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연말도 조용히 지나기는 글렀다. 미국에선 ‘살인경관’들에 면죄부를 준 배심을 규탄하는 시위로, 한국에선 청와대 비밀문건을 유출했다는 ‘비선 실세’들의 권력암투 얘기로 연일 시끄럽다. 하지만 전래의 푸근한 연말분위기를 되살려주는 것도 있다. 라디오다. 미국 전역의 500여 라디오 방송은 추수감사절 이후부터 계속 크리스마스 뮤직을 틀어주고 있다.
성탄절이 쇼핑절로 전락한지 오래지만 크리스마스 뮤직이 ‘매직’인 건 변함이 없다. 듣는 사람들이 십중팔구 먼 옛날 시골에서 가족친지들과 풍족하지는 않지만 행복하게 보냈던 겨울날의 애틋한 추억을 떠올린다. 야간 통행금지가 연중 유일하게 해제돼 서울거리가 인파로 메워졌던 60~70년대 한국 크리스마스를 떠올리는 장·노년층 한인들도 많을 터이다.
빙 크로스비의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세대를 초월한 크리스마스 뮤직이다. 크로스비와 프레드 애스테어가 공연한 영화 ‘홀리데이 인’(1942)에 삽입돼 그해 오스카시상식에서 최우수 원곡 음악상을 받았다. 미국 음반산업협회는 전 세계적으로 2,000여만 장의 싱글판이 발매된 이 노래를 ‘무지개 넘어’(주디 갈란드)에 이어 20세기의 No.2 히트송으로 꼽는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작곡한 어빙 벌린은 본명이 이스라엘 베일린이다. 러시아 태생의 유대인으로 나치 수용소를 탈출해 미국으로 망명했다. 크로스비 외에 수백 명이 이 노래를 불렀다. 그중 바브라 스트레이샌드, 닐 다이아몬드, 닐 세다카, 아이디나 멘젤, 케니 G(시애틀 출신 색소폰 주자) 등도 유대인이다. 팻 분과 프랭크 시나트라 버전도 크게 히트했다.
가장 흔히 듣는 크리스마스 뮤직은 역시 '징글 벨’이다. ‘화이트…’보다 무려 84년이나 먼저 탄생했다. 원 제목은 가사에도 나오는 ‘한 마리 말이 끄는 덮개 없는 썰매’다. 교회 오르간 반주자였던 제임스 피어폰트가 매사추세츠주 메드포드의 한 술집에서 작곡했다는 설이 있다. 이 노래의 탄생지가 메드포드임을 선포하는 비석이 그 도시 광장에 세워져 있다.
‘고요한 밤’도 있다. 1818년 12월23일 오스트리아의 한 시골 성당이 오르간 고장으로 비상이 걸렸다. 반주자인 프란츠 그루버가 조셉 모르 신부의 시에 부랴부랴 곡을 붙여 다음날 이브 미사에서 기타반주로 함께 불렀다. 이 캐롤은 정식 찬송가가 돼 오늘날 300여 언어로 전 세계에서 불린다. 유네스코는 이 노래를 2011년 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크리스마스 음악을 라디오 아닌 라이브로 즐길 수도 있다. 시애틀심포니와 합창단이 헨델의 ‘메시아’를 베나로야 홀에서 21일까지 공연한다. 벨뷰의 ‘눈송이 길’(벨뷰 웨이)에선 24일까지 매일 밤 크리스마스 쇼가 펼쳐진다. 합창대 보트가 23일까지 매일 밤 레이크 워싱턴을 순회하며 호반에 모인 주민들에게 캐롤을 들려준다. 그 배에 10여년 전 탑승했었다.
크리스마스가 주는 축복 가운데 하나가 바로 풍성한 연말 음악행사다. 대다수 한인교회들도 성탄 찬양제를 치렀거나 준비하고 있다. 페더럴웨이 청소년 심포니오케스트라는 오늘(13일) 저녁 6시 페더럴웨이 제일 장로교회에서 연례 성탄공연을 갖고 캐롤과 클래식 성가를 연주한다. 이 오케스트라는 지난 8월 한국순회 초청공연을 가졌을 정도로 실력이 알차다.
연말에 눈코뜰새 없이 바쁜 사람들도 꼭 가볼 성탄음악회가 하나 있다. 올해 20년째를 맞는 ‘머킬티오 크리스마스 콘서트’다. 고 안성진 목사의 후손들이 세운 ‘안씨 가족재단’이 매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여는 이 콘서트는 원래 이웃 미국인 주민들을 위한 감사음악회로 출발했는데 요즘은 청중의 절반가량이 한인이다. 그 수준이 워낙 높아 해마다 만원사례다.
오는 18일 저녁 7시30분 린우드의 트리니티 루터란교회에서 열리는 올해 콘서트의 출연진에는 저명한 한인 바이올리니스트들인 박관빈씨와 남궁 유리씨도 포함됐다. 안목사의 외손들이다. 나라 안팎이 시끄럽고 흥청망청 송년회로 주위가 어수선한 연말에 많은 한인들이 이 음악회의 아름다운 선율 속에서 옛날 크리스마스 추억에 잠겨보시기를 권한다.
12-13-2014
첫댓글 저희 교회 성가대도 해마다 12월에 열리는 찬양제에 나가기 위해 10월부터 열심히 연습했는데
드디어 오늘이 찬양제 날입니다.
바쁜 생활이지만 많은 사람이 음악과 함께 연말을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