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06월18일 토요일오후3시37분
구포역, 3시42분 발 동대구 행 무궁화 열차를 타기 위해 철로선변에서 대기 중이다. 곧 열차가 들어온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기차가 서서히 들어오고 있다. 기차를 타고 살풋 눈을 감았다. 지금 16시07분 곧 밀양역에 도착 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동대구 도착 시간은 16시47분이다. 구포에서 동대구 까지 1시간 05분이 걸리는 셈이다. 정말 빠르다. 격세지감이 든다. 기차 내부도 깨끗하고 세련되어있다. 승차요금이 비싼 기차나 별 다른 차이가 없을 것 같다. 단지 빠르기에 차이를 두는 모양이다.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 대구에서 삼랑진 할아버지 산소에 벌초를 하기위해 일 년에 한 번 기차를 탈 기회가 있었다. 그 전날은 기대에 부풀어 잠을 설치고 통금시간이 해제되는 새벽 4시가 되면 조금 떨어진 가게 방에 주무시는 아버지를 깨우러 가면 부드러우면서도 약간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아직 더 있다가 가야된다고 말씀 하신다. 당시 하나 밖에 없던 괘종시계가 캄캄하여 보이지는 않지만 4 시를 알리는 시계종소리를 듣고 아버지한테 달려갔다가 그 말씀에 풀이 죽어 방으로 되돌아오던 기억이 난다. 당시는 집에서 대구역까지 약4〜5Km거리를 걸어서 가야했다. 기차시간을 모르는 나로서는 기차를 탈 수 없을까봐 조바심을 친 것 같다. 완행기차는 모든 역을 거쳐 갔다. 기억으로는 대구에서 삼랑진까지 약4시간 정도가 소요되지 않았나 싶다. 기차가 서는 역마다 김밥과 삶은 계란, 과일 정도를 좌판과 양손에 높이 들고 팔고 있었다. 기차 실내는 처음 기억으로는 창문의 벽면을 따라 나무로 된 긴 의자가 놓여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고 어느 때는 바닥에 짚이 깔려있는 화물열차를 타고 간 기억도 난다. 아마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가장 싼 화물열차를 선택하지 않았나 싶다. 그 당시 기차의 창문은 밑에서 위로 들어 올리는 구조였다. 어린 나에게는 창문을 열고 닫는 것이 거의 불가능 했을 정도였다. 그래도 기차를 탄다는 것만으로 흥분이 됐었고 아버지가 사 주시는 짚으로 엮은 세알씩 든 삶은 계란을 먹을 수 있을 때는 세상 더없이 행복 했었다.
동대구역에 도착 했다는 멘트를 들었지만 글에 정신이 팔려 있다가 타는 사람들을 힐끗 쳐다보고서야 제 정신이 들어 부리나케 자리에서 일어나 타는 사람들을 헤집고 양해를 구하면서 간신히 뛰어 내릴 수 있었다.
지금 시간은 오후10시17분, 구포행 KTX기차 안이다. 만남을 끝내고 10시05분 기차를 탔다. 동생 둘, 무진과 태진이가 동대구 역 까지 바래다주었다. 표를 끊으니 바로 5분 후 출발 기차다. 동생들과 제대로 된 인사도 못하고 바쁘게 기차승차구역으로 뛰어간다. 올 때의 무궁화편은 경노우대가 되어 4,500원 이었는데 지금 탄 KTX기차는 10,300원이다. 그래도 있어서 다행이다. 오늘 숙이를 위한 잔치? 는 횟집이었다. 형제들이 모였으니 지나간 추억이 주된 화두였다. 그래도 모두가 아직도 건강 하니 고맙다. 음식점을 나와 걸으면서 잠깐 이지만 명희 의 지난 시절 얘기 한 토막을 듣는다. 그 무책임하고 얼빠진 배 서방(명희남편)에 대한 화가 치민다. 지난 세월이라면서 웃으며 남의 일처럼 말하는 동생이, 왈칵 연민의 정으로 다가오면서 나 자신에 대한 회한이 인다. 동생부부 사이가 좋지 않음은 대충 눈치로만 알고 있었지 깊은 내용은 모르고 있었기 때문일 것인가. 마음속엔 아직도 끓고 있는 용암이 있음을 느낀다.