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 217(또 다른 시작)-5
풍운과 명운은 비밀통로를 통해 금산반의 집으로 나와 반역자들과 대륙상회의 책임자들이 모여 있는 광장(廣場)으로 갔다. 금산반은 명운과 함께 오는 40대 중반의 사내로 역용한 풍운을 보고 눈을 가늘게 뜬다.
“풍운님?.........또 역용하신 겁니까?”
“예! 혹시 무림군의 첩자가 있을지 몰라 역용했습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요. 지금 모습을 보고 누가 풍운님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그런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저를 보자고 하신 이유가 뭡니까?”
풍운의 질문에 금산반은 명운이 작성한 책자를 풍운에게 내밀었다.
“이미 보셨을 겁니다. 책자에 적힌 죄질에 따라 놈들을 따로 모았습니다. 이중에서 어떤 놈을 죽이고, 어떤 놈을 용서해야 할지 풍운님의 의견을 듣기 위해 오시라고 했습니다.”
풍운은 금산반이 내민 책자를 빠르게 넘겨보더니 다시 금산반에게 내밀었다. 먼저 명운이 준 책자의 내용과 별반 다른 내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금산반이 책자를 다시 받자 풍운은 장내에 포박(捕縛)된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왼쪽 모여 있는 사람들은 상관장로에게 넘어가 림산이 사해방과 상관장로의 손아귀에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중원 각지에서 모여들었다가 금이가 이끄는 철갑기동군의 포로가 된 상인들이며, 중앙에 있는 사람들은 사해방과 상관장로를 따르던 무사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오른쪽에는 이번 반역의 핵심인물들인 사해방의 육철량과 그와 뜻을 같이했던 사해방의 책임자들 그리고 상관장로 일행이 모여 있었다. 풍운은 광장에 잡혀 있는 사람들을 둘려보고 금산반을 비롯한 대륙상회의 책임자들을 바라보았다.
“금산반님과 여러분께 몇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지금 모여 있는 반역자들을 대륙상회의 회칙대로 처리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왼쪽에 있는 놈들은 모든 재산을 본회에 귀속(歸屬)시키고 축출(逐出)하여 다시는 본회에 발도 못 붙이게 합니다. 중앙에 있는 놈들은 본회 회원들의 생명과 재산에 막대한 손해(損害)를 끼쳤기 때문에 모두 죽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오른쪽에 있는 놈들은 이번 반역(反逆)의 핵심주동자들이기 때문에 당사자는 능지처참(陵遲處斬)하고 가족들까지도 모두 잡아들어 죄를 묻게 되어 있습니다.”
“일부를 제외하면 모두 죽여야 한다는 말이군요.”
“회칙대로 하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제가 저들에게 몇 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풍운이 죄인들을 가르치며 말하자 금산반은 잠시 망설이다가 풍운의 뜻대로 하라고 한다. 풍운은 광장으로 내려가 왼쪽에 있는 상인들을 둘려보니 상인들은 얼굴도 못 들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중앙에 모여 있는 무사들을 둘려보니 자신들이 죽을 것이라 확신하고 사색(死色)이 되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풍운은 상인들과 무사들을 둘려보고 오른쪽에 앞에 있는 상관장로의 앞에 멈추었다.
“당신이 상관장로입니다.”
상관장로는 이미 삶을 포기했는데 무심한 눈길로 풍운을 바라보았다.
“너는 누구냐?”
“제가 누군지는 중요치 않습니다. 당신께 반론(反論)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해보세요.”
“허허허~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을 되찾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너희 놈들 입장에서 보면 반역이겠지. 지금 상황에서 내가 어떤 말을 한들 너희들 귀에 들어가겠느냐? 나는 실패했고 너희들은 승리했다. 더 이상 모욕(侮辱)을 주지 말고 죽어라.”
상관장로는 더 이상 할말이 없다는 듯이 눈을 감아버린다. 풍운은 이번에는 외팔이가 된 육철량의 앞으로 갔다.
