동체 생활적 성격을 강하게 상기 시킨다. 특별하 게 하나님께서 알리신 것을 확고히 하고 실증하는 공적인 보증으로써 성 례를 묘사하는 제 7항목의 마지막 절은 쯔빙글리가 선호하는 주의 만찬 에 대한 은유(비유) 중의 하나와 아마도 꼭 맞을 것이다.”74)
이처럼 7항목에서 쯔빙글리의 후기 입장을 찾는 것은 어려운 작업이다. 다만 불링거가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 그리고 믿음의 필요성을 말하는 부분과 관련해서는 어느 정도 스승의 입장이 충분히 피력되었다고 사료된 다.
결론적으로 취리히에서의 합의문의 중요성은 16세기의 역사가들에 의해 널리 인정된 것처럼 교회에 의해 분열로 표시되고 연합에 대한 계획들이 퇴보하던 시대에 이 합의는 개혁주의의 주목할만한 교회일치의 성취중 하 나로써 두드러진다 하겠다.
이제 마지막으로 칼빈의 신학적 입장을 받는 장로교 목회자 후보생으로 개혁교회의 표상인 칼빈의 성찬론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왜냐하면 불링거 와의 합의문을 통해 개혁교회의 일치를 시도했다곤 하나, 그의 독특한 성 찬에 대한 교리가 확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취리히 합의서의 합의문을 근거자료로 하여 그의 성찬교리를 정확히 알기란 무리라 본다. 왜냐하면 그것은 교회의 일치를 위해 서로간의 양보로 이루어진 문서기 때문이다. 이에 프랑수아 방델(Franqois Wendel)교수도 이 합의문에서는 칼빈의 성 찬교리를 확보하기란 어렵다고 하였다.
“칼빈은 성찬의 문제에 있어서 불링거와 이해하는 데까지 나아갔으나, 그러나 이러한 동의는 너무나 많은 서로간의 반복된 양보를 통하여 얻어 진 것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동의가 구체화된 ‘제네바 일치 신조 (Consensus Tigurinus)는 진정한 칼빈주의 교리의 객관적 연구를 위 한 근거 자료로서는 믿을 만하지 못하다.”75)
이에 필자는 기독교 강요와 그에 관련된 신학자들의 객관적 자료를 통해 그의 사상을 알아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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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Timothy, “John Calvin and the agreement of Zurich”, pp.35-37.
69) Timothy, “John Calvin and the agreement of Zurich”, p.35.
70) Timothy, “John Calvin and the agreement of Zurich”, p.36.
71) Timothy, “John Calvin and the agreement of Zurich”, pp.35-36.
72) Timothy, “John Calvin and the agreement of Zurich”, pp.36-37.
73) 이성덕, “루터와 쯔빙글리의 성만찬 논쟁이 지니는 교회 정치적 의미”, p.15.
74) Timothy, “John Calvin and the agreement of Zurich”, p.31.
75) 프랑수아 방델, 김재성 역. 「칼빈 그의 신학사상의 근원과 발전」 (서울: 크리 스챤 다이제스트, 1999), p.401.
