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 뿌리보다 더 희고 긴 수염을 기르신 할아버지는 서당 훈장님이셨고,
배꽃 머리에 인 할머니는 지팡이가 친구였다. 두 분은 월출산 서편
두메까지 흘러오셔서 초가와 함께 늙어갔다.
어디서 오셨는지 또 어디로 가실 것인지 아는 이가 없었다.
생면부지 할아버지를 서당 훈장님으로 모시도록 고고한 모습과
학식이 높다는 것이 전부였다. 수입원이라고는 36호 마을 서당에서
나오는 오곡이 고작이었고 재산이라고는 마당에 배나무 한 그루뿐이었다.
안개에 싸인 진달래가 몹시 곱던 날, 두 분이 월출산에서 내려오신 것이라고
확신했다. 온화한 뺨에 하얀 수염의 할아버지와 진달래처럼 고운 할머니의
모습에서 다른 생각은 끼어들 틈이 없었다.
흐르는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가 홀연히 떠오르는 진달래를 본 사람은 단박에 안다.
안개꽃으로 붉은 장미를 감싼 기법을 어디서 모방했는지를.
시원한 할머니네 배를 얻어먹던 시절은 그렇게 오래가지 못했다.
붉은 동백꽃이 맥없이 툭툭 빠질 때 할아버지 역시 한 송이 동백이 되고 말았다.
동네 분들이 멘 상여가 장지로 떠난 뒤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상여를 멨던
손들은 서당으로 냈던 할아버지 진짓상을 허둥대며 할머니네로 방향을 돌렸다.
할머니 집에서 두 번째 곡소리가 흘러나온 것은, 내 주먹만 한 배를
마구 떨어뜨린 태풍이 지나간 아침으로 기억된다. 부고 한 장 돌릴 데 없는
할머니의 부음을 어머니는 하늘에 계신 할아버지께 전했다. 친정어머니를
잃은 막내딸처럼 흐느끼는 어머니 등을 경순이 엄마가 쓸어내렸다.
“할아버지 뵈러 가셨네요. 훈장님이 가실 때 <대감님! 조금만 기다리세요.
곧 모시러 가겠습니다>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일찍 가신 거예요. 인제 그만 보내드려요.”
“할아버지가 떠나시고, 할머니는 부엉이 우는 대밭 골의 밤이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을까.
나는 옆집에 살면서 가시는 것도 못 보고….”
배꽃처럼 곱던 하얀 쪽 찐 머리, 자애로운 눈빛으로 나를 감싸주시던
영원한 내 편 할머니는 그렇게 무지개 다리를 건너버렸다.
내 뜻하고는 전혀 딴판으로 세월 저 혼자 제멋대로 흘러가더니
눈보라가 몰아치던 날, 두 분이 가만히 불러도 들릴 거리에
우리는 아버지 산소를 쓰고 말았다.
삶을 개척하겠다고 고향을 등진 나에게 세월이 이번에는 신체검사
통지서를 날려 보냈다. 빛고을 역을 나서면서 준비한 술과 배가 든 보자기를
들고 어머니를 따라나섰다. 보리밭 가운데에 모신 아버지 산소 주위를 청보리가
물결쳤다. 준비해온 제주를 올리고 어머니께 여쭈었다.
“어머니! 저 산 어디쯤 오산 할머니가 계시나요? 다복솔이 많아서 당최.”
“저기 잔솔밭 아래쯤일 것이다.” 어머님의 약지는 공동묘지 중간쯤을 가리켰다.
“두 분은 어디서 오셨습니까.”
“할머니 택호가 오산댁이라 했으니 경기도 오산 어디쯤이 아닐까 싶다.”
“그 먼 곳에서 이런 두메까지 왜 오셨지요? 그리고 자식이나 친척은 한 사람도 없었답니까.”
“글쎄다. 고향을 물어도 말씀이 없으셨으니 위독할 때도, 돌아가신 뒤에도 연락할
곳이 없지 않았느냐. 할머니가 하녀였기 때문에 도망 왔다는 이야기도 있고….”
어머니가 말끝을 흐렸다.
“도망을요? 제가 어렸지만, 절대로 죄짓고 도망 올 분들 같지 않았어요.”
“애야, 남녀 관계를 제삼자가 어떻게 알겠느냐?”
“네? 그럼 그 옛날 차보다 우마차가 더 흔하던 시절에 대감님과 하녀가 머나먼 남녘까지 사랑의 도피를?”
정자관을 쓴 의젓한 할아버지와 수줍은 많던 할머니 두 분 어디에 그런 용기가 있었을까.