“당신이 육철량이죠. 당신에게도 반논 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저, 저는 배화교와 상관장로의 꼬임에 넘어가 참여했을 뿐입니다. 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
“당신 말씀대로라면 당신은 반역(反逆)할 뜻이 없었는데 배화교와 상관장로가 충동질해서 억지로 이번 반란(反亂)에 참여했다는 말씀 입니까?”
“예~ 맞습니다. 저기 상관장로 놈이 예전부터 금산반님을 욕하며 자신이 회장이 되면 우리 사해방을 주축으로 대륙상회를 운영하며 차기 회장을 시켜준다고 꼬셨습니다. 저는 그 말만 철석같이 믿고 바보처럼 이번 반역에 가담한 겁니다.”
육철량이 머리를 조아리며 하는 말에 풍운은 살기(殺氣)가 치밀었다. 이번 반역의 주역은 육철량과 상관장로다. 그런데 육철량은 모든 죄를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고 자기만 살겠다고 발버둥치고 있다. 풍운은 쓰게 웃으며 육철량의 옆에 있는 장비처럼 생긴 사내의 앞으로 갔다.
“당신은 누구죠.”
“곧 죽을 놈의 이름은 알아서 뭐해. 그냥 죽어.”
“궁금해서 여쭈어보는 겁니다.”
풍운은 사해맹룡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실질적으로 대면(對面)한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물론 림산전투시 적진(敵陣)에 침투하여 멀리서 사해맹룡을 보기는 했다. 사해맹룡은 풍운을 힐긋 바라보더니 짧게 대답한다.
“사해맹룡”
“역시 제 예상대로군요.”
풍운은 담담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해맹룡을 보고 군산해전에서의 일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군산해전 당시 사해맹룡이 지휘하던 전투선단이 혁린무일행과 합치기도 전에 배화교의 주력이던 흑룡방이 도망(?)쳤으며 사해방의 전투선단과 혁린무일행은 장강수로십팔체가 형성한 포위망에 둘로 갈라져 있었다. 당시 상황을 냉정하게 본다면 흑룡방이 도망친 이상 자신들의 패배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었으니 사해맹룡이 신의(新義)가 없는 사람이었다면 자신들만 살겠다고 도망쳤을 것이다. 하지만 사해맹룡은 자신들의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장강수로십팔체의 포위망을 뚫고 혁린무 일행을 보호하며 악양으로 후퇴했다. 만일 사해맹룡이 지휘하는 전투선단만 아니었다면 혁린무일행은 한명도 빠짐없이 군산앞바다에 수장되었을 것이다. 풍운은 림산전투에서의 상황도 생각해 보았다. 사해맹룡은 아비규환(阿鼻叫喚)으로 변한 상은계곡에서 부상자들을 먼저 보내고 가장 늦게 탈출했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만 살겠다고 도망치는 마당에 부상자들까지 챙긴다는 것은 보통 사람이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특별히 하실 말씀은 없습니까?”
“한 가지 부탁이 있다. 나는 죽여도 좋지만 저기 있는 뱃놈들은 살려줘라. 저놈들은 명령에 죽고 명령에 사는 놈들로 아무것도 모르고 상부의 명령에 충실했을 뿐이다. 죄가 있다면 못난 놈을 주인으로 섬긴 죄가 전부다.”
사해맹룡은 자신보다는 부하들을 먼저 걱정했다. 풍운은 마지막으로 40대 중반의 사내의 앞으로 갔다.
“당신은 누구죠?”
“저기 있는 놈들의 대장이다.”
사내는 사해방 무사들 뒤에 있는 상관장로 무사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요. 이번 일에 가담한 동기(動機)가 뭐죠.”
“동기? 우린 이번 거사(巨事)를 준비하기 위해 가족들도 버리고 젊음을 다 바쳤다. 그런데 동기라? 그 질문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지 않느냐?”
“제가 질문을 잘못했군요. 그럼 이렇게 질문하죠. 당신들은 무엇을 얻고자 이번 일에 참여 했습니까?”
“지금 상황에서 그런 걸 알아서 뭐해. 그냥 상관장로와 뜻을 함께 있다고 치자. 더 이상 할말 없으니 그만 꺼져.”