C. 칼빈의 성찬론 연구
1. 성찬의 의미
칼빈은 주의 만찬의 의미와 실체와 효과를 기독교 강요 IV, 17, 11-15.에 서 다루고 있다. 그는 성찬의 신비는 두 가지로 구성되고 있는 데 물질적 인 표징, 즉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으로써 우리의 미약한 능력에 따라 보 이지 않는 것을 나타내는 것과 표징들에 의해서 표현되며 전시되는 영적인 진리를 말한다.76)
의미는 약속에 포함되어 있으며 약속은 표징에 내포되어 있다. 본체 혹 은 실체는 죽었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시다. 효과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들에게 주시는 구속과 의와 성화와 영생과 그 밖의 모든 은혜들이다.77) 말씀과 분리된 표징은 힘이 없는 것이다. 약속이 우리에게 관념적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통해서 온다. 말씀의 설교와 성례의 진정한 성격이 보 여지는 성례시행의 둘의 내용은 동일하다. 둘다 의미하는 것은 예수그리스 도 그분이시다. 그것들 사이의 차이는 단순히 Form에 있다. 설교된 말씀은 보이지 않는 것이고 성례는 보이는 말씀이다.78)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언약이라고 부르신다. 그리고 그의 성례들을 언약의 표라고 하신다. 성례를 그 거울속에서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우둔함이 깨달을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성례를 통해서 우리에게 자신을 나타내시며 우리에게 대한 그 의 선하신 뜻과 사랑을 말씀에 의한 것보다 더 명확하게 확인하시기 때문 이다.79) 의미는 약속에 포함이 되며 의미는 표징을 내포한다고 말할 수 있 다. 여기에 덧붙여서 칼빈은 성찬의 신비에서는 떡과 포도주라는 상징들에 의해서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우리에게 제시된다고 말한다. 진정 우리에게 의를 주시려고 모든 순종을 완수하신 그리스도의 그 몸과 피에 의해서 제 시되는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첫째는 우리가 그와 한몸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며, 둘째는 그의 실체에 참여하게된 우리가 그의 모든 은혜에 참여함 으로써 그의 능력도 느끼게 하려는 것이다.80) 그러면 이것은 칼빈이 그리 스도의 몸의 공간적 임재를 말하는 것인가? 그것은 결코 그렇지 않다. 칼 빈의 임재에 대한 표현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의 몸은 인간의 몸에 공통된 일반적인 특색들에 의해서 제한 을 받으며 그리스도께서 심판자로 돌아오실 때까지(행 3:21) 하늘에 머물 러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을 다시 끌어다가 썩을 요소들 밑에 둔다거나 그 몸이 어디든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혀 합당치 못한 행위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또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할 필요가 없다. 주께서는 그의 영으로 우리에게 이 은혜를 주셔서 우리의 몸과 영과 영혼이 그와 하나가 되게 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연결의 줄은 그리스도의 영이시며 이 줄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그와 하나가 된다. 그리스도의 영은 수 로와 같아서 그리스도 자신의 모든 성질과 고유는 이 수로를 통해서 우 리에게 전달된다.”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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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Inst. IV, 17, 11.77) Inst. IV, 17, 12.
78) Inst. IV, 14, 6.
79) Inst. IV, 14, 6.
80) Inst. IV, 17, 11.
81) Inst. IV, 17, 12.
82) Inst. IV, 17, 10.
2. 성찬의 본체(실체)
우리는 그분의 본체에 참여하고자 성만찬에 초대되어 그리스도의 몸을 먹고, 그리스도의 피를 마신다. 이 제도의 말씀에 포함된 약속은 단순한 약 속으로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실제로 우리에게 약속하 신 것을 제공하신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표징으로부터 그 본체가 우리 에게 실제적으로 주어졌음을 추측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혹자가 하나님을 사기꾼으로 부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그분의 진리에 관 한 헛되고 무의미한 표징을 우리에게 내려 주셨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일 주님께서 참으로 우리가 떡을 떼는 가운데 그분의 몸에 참여하는 것으로 말씀하신다면 그분께서 그 표징을 항상 허락하심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리고 사실 신자들은 이 규칙을 항상 지켜야만 하는 것이니, 하나님께서 정하신 표징들을 볼 때에, 그 성 도들은 그 사물이 제시하는 진리가 그안에 포함되어 있음을 확실히 인식 하고, 그리고 그로 인해 확고히 믿어야 한다. 따라서 비록 가시적 표징이 불가시적인 것의 증여를 인치도록 우리에게 허락되어진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항상 몸의 표징을 취함에 있어서 우리는 몸 자체를 갖는다는 것 을 흔들리지 않는 확신으로 믿어야만 한다.”82)