삼강오륜의 유교가 저녁놀처럼 붉게 타오르던 시절에 가족을 등지시다니. 이는 곧
자신의 뿌리를 자신의 손으로 싹둑 잘라버리는 행위로서 직계존속에 대한
패륜이라는 단어를 불러오도록 무모한 행동이 아니던가?
뿌리에 대한 애착이 우리만큼 집요한 민족이 또 어디 있을까. 예로부터 족보는
피와 혈연의 역사로써, 중국의 종보와 일본의 가보하고는 비교할 수 없는 존재로 군림했다.
집에 불이 났을 때도 제일 먼저 안고 뛰게 하더니 결국에는 ‘여우도 죽을 때면 제 살던 굴
쪽으로 머리를 둔다’라는 말까지 낳고 말았다. 미물인 짐승도 이러하거니와 하물며 임종을
앞에둔 할아버지임에랴. 그런데도 할아버지는 고향 주소를 모른다고 고개를 흔들어
대밭 골 사람들의 애를 태웠다.
나도 처음에는 <학식 높은 할아버지가 낳고 자란 고향 주소를 진짜 잊었을까>
라는 의문이 일었지만, 오랫동안 머리를 짤 필요는 없었다. 임종은 앞둔 할아버지의
신음 속에 행여 고향 주소가 흘러나왔다면, 발 빠른 인편은 득달같이 할아버지 고향으로
달렸을 것이고, 할아버지 소식에 목이 타던 가족들은 가출한 가주를 찾아서 송골매처럼
날개를 활짝 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저승사자처럼 달려든 할아버지 가족 앞에, 야반도주를 저지른
허물은 누구에게 돌아갈까. 임종을 앞둔 할아버지일까. 수발들던 하녀일까.
천륜이라는 뿌리도 끊어버리고 죽음도 막지 못한 할아버지의 사랑 앞에서
나는 그만 목이 울컥 울렁거렸다.
자기 몸을 태우던 촛불이 마지막을 장식하는 회광반조回光返照 처럼 찬란하게
사랑의 불꽃을 태우신 할아버지! 이 얼마나 멋지고 의연하신가.
무릇 사내라면 이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
사랑을 이루지 못해 죽음으로 막을 내리는 책 속의 주인공들보다 우리 훈장
할아버지가 한 수 위라고 단언하면서, 두 분의 뿌리를 찾을 요량으로 날개
돋친 생각을 활짝 폈다. 오산 주변을 북으로 수원, 동으로 용인, 남으로
평택을 훨훨 날아 서해안 쪽으로 방향을 잡았을 때였다.
“애야 남은 음식은 저곳(공동묘지)으로 보내 드려라. 저분들은 명절에도 떡 하나
못 드신 분들이 많을 것이다.” 상념의 하늘을 날던 나를 끌어내린 어머니의
손끝에는 두 분의 사랑처럼 분홍 진달래가 봄바람에 살랑거렸다.
할머니가 진달래 뿌리를 잡고 흔들며 나에게 속삭였다.
“애야 울지 마라. 배하나 줄 테니까.”
“아니에요. 할머니! 오늘은 제가 배를 가져왔어요.”
생각해 보니 매년 열리는 할머니네 재산 절반은 내가 축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강산이 두 번 변하고서야 할머니께 드릴 배 하나를 깎고 있었다.
이웃집 꼬맹이를 사랑으로 감싸 주시던 할머니의 치마폭, 나의 통곡의
벽을 찾아 토끼풀 속에 얼굴은 묻었다. 할머니의 부드러운 손길 대신
봄바람이 툭 튀어나온 뒤통수를 건들고 간다. 더 숙이라고, 할머니는
스무 해 걸린 몽니쟁이 네놈 발바닥보다 더 낮은 곳에 계신다고.
떠나리라.
진달래 뿌리 흙 두 줌 안고,
산 넘고 물 건너 대밭 골에서 오산으로.
뿌리를 찾아 아프리카 주푸레 마을로 떠난 헤일리처럼.
봄이어야 하리. 월출산 에움길은 뻐꾸기 소리에 귀 열고,
영암 청보리밭에서는 종다리 노래를 길라잡이 삼아야 할 테니까.
첫댓글 사랑 사랑 사랑이 이세상에 없으면 종족의 보존이 어럽겠지요
남녀간의 사랑이 없으면 문학 작품은 이땅에 없었겠지요
영국의 누구도 왕자를 버리고 사랑을 택했다지요
그 할아버지가 참으로 멋지십니다~
맞습니다. 맞고요. ^^
임종을 앞두고 고향을 묻는 마을분들께
할머니 잘 부탁드린다는 말씀만 하셨다고 전해옵니다.