사내가 굳게 입을 다물자 풍운은 포로들을 뒤로하고 다시 금산반과 대륙상회 책임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왔다.
“이제 결정하셨습니까?”
“금산반님..........이번 일은 대륙상회 내부의 일이라 제가 왈가불가 할 입장이 아닙니다.”
“풍운님은 이제 외인(外人)이 아니십니다. 저희들끼리 모여서 만장일치로 풍운님을 태상장로님으로 모시기로 했습니다. 태상장로는 일인지하만인지상(一人之下萬人之上)의 지위로 회장인 저보다도 높은 지위입니다.”
금산반은 풍운을 부르기 전에 대륙상회의 책임자들을 불려 모야 풍운을 태상장로로 추대하기로 결정했다. 풍운은 갑작스러운 금산반의 말에 크게 당황했다.
“제가 태상장로라니 말도 안 됩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 주세요.”
“이건 제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라 회원들 모두의 뜻입니다. 풍운님께서는 위기에 빠진 본회를 구해주셨고 은자의 주인이십니다. 태상장로님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모든 회원들도 인정했습니다.”
“저는 무림공적입니다. 제가 태상장로가 되면 여러분에게 패가 될 수 있습니다.”
“풍운님께서는 이미 사사천교의 태상장로시며, 천마마련주의 손녀사위 그리고 차기 장강수로십팔체의 총체주로 내정된 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풍운님께서 무림공적이라는 것을 모르고 모시지 않았을 겁니다. 저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풍운님의 주변 환경을 보고 태상장로님으로 모시고자 한 것이 아니라 풍운님 개인을 보고 결정한 겁니다. 부디 저희들의 뜻을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죄송하지만 사양하고 싶군요. 제가 누누이 말씀드렸지만 은자의 주인은 따로 있습니다. 또한 여러분을 도와준 사람은 저 혼자가 아닙니다.”
금산반은 풍운이 계속 사양하자 광장에 모인 포로들을 바라본다.
“풍운님..........풍운님께서 계속 저희들의 청(請)을 고사(苦辭)하신다면 저기 있는 죄인들은 회칙대로 처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풍운은 금산반의 말에 쓰게 웃고 말았다. 금산반은 포로들의 생명을 담보로 자신을 압박하고 있다. 만일 자신이 끝까지 거절한다면 왼쪽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재산을 압수하고 다시는 대륙상회에 발도 들어놓지 못하게 만든다고 했다. 평생 동안 장사만 해오던 사람들의 재산을 빼앗고 다시는 장사도 할 수 없게 만든다면 죽으라는 말과 별만 다를 것이 없다. 또한 중앙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죽이고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은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들까지도 죄를 묻겠다고 했다.
“휴~ 곤란하게 만드시는 군요. 좋습니다. 받아들이죠.”
“감사합니다. 다들 뭐해. 태상장로님께 인사들 드리게”
풍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금산반이 엎드리며 절을 하니 나머지 사람들도 바닥에 엎드려 풍운운에게 머리를 조아린다. 풍운은 수라기를 끌어올려 엎드린 사람들을 일으켜 세웠다.
“모두 일어나세요.”
사람들은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형의 기에 의해 자리에서 일어나 풍운을 바라본다.
“금산반님........모두 지나간 일이니, 반역이 어떻게 시작되고, 림산의 양민들이 얼마나 희생되고 등등의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태상장로께서 결정해 주세요. 놈들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습니까?”
금산반은 못을 박듯 태상장로라는 말에 힘주어 말했다.
“저는 더 이상 피를 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물론 핵심반역자들은 일벌백계(一罰百戒)로 다스려야 합니다. 하지만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관용을 베풀었으면 합니다.”
“태상장로님의 뜻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처리하면 되겠습니까?”