따라서 이 제도의 말씀에 의하여 우리에게 약속된 것은 이 약속의 물질 적 표징으로 동시에 정말로 우리에게 주어진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질적인 요소들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와는 신중하게 구별하여야 한다.83)1541년 「성만찬에 관한 논문」에서, 칼빈은 우리가 기대하는 매우 명료함 으로 이 주제에 대하여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이제 만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정말로 떡은 그리스도의 몸이 며, 포도주는 그분의 피라는 것을 알고자 원한다면 떡과 포도주는 우리에 게 제시된 몸과 피를 상징하는 가시적 표징들이라고 우리는 답변할 것이 다. 하지만 몸과 피라는 이름과 명칭은 주 예수께서 우리에게 그와 같은 수단을 통하여 자신의 몸과 피를 부여하시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이런 형식과 표현의 방식에 대해서는 좋은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교제를 나누어야만 한다는 것은 우리의 눈으로 뿐만 아 니라 본성적인 판단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우리에 게 가시적으로 보여 주신 것이다.”84)
그리고 나서 그는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후 성령이 ‘한 마리 비둘기’의 형태로 내려 왔음을 ‘비슷한 사례로서’ 인용한다. 비록 세례 요한뿐이지, 성 령이란 그에게 보여질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러나 성령은 그 사람의 수용능 력에 따라서 그에게 나타난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써 교제 를 나누는 것은 바로 이러한 방법에 의해서이다”라고 칼빈은 계속 설명한 다. 성찬은 인간의 눈으로도 볼 수 없고, 인간 지성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영적인 신비(spiritual mystery)이다. 그러므로 성찬은 우리의 불완전함 때 문에 가시적 표징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상징화된다. 그러나 그 상징은 단순히 상징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며, 성만찬의 진리와 본성을 결합한 것 이다.
성만찬의 실체 혹은 본질은 죽었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신데85) 이것은 언약(Covenant)과 약속(Promise)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살펴봐야 한다. 칼 빈은 성례에서 그리스도의 진정한 임재의 교리를 가르쳤다. 이것이 그리스 도의 살의 교리를 포함하는 급진적인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그러나 칼 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이를 뒷받침하는 보기를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성 찬에 그리스도께서 계신다는 것을 확신해야 하지만 그리스도를 떡에 고착 시키거나 포함시키거나 어떤 방법으로든지 국한해서는 안된다. 또 그의 키 를 낮게 하거나 여러 조각을 만들어 동시에 여러 곳에 분배하거나 그가 하 늘과 땅에 가득한 무한한 부피를 가진 것으로 여겨서는 안된다. 이런 일들 은 분명히 진정한 인성에 배치된다. 그리하여 다음의 내용을 각인시킨다.
“우리가 결코 빼앗겨서 안되는 두 가지 제한이 있다.
(1) 그리스도의 영광을 감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를 끌어내려 이 세상 의 썩을 요소들 밑에 두거나 지상의 피조물에 고착시킨다면 그리스도의 하늘 영광을 감하게 된다.