할머니 할부지 떳떳지
못한 사랑이엇지만,
진실하고 깊은사랑이
아름답게 느껴지게 됩니다.
저도 젊을적 떳떳지 못한
목숨까지건 사랑이
있엇어요.
하지마는 혈육에 대한
사랑 책임때문에 피눈물
머금고 돌아섯지요.
그분들 참 대단하신
분들이고 모질기까지
하셧네요.
평범한 사람은 저처럼
근접하기 조차 어려운
영역 같습니다.
금박사님께서 더욱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을 행동으로 옮기셨잖아요.
궁금하지 않으세요?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살까. ^^
@하테스 바람결에 들려오는
소식통에 의하며는
그리 어여뻐던 얼굴이
몇년새에 파삭 늙어
버렷다 하데요.
그소리 듣구 또 더 마음이
아팟지요.
보낼때 일부러 심부름 센타
애들 한테 위치노출 시켜서
보냇는데??
다시 도망왓데요.
둘이서 강릉이나 울진
으로 다시 도망가자고
속이 다 문드러지는듯
햇지마는 그게 마지막 본
모습 얏습니다.
행여나 만나게 되면 외면
하구 피하려 햇지마는 세월이
훌쩍 흐르고 보니 흐름 운명
대로 냅두려구 하지요.
@금박사 “하룻밤 안에 4자씩 250구절 시를 짓되,
한 글자도 같은 글자를 쓰면 안 된다.”는 천자문을
만든 주흥사는 하룻밤 새에 머리가 하얗게 세었다는 고사가 전합니다.
잘읽고 갑니다.
고향은 결국 진달래 뿌리와
훍 두 줌이겠습니다.
설익은 글 압축해 놓으면 그렇게 되느것 같습니다.
소중한 답글 감사드립니다. _()_
하테스님의 수준높은 한편의 문학작품을 감명깊에 잘보았습니다
뿌리라는 주제로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살아오신 삶들이 한 편의 아름다운 언어로 그려지며
하테스님의 풍부하신 상상력으로 독자들이 빨려들어감니다 좋은글 한편이 마음을 편하게 아여줌니다
더구나 내가 좋아하는 월출산 주변의 이야기가 아주 흥미롭습니다 하테스님의 수준높은 글을 읽으면서 시공부를 할때
미당 서정주님의 인간의 '영원성' 이란 사상으로 윤회설이 생각이 나며 대지모신(大地母神)사상이 생각이 남니다 감사합니다
하이고! 대선배님 어줍잖은 글에 금칠을 해주셨네여. ^^
연륜 깊은 답글에 감사드리면서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매일 해가 빠지면 월출산 자락을 타고 넘나들면서
녹차 한잔으로 지난 시절을 되돌아봅니다.
연이 닿은 날 월출산 녹차 대접하겠습니다.
문학작품
한 편을 보는듯
참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소중한 답글에 감사드립니다.
바야흐로 무더위 시절로 넘어갑니다.
건강 챙기시며 슬기롭게 가을을 맞이하시길 바랍니다._()_
사랑 하나에 다 묻어버리는 용기~저는 못 따라 가서 슬퍼집니다~^^
워메! 좋은사탕님 못 따라 간 것 여기에 내려놓으셔요.
하테스가 추천 한 번 꽝 하고 때리겠습니다.^^
어린소년의 눈으로 본
훈장할아버지와 다정한 할머니의
모습을 나이들어 생각해보는
궁금중과 사랑의 감정--??-
좋은글 잘 감상하고 갑니다..!
답글 감사합니다.
지인님 글도 올려주시지요.
잘 쓰실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할머니집이 지금은 텃밭이 되었습니다.
텃밭에는 80이 넘은 부부가 당신들 먹거리를 기릅니다.
저보고도 마당을 텃밭을 만들어서 사먹지 말라고 권하네요. ^^
파 뿌리를 할아버지의 수염에.
배꽃을 할머니의 하얗게 쎈 머리의 비유와
우리네가 편히 읽어 낼 수 있는
함축적인 의미의 글로
사랑은 과연 무엇일까...라는 그 의미를
떠올려 생각하게 하는 곱디 고운 글.
툭툭~ 던지듯이 묘사한 글 사이로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이 보이고
어린 소년 하데스님의 마음이 보입니다.
뿌리마저 끊고 사랑을 이은
두분이 떠나온 시절의 나이대를 모르니
자꾸만 이는 궁금증 하나는
콩 마음에 그냥 담아갈까봐요.
그렇게 사랑하는 두분에게
왜 아기는 없었을까?? 하는....
정말 잘 감상하고 갑니다.