“왼쪽에 있는 상인들은 자신들의 죄를 속죄(贖罪)할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다시 말해 대륙상회의 회원으로 다시 받아들이라는 말입니다. 다음으로 중앙에 있는 무사들은 대부분 아무것도 모르고 이번 일에 참여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무슨 죄가 있겠습니다. 상관장로를 따르던 무사들은 무공을 패하고 풀어주시고 사해방 무사들은 우리에게도 필요하니 관용으로 용서하십시오.”
“그럼 사해방 무사들을 그냥 풀어주라는 말씀입니까?”
“대륙상회는 육상물류망과 해상물류망을 동시에 운영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해상물류망은 사해방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야 사해방의 운송망을 이용했지만 꼭 사해방이 아니라도 본회의 해상물류를 맡길 만한 세력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다른 세력은 제처 두고라도 태상장로님과 연이 있는 장강수로십팔체도 저희들과 얼마든지 협력할 수 있습니다.”
“저도 그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운송이라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으니 장강수로십팔체라도 많은 시행착오를 거칠 것이며 그 피해는 대륙상회에게 돌아올 겁니다.”
“그럼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사해방 무사들도 용서하고 육철량도 용서하라는 말씀입니까?”
“그건 아닙니다. 육철량은 이번 반역의 핵심인물이며 사해방을 이끌어갈 자질도 부족한 사람입니다. 또한 한번 번역한 자는 또 다시 반역을 꿈꾸기 마련입니다. 육철량과 그와 동조했던 사해방 책임자들은 처단하고, 사해맹룡에게 사해방을 맡겼으면 좋겠습니다.”
“사해맹룡이요?”
금산반은 풍운의 말에 얼굴이 굳어진다. 사해맹룡은 사해방 전투선단을 이끌고 군산해전에 참여해 풍운일행과 일전(一戰)을 치렀으며, 이번 림산전투에도 참여했던 사람이다. 지금까지의 사건을 종합해보면 풍운은 사해맹룡에게 좋은 감정보다는 나쁜 감정을 많아야 정상임에도 불구하고 사해맹룡에게 사해방을 맡겨 대륙상회와 계속 거래하라고 한다. 도대체 풍운의 속을 모르겠다.
“태상장로님........방금하신 말씀 진정이십니까?”
“사해맹룡은 신의(新義)가 깊고 진정으로 부하들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저런 사람이 사해방의 방주가 되면 다시는 대륙상회를 져버리는 일은 하지 않을 겁니다.”
금산반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금산반도 사해맹룡의 됨됨이를 알고 있기에 풍운의 평가가 정확하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오른쪽에 있는 놈들 중에 사해맹룡을 제외한 나머지 놈들은 회칙대로 처리하면 되겠습니까?”
“가족들에게까지 죄를 묻는 것은 너무 가혹하군요. 본인들만 회칙대로 처리하세요.”
“태상장로님은 너무 관대(寬大)하시네요. 알겠습니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그럼 이제 제가 없어도 되겠죠. 저는 이만 물려가겠습니다. 나머지 일은 금산반님께서 알아서 처리해 주세요.”
“그렇게 하세요. 피곤하신데 저희들이 너무 붙잡고 있었군요.”
풍운은 광장에 모여 있는 포로들을 한번 살펴보고 지하대전으로 향했다. 금산반은 풍운이 떠나자 대륙금위들을 불려 모았다.
“오른쪽에 있는 놈들 중에 육철량과 상관장로는 참형에 처해 림산 저작거리에 효시(梟示)하고 사해맹룡을 제외한 나머지 놈들은 모두 목을 쳐라. 그리고 중앙에 모여 있는 놈들 중에 상관장로을 따르던 놈들은 무공을 패하고 림산 밖으로 내쫓고, 나머지 놈들은 모두 풀어주어라.”
“존명(尊命). 명대로 따르겠습니다.”
대륙금위들은 오른쪽에 모여 있던 놈들을 형장으로 끌고 갔고, 중앙에 모여 있던 무사들 중에 상관장로를 따르던 무사들을 골라 무공을 패하고 림산 밖으로 끌고 갔다. 사해맹룡과 사해방 무사들은 아직까지 사태파악을 못하고 있는데 대륙금위 몇 명이 그들의 포박을 풀어주었다.