(2) 인성에 합당하지 않는 것을 그리스도의 몸에 돌려서는 안된다. 그 리스도의 몸은 무한하다고 하든지 동시에 여러 곳에 계신다고 한다면 이 둘째 제한을 어기게 된다고 칼빈은 말하며 계속해서 주장하기를 이런 불 합리한 생각만 제거한다면 성찬의 거룩한 상징들에 의해서 신자들에게 표시되는 바와같이 주의 몸과 피를 참으로 또 실질적으로 나눠가지는 일 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라면 나는 무엇이든지 기꺼이 받아들인다. 즉 신자들은 상상력이나 이해력만으로 받지 않고 다름 아닌 영생을 위한 영양으로서 본체를 즐긴다는 뜻을 표현해야 한다.”86)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는 그리스도의 상(像)이 우리 속에 들어와서 우리 의 양식이 된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같이 생각되지만, 우리는 성령의 은밀한 능력이 우리의 생각을 초월한다는 것과 성령의 광대하심을 우리의 척도로 재는 것이 얼마나 미련한 것인가를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 의 지성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 즉 공간적으로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을 성 령께서 참으로 결합하신다는 것을 우리의 믿음이 생각하도록 해야한다.87)
성례에 있어서의 본질은 하나님의 은혜,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 된 자비와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 둘 다에 참여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 스도가 우리 밖에 머물고 우리가 그에게서 분리되어 있는 한 그가 고통받 고 우리를 위해서 하신 모든 일은 소용이 없고 우리에게 유익이 없음을 이 해해야 한다. 이에 칼빈은 그리스도와의 결합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또한 그에게 접붙여졌음을(롬 11:17) 그리고 그리스도와 합하 여 졌음을 말해야 한다. 내가 말한 것과 같이 그가 가지신 모든 것이 우 리가 그와 더불어 한 몸이 되기까지는 아무 것도 아니며 오직 성령이 그 리스도와 우리를 효과적으로 결합시키는 접착제이다.88)
이런 말은 성례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임재에 대한 것과 우리가 어떻게 그의 살과 피에 참여하는가에 대한 부분적인 답을 제공해 준다. 바 빙크(Bavink)는 주의 만찬이 본래는 음식이지만 부과적으로 그것은 그 자 체의 영적인 삶의 실체인 것이다. 칼빈의 견해를 좇는 바빙크는 실체를 깊 이 생각할 때 사람들은 먼저 생활에 주는 힘에 대해서 생각해야만 한다고 말한다.89) 칼빈 자신이 그리스도의 살과 피의 시여(施輿)라는 단어를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부터 얻는 힘으로 바꾸어 사용한다. 그리스도는 하늘에 계시고 하늘에 거하신다. 그리고 그의 살과 피는 주의 만찬의 실체이다. 그 리스도의 육은 하늘에 거하신다. 그러나 성령은 거리에 구애받지 않으신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신자의 영혼과 그리스도를 결합시키는 것처럼 성령께서 는 주관적으로 역사 하시고 우리 안에 있는 믿음을 강화시킨다. 성령을 통 해서 그리스도와 교제가 조정되고 성령을 통해서 하늘로 올리워진다.90)
칼빈은 그리스도의 임재에 대해서 우리의 생각이 지상에만 국한되어 있 음을 수정시키려는 결정적인 시도를 한다.
“마리아가 진정한 열성과 경외의 태도로 급히 주의 발에 입맞추려 했 을 때 하늘로 올리워 가실 때까지 만지는 것을 허락하시지 않고 금지하 신 것은 무슨 까닭인가? 하늘에서만 자신을 찾기를 원하셨다는 것밖에 다른 이유가 없다.”91)
스데반에게(행 7:55), 바울에게(행 9:4) 그리스도께서 보이셨다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시기 위해서 그의 처소를 바꾸실 필요가 없이 그의 종의 눈에 여러 층의 하늘에 꿰뚫는 맑은 시력을 주실 수 있었기 때 문이다.92) 그리스도께서 엠마오까지 함께 하신 제자들 앞에서 갑자기 사려 지셨다(눅 24:31)는 것은 주께서 알아 볼 수 없는 새모습을 취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눈이 알아보지 못하게 하셨다고 한다.
그러므로 성찬에서 살이 떡 속에 있지 않으면 살이 임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큰 과오를 범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내려 오시지 않으면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가 우리를 자신에게로 들어 올리신다면 우리는 그의 임재를 똑같이 즐길 수 있다.93) 그러므로 문제는 임재의 방법이다. 그리스도와 우리가 결합되기 위해서는 그를 지상으로 끌어내릴 필요가 없다. 신비는 천상적인 것이다.
결국 신성은 인성의 밖에서도 그리고 그 안에서도 존재하는 것임을 명확 히 함으로써 성만찬에 있어서도 그리스도의 인성이 신체적으로 현존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우리의 영혼이 하늘로 들려 올려져94)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 그리스도의 인성과 실제적인 연합을 할 수 있도록95) 인도하시는 “신비적인 연합”을 주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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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프랑수아 방델, 김재성 역. 「칼빈 그의 신학사상의 근원과 발전」, p.412.