하데스님의 글은 몇번 대하지 않았지만
가히 자랑할 만 합니다.
호! 시덥잖은 글에 훌륭한 답글을
주셨습니다. 허투루 넘기지 않고
차분하게 감상한 분 맞습니다 맞고요.
깜장콩님 글 기다리겠습니다.
차분하게 감상할 준비가
되어있으니 염려마시고...^^
남은 음식 저 공동묘지로 보내 드려라 하시는 어머님 인정
사랑과 인정이 세상에 있어야 우리는 사람답게 살 수 있겠지요
글을 읽다 보니 작가 김원일 선생의 사랑의 길이란
작품이 떠오릅니다 작가의 마당깊은 집의 작품보다
한 참 뒤에 나온 이 사랑의 길이란 작품에 굉장히 몰입 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그때만해도 사랑이란 매력에 관심이 많았던 시기였던 거 같기도 ㅎㅎ
작품 자~알 읽었습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운선선생님을 몰입시킨 그 사랑의 길을 찾아보겠습니다.
월출산 서편 두메까지 45인승 이동 도서관이 오는 바람에
책을 빌려보고 주문한 책을 찾아다 주기도 하거든요.
소중한 답글 감사드립니다. _()_
순애보 한편을 감동심을 가지고,
매우, 매우 특별하게 잘 보았습니다.
저들의
대단한 용기로 완성한
사랑의 결실과 완성에 관하여
격하게 감동과 감격입니다.
승리는
용감과 용기있는 도전자의 몫(!)입니다.
고맙습니다.
동연문선보선생님 감사드립니다.
떫은 글에 분에 넘치는 답글을 주셨습니다.
"동연"은 호, "문선보"는 함자가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하였습니다.
재치가 넘치는 아래(웹툰?)을 보고 아하! 소리를 질렀습니다. ^^
사랑도 좋은 시절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할아버지의 사랑이 족보보다 높은 것이네요.
글로 보아선 난픽션인데
하테스님의 글솜씨가 단편소설 같습니다.
고귀한 사랑이
신분을 뛰어 넘었습니다.
하녀의 신분으로선
감내할 수 없는 행복이지요.
그러나 시대적으로 보아선,
할아버지를 제 자리로 돌려 놓는 것이
할머니의 진정한 사랑일 것 같아요.ㅎ
관심어린 답글 감사합니다.
목숨까지 내놓은 사랑의 도피가 얼마나 감내할 수
없는 행복인지 당사자가 아니라서 단언하기 어렵습니다만,
이웃 마실 한 번 못하고 외부 사람들에게 발각될세라 담보다
더 구부리고 살았습니다. 필요한 물품은 어머님이 5일장에 구해 주었지요.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가
생각나는군요
원인과 과정은 그 결이 좀 다르지만~
할아버지 할머님도 그분들만의
주푸레 마을을 얼마나 한이맺히도록
그리워 하셨을까요
두분의 사랑과 삶의 여정이
후손의 손길에 의해 재 조명 되었다는 사실은
그분들의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이
세상 모든이들에게 귀감이 될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유불문
감명깊게 다가온 글
마음에 새겨두고
청보리가 익어가는 영암 마을
하테스님 서재에 구월이 오면~
월출산에 떠오르는 보름달만큼
반가운 소식이 전해지시길 진심으로 바라며
응원합니다.
지혜롭게 사는 길을 찾는 남녘의 오후,
자신의 작은 역량마저 녹아 내릴 것 같은 열기
속에 시간은 가는데 흔적 없는 하루의 5시 앞에서,
새여울님의 글이 월출산을 넘어 하테스에게 왔습니다.
“너 곧잘 하고 있다.”는 직언은 없었지만,
최선을 다하는 지금, 내가 가는 길이 잘못
든 것은 아니겠다는 생각을 불러왔습니다.
오랜만에 온 편지를 함부로 뜯지 못하는
운둔자처럼 오신님 발자취를 더듬었습니다.
“소띠방 / 볼링 동호회”
진정한 고수는 따로 계신다는 생각입니다.
특히나 “아름다운 이별!”은 운둔자가 주변을
너무 신경 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녁 산책길에서 모빌 폰 저쪽 친구가
“풀벌레 소리가 참 크게 들린다.”고 했지만
운둔자는 엉킨 생각들을 토하기 바빴으니까요.
그 8월, 눈앞에 다가온 지금 아름다운 이별이
종자기를 위한 백아의 탄금 연주가 이어져
아름다운 재회가 되기를 고대합니다.
마음을 싰는 배려에 감사올립니다._()_
백아절현伯牙絶絃의 고사가 생각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