“태상장로님께 감사드려라. 그분이 아니었으면 너희들은 모두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가라.”
“저, 정말 가도 되는 겁니까?”
“집으로 돌아가 기다리면 회장님으로부터 별도의 연락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걱정하지는 마라. 너희들은 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사해맹룡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돌아보다가 사해방 무사들을 이끌고 광장을 빠져나갔다. 금산반은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나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사람들을 돌아본다. 그들은 자신에게 불만을 품고 상관장로에 협력했던 회원들이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죽여 버리고 싶지만 풍운의 부탁도 있으니 자신의 감정을 죽이기로 했다.
“너희들........내가 무얼 그리 잘못 했느냐? 나에게 섭섭한 것이 많더냐?”
금산반이 상인들 앞으로 와서 푸념하듯 말하니 상인들은 얼굴을 들지 못하고 고개만 숙이고 있다.
“다른 말은 모두 집어치우자. 태상장로님께서 너희들에게 속죄할 수 있는 기회를 주라고 하셨다. 태상장로님의 얼굴을 보아서라도 앞으로 잘해주기 바란다. 만일 또다시 불미스러운 일을 일으키면 그때는 용서치 않겠죠. 모두들 태상장로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돌아가라.”
금산반이 씁쓸하게 웃으며 돌아서니 대륙금위들이 상인들의 포박을 풀어주었다. 림산을 피바다로 만들었던 반역사건은 이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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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하벽이 지휘하는 흑도연합군은 잠도 자지 않고 림산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초하벽은 혁린무를 죽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워 림산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벽랑! 어디 아프세요. 얼굴이 어둡습니다.”
초하벽의 나란히 말을 달리고 있는 여언상이 불안한 목소리로 물어본다.
“그냥! 혁린무를 끝내지 못한 것이 아쉬워서.........매제 얼굴을 어떻게 볼지 난감하군.”
“혁린무는 단전이 파괴되어 다시는 무공을 쓸 수 없다고 하셨잖아요. 그만하면 풍운님도 만족하실 겁니다.”
“그럴까?.........그럼 다행이고........하여튼 서두르자. 새벽이 되기 전에 림산에 도착해야해.”
“왜 이렇게 서두르시는 거죠.”
“매제에게 한시라도 빨리 혁린무의 소식을 알려줘야 해. 그래야 매제가 대책을 세우지.”
초하벽과 흑도연합군은 아침나절에 자신들이 주둔했던 곳에 도착했다. 림산에는 무림군이 주둔하고 있으니 자신들이 직접 림산으로 들어가긴 곤란한 점이 많았다. 초하벽은 야산에 도착하자 몸이 빠른 몇 명의 무사를 보내 풍운을 찾아보라고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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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은 새벽 일찍 일어났다. 하루 동안의 휴식으로 그동안 쌓인 피로가 풀려 평소처럼 일찍 일어난 것이다. 풍운은 어제 저녁 무경과 많은 이야기를 했다. 자신이 대륙상회의 태상장로 된 것과 포로들을 처리 문제를 이야기 했다. 무경은 풍운이 현명한 판단을 했다고 했다. 대륙상회는 대륙상권의 절반이상을 장악하고 있으며 추측하기도 불가능할 정도로 막대한 자금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관부(官府)와 황실도 대륙상회와 상부상조(相扶相助)할 정도로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뿐더러 대륙에 거미줄 같이 연결된 회원들을 중심으로 중원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막강한 정보력을 가지고 있다. 대륙상회는 풍운에게 날개를 달아준 것이다.
풍운은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림산에서의 일이 모두 끝나고 혁린무일행도 섬멸했으니 더 이상 림산에 머물려 있을 이유가 없다. 또한 혁린무가 물려갔다고 하여 이대로 포기할 배화교가 아니다. 배화교는 지금까지 중원 무림정복을 위해 많은 준비를 해왔다. 언젠가 마수가 이런 말을 했다.
“배화교가 천마연무에서 재련하고 있는 강시들이 완성되면 배화교가 전체가 중원으로 쳐들어 올 것이다.”