84) 프랑수아 방델, 김재성 역. 「칼빈 그의 신학사상의 근원과 발전」, p.413. “재 인용”
85) “본체 또는 실체는 죽었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시다. 효과는 그리스도께서 우 리들에게 주시는 구속과 의와 성화와 영생과 그 밖의 모든 은혜들이다.” “Materiam aut substantiam voco Christum cum sua morte et resurrectione. Per effectum autem, redemptionem, iustitiam, sanctificationem, vitamque aeternam, et quaecunque alia nobis beneficia affert Chritus, intelligo.” : CO., II, p.1010.
86) Inst. IV, 17, 19.
87) Inst. IV, 17, 10.
88) Inst. III, 1, 1.
89) 이근삼, “칼빈의 성찬론” 고려대학교 신학대학원(1990), p.31.
90) Inst. IV, 17, 24-31.
91) Inst. IV, 17, 29.
92) Inst. IV, 17, 29.
93) Inst. IV, 17, 11.
94) 이 내용은 칼빈주의에 성만찬론에 있어서 아주 핵심적인 부분이다. Calvin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주께서 떡을 떼는 것으로 그의 몸에 참여하는 것 을 참으로 표현하신다면, 그가 참으로 그의 몸을 제시하며 보이신다는 것을 조 금도 의심할 수 없다. 경건한 사람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은 주께서 정하 신 상징을 볼 때마다 참으로 거기에 상징된 본체가 있다고 생각하며 확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께서 우리 손에 그의 몸의 상징을 쥐어 주시는 것은 우리가 참으로 그 몸에 참여한다는 것을 확신케 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따라 서 우리는 몸의 상징을 받았을 때 그 몸 자체도 받았다는 것을 똑같이 확신해 야 한다" : CO II, p.1009-1010.
"그러나 만일 우리가 눈과 마음을 가진 채 하늘로 들려 올라가서 그리스도의 나 라의 영광 속에서 그를 찾는다면, 상징들이 완전하신 그에게로 우리를 초대하 는 것과 같이 우리는 떡이라는 상징 하에 그의 몸을 먹게 되며 포도주라는 상 징 하에 그의 피를 따로 마시게 되어 결국에는 그를 완전히 즐길 수 있을 것이 다" : CO II, p.1015-1016.
95) 성만찬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인성과 실제적으로 연합한다는 신학적 사고는 매 우 중요한 부분이다. 로마 카톨릭이나 루터파가 성만찬에 있어서 인성이 떡과 포도주에 실제한다고 주장한 반면 개혁신학은 떡과 포도주에서 연합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에 의해서 하나님 우편에 계신 그리스도의 인성과 결합한다고 주장 했던 것이다. 참고로 하이델베르그 신앙고백 제76문과 79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3. 성찬의 효과
성찬의 효과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구속과 의와 성화와 영 생과 그밖의 은혜들이다. 성찬을 통해서 우리가 중보자와의 교제에 이르게 되면 그가 우리를 대신해서 획득한 그 모든 것을 받게 된다. 우리는 그리 스도의 살과 피에 참여함으로써 그가 당한 수난을 통해 우리에게 베풀어지 는 모든 유익을 누리게 된다. 우리를 위해 구원의 사역을 성취하신 그리스 도로부터 우리에 대한 결정적인 효능이 나온다는 사실을 간과해서 안된다. 성령을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진정한 교제를 가질 수 있고 모든 이익 에 참여할 수 있다. 경건한 영혼들은 이 성례에서 큰 확신과 기쁨을 갖는 다. 거기서 그리스도와 한몸이 되어 그의 것을 우리의 것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증거를 얻는다.96) 그 결과 우리는 그가 상속하신 영생이 우리의 것 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 또 그가 이미 들어가신 천국은 그에게서 분 리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우리에게서도 분리할 수 없으며, 그가 우리의 죄 를 마치 자신의 죄인양 지시고 우리에게서 그 책임을 면제해 주셨으므로 우리는 우리의 죄 때문에 정죄받을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이것 은 그리스도의 한량없는 인애로 말미암은 놀라운 교화이다. 