무경은 악무룡과 도치가 아직 부상중이고 나머지 사람들도 개인적으로 할일이 있을 것이니 일단은 림산을 떠나 조용한 곳으로 가지고 했다.
풍운은 침상에서 일어나 탁자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지하라 시간이 얼마나 됐는지도 모르겠군.”
“똑똑똑~”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풍운은 침상을 돌아보더니 문을 열어주었다.
“잘 주무셨습니까?”
“어서오세요. 들어오시죠.”
새벽에 풍운을 방문한 사람은 금산반이었다. 금산반은 풍운과 함께 자리했다.
“무경님은 아직 주무시는 모양이죠.”
“늦게 잠들었어요. 혹시 무경을 보려 모셨으며 깨울까요?”
“아닙니다. 깨우지 마세요.”
금산반은 탁자에 단검(短劍) 한 자루와 장검(長劍)하나를 올려놓았다.
“이게 뭡니까?”
“단검(短劍)은 막사검(莫邪劍)이고, 장검(長劍)은 용천검(龍泉劍)입니다. 두 자루 모두 무림십대기병에 들어가는 무기들입니다.”
풍운은 무림십대기병이라는 말에 막사검과 용천검을 살펴보았다.
“막사검은 같은 무림십대기병인 설비와 더불어 쌍비(雙匕)라고 부를 정도로 비슷하게 생겼지만 애리함에 있어서만큼은 십대기병 중 으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용천검은 주인에게 늠름한 기상과 용맹을 북돋아 주는 병기라는 전설이 있습니다.”
“그건 잘 알겠는데........이걸 왜 가져오신 겁니까?”
“막사검은 제가 지니고 있던 검이고 용천검은 육철량이 가지고 있던 겁니다. 우리 상인들에게 검(劍)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막사검과 용천검은 태상장로님에게 어울리는 무기입니다.”
“지금 저에게 이걸 주시겠다는 말씀입니까?”
“막사검은 본회의 태상장로를 상징하는 신물로 삼았습니다. 태상장로님은 향상 역용을 하고 다니시니 본회의 식구들이 장로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불경(不敬)을 저지를 것 같아 취한 초치입니다.”
“막사검은 그렇다고 치고.........용천검은 뭐죠?”
“무기는 길수록 유리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태상장로님의 무공이 워낙 높으시니 걱정할 것은 없지만 위급한 순간에는 용천검 같은 무기가 필요하실 겁니다.”
풍운은 두 자루 검을 보며 잠시 고민했다. 막사검은 태상장로를 상징하는 신물로 삼았다고 하니 무조건 받아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용천검은 아니다. 아직까지 무기의 형태로 변화시키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내면에는 천상의 무기가 숨겨져 있다. 다시 말해 용천검 같은 무기가 필요치 않다는 말이다.
“저기........용천검을 제가 받으면 제가 주인이 되는 거죠.”
“당연한 말씀이죠.”
“제가 주인이니까 다른 사람에게 주어도 되겠죠.”
풍운은 용천검을 보자 두 사람이 생각났다. 십이사 중에 북해에 있는 벽궁수혜와 이막수는 검(劍)을 사용한다. 풍운은 이막수에게 용천검을 줄 생각이다.
“누굴 주시겠다는 거죠?”
“비검옥랑 이막수님은 검(劍)을 사용하세요. 이막수님께 드리려고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장로님께서 주인이신데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장로님 뜻대로 하세요.”
“그럼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풍운은 두 자루 검을 챙겨 한쪽에 놓아두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오늘부터 림산이 무척 바빠질 겁니다. 이번 반역사건으로 육상물류망을 담당하던 사람들이 많이 상했습니다. 또한 사해방을 정비하여 해상물류망도 다시 점검해야 하고, 점포에 방치된 반역의 혼적들을 지우고 다시 장사를 시작해야죠.”
“당연히 그렇게 해야죠. 림산이 하루라도 정상화되어야 회원들과 회원들로부터 저렴하게 물품을 공급받던 양민들에게 도움이 되겠죠.”
“그럼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해야 할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습니다. 장로님........제가 자주 오지는 못하겠지만 필요하신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알겠습니다. 바쁘신데 올라가 보세요.”
금산반은 풍운에게 인사하고 비밀통로를 이용해 대전을 빠져나갔다. 금산반이 가고 얼마지나지 않아 다른 일행도 모두 일어나 아침식사를 했다. 풍운이 이 자리에서 자신이 대륙상회의 태상장로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무경과 논의했던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다. 그들이 식사를 마치자 대륙금위 한명이 달려왔다.
“흑도연합군이 림산으로 돌아와 장로님 일행을 찾고 있습니다.”
“벌써 돌아왔어요. 생각보다 빠르네요. 지금 어디 있죠.”
“저번부터 계시던 야산에 계시다고 합니다.”
“알았어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대륙금위가 나가자 풍운은 일행을 돌아본다.
“한분도 빠짐없이 모두 짐을 챙겨서 나오세요.”
“모처럼 편안하다 했더니 이 생활도 끝이군.”
“왜 불만이냐. 그럼 너는 남아라.”
“싫다. 가련다.”
악무룡과 도치가 티격티격 싸우며 자신들의 방으로 돌아갔다. 악무룡도 많이 호전되어 혼자서 걸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풍운과 무경이 간단한 짐을 챙겨 기다리고 있으니 나머지 일행이 한명, 한명 모여들었다. 풍운은 모든 사람들이 집합하자 대륙금위을 불렸다.
“림산외곽으로 연결된 비밀통로까지 안내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따라오시죠.”
풍운일행은 대륙금위들을 따라 림산외곽에 연결된 비밀통로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는 저희들이 알아서 가겠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어요.”
“아니.........어디 가시는 겁니까?”
“금산반님께 인사도 없이 떠나 죄송하다고 전해주세요.”
“안됩니다. 회장님께서 장로님일행을 모라고 했는데........이렇게 말도 없이 떠나시면 저희들이 혼납니다.”
풍운은 자신들을 따라온 2명의 대륙금위들에게 다가가더니 전광석화(電光石火)같은 손놀림으로 두 사람의 마혈을 제압했다.
“한 시진 정도면 마혈이 풀릴 겁니다. 금산반님도 이해하실 겁니다.”
풍운일행은 대륙금위들을 뒤로하고 비밀통로를 이용해 밖으로 나와 흑도연합군이 있다는 야산으로 향했다. 초하벽은 멀리서 다가오는 풍운일행을 발견했다.
“하하하~ 처남 생각보다 빨리 돌아왔군.”
풍운이 초하벽의 손을 잡고 인사를 건네자 초하벽은 씁쓸하게 웃는다.
“미안해. 혁린무를 죽이지 못했어.”
초하벽은 지금까지 있었던 이야기를 비교적 자세하게 말해 주었다. 풍운일행은 초하벽의 이야기를 듣고도 담담한 표정이다.
“도망쳤던 나머지 놈들을 모두 죽이고 혁린무의 단전을 파괴했다면 패인으로 만들었다는 거잖아. 그 정도면 충분해. 하여튼 수고했다.”
“매체 얼굴 볼 면목이 없다.”
“자식~ 지금까지 도와준 것만 해도 충분히 감사하고 있다. 그런 작은 실수야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야.”
풍운의 말에 초하벽의 얼굴이 어느 정도 밝아진다.
“처남.........우린 지금 림산을 떠날 거야. 처남일행도 그만 돌아가.”
“그래. 그럼 본련으로 가자. 벽하가 좋아할 거다.”
“우리끼리 할일이 있어. 벽하에게도 처남이 잘 이야기 해죠.”
“참내~ 곤란한 일만 시키는군. 좋아. 어디로 갈 거야. 그거라도 알고 가야지.”
“글세.......아직 어디로 갈지 정하지 않았지만 북쪽으로 올라갈 거야.”
“그럼 우리랑 반대방향이네........지금 떠날 거냐?”
“말 나온 김에 바로 출발해야지. 처남.........그동안 고마웠다. 다시 만날 때까지 잘 지네라.”