그러나 신비주 의를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신비가들은 하나님께 ‘나는 당신’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신비적 연합에 있어서 신자들은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바빙크는 이 연합을 ‘이해할 수 없다’라고 한다.97) 그러나 이것은 자신의 능력이 이해할 수 있 는 한계에 도달한 것을 깨달은 것이지 주관주의적인 입장을 취하겠다고 말 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연합이라고 하는 것이 설명되어지는 것보다 경 험 되어져야 하는 것임을 말해준다. 바빙크는 신비적 연합의 교리를 주의 만찬에 대한 칼빈의 견해의 핵심이라고 말한다.98) 칼빈이 말하는 신비적 연합에 대해서 바빙크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신비적 연합 즉 신자와 그리스도와의 감추어진 비밀한 연합은 주의 만찬에 참가한 그 순간 뿐만인 것은 아니다. 엡5:30, 요6:51, 요7:21에 따르면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이며 성찬의 밖에서도 계속하여 그 와 하나로 남는다. 우리는 그의 살 중의 살이며 뼈중의 뼈이며 계속 그렇 게 남는다. 연합의 특성도 그렇게 존재한다.”99)
성례의 말씀에 대해서 어떠한 새로운 것을 더해주는 것도 아니다. 말씀 외의 다른 어떤 것도 아니다. 성찬식의 말씀은 그리스도는 자신을 위해서 가 아니라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자신이 인간적인 몸을 입으시고 희생하셨 다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준다.100)
주의 살과 피가 우리를 위해 주어졌고 흘려졌다는 사실과 우리의 구속과 구원을 위해 단번에 행해진 것이라는 사실을 믿게 될 때 성찬의 약속의 말 씀에 근거한 유익이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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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Inst. IV, 17, 2.
97) 이근삼, “칼빈의 성찬론” 고려대학교 신학대학원(1990), p.33.
98) 이근삼, “칼빈의 성찬론”, p.33.
99) 이근삼, “칼빈의 성찬론”, p.34. “재인용”100) Inst. IV, 17, 3.
III. 결론
종교개혁 세력 내부의 성만찬 논쟁은 칼슈타트(Andreas Bodenstein von Karlstadt)가 공개적으로 루터의 성만찬에서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임재 (Realpräsenz)’설을 비판하고 영적인 임재를 주장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이 후 많은 초기 개혁자들은 자신들의 성찬교리를 견고히 세워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견해를 요구받고, 그 내용에 따라 많은 오해가 있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더욱더 확고히 성만찬에 관한 신학적 작업이 필요했다.
쯔빙글리의 성찬론에 대한 초기 사상도 이러한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쯔빙글리의 성찬에 관한 초기입장은 에라스무스와 호엔의 영양 으로 인해 다분히 상징적 해석을 하여 기념설을 주장하였다. 또한 떡과 잔 에 그리스도의 실재성을 부여한 로마 카톨릭과 루터의 사상을 반박해야 했 기에 기념설을 확고히 하였다.
그러나 마르크부르크 회담 이후 쯔빙글리의 성만찬 이해에 변화가 있었 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쯔빙글리는 성례전에 임하는 그리스도의 실제 적이며 성례전적 차원을 긍정하기 시작했다. 이에 후기 입장은 분명히 영 적 임재설을 주장하였음이 확신하다. 왜냐하면 성찬에 관한 설교가 그것을 입증하기 때문이다. 1530년과 1531년에 걸쳐 아우구스부르크 화의(Diet of Augusburg)를 위해 작성된 “신앙의 해명(An Account of the Faith)”에서 그리고 “독일제후들에게 보내는 편지(The Letter the Princes of Germany)”에서 그는 성찬에 임재하는 그리스도의 실제적 측면을 받아들 였다. “신앙의 해명”의 부록에서 그는 다음처럼 말한다.