“그래........매제도 잘 지네. 벽하나 소하교주에게는 내가 잘 말해 줄게.”
풍운일행은 흑도연합군과 림산을 뒤로하고 북쪽으로 올라갔다. 초하벽은 멀어지는 풍운일행을 바라보다가 옆에 있는 불영광마를 돌아본다.
“장로님.......우리도 출발하죠.”
“그렇게 하세. 우리도 가야지.”
흑도연합군도 림산을 뒤로 하고 남쪽으로 내려갔다.
--------- << 파트2 끝 >> ---------------------
이번 편을 마지막으로 파트2를 종결합니다.
파트1에서와 마찬가지로 <또 다른 시작>이라는 부제는 파트2와 파트3을 연결하는 부제입니다. 파트3에서는 배화교의 대공자인 혁린강이 새로이 만들어진 십이사와 강시군단을 이끌고 중원으로 넘어오게 됩니다. 과연 십이사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파트3를 기대해 주세요.
-------- 작 가 주 -----------------
*아비규환 [阿鼻叫喚]
‘아비(阿鼻)’는 범어 Avici의 음역으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아비지옥은 불교에서 말하는 8대 지옥 중 가장 아래에 있는 지옥으로 ‘잠시도 고통이 쉴 날이 없다’ 하여 무간지옥(無間地獄)이라고도 한다. 이곳은 오역죄(五逆罪)를 범한 자들이 떨어지는 곳이다. 즉 부모를 살해한 자, 부처님 몸에 피를 낸 자, 삼보(보물·법물·승보)를 훼방한 자, 사찰의 물건을 훔친 자, 비구니를 범한 자 등이다. 이곳에 떨어지면 옥졸이 죄인의 살가죽을 벗기고 그 가죽으로 죄인을 묶어 불수레의 훨훨 타는 불 속에 던져 태우기도 한다. 야차들이 큰 쇠창을 달구어 입·코·배 등을 꿰어 던지기도 한다. 이곳에서는 하루에 수천번씩 죽고 되살아나는 고통을 받으며 잠시도 평온을 누릴 수 없다. 고통은 죄의 대가를 다 치른 후에야 끝난다.
‘규환(叫喚)’은 범어 raurava에서 유래한 말로 8대 지옥 중 4번째 지옥이다. ‘누갈’이라 음역하며 고통에 울부짖는다 하여 ‘규환’으로 의역한다. 이곳에는 전생에 살생·질투·절도·음탕·음주를 일삼은 자들이 떨어지게 된다. 이들은 물이 펄펄 끓는 가마솥에 빠지거나 불이 훨훨 타오르는 쇠로 된 방에 들어가 뜨거운 열기의 고통을 받게 된다. 너무 고통스러워 울부짖으므로 ‘규환지옥’이라고도 한다. 아비지옥과 규환지옥은 너무나 고통스러워 울부짖는 곳이다. 그러므로 이 지옥에서처럼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할 참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 참형 [斬刑]
신수이처(身首異處)’라는 사형집행 방법으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형벌이며, 조선시대까지 사형수는 모두 참형으로 집행하였다. 조선시대의 사형수는 춘분(春分) 전과 추분(秋分) 후에 형을 집행하는 대시수(待時囚)와, 형이 확정되면 즉시 집행하는 특별한 경우의 부대시수(不待時囚)로 구분하여, 대시수는 새남터와 당고개(용산)에서 형목(刑木)에 머리를 매고 목을 완전히 절단하였고, 부대시수는 무교(武橋) ·서소문 밖에서 집행하되 목을 완전히 베지 않았는데, 칼질은 천인인 망나니가 하였다.
** 효시 [梟示]
대죄(大罪)를 범한 사람의 목을 베어 매달아 군중 앞에 공시함으로써 대중을 경계시키던 일이며, 효수(梟首)라고도 한다. 이러한 제도가 언제부터 실시되었는지 분명하지 않으나, 예로부터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 드립니다
잘봅니당~
감사합니다~^^
잘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요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