“우리는 진실로 그리스도가 주의 만찬에 임재하는 것을 믿는다. 그리 스도가 임재하지 않으면 이것은 주의 만찬이 될 수 없다.”101)
필자는 그의 후기 입장을 좀더 확보하기 위해 그의 후계자, 불링거와 칼빈 사이에 이루어진 취리히 합의서를 연구하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본 합의 서를 통해서 그의 후기 입장을 객관적으로 얻을 수 없었다는 것이 많은 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취리히 합의서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었다. 그것은 16세기의 역사가들에 의해 널리 인정된 것처럼 교회에 의해 분열로 표시되고 연합에 대한 계획들 이 퇴보하던 시대에 이 합의는 개혁주의의 주목할만한 교회일치의 성취중 하나로써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쯔빙글리의 후기에 쓰인 저서들은 분명 ‘영적임재설’에 근접해 있었음이 분명하다. 이러한 연구를 더하기 위해선 필자는 그의 후기 저서 들을 연구해야 함을 충분히 인식하였다.
마지막으로 칼빈의 신학적 입장을 받는 장로교 목회자 후보생으로 개혁 교회의 표상인 칼빈의 성찬론을 살펴보았다. 왜냐하면 불링거와의 합의문 을 통해 개혁교회의 일치를 시도했다곤 하나, 그의 독특한 성찬에 대한 교 리가 확고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본 연구로 성찬의 의미와 실체와 모 든 유익을 깨달을 수 있게 될 것이며 인간의 우둔함을 위하여 가시적인 말 씀으로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려 하기 때문이다.
칼빈의 성찬론을 살펴봄으로써 성찬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수준에까지 낮추심으로 우리의 신앙을 북돋아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탁 월한 본보기임을 알 수 있었다. 그에 의하면 성찬은 단순히 그리스도의 과 거의 사역, 곧 죽으신 그리스도와 관련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현 재의 영적 사역 곧 영광 중에 살아 계신 그리스도와 관계가 있었다. 칼빈 은 그리스도께서 물론 육체적으로 그리고 장소적으로 성찬시에 임재하시지 는 않지만, 몸과 피를 포함하는 전인(全人)으로서 임재하시며 또한 향유된 다고 말한다. 그는 신자들과 구주의 전인격과의 신비적인 연합을 강조하는 것이다.102)
결국 신성은 인성의 밖에서도 그리고 그 안에서도 존재하는 것 임을 명확히 함으로써 성만찬에 있어서도 그리스도의 인성이 신체적으로 현존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우리의 영혼이 하늘 로 들려 올려져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 그리스도의 인성과 실제적인 연합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신비적인 연합”을 주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성찬을 시행함으로써 주의 백성들이 누리게 되는 유익은 그리스도 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구속과 의와 성화와 영생과 그 밖의 모든 은혜들 이다. 우리가 그 안에 거하게 되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예수그리스도께서 당한 수난을 통해 우리에게 베풀어지는 모든 유익을 누리게 된다. 끝으로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눅22:19)’는 주님의 명령은 지속적이며 무제한 적 반복으로 시행하라는 것이다. 그럼으로 우리는 주님이 오실때까지 감사 함으로 성찬을 지키며 그리스도의 은혜를 늘 새롭게 하며 이 사실을 증거 해야 할 것이다.
칼빈주의적 입장에서 볼때 오늘날 우리의 성찬의 모습에서 단지 기념적 이고 상징적인 분위기가 잠재하는 것은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쯔빙글리도 그의 후기저서들에서는 영적 임재설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 러나 아직도 교회에서는 성찬시에 기념설로만 그치는 곳이 많이 있다. 그 리고 우리가 1년 2차정도 성찬을 시행함에 반해 초대 교회와 종교개혁가는 매주 시행함으로써 믿음을 강화시키며 은혜를 유지하였다. 이것은 우리가 깊이 고찰해야 할 문제이다. 이제 교회는 영적으로 임재하시는 전적인 그 리스도를 성찬을 통해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깊은 교제로 만나기 위해 경 건한 마음으로 자주 시행하는 것이 옳다 사료된다. 이것이 메말라 가는 교 회에 귀한 가르침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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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Z VI ii.806. 6-17; VI iii. 263.3-265.19. cf. W.P.Stephens, Zwingli : An Introduction to his Thouht, 106. “재인용”
102) Louis Berkhof, 권수경.이상원 역 「조직신학 下」(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 트, 1991), p.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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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鍾成(安養大學校 神學